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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이초 교사의 비극을 장애아동 혐오로 몰아간 언론 < 사회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윤석열 정부에 이어 언론에 의한 잘못된 대응
주호민 작가와 장애아동에 대한 혐오와 공격
모든 발달장애인을 위험한 괴물처럼 몰아가
특수교사와 학교 턱없이 부족한 현실 가려져
장애아동과 부모들에게 우리 사회가 사과해야
20일 오후 초임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2023.7.20. 연합뉴스
서이초 교사의 비극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교사와 교육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 많은 논의와 해법 마련이 이뤄지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이 사건이 결코 개인적이고 우연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비극이 벌어진 장소가 상대적으로 소득과 교육열이 높은 서초동이었다는 것부터 상징적이었다.
입시경쟁이 치열하고 부모의 학벌이나 소득이 더 높은 지역일수록 악성 민원이 더 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것은 입시 경쟁과 학벌과 시험 성적에 따라 줄 세우는 능력주의 등의 구조적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학생인권조례’와 ‘진보교육감’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종북주사파가 추진했던 대한민국 붕괴 시나리오”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완전히 잘못된 대응의 첫 번째 흐름이었다.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이 아니라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낙인찍고 공격하는 잘못된 대응의 두 번째 흐름은 주류 언론들에서 나왔다. 먼저 학부모 중에서 ‘엄마’들을 겨냥한 여성 혐오적 공격이 있었다. 남초 사이트들에서 ‘92년생 김지영들이 엄마가 되더니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글이 올라오더니, 조선일보는 ‘맘카페에서 갑질을 주도해 지역 소아과들을 폐원시켰다’는 기사를 실으며 이런 분위기를 더 부추겼다.
하지만, 교사들과 소통하면서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여성인 것은 성별적 특성이 낳은 결과가 아니다. 가족 중에서도 여성들이 전적으로 육아와 양육을 담당하고 있는 현실이 낳은 결과일 뿐이다. 이런 실상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거의 바뀌지 않고 있다. 예컨대 <금쪽같은 내 새끼> 같은 방송을 봐도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은 남편, 아빠의 책임과 자리이다.
아이에 관한 모든 문제는 언제나 모두 아내와 엄마의 책임이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방송은 ‘모든 것이 내 탓 같다’며 아이에게 미안해하는 엄마의 눈물, 옆에서 위로하는 아빠, ‘죄인’이 됐다가 오은영 박사의 처방을 받고 다시 일어서는 엄마로 마무리된다. 특정한 조건 속에서 이런 엄마들 중에 극히 일부가 ‘악성 민원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주류 언론들이 주도한 장애인 혐오적 공격에 있었다. 구체적 계기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주호민 웹툰 작가와 특수교사 사이의 법적 공방이었다. 주호민 작가는 자기 자녀를 학대한 혐의로 교사를 고소했고 교사는 무고를 주장했는데, 많은 언론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묘사로 장애인 혐오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중앙일보는 “주호민 아들, 여아 때리고 속옷 훌러덩”이라고, SBS는 “주호민 아들, 여학생 뺨 때리고 바지 훌러덩”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뉴시스는 “주호민 아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여자애들 때렸다”고 보도했다. ‘저런 애들은 집이나 시설에 가둬야 한다’는 댓글들이 달리고 혐오성 막말들이 쏟아졌다. 여기에는 발달장애나 자폐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이 왜 저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어떤 이해 노력도 없었다.
언론은 주호민 작가와 자녀, 부인 등의 신상정보, 가족관계들을 공개하는 데도 아무 주저함이 없었다. 엄격한 심사와 절차가 필요하며 ‘가중처벌’의 논란도 있는 “신상공개”가 공인이나 연예인들에게는 언론에 의해서 당연하고 필수적 경로로 정착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 공인이나 연예인이 심각한 수준의 잘못을 한 것이 확실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런 보도 행태는 하루가 지날수록 심해졌다. 그러면서 주호민 작가와 그 자녀는 일종의 괴물이나 바이러스처럼 묘사됐다. ‘뉴스1’은 “본능에 충실한 주호민 아들, 서울 ○○초 온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장애아동은 “본능에 충실한” 일종의 야만인처럼 묘사했고, 이 가족이 살던 지역은 이미 “쑥대밭”이 됐고, 이전하는 지역은 “비상”이 걸린다는 식이었다.
이런 식의 혐오와 편견에 가득 찬 묘사와 보도는 소위 “누리꾼”들의 혐오성 댓글들을 낳고, 다시 그 댓글을 인용하면서 새로운 기사들이 쏟아졌다. 나아가 많은 언론은 장애아동을 교육하는 특수교사들의 고충을 알린다는 명분으로 장애아동들을 ‘교사와 친구들을 수시로 할퀴고 때리고 아무 데서나 대소변을 보는 위험한 존재들’로 묘사해 나갔다.
주류 언론들의 이러한 보도에 대해 장애아동 자녀가 있는 류승연 작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일부 특수교사까지 … 현장의 힘듦을 강조하기 위해 발달장애인이 얼마나 위험하고 더러운 존재인지 부각하고 조회수에 눈먼 언론은 이때다 싶어 받아적습니다. 물어뜯는 발달장애인, 버스에 똥 싸는 발달장애인 … 제 아들은 어느새 집에만 가둬놔야 하는 괴물이 되어있더군요.”
물론, 교육 현장에서 벌어진 모든 갈등을 무조건 가해와 피해의 관계로 설정하고, 서로를 불신해서 대화를 녹음하고, 화해와 치유보다 법적 다툼으로 가져가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그 점에서 주호민 작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주호민 작가는 서이초 교사 비극의 책임자도 아니고, 주호민 작가의 자녀와 특수교사 간의 문제가 과연 어떤 맥락에서 벌어졌고 누구의 잘못인지는 아직 판단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대부분 언론은 마치 주호민 작가가 서이초 사건의 책임자인 것처럼, 주호민 작가의 자녀가 성추행범인 것처럼, 모든 발달장애인이 위험한 괴물인 것처럼 몰아갔다. 이것은 도를 넘어선 끔찍한 몰아가기이고 일종의 마녀사냥이었다. 누군가를 ‘죽일 놈’으로 만들어서 서이초 교사의 비극이 낳은 분노와 슬픔을 해소하려는 서글픈 현실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몰아가기 속에서 장애아동이 어떤 조건과 처지에서 돌발적 행동을 하게 되는지, 그런 아동을 돕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이 나라에서 장애아동과 그 부모들과 특수교사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 속에 놓여있는지는 사라져버렸다.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의 특수교사 수는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고, 특수학교 수는 OECD 평균의 4분의 1 수준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교육은 걸음마 수준이다. 따라서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는 특수학교라도 보내기 위해서 엄청난 경쟁을 해야 하고, 왕복 2~4시간에 걸려서 멀리 특수학교에 보내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게 된다.
김헌용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장애아동들이 놓인 현실을 “우생학적 카스트 제도”와 비교했다. ‘장애가 경한 아이는 일반학급(브라만), 중한 아이는 특수학급(크샤트리아), 문제행동이 심하면 대안학교(바이샤), 치료까지 필요하면 특수학교(수드라)’로 보내지며, 어디도 가지 못하고 집에 격리된 아동은 “교육계의 불가촉천민”이라고 했다.
결국 ‘설리번도 한국에 오면 아동학대로 몰릴 것’이라는 말이 맞다면, 그 원인은 한꺼번에 헬렌 켈러 5명을 케어해야 하는 조건에 있다고 봐야 한다. 잘못과 문제는 주호민 작가의 자녀와 같은 장애아동들에게 있지 않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교육을 위한 조건 마련과 지원에 무관심하던 사회와 국가에 있었다.
교육의 본질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에 있는데, 장애인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만들어진 사회에서 장애아동들이 차별과 편견을 뚫고서 이를 배우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책임을 방기한 사회는 문제가 생기면 장애아동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장애아동과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들은 이중의 ‘죄인’이 돼서 또 온갖 혐오와 비난에 시달린다.
이 속에서 여기저기서 낙인, 격리, 감금, 처벌의 해법만 튀어나오고 있다. 경기도 임태희 보수교육감은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에서 ‘분리 교육 처분’을 할 계획”이라며 ‘금쪽이 분리 처분’을 들고나왔다. 또 일부에서는 ‘학교에서는 아동학대의 기준을 낮추자’거나 ‘너무 힘들어서 행한 아동학대는 면책하자’는 방안을 해법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문제아’는 생기부에 그 기록을 남겨서 낙인찍고 솎아내야 한다는 해법도 나왔다. 이 해법에는 그 학생을 어떻게 교육하고 변화시켜서 공동체로 돌아오게 할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찾을 수 없다. 사회의 책임과 구조적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없게 해주는 ‘해법’이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불신과 증오만 더 키워가는 각자도생 사회에 어울리는 ‘해법’이다.
사건과 사고만 생기면 정치인이나 연예인 개인들을 낙인찍으며 클릭 장사를 하는 조선일보나, ‘범죄자’를 찾아내 엄벌을 외치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이 이미 보여주는 방향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 자녀를 둔 어떤 부모가 직접 쓴 글은 냉소적 반어법으로 구구절절이 주호민 작가 마녀사냥의 본질을 꿰뚫으며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당신(주호민)이 저지른 실수는 진짜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는 거야. 당신이 저지른 죄, 그리고 나도 저지른 바로 그 죄. 당신은 장애 아이를 낳았다는 죄로 심판받고 있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방지게 비장애인들의 권리를 넘본 죄. 당신은 감히 선을 넘었어. 설마 장애인을 배려하고 함께 산다는 그 새빨간 거짓말을 믿은 거야? 그 말은 자신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함께 살 수 있다는 뜻이야. … 마지막으로 OO야(주호민 작가의 자녀). 그 수많은 댓글 중에 아무도 너를 걱정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없더구나. 아저씨가 사과할게. 진심으로 미안하구나. 우리 어른들이 이런 빌어먹을 세상을 만들어서 정말 미안하다. 우리를 용서하지 마라.” https://bit.ly/3OI0WZw
서이초 교사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해결책을 장애아동과 그 부모들을 괴물로 몰아가는 방식을 통해 찾으려는 사회에서 장애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가 절망과 분노로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윤석열 집권 2년째 접어든 우리 사회와 주류 언론이 만들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 모두 ‘이런 빌어먹을 세상’을 만든 것에 대해 장애아동과 그 부모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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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그래도 걱정했는데, 주호민사건터지니까 아니나다를까 이때다 싶어서 장애인혐오여론 온갖매체에서 난리더라..
기사들이 그 사건에 초점이맞춰진거아니야 진짜
이게 정답인지 모르겠지만 한면만으로만 판단하기에는 당사자가 아니니까 약자일에는 가만히 할래..그냥.. 결과나오고 생각하련다
진짜좋은기사다..잘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