하얀토끼를 따라가다보면
려원
토끼를 따라가는 건
하얀토끼가 빨간 눈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숲속에서는
아무리 눈이 충혈돼도
누구 하나 빨간 눈을 들여다보며 이상하다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아서 좋아요
눈물을 왈칵 쏟아내기 좋은 나이
저만치
노을이 깊어져요
하얀토끼 발자국을 하얗게 따라가다 보면
노을에 물든 것 같이 빨간 눈을 가진
토끼를 만날 수 있지요
토끼는 충혈된 눈으로
우두커니 먼 산만 바라다보고 있습니다
토끼의 눈동자 깊은 곳에 온통 붉은 저녁노을이
깃들어
새끼를 쳐요
노을의 걸음마를 계속 따라가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동굴에 이르게 되지요
동굴은 노을을 위한 집
저녁노을에게도 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동굴 속에 하얀 토끼털이 자라나
순결한 어둠은 어느새 알을 품은 새들의 둥지처럼
포근해져요
하얀 것들은 붉은 눈으로 바라다 본 세상처럼
투명해서 기뻐요
웹진 『시인광장』 2023년 6월호 발표
려원 시인
2015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시집으로 『꽃들이 꺼지는 순간』(시와표현, 2016)이 있음.
[출처] 하얀토끼를 따라가다보면 - 려원 ■ 웹진 시인광장 2023년 6월호 신작시ㅡ통호 제170호|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