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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난불고(臨難不顧)
어려움에 처해서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臨 : 임할 임(臣/11)
難 : 어려울 난(隹/11)
不 : 아닐 불(一/3)
顧 : 돌아볼 고(頁/12)
출전 : 삼국연의(三國演義) 第072回
조조(曹操)가 한중(漢中) 싸움에서 유비(劉備=孔明)에게 대패하여 장수들의 보호해 길을 뚫고 달아난다. 사곡 입구에 이르자 앞쪽에서 먼지 구름이 문득 피어오르고 한갈래 병력이 몰려온다.
조조가 탄식했다. "저 군사들이 만약 적의 복병이라면 우리는 끝이다!"
이윽고 병력이 가까워지니 바로 조조 둘째 아들 조창(曹彰)의 군사라는 것을 알았다. 조창의 자는 자문으로 어려서부터 말 타고 활 쏘는 것을 잘했으며(少善騎射), 완력이 보통사람을 넘어(膂力過人) 능히 맨손으로 맹수를 잡았다(能手格猛獸).
조조가 일찍이 그를 훈계했다. "너는 독서를 하지 않고 활쏘고 말타는 것만 좋아하느냐. 그것은 필부의 용맹(匹夫之勇)이다. 어찌 귀하다고 하겠느냐?"
조창이 말했다. "대장부는 마땅히 사막에서 공을 세운 위청(衛青)이나 곽거병(霍去病)을 배워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원정하여 종횡천하(縱橫天下)해야 합니다. 어찌 박사(博士) 짓이나 하겠습니까?"
조조가 일찍이 여러 아들의 뜻한 바를 물은 적이 있었다. 조창이 말했다. "장수가 되고 싶습니다. "
조조가 다시 물었다. "장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조장이 대답했다. "갑옷을 입고 병장기를 잡아(披堅執銳) 어려움에 처해도 자신을 돌아 보지 않고(臨難不顧) 몸소 사졸들의 앞장에 서는(身先士卒) 것입니다. 상줄 일에는 반드시 상을 주고(賞必行) 벌줄 일에는 반드시 벌을 준다고 믿게 해야 합니다."
조조가 크게 웃었다.
三國志演義 第72話
공명은 지혜로써 한중을 차지하고, 조조는 사곡으로 후퇴하다
1. 무너지는 위군
조운과 황충은 한수의 영채를 지키면서, 진문을 굳게 잠그고 서황이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다. 서황은 영채 가까이에 이르러, 아무리 싸움을 걸어보았지만, 영채에서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화살을 쏘아 공격을 하였는데, 화살이 다 떨어질 때까지도 촉군의 진채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침내 군사를 돌려 돌아가는데, 그때를 노려 조운과 황충이 서황의 뒤를 습격하기 시작했다. 서황은 물을 뒤로 한 영채마저도 뺏기며 대패하였고, 겨우 목숨만을 건져 살아났다. 병사들 중에는 한수를 건너지 못하고 빠져죽은 자도 엄청 많았다.
강 건너 영채로 돌아간 서황은 왕평이 구원군을 보내지 않았다고 꾸짖으니, 왕평도 자기 말을 듣지 않은 것에 화를 내며, 그날 밤 영채에 불을 지르고, 유비에게 가서 항복해 버렸다.
왕평을 얻은 후, 공명은 조조의 대군 영채 주변에 조운의 군사를 매복하게 했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복병을 낼 것처럼, 징과 꽹과리를 울리며 함성을 지르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는데, 공격은 전혀 하지 않았다.
매일밤에 이러한 일이 계속되니, 조조의 군사들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겨우 30리 밖으로 도망가서 다시 진채를 엮으니, 유비도 안전하게 한수를 건너 물을 뒤에 두는 배수진을 쳐 진채를 엮었다.
다음 날, 오계산(五界山)부분에서 조조와 유비는 마주쳤다. 각각의 대군의 가운데서 두 사람이 나오며, 서로 역적이라 꾸짖으며 싸움을 거는데 유비 측에서는 유봉이, 조조 측에서는 서황이 나섰다.
한창을 싸우다가 유봉이 힘이 달리는지 후퇴 명령을 거두어 도망가는데, 촉군들은 자신의 무기들을 모두 땅에 내다 버리고 도망치기 바빴다. 이 촉군을 한창 뒤쫓던 중, 조조는 문득 배수진을 친 것과 일부러 무기를 버린 것이 공명의 계략이라는 생각이 들어 추격을 중지하고 군사를 물러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때를 노려, 도망가던 촉군이 다시 조조의 대군을 뒤쫓으며 두들기니, 조조는 크게 패하여 한수 땅을 잃고 남정(南鄭)까지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남정 땅도 성하지는 않았다. 공명의 계책을 받은 장비와 위연이 길을 돌려 이미 점령을 하고 있던 터라, 다시 크게 패하고 조조는 양평관으로 달아났다.
2. 계속되는 패배
조조를 양평관에 몰아넣은 공명은 장비와 위연을 시켜 조조의 군량이 쌓여있는 산을 불태우라 지시했다. 이를 알아챈 조조는 허저(許褚)를 보내 군량을 운반해오도록 시켰는데, 허저는 산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고 술에 취해 산을 내려가는 도중, 장비의 습격을 받아 상처를 입고 군량은 모조리 빼앗겼다.
이에 분해하는 조조는 다음날, 다시 군사를 내어 유비군에게 싸움을 걸었다. 이번에도 서황과 유봉이 붙었는데, 유봉은 또 거짓으로 진 척 달아나며 적군을 끌어들였다. 조조가 기세를 몰아 한창 뒤쫓다가 다시 한번 의심이 들어 군사를 양평관으로 물렸 후퇴했다.
잠시 후, 조운, 황충, 장비 등의 맹장이 이끄는 군사들이 사방에서 양평관을 공격하자, 조조는 하는 수 없이 관을 버리고 사곡(斜谷)쪽으로 달아나는데, 반대편에서 한 떼의 군사가 나타나 앞길을 가로막았다.
조조가 크게 당황하여 보니, 자신의 차남 조창(曹彰)이 북방의 오환(烏丸)족의 난을 평정하고 10만 대군을 끌고 지원을 온 것이었다. 조조는 ‘나의 아들 황수아(黃鬚兒)가 왔으니, 이제 유비는 끝이다’라고 자신하며, 사곡에 영채를 엮고 반격을 준비했다.
조조의 둘째 아들 조창은 수염이 누런 색이라 황수아라고 불리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무예를 갈고 닦아 뛰어난 무예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조비나 조식처럼 후계자 문제에 엮이지도 않았다 한다.
3. 계륵(鷄肋)
다음 날, 조창이 선봉으로 나서 반격을 하는데, 유봉과 맹달이 맞으러 나왔다. 조창은 유봉을 3합만에 쫓아 버린뒤, 승세를 몰아 촉군을 두들기고 있는데, 갑자기 양쪽에서 마초(馬超)와 오란(吳蘭)이 이끄는 군사들이 나타나 조창과 조조군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포위에 둘러싸인 조창은 오란을 한 창에 찔러 죽인 뒤, 포위를 뚫고 사곡의 영채로 달아났다. 조창의 지원으로도 이기지 못한 조조는 사곡의 영채를 굳게 지키기만 했다.
조조가 영채에서 저녁 식사로 닭죽을 먹을 때, 수하 군사가 들어와 오늘 밤 암호를 묻자 무의식중에 ‘계륵’이라 말하였다. 암호가 계륵이란 것이 퍼지자, 참군으로 있던 양수는 모든 병사들에게 후퇴준비를 명령했다.
닭갈비가 먹기는 애매하고, 버리자니 아까운 부위를 의미하기 때문에, 조조가 한중을 계륵이라 생각하고 포기할 생각이 있다고 지레짐작 한 것이었다. 우연히 후퇴 준비를 하는 병사들은 본 조조는 양수의 이야기를 듣고는 화가 나서 양수를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다.
조조는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는 것을 상당히 싫어했는데, 특히 양수는 이전부터 조조의 속마음을 꿰뚫어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렸고, 조비와 조식의 후계자 문제에서도 주제넘게 조식의 편을 들어 집안 문제의 관여가 심했다. 조조는 항상 양수의 그런 점을 꼬집어 어떤 핑계를 삼아 죽일 생각이었는데, 이 계륵 사건이 그 계기였다.
다음날, 양수의 말로 떨어진 군 사기를 올리기 위해 전군을 이끌고 사곡으로 나가 적군에게 싸움을 걸었다. 촉군의 선봉은 위연이었는데, 방덕이 위연과 신나게 싸우고 있을 무렵, 후방에서 마초의 군사가 나타나 자신의 영채에 불을 질렀다. 조조는 앞의 위연을 힘써 물리친 뒤, 뒤로 돌아 마초의 군사와 맞섰다.
마초와 한창 싸울 무렵, 이번에 다시 어디선가 위연이 나타나 화살로 조조의 얼굴을 맞추니, 조조는 앞니 2개가 부러지고 얼굴에 피범벅이 되어 그제서야 양수의 말이 생각나 전군 후퇴명령을 내렸다. 방덕이 조조를 보호하며, 한창을 도망갈 때, 또 다시 복병이 나타나 자신들을 뒤쫓는데....
(終)
▶️ 臨(임할 림/임)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临(림)의 본자(本字), 临(림)은 통자(通字), 临(림)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신하 신(臣; 보다, 눈, 신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品(품, 림)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品(품, 림)은 자잘한 물건, 또 그것을 구별하는 일을, 臥(와)는 사람이 위에서 내려다 보는 일의 뜻을 나타낸다. 臨(림)은 파수보는 일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臨자는 '임하다'나 '대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臨자는 臣(신하 신)자와 品(물건 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금문에 나온 臨자를 보면 허리를 굽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과 세 개의 술잔이 그려져 있었다. 왜 바닥에 술잔이 놓여있는지 또 이것을 왜 내려다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臨자에 '임하다'나 '공격하다'는 뜻이 있는 것을 보면 전쟁에 임하기 전에 병사들에게 나누어주던 술잔을 그린 것일 수도 있다.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술을 마시게 했던 행위는 근대까지도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 臨자가 가지고 있는 여러 의미로 볼 때는 이러한 추측도 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臨(림)은 ①임(臨)하다(어떤 사태나 일에 직면하다) ②내려다 보다 ③다스리다, 통치하다 ④대하다, 뵙다 ⑤비추다, 비추어 밝히다 ⑥본떠 그리다 ⑦접근하다 ⑧지키다 ⑨치다, 공격하다 ⑩곡(哭)하다 ⑪장차(將次) ⑫임시(臨時) ⑬병거(兵車: 전쟁할 때에 쓰는 수레) ⑭군의 편제(編制) 단위 ⑮괘(卦)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본래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어떤 일에 당하여 정한 때를 임시(臨時), 병을 치료하거나 병의 예방 등을 연구하기 위해 실제로 환자를 접하는 것을 임상(臨床), 어떤 시기가 가까이 닥쳐 옴을 임박(臨迫),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려 할 때를 임종(臨終), 어떤 때에 임함을 임기(臨機), 바다에 가까이 있음을 임해(臨海), 현장에 가서 검사함을 임검(臨檢), 임금이 그곳에 거동함을 임행(臨幸), 임금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군림(君臨), 남이 자기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일을 높여 이르는 말을 왕림(枉臨), 남이 찾아옴의 높임말을 내림(來臨), 신이 하늘에서 속세로 내려옴을 강림(降臨), 다시 옴을 재림(再臨), 임금이 몸소 죽은 신하를 조문함을 곡림(哭臨), 높은 곳에 오름을 등림(登臨), 지나는 길에 들름을 역림(歷臨), 갑자기 생긴 일을 우선 임시로 둘러맞춰서 처리함을 일컫는 말을 임시변통(臨時變通), 환자에게 실제로 약을 먹이거나 시술하거나 함으로써 그 효과를 알아보는 실험을 일컫는 말을 임상실험(臨床實驗),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정해 일을 쉽고 편리하게 치를 수 있는 수단을 일컫는 말을 임시방편(臨時方便),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는 말을 임갈굴정(臨渴掘井), 난리가 난 뒤에 무기를 만든다는 말을 임난주병(臨難鑄兵), 진을 치면서 장수를 바꾼다는 말을 임진역장(臨陣易將), 깊은 곳에 임하듯 하며 얇은 데를 밟듯이 세심히 주의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임심이박(臨深履薄) 등에 쓰인다.
▶️ 難(어려울 난, 우거질 나)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새 추(隹;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근; 난)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진흙 속에 빠진 새가 진흙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다는 뜻이 합(合)하여 '어렵다'를 뜻한다. 본래 菫(근)과 鳥(조)를 결합한 글자 형태였으나 획수를 줄이기 위하여 難(난)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새의 이름을 가리켰다. ❷형성문자로 難자는 '어렵다'나 '꺼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難자는 堇(진흙 근)자와 隹(새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堇자는 진흙 위에 사람이 올라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근, 난'으로의 발음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難자는 본래 새의 일종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나 일찌감치 '어렵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새를 뜻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새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가 왜 '어렵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일까? 혹시 너무도 잡기 어려웠던 새는 아니었을까? 가벼운 추측이기는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래서 難(난, 나)은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어서 어려운 형편이나 처지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어렵다 ②꺼리다 ③싫어하다 ④괴롭히다 ⑤물리치다 ⑥막다 ⑦힐난하다 ⑧나무라다 ⑨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⑩공경하다, 황공해하다 ⑪근심, 재앙(災殃) ⑫병란(兵亂), 난리(亂離) ⑬적, 원수(怨讐) 그리고 ⓐ우거지다(나) ⓑ굿하다(나) ⓒ어찌(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쓸 고(苦), 어려울 간(艱)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쉬울 이(易)이다. 용례에는 어려운 고비를 난국(難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난문(難問), 어려운 문제를 난제(難題), 전쟁이나 사고나 천재지변 따위를 당하여 살아 가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 백성을 난민(難民), 풀기가 어려움을 난해(難解), 일을 해 나가기가 어려움을 난관(難關), 무슨 일이 여러 가지 장애로 말미암아 순조롭게 진척되지 않음을 난항(難航),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기색을 난색(難色), 어려움과 쉬움을 난이(難易), 견디어 내기 어려움을 난감(難堪), 바라기 어려움을 난망(難望), 처리하기 어려움을 난처(難處), 잊기 어렵거나 또는 잊지 못함을 난망(難忘), 어떤 사물의 해명하기 어려운 점을 난점(難點), 뭐라고 말하기 어려움을 난언(難言), 병을 고치기 어려움을 난치(難治), 이러니 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시비를 따져 논하는 것을 논란(論難), 남의 잘못이나 흠 따위를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을 비난(非難), 경제적으로 몹시 어렵고 궁핍함을 곤란(困難),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을 재난(災難), 힐문하여 비난함을 힐난(詰難), 괴로움과 어려움을 고난(苦難), 위험하고 어려움을 험난(險難), 공격하기 어려워 좀처럼 함락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난공불락(難攻不落),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일컫는 말을 난망지은(難忘之恩), 누구를 형이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비슷함 또는 사물의 우열이 없다는 말로 곧 비슷하다는 말을 난형난제(難兄難弟), 마음과 몸이 고된 것을 참고 해나가는 수행을 일컫는 말을 난행고행(難行苦行), 어려운 가운데 더욱 어려움이 있다는 말을 난중지난(難中之難),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생겨난다는 말을 난사필작이(難事必作易), 어렵고 의심나는 것을 서로 묻고 대답함을 일컫는 말을 난의문답(難疑問答), 매우 얻기 어려운 물건을 일컫는 말을 난득지물(難得之物), 변명하기 어려운 사건을 일컫는 말을 난명지안(難明之案), 교화하기 어려운 어리석은 백성을 이르는 말을 난화지맹(難化之氓)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顧(돌아볼 고)는 ❶형성문자로 顾(고)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머리 혈(頁;머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雇(고)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顧자는 '지난날을 돌아보다'나 '방문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顧자는 雇(품 팔 고)자와 頁(머리 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雇자는 戶(지게 호)자와 隹(새 추)자가 결합한 것으로 '품을 팔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雇자는 문지방 위로 제비가 날아드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제비는 봄에 찾아오기 때문에 옛날에는 제비가 날아드는 것을 보고 농사일이 시작됐음을 알았다고 한다. 이렇게 제비가 다시 방문하는 것을 뜻하는 雇자에 頁자가 더해진 顧자는 제비가 다시 방문하듯이 사람이나 생각을 다시 되돌아본다는 뜻이다. 그래서 顧(고)는 ①돌아보다 ②지난날을 생각하다 ③돌보다 ④당기다 ⑤돌아가다 ⑥품을 사다(雇) ⑦다만 ⑧생각컨대 ⑨도리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곁눈질할 면(眄), 돌볼 권(眷)이다. 용례로는 물건을 항상 사러 오는 손님을 고객(顧客), 어떤 분야에 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자문에 응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직책 또는 그 사람을 고문(顧問), 임금이 신하에게 유언으로 뒷일을 부탁함을 고명(顧命), 부모가 자식들을 양육함을 고복(顧復), 생각하여 주고 도와 줌을 고조(顧助), 뒷일을 염려하고 꺼림을 고기(顧忌), 다시 돌이켜 헤아림을 고려(顧慮), 돌보아 보호함을 고호(顧護), 돌아다 봄이나 돌이켜 봄을 고면(顧眄), 두루 돌아 봄을 고첨(顧瞻), 돌이켜 뒤를 봄을 고견(顧見), 보살펴 줌이나 남의 허물을 덮음 또는 되돌아보아 생각함을 고념(顧念), 둘러보거나 되돌아 봄이나 이것저것 생각하고 망설임을 고망(顧望), 이미 지난 일을 못 잊어서 그 뒤를 돌아보거나 살핌을 고후(顧後), 마음에 맺히어 잊지 못함을 고련(顧戀), 명예를 돌아보고 의를 생각함을 일컫는 말을 고명사의(顧名思義), 고명을 받은 신하를 일컫는 말을 고명지신(顧命之臣), 편지의 회답도 자세히 살펴 써야 함을 이르는 말을 고답심상(顧答審詳), 음악을 잘못 연주하면 주랑이 곧 알아 차리고 돌아본다는 뜻으로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일컫는 말을 고곡주랑(顧曲周郞)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