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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ush on You 2
:너와 나의 연결 고리(2)
그 날의 악몽이 떠올랐다. 얼마나 생생한지 눈을 번쩍 떴다. 그 날 그렇게 얼빵하게 죄송하단 말은 차마 다시 못했다. 그런 나를 창피해 하며 원이가 나를 끌고 그 곳을 나왔다. 내가 끌고 나왔어야할 원이는 내 손목을 잡고 나를 질질 끌었다. 나를 끌기 전엔 누나를 대신 해서 정말 죄송해요. PD님. 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택시 안에서..원이의 멱살을 잡았다. 그제야 몰려드는 창피함과 어쨌든 그렇게 엮여선 안 될 남자와 엮였다는 사실이 자각이 들어서 였다.
그 날이 지나고 아침부터 나를 놀리는 이재혁의 문자에 1차 빡침. 스케줄을 하러 가며 용식이에게 털어 놓았더니. 누나 망했네요. 를 친히 알려주는 덕분에 2차 빡침. 누나 너 이번에도 김원호 작가님이랑 못하겠다. 는 원이의 문자에 3차 빡침. 스케줄이고 뭐고 원이를 잡으러 가겠다며 난리부르스를 쳤다.
그 날 이후 모든게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차마 이 일을 말했다간 내 멱살을 잡을 수 있는 이 실장님에게는 사실을 고하지 못했다. 이 실장님 환히 웃으며 내게 대본도 구했고 김원호 작가님이 네가 좋다고 어필도 하겠다더라. 김도우PD랑 약속도 잡았다. 이렇게 말하는데 등골이 서늘했다. 왜냐면 그 문제의 날 내가 질질 끌려 나가면서 남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두 눈을 막 찌푸리고 있었다. 나. 너. 되게 마음에 안들어. 뭐 이런 눈이었다. 근데 이 실장님과 약속을 잡은거 보면, 공과 사 구분이 뚜렷한 신남성상인가 싶어 아주 조금 희망에 부풀었다. 아니 사실 많이. 왜냐면 김원호 작가님의 대본은 여전히 단숨에 읽을만큼 재밌었거든.
그리고 오늘. 대망의 날이었다. 이 실장님이 김도우PD를 만났고 김도우PD 쪽에선 그럼, 주여니씨는 명성도 있으니. 오디션겸 미팅을 하자고. 이 실장님은 내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말했다. 무엇보다 김원호 작가님이 무한 지지를 보내는 중이라고 했고. 김원호 작가님이면 김도우PD의 3년 연차에 그렇게 밀어 붙이는게 걔 목숨이 두개래? 걔 김원호 작가님이랑 드라마 하기 싫데? 이런 뜻이기도 하니. 지지를 보내주시는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어찌어찌 알아낸 번호로 짧막한 문자도 보냈다. PD한텐 이미지를 망쳤지만...작가님께라도 잘 보여야 하니까.
징-징-
"응,"
"누나. 일어나셨어요? 저 1시간 뒤에 갈게요."
"응."
용식이의 전화까지 받고 스트레칭을 하며 일어났다. 침대 위에서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샤워도 하고 거울을 보면서 뺨도 몇대 때렸다. 호랑이굴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주여니! 네가 뒷..통수를 친 그 기억은 일단 넣어둬. 작가님 대본에 있던 지문들을 기억하며, 레몬물도 한 잔 마셨다. 모든게 완벽했다. 악몽을 꿨지만. 몸도 가뿐했다. 오디션겸 미팅이니 샵은 안가도 되고 오늘 스케줄은 이것 밖에 없어 코디도 부르지 않았다. 대충 자연스러움을 어필하기 위해 화장도 서툴게 해주고, 머리 손질도 빗질로 슥슥- 마쳤다. 평범하고, 조금은 통통..? 한 여자가 주인공이랬으니. 스키니 말고 일자바지로 입어줬다. 이 실장님 말로는 김도우PD가 걸려하는건 내 몸매 뿐이라고 했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칭찬이겠지.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다. 뭐, 뒷통수 두 번에..꼭 억한심정을 가지시진 않겠지. 라는 나의 자기 합리화 정도?
쿵-쿵-쿵-
"누나! 저에여! 누나!"
"문 부서지겠다! 용식아!!!"
문이 곧 부서지기 전에 달려가 문을 열었다.
"전화 안받으시길래 아직도 주무시는 줄 알고.."
"내가? 아! 침실에 휴대폰 있어서 몰랐어. 기다려 가방챙겨 나가기만 하면 돼!"
"네, 누나. 근데 영화 끝난지 얼마 되셨다고 작품 하실 수 있겠어여?"
"어? 그럼! 나 강철체력이야!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지. 보단, 김원호 작가님 언제 잠적할지 모르는데 5년 또 기다리면 내 나이가 몇인줄 알아? 하루라도 어릴때 작품 해야해. 이번엔 엄청 평범한 여자 역할인데, 내가 영화에선 이번에 나쁜 여자 역할이었으니까. 이미지 변신도 될 것 같고."
"누나 그렇게 말 많으신거 보니 엄청 하고 싶으신 가봐여."
"..어, 나 너무 티나? 근데..김도우PD얼굴 어떻게 보냐..나.."
"누난 연기자에여! 할 수 있어여!"
그래 난 연기자야. 할 수 있..을거야.
/
"없을 것 같아...용식아 누나 떨고 있니....?"
"...네 많이여."
너같으면 안 떨겠니..?
아니여..저면 여기 얼씬도 안했져. 누나.
그치 내가 그렇게 제정신은 아니야. 재혁이가 문자보낸 것처럼 [그 짓을 하고도 오디션 볼껀 아니지?] 왜 아니겠니. 이재혁아. 하고 혼자 비웃었는데. 그걸 하고도 오디션 보려고 했던 내가 초라해진다. [회의실] 이름이 쓰여진 저 문 하나를 열지 못해 끙끙 대고 있다. 곧 이 실장님도 도착할텐데. 그럼 이렇게 어찌할바를 모르지 않고 들어가야 하는데, 나 용기가 안난다. 아무리 내가 철판을 깔고 사는 직업이지만, 콩-콩- 애꿎은 벽에 머리를 쳤다.
"왜 하필 김도우PD일까. 응?"
"...누나.."
"원이 그자식 멱살을 더 잡았어야 했어. 그치. 용식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저기, 누나. 제 추측으론 문 열고 나온 젊고 잘생긴 남자분이 김원호 작가님보단 김도우PD님에 가까운 것 같아요. 지금, 우리 쪽으로 와요."
뭐? 뭐라고? 급히 머리를 정리하고 앞을 봤더니. 그래, 하얀 셔츠에 슬랙스 차림인 그 때 그 남자 얼굴이 맞다. 뭐 트레이드 마크야? 아님 날 괴롭히기 위한 작전인가? 왜 그 때랑 똑같은 스타일이시냐고요. 덤으로 그 잘난 얼굴까지.
"안들어 오시고 뭐하세요. 2분 늦었습니다."
"아, 그게. 어, 머리를 정돈 중이었어요. 네, 마지막 점검정도? 지금 가려고요."
"…큼. 네. 작가님도 기다리고 계세요."
지금 웃었다. 이 남자가 날 비웃었어. 내가 쪽팔려서 못 들어가고 망설인거 다 아는거야. 그리고..용식이를 힐끔 보니 용식이도 느꼈는지 웃음을 참고 있다. 저게 죽을라고. 넌 이따봐. 엄지 손가락으로 목에 한 번 가로로 그어주고. 김도우PD를 따라 갔다. 어쩐지 푸근한 큰 아버지가 생각나는 작가님이 앉아계셨다. 사람 좋게 웃고 계시는 작가님께 인사를 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음, 회의실이라 그런지 되게 긴 테이블에 쪽수로 불리한 2대 1의 느낌도 나고.
"여니씨 화장기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예쁘네요."
작가님의 칭찬에 잔뜩 긴장한 모습에서 그나마 웃을 수 있었다. 저 맞은 편에 내 편이 있었구나. 근데, 그 옆으로 사악한 기운이 감지되고 있어 보니..와, 나. 얼굴 뚫어지겠는데요? 감독님? 차라리 내 뒷통수 두대 때리라고 할까. 그러면 쌤쌤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말도 못꺼내겠다. 내가 하자 되게 많다는 듯이 보고 있는 눈빛에...나는 정말 억울하다. 라는 눈빛으로 답신 중이었다. 원이를 어떻게 죽여야할까. 고민도 좀 하고.
"예쁜게 문제라는데 우리 김감독은."
"네?"
"내가 쓰는 작품은 평범한 20대 후반 여자에요. 여니씨 나이가 20대 중반은 넘었지만, 아직 어려보이고. 사실 평범이 쉬운건 아니지만, 볼살도 좀 있었으면 좋겠고 너무 마르지 않았으면 좋겠고. 너무 관리받지 않은 여자를 생각하고 있던 터라."
네, 네. 그렇죠. 이 실장님이 꾸준히 언급한 내가 이 드라마에 캐스팅 되기 힘든 이유였다.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작가님의 말에 나는 다시 웃음기가 사라졌다. 몸매는, 학창시절 아직 키로 못가 키가 156이였을 때였나. 아역으로 출연한 작품이 성연 배우들로 바뀌면서 아역배우는 통통했는데, 성인배우는 다이어트를 했다. 아역배우 얼굴이 통통했는데 성인배우는 지방흡입을 한거냐. 이런 글들을 보면서 눈물을 머금고 뺀 살이었다. 그 때 기억만 하면 식욕이 뚝 떨어져서 빠진 살이기도 하고. 그 이후론 관리하느라 먹고싶은거 꾹참고 많이 먹으면 그 다음날은 물로 연명하고 살았다. 지금은, 20대 워너비라는 나름의 말도 듣고 있어 필라테스도 하고 PT도 받아 이 마른 몸매도 탄탄하게 가꾼건데..
"난 우리 주여니씨라면 촬영 전까지 캐릭터에 맞게 잘 할거라 믿는데 말이야."
"아하하. 네, 그럼요."
사실 이 부분이 나도 제일 걸리는 부분이긴 한데. 음, 대본에 분명 몸무게가 적혀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앞자리가 4가 아니고 5였던 것 같아. 아니, 아니야. 할 수 있다. 주여니! 당연 할 수 있고 말고! 김원호 작가님이 저렇게 널 믿는다 하며 웃고 있는데.
"영화 촬영도 끝났겠다. 먹고 싶은것 마음껏 먹고 다음 작품 할 수 있어서 전 너무 좋은데요~?"
"여니씨가 이렇게 긍정적이라 좋다니까. 내가 5년 전에도 여름안에서 여니씨랑 하고 싶었는데, 그 쪽에서 일이 꼬여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몰라요."
이렇게까지 말씀해주시는데. 진짜, 엄청. 하고 싶다. 이작품. 그런 의지가 활활타오른다.
"김감독은 어때?"
"얼마나 찌울 수 있어요?"
"네?"
"살. 얼마나 찌우실 수 있는지 여쭤보는 거에요. 2주 좀 넘게 시간이 있긴 한데, 2주 뒤에 첫 대본 리딩이거든요."
"어, 촬영 전까지 5키로..?"
"..이건 절대 주여니씨 신체적인 부분에 관심있어서는 아니니 오해말고 몇키로인지 말해 줄 수 있어요? 대본 봐서 알겠지만 우린 160에 53키로, 그니까 사람마다 다르다곤 하지만. 화면에 통통 하게 나올 정도가 필요해요."
"아,"
그럼 내가 지금 그 식상한 너도 나도 연예인이라면 그 몸무게 45키로인데, 10키로는 더 쪄야 한다.
..2주안에?
"몇 키로인지는 너무 사생활이에요?"
"아, 아니요. 사십...오..키로..."
"10키로는 쪄야 하는데."
김도우PD가 회의적인 눈빛을 보내며 턱을 쓸어댄다. 옆에 앉은 김원호 작가님도 갑자기 고민이 많은 얼굴이다. 말라서 드라마에 출연을 못한다니. 다이어트를 숙명으로 살아가는 여배우에게 웃픈이야기다.
"2주 안에 5키로 어때요?"
"어,"
"자신 없으면 빨리 이야기 해주는게 좋아요. 난 꼭 내가 방금 말한 스펙정도의 여주인공을 쓰고 싶어요. 주여니씨가 싫어서 반대하는건 아니에요. 오히려 주여니씨가 해준다면 영광이지만, "
거참 되게 칼같으시네. 정신이 번쩍 든다. 호랑이 굴에서 까닥하다 잡아 먹힐 뻔 했네. 작가님이 함정인가. 까칠함도 이런 까칠함이 없다. 물론, 이미 알아본 이야기였다. 조연출 시절에도 유능함이 하늘을 찌르는 AD라는 소문이 파다했단다. 30살이 넘기도 전에 PD를 단 건 TBS 창립이래 한 손에 꼽기도 힘든 일이라는 소문도. 아, 되게 잘생겨서도 유명했단다. 그거야, 첫만남부터 알아봤고. 이재혁오피셜에 따르면 남자주인공 캐스팅 미팅때도 깐깐하셨단다. 이건 할 수있어요? 이건 가능해요? 이재혁도 이렇게 섬세한 PD님은 만나 본 적 없었다 했다. 그치만 PD님 전 작품도 봤는데, 연출이 좋다는 평이 많았다. 같이 하고 싶은 욕심이 더 피어올랐다. 실수야 만회하면 되는거니까. 그렇기도 아니기도 하고 지금 심정은 오락가락하지만.
"김 감독이 이런 섬세한 것까지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 처음엔 김감독도 여니씨 이야기에 좋아했다니까."
"작가님."
"아아, 알겠어. 김감독. 근데, 난 주여니씨가 마음에 들어. 김감독도 그렇게 반대하는건 아니면서 왜 이렇게 인상을 쓰나. 여배우 겁먹게."
"너무 말라서요. 직설적으로 말해서 미안하지만. 우린 생각보다 시간이 없어요. 첫방송 시기도 앞당겨질 것 같고,"
"2주 안에 5키로 가능합니다! 해요!"
"그렇게 내뱉고 볼 일이 아니에요. 주여니씨."
"가능합니다. 진짜에요."
일단 내뱉고 보자. 헐리우드 애들 보면 막 쪘다 뺐다. 자유롭던데, 못할 건 또 뭐야. 모든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 이 남자가 단지 내 살때문에 나를 노려본다면 살 좀 찌우고 그러면 나를 단지 배우로 보겠지. 맞아, 꼭 악연은 아닐거야. 인연이란게 다 좋은 일로 시작되는건 아니야. 주여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PD가 작품에 의지 있는 배우를 안 이뻐할 이유가 없어. 늘 했던 것 처럼 하면 되는거야.
"당차네. 그 때처럼. 내가 여름안에서 때 여니씨를 유심히 봤지."
"저 이렇게 작가님 칭찬 많이 받아도 되는거에요?"
"그럼. 여니씬 잘 할 수 있을거야.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좋거든. 그래서 우리 김PD도 내가 먼저 하자 한건데."
똑-똑-
"이야기 마무리 되던 중인가요?"
"어, 이실장. 오랜만이에요."
김원호 작가님이 먼저 일어나 이실장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니 작가님 옆에 있던 PD님도 일어나 악수를 하고, 그러다 보니 덜렁 나만 앉아있기 뭐해 일어섰다. 그래서 그 다음은 뭐지? 일단 몸둘바를 모르겠는 작가님 칭찬의 눈빛에서 벗어나긴 했는데. 좋기도 한데, 나의 어떤 점을 보고 작가님은 날 좋아하셨을까. 나야 작가님 작품을 워낙 사랑하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시간은 많을테니. 천천히 알아가기로 하고.
"다 일어나신 김에 식사나 하러 갈까요? 이건 뇌물은 아니고. 마침 점심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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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어요~둘의 첫만남은 언제였을지 궁금하네요
깽깽이0607님 첫만남은 음..아직 나오지 않지만 ㅜㅜㅜ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1
두사람의 첫만남이 궁금하네요. 잘보구 가요~
비스타님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첫만남은 천천히 나올 것 같아요!
재밌습니당ㅎㅎㅎ잘 읽고갑니다!!
고동색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댓글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