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존재의 의미는 삶은 아름다운 시이다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를 카를 야스퍼스는 ’축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동양에서는 노자, 장자, 맹자, 순자, 묵자, 열자 등을 비롯한 제자백가가 나왔고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가 이루어졌으며 부차가 생존했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차라투스트라가 등장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엘리아, 이사야, 예레미야, 하박국, 다니엘 등의 선지자들이 나왔다.
서양의 그리스에서는 호메로스, 아르킬로코스, 사포, 핀다로스, 아이스퀼로스,
아낙시만드로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파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이 등장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기하학자 유클리드, 의학자 히포크라테스,
물리학자 아르키메데스도 이 시기에 활동했다.
인간은 비로소 나는 누구이고 세계란 무엇이며 역사란 어떤 것인가를 묻기 사작한 것이다. 이때 비로소 그들 자신과 세계 그리고 역사를 정확한 고찰과 교육,
그리고 개혁을 통해서 시정하고자 했고 자신의 진행 과정을 계획적으로 조종하고자
하였으며 올바른 상태를 재건하고자 하였는가 하면,
처음으로 그러한 상태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예컨대 물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계절은 순환한다, 이와 같은 것을 깨달았다.
인류가 최초로 ‘보편성’을 깨달은 것이다.
사람들은 때로는 부귀영화까지 버리고 유랑을 하거나 광야로, 숲으로 들어가 개인적,
사회적 삶의 바탕이 되는 지혜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것이 불교, 유교, 나중에는 기독교와 같은 보편 종교의 시작이다.
축의 시대에 인간은 드디어‘이성’과 ‘인격’을 가진 존재로 탈바꿈했다.
인간이 드디어 정신적 존재로 변했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류의 뇌에 새로운 신경 연결망이 구축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 인류가 그 이전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뇌를 갖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보편성은 개체뿐 아니라 개별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질이다.
보편성은 자연에 대하여 공간적으로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하는 힘을 가졌으며 시간적으로는 과거의 사건들을 통찰해서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물의 보편성 성질을 이용해서 수로를 만들었고‘계절은 순환한다’는 보편성을 근거로
달력을 제작해 농사를 지었다.
요컨대 보편성은 인간은 자연을 이해하고 조종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
동양에서는 보편성을 도道 또는 법法이라고 불렀고
서양에서는 로고스logos라고 이름 지었다.
고대의 자연과학 그리고 도덕과 종교가 모두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시에서 왜 보편성을 중요시 여기느냐, 시는 보편성에서 나온 개개인의 특수성이다.
다시 말하면 특수성을 거슬러 올라가면 보편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하수가 보편성이라면 이 지하수에 구멍을 뚫고 물을 길러 올리는 일은 모두 특수성이다. 지하수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우물을 통해 길러 올라온 물의 통해
지하수를 아는 것처럼 특수성을 통해 우리는 보편성에 도달하게 된다.
시를 물질을 이루는 보편적인 것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공기와 물과 불과 흙이 바로 그것이다.
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보편성이기 때문에 시의 기질도 공기와 같이
자유롭고 허망하고 일시적이고 가벼운 것이 있는 반면
불처럼 뜨겁고 활활거리고 마침내 재가 되는 것도 있다.
다시 말하면 물질의 성질을 잘 이해하면 그 물질과 함께 살고 있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인간의 시 또한 여기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들과 조금 달랐다.
그는 ‘자연의 보편성’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성’을
‘아레네’곧‘덕’이라는 이름으로 탐구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나 헥토르 오디세우스와 같은
영웅들이 바로 이 같은 보편성,
곧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이상적이고 탁월한 성품들을 대변한다.
이 모든 것은 자연을 이해하여 조종하고 인간을 설득하여 움직이게 하는
보편성을 탐구하기 위한 도구로써 개발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성은 자연의 법칙인 진리와 인간의 법칙인 미덕의 근거였다.
그것은 신성한 것이고, 이상적이며, 탁월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것은 자연을 이해하고 조종하고 인간을 설득하여 움직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시의 근간은 보편성에 입각해 있다.
보편성을 이해하고 조종하고 보편성으로 설득할 때 시는 힘을 갖는다.
그렇다고 보편성을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시는 빠롤의 언어이다.
개념으로 그려진 랑그의 언어가 아니다. 그렇지만 각각의 개별적인 빠롤의 구축이
보편성으로 이루어진 랑그에 닿아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에서 자연과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보편성의 물음을 던지지 않고는
깊은 울림의 시에 도달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술은 지기를 만나 마시고 시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향해 읊자.
酒逢知己飮 詩向會人吟(주봉지기음 시향회인음)
酒:술 주, 逢:만날 봉, 飮:마실 음, 向:향할 향, 會:할 수 있을 회, 吟:읊을 음.
음주는 자칫 실수를 부르므로 백번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예 술을 ‘벌성지광약(伐性之狂藥, 伐:칠 벌)’
즉 ‘본성을 쳐내어 미치광이가 되게 하는 약’으로 여겨 경계하기도 한다.
그런데 술에는 이런 몹쓸 부작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삼국지』의 영웅 조조는
“하이해우 유유두강(何以解憂 唯有杜康, 解:풀해, 憂:근심 우, 杜:막을 두,
康:편안 강, ‘두강’은 술의 별칭)” 즉 “무엇으로 근심을 풀랴! 오직 술뿐이로다!”
읊으며 호탕하게 술을 즐겼다.
당나라의 우국 시인 두보도
“일작산천우(一酌散千憂, 酌:술잔 작, 散:흩을 산)”
즉 “한잔 술에 온갖 근심이 흩어지네”라고 읊음으로써
술로 근심을 떨쳐버리고자 했다.
몹쓸 음주와 아름다운 음주를 가르는 관건은 누구랑 마시느냐에 있다.
술은 기분 나쁜 사람과 마시면 독이 되고,
내 맘을 알아주는 지기(知己)와 마시면 통쾌한 의기투합을 이룬다.
“주봉지기천배소(酒逢知己千杯少)”
즉 “술은 지기를 만나면 천 잔도 오히려 적다”는 말이 있다.
시는 마음의 소리다. 사람은 물론 동식물의 마음,
심지어는 무생물의 마음까지도 헤아리려고 마음을 쓰는 사람이 곧 시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시는 서로 마음을 헤아려 공감하는 사람을 향해 읊어야 한다.
욕심에 절어 공감 능력이라곤 없는 사람을 향해 시를 읊었다가는
공감을 사기는 커녕 오히려 잘난 체한다는 핀잔만 들을 수 있다.
“화불투기반구다(話不投機半句多, 投機:던질 투, 기회 기. ‘의기투합’의 줄임말)”
즉 “의기투합이 없는 말은 반 구절도 많다”고 했다.
앞서 인용한 ‘주봉지기천배소’의 대구다.
지기와 함께 하는 술자리에는 속상할 일도 방탕할 일도 없다.
무모한 과음이 있을 리 없다.
술잔을 사이에 두면 누구라도 시인이 될 수 있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다.
아리따운 여인과 사랑을 속삭이면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