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프가 있는
이승예
눈이 옵니까?눈이 와서 빵이 어둡습니까?눈과 빵 사이에 반짝이는
접시보다 깊은 눈은
나이프는
포크는
오빠의 눈은 어둡지 않습니다
오빠의 눈은 까맣습니다
눈이 가장 맛있게 녹는 연애의 온도는 260도 입니다어두운 빵을 어두운 정신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당신을 오빠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우유크림, 우유크림
눈이 까맣게 녹아서 환해지는
곡선도 끌어안으면 빵이 됩니다
어두운 오빠는 어두운 이스트가 꿈입니다
그러다가 대지를 정복해 갑니다
빵을 잘라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빵을 자르면 갈고리가 보입니다
보입니까? 보인다면,
나이프도 포크도 밀크도 모두
달려와 꿰이는 이유를 당신은 이해했습니다
신도시가, 아파트가, 아침이
그래서 빵이 됩니다
약속이 틀어진 날은 빵이 직선을 잃습니다
그래서 눈이 옵니다
직선을 잃고
260도로 휘며
260도에서 어두워지며
빵이 익는다면
빵이 거짓입니까?
오빠가 거짓입니까?
갈고리는 정말 곡선일까요?
하지만 나는 빵과 함께
오빠와 함께
바스러질 수 있습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6월호 발표
이승예 시인
2015년 계간 《발견》으로 등단. 시집으로 『나이스 데이』,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어요』가 있음. 2020년 시집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어요』 문학나눔 선정. 제5회 김광협 문학상 수상. 현재 선경 문학상 운영위원장.
[출처] 나이프가 있는 - 이승예 ■ 웹진 시인광장 2023년 6월호 신작시ㅡ통호 제170호|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