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미국 대중국 벤처투자도 차단, 한국은 영향 없다지만… < 경제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바이든 행정부, 반도체·양자컴퓨팅·AI 투자 규제
미국 기업만으론 효과 없어 동맹국 동참 요구할 듯
윤석열 정부 IRA 늑장 대응으로 한국기업 골탕
양자컴퓨팅 ·AI 등 중국이 기술 우위 분야 많아
제2의 IRA 사태 반복되지 않도록 대응 전략 짜야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악수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전날 화상 브리핑을 통해 이번 회담에서 3국의 군사 협력 강화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대응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2023.05.21. AP 연합뉴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 자본 투자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의 수출통제에 이어 중국 벤처업계로 자본이 유입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다. 장비와 제품을 넘어 자본에 대한 대중국 투자 제한 조치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정부는 업계 의견을 청취한 뒤 세부 시행 규칙을 마련해 내년 중 시행할 예정이다.
이번 조치의 핵심 내용은 첨단 반도체와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3개 분야에서 미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군용 제품 개발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투자는 금지되고 조금이라도 군용으로 전용될 소지가 있거나 이중 용도로 쓰일 가능성이 있으면 미국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중국이 미국 자본을 이용해 안보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을 막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규제 형태는 벤처캐피탈과 사모펀드 등을 통한 지분인수와 합작사 설립, 인수합병(M&A) 등이다. 미국 재무부는 “대중국 투자에는 경영지원과 투자·인재 네트워크, 시장 접근 등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무형의 이익까지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국에도 영향을 미칠 게 거의 확실하다.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미미한 수준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니콜라스 라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021~2022년 중국 내 직접투자 자금조달 출처 중 미국 기여분이 5% 미만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 자본이 없어도 중국 첨단기술 투자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9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중국 벤처 생태계가 타격받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투자 업계의 반발도 변수다. 미국 투자자들은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두 등 중국 기술 기업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미국 대중국 규제 조치. 2023.8.10.
결국 대중국 투자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동맹국의 참여가 필수다. 미국은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 때도 일본과 네덜란드 등 동맹국의 협조를 구했다. 이번 투자 규제도 비슷한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국가 안보적 요소가 있는 기술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중국 투자 규제와 관련해 언급한 바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에 대해서도 미국은 동참을 요구할 게 뻔하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인식과 태도는 안이하기만 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외교부는 10일 공동명의로 발표한 참고 자료에서 “미국의 해외투자 제한제도는 앞으로 이뤄질 투자에 적용되고 적용 범위가 미국인 또는 미국 법인으로 한정돼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 내용에 따라 필요하면 우리 정부와 업계 의견을 미국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중국은 한국 기업들의 주요 투자국이다. 투자 규제 대상에 포함된 반도체와 양자 컴퓨팅, AI 분야에서도 양국 기업들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더욱이 양자 컴퓨팅과 AI는 중국이 우리보다 기술 우위에 있다. 미국과 보조를 맞추다가 첨단기술 분야에서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볼 수 있다. 중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외국인 투자를 받지 못하면 발전이 지연돼 한국이 반사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의견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 반도체 등 일부 품목은 그럴 수 있겠지만 중국이 기술적으로 앞선 분야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지난해 시행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미국은 IRA 세부 지침을 발표하며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전기차 모델을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윤석열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대응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정부는 모든 외교 역량을 한미 관계에 집중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에 유리하게 IRA가 개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번에도 유사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 미국에 기울어진 외교로 중국과의 협력 고리가 약해지면 첨단기술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