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의미로 볼 때도 '이성적 존재인 인간이 언제 어디서나 추구하고자 하는 바르고 곧은 것을 정의라고 한다.'
'저자 마이클샌덜는 "고대의 정의론은 미덕에서 출발했지만 오늘의 정의론은 자유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하였으며, 정의론의 저자 롤스 역시 "모든 사람은 기본적 자유에 대하여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하였습니다.
마이클샌더는 두 가지 상황을 전제로 두개의 정의로 변호하였으면 자신이 생각한 최선의 정의을 말하였습니다.
개인적인 제 의견으로는 아무리 시대의 따라 '정의' 뜻도 변하겠지만 그렇지만 '정의' 본질은 '맹자'의 성선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섬, 시비지심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맹자의 논리만큼은 정의와 도덕의 기본으로 생각되며 거기다 정의는 '만인에게 평등한 법'역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지만 오늘의 정의는 벤담의 '공리주의'가 오늘 날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이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정의는 이긴다'라는 말이 지금은 '이기는게 정의다'라고 합니다.
몇일전에 518 이었습니다.
'정의가 이긴다'라는 순리라면 518희생자들은 민주주의 실현의 정의의용사이며, 전두환과 5공실세들은 법의 심판과 함께 대한민국땅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518피해자들의 자살은 계속 되고 있으며, 그들이 받은 고문 휴우증으로 불면과 악몽에 시달리며 고통받고 있고,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일부는 극단적으로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전두환과 518관련 실세들은 어떠습니까? 어떠한 고통과 사회적인 차가운 시선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상류층으로 여전히 그들을 따르는 정치인이 있고 기업가있습니다. 오히려 유네스크가 인정한 518민주화운동은 아직도 폭동이라는 오명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신은 인간을 용서해도 역사는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정의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정의'의 분별하기 전에 가장 큰 문제는 '이중잣대'라고 생각이 듭니다.
마이클샌덜 교수는 두상황들의 정의를 논하기 전에 먼저 두가지의 입장을 최대한 변호하였습니다.
'이중잣대'가 들어가는 순간 '정의'진실은 왜곡이 된다고 생각이 듭니다.
지난 411총선 야당에서는 구호는 MB심판 이었습니다. 야당은 '나꼼수'의 힘을 빌려 마침 자기네들이 정의의 사도 마냥 정권심판론만을 적극 부각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선거는 졌습니다. 패배의 원인의 야당의 지도력 부재, 정책싸움실패, 언론의 물타기 여러이유가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정치적 공색때문에 진거 같습니다.
전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야당 측 지지자는 그런거 같습니다.
박근혜가 시장가면 '서민코스프레' 문재인이 시장가면 '민심탐방' 김흥국의 방송하차는 '연예인 정치중립 위반'이며 김제동의 방송하차는 '외압' 나경원의 피부관리 1억은 '그들만의 세상' 공지영의 샤넬가방은 '능력' 이명박 욕하면 '표현의 자유' 노무현 욕하면 '전직대통령의 예우의 어긋남' 이렇든 많은 이중잣대를 적용합니다.
야당의 '이중잣대' 역시 여당의 '이중잣대'또한 심합니다. 특히 공정성과 중립을 지켜야 할 언론과 검찰 역시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당은 MB심판론을 앞세운 정의론으로 승부수을 띄었으면 조금은 더 냉철하고 국민들에게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책으로 승부을 봐어야 하는데, 너무 '나꼼수'의 힘만 믿고 그대로 '버로우' 탔습니다.
정치뿐만 아니라 연예계 역시 마찬가입니다.
빅뱅의 G-드래곤 마약은 '실수' 여자아이돌의 담배는 '쳐죽일년' 대성의 차사고는 '실수' 오히려 피해자 잘못 무명배우의 음주운전 '예비살인마' 연예인들의 막말은 '실수' 이도경의 '남자 키 180cm 이하는 루져다'라는 말은 대한민국 남자들 죽이는 발언
그리고 요즘 교권붕괴가 심각합니다.
남의 자식이 선생님께 대들고 심지어 주먹을 휘드리면 그 학생의 집안은 콩가루 집안 하지만 내 자식이 선생님께 맞고 오면 폭력교사 물러가라
이렇든 늘 이중잣대로 정의를 논합니다.
정의는 절대 '이중잣대'가 들어가면 안되며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오늘 날 제가 생각하는 정의는 '일진'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요즘 인터넷상에서 기본적인 도덕개념이 패륜인들의 '막말남' 막말녀' 시리즈 동영상이 항상 인터넷을 뜨겁게 달굽니다.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크며 사회 정의 위해 활동하는 수 많은 네티즌이 막말남며들에게 엄청난 응징을 가합니다. 수 많은 욕설댓글은 기본이고 요즘말로 신상털기로 사회 생매장이란 처벌을 줍니다. 전 이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정의란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세일러문 명대사가 있듯이 ‘정의’와 ‘도덕’이라는 가면을 쓴 키보드워리어의 또 하나의 ‘집단다구리’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동영상은 찍으면서 왜 말리지는 못할까요? 그리고 동영상을 보면 주위분들은 다들 침묵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금방이라도 사지절단할 기세로 덤벼듭니다.
혼자서는 아무말도 못하면서 여럿이 모이면 만만한 왕따 괴롭히는 일진들 마냥... 오늘 날의 정의가 이렇게 왜곡되었습니다. 가해자는 몰론 자기가 뿌린 씨 자기가 걷어야 하겠지만 현장에서는 아무말도 못하고 인터넷에서는 ‘정의의사도’가 되는 불편한 현실입니다.
또 몇일 전 어떤 간호사가 '3초면 니들 죽일 수 있어'라는 트윗으로 논란을 빚었습니다.
사람들은 '3초면 니 신상털려' '3초면 넌 사회매장'등 한 간호사를 한순간의 살인마로 매도해버립니다. 몰론 직업윤리관의 그 간호사의 트윗글은 잘못이지만 사실 간호사에게 악플을 단 사람들은 그 이면에 그 간호사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생각을 해보았을까요?
그 간호사는 짖궂은 환자들에게 성적농담이나 인격적인 모욕이나 비하을 당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간호사가 그 글을 쓸 수 있겠습니까? 심한 스트레스때문에 스트레스 풀려고 쓴 글이 다른 사람의 또 다른 악플에 그 간호사는 씻을 수 없는 또다른 피해을 보았을 것이라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단순히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막말남녀들과 다를바 없는 집단폭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된장국녀’,‘채선당’사건등 억울하게 인터넷으로 주홍글씨가 새긴 피해자 실껏 욕할 때는 언제고 진실이 밝혀지면 ‘아닥’하는 현실... 전형적인 오늘의 교권붕괴에 일진들의 모습입니다.
글을 쓰다 불현듯 드는 생각이 저 학교 다닐 때는 지금의 ‘일진’들과 다르게 제 ‘일진’친구들 참 착했습니다.
전 일진 아니었습니다. 그냥 몇 명 친하게 지내는 애들이 그런 분류였지...
믿기지는 않겠지만 전 학교 다닐 때 반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참으로 착한 학생...
선생님께 이쁨받고 애들하고도 적대적 관계없이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며, 당연히 인기만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의 인기가 쬐금... 사실입니다. 거짓말 아닙니다. 몰론 그 인기가 이성친구가 아닌 동성친구들에게 많아지만...
오히려 ‘일진’ 이런 친구들보다 그 밑에서 ‘따가리’ 하는 애들 ‘이진’이라고 불리우는 애들이 깝치고 설치고 나대고 보통의 애들에게 민폐대상이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이진’ 양아치들중에서도 지금도 만나고 있는 술 친구가 있습니다. 그 때는 왜 ‘이진’ 친구들 말리지 못했을까? 괴롭힘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침묵하는 죄가 있으며 요즘 정의를 ‘일진’이라고 적은 이 글도 사실 여러 가지로 부끄럽습니다. 일단 저부터 그런 친구들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중잣대로 ‘왕따 당 할만 하니까 당한것이라는’ 철 없는 시절에 이상한 논리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지금 그 때을 생각해보면 저 역시 나쁜놈이고 오늘 날의 학원폭력이 커진것도 그 때의 저 같은 선배들의 침묵에 보탬이 되어 오늘 날에 가당 할 수 없는 만큼 커져 지금의 후배들이 당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맹자’와 ‘철학콘서트’에서 기성세대의 부도덕 때문에 오늘 날의 청년들이 피해을 보고 있다고 글을 적었는데. 저 역시 다를바 없는 청년이고 그 다음에도 똑같은 어른이 될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의문점으로 드는 생각이 '정의'가 타협하면 어떻게 될까?
계약서에 갑과 을이 있듯이 갑이 을을 이끌지 결코 을은 갑과 동등한 계약을 맺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힘 있고 칼 있고 총 있는 자가 유리하지 또 기득권층은 죽어도 자기 자리와 권력 나누지 않습니다. 정의과 '타협'하는 순간 웬지 더 악상황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저의 생각이 한부분 차지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도 있듯이 양심은 악에게 저항했으며,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며 힘 없는 정의 무능이다'라는 최배달의 어록도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이제 껏 살면서 과연 얼마나 불의를 참지 아니했고 정의를 위해 힘을 썼을까요?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없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애들과 우정으로 ‘왕따’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였고 군대에 있을 때 역시 내 군생활 조금이라도 편하기 위해 ‘고문관’ 전우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그 때 그런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대구의 어느 한 중학생이 일진들의 학교폭력에 시달리지 못할 때 자살을 한 사건을 접할 때 뉴스댓글에 가해학생들에게 분노의 댓글을 남기고 그리고 퇴근 후 학교다닐 때의 ‘이진’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학창시절 추억 애기 하고... 저란 인간 참으로 여러 가지 오류와 모순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 책을 읽고 ‘정의’의 대한 글을 적습니다.
무엇가 굉장히 씁쓸합니다.
" 이 책은 사상의 역사가 아닌 도덕적, 철학적 사고를 여행한다. 정치사상사에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P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