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금산 온천장을 나와
십일월이 하순에 접어든 셋째 화요일이다. 소설이 내일로 다가왔는데 눈이 귀한 우리 지역에는 엊그제 새벽 첫눈이 앞당겨 내려 예기치 않은 선물을 받은 듯했다. 적은 적설량이긴 해도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 세상을 온통 순백으로 덮어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대만이나 베트남에서 겨울이면 눈을 구경하며 스키나 눈썰매를 타려고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이 이해되었다.
날이 밝아오기 전 이른 아침밥을 해결하고 먼 길 산책을 예정했다. 출발을 앞둔 즈음 퇴직 후 전원주택을 지어 귀촌한 대학 동기로부터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는 문자가 왔다. 나는 본포로 나가 학포로 건너는 본포교를 거쳐 임해진 벼랑 따라 걸어서 부곡 온천을 찾아 목욕을 하고 올 참이라 했다. 그러자 동기는 오후에 창원으로 나가면 잠시 틈을 낸 접선 가능 여부를 물어 왔다.
동기와 만나려면 대중탕 목욕은 부곡행이 아닌 북면을 다녀오면 되었다. 동기에게 행선지를 변경시켜 오후 두세 시 무렵 얼굴을 뵐 수 있다고 했더니 땀 흘러 지은 농산물을 가져와 나누려고 해 고마웠다. 무릎이 시큰거려 불편을 겪는 차에 많은 걸음을 걷지 않은 마금산 대중탕을 이용해 마음이 놓였다. 그러함에도 처음 계획대로 본포를 둘러 북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 길을 나섰다.
어둠이 사라지는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 반송 소하천을 따라 걸었다. 며칠 전 찾아온 올가을 첫 추위는 누그러져 쌀쌀한 느낌은 아니었다. 원이대로로 나가 창원수영장 맞은편에서 대방동을 출발 주남저수지와 본포를 둘러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30번 버스를 탔다. 시내를 벗어나 용강고개를 넘으니 날은 완전히 밝아왔는데 환절기 아침에 짙게 끼던 안개는 끼질 않았다.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지나면서 몇몇 승객이 타서 요양병원을 거치니 손님은 줄었다. 차창 밖 주남저수지 둑 건너편 추수를 마친 논과 단감을 딴 과수원 언덕이 보였다. 저수지 가장자리로는 갯버들이 드러나고 공중에는 기러기들이 날고 있어 깊어지는 가을의 정취를 더했다. 낙동강 강가 본포에 이르자 기사는 버스를 돌려 월계를 거처 북면 마금산 온천으로 향해 갔다.
백월산 북향이 품은 마산리에서 신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니 샛강이 낙동강 본류로 합류하는 북면 수변 생태공원에는 강가 아침 안개가 끼어 걷혀가는 즈음이었다. 종점을 앞둔 온천장에 이르러 내릴 때 본포를 둘러 온 승객은 나 혼자였다. 마금산을 찾으면 가끔 들린 대중탕을 찾으니 늙수그레한 사내들이 몇몇 보였다. 몸을 담근 온천수는 이전에 찾았던 새벽만큼 깨끗한 편이었다.
한 시간여 걸려 절차에 따른 목욕을 끝내고 나오니 점심때가 일러 온천장 일대 흔한 국숫집은 들릴 일이 없었다. 평소에는 강가로 나간 산책 후 귀가인 경우가 더러 있었으나 오후에 접선할 동기 때문에 집 근처로 감이 맞아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창밖의 낯이 익은 산천을 스쳐 지나 굴현고개를 넘어간 동정동에서 내려 차를 갈아타려고 건널목을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즈음 곁을 지나던 승용차가 멈춰 차내 일행을 보니 평소 낯익은 문우 셋이 북면으로 향해 가는 중이었다. 나는 오후에 만날 동기와는 시간상 여유가 있어 무작정 동승하고 보니 문학회를 이끄는 회장과 점심 식사 자리로 가는 길이었다. 문학회 회장은 공인중개사라 일행 가운데 한 회원의 부동산 재무 상담을 원활하게 해준 사례로 점심을 사는 자리에 나도 끼어 커피까지 잘 마셨다.
점심 자리를 함께했던 일행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니 연락이 닿은 동기가 차를 몰아와 트렁크를 열어 짐을 부렸다. 뿌리를 굵게 키운 무와 고구마의 크기에 압도되었다. 작년까지 벼를 가꾸던 논에 심은 무와 고구마여서 덩이가 아주 컸더랬다. 시래기로 말려 겨우내 먹을 무청도 한 자루였다. 나는 귀촌한 대학 동기가 농사지을 때 땀 한 방울 보태지 않고 받기만 해 감사할 뿐이었다. 23.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