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달 소춘에
십일월 하순 수요일이다. 음력은 시월 초열흘로 어제 초저녁은 반달에서 만월로 채워가던 밤이었다. 아침이 밝아와도 자연학교 등교는 미적대고 집으로 빌려다 둔 책을 펼쳐 읽었다. 뉴욕 타임즈를 비롯해 여러 지면 기고하는 문화비평가 대프닌 머킨의 ‘나의 우울증을 떠나보내며’에 이어 정현종 시인의 ‘두터운 삶을 향하여’라는 산문집을 읽으면서 음용하는 약차를 달여 놓았다.
야외로 나가거나 공공 도서관에서는 급식이 나오지 않아 때가 일렀지만 집에서 국수를 끓여 점심을 때웠다. 국수는 수산 제면소에 만든 면으로 끓여 먹는다. 어느 스님이 쓴 책에서 절집에서는 국수를 ‘승소(僧笑)’라 부른다고 했다. 공양간 상차림으로 간편도 하겠지만 식후 설거지가 쉬워서인가도 싶다. 현관을 나서기 전 어제 친구가 보내와 베란다에 널어둔 무청을 뒤집어 놓았다.
바깥으로 나왔더니 날씨가 봄날처럼 따뜻했다. 음력 시월을 선인들은 햇곡식을 조상께 비치는 상달이라고 하고, 중국에서 전래 되어 왔겠지만 소춘(小春)으로도 부른다. 이때가 일시 따뜻한 기운이 감돌면서 단풍이 물든 활엽수들이 낙엽이 지면서 꽃눈을 점지해 두기 때문 작은 봄이라 했다. 중국 유명한 고서화 모퉁이 낙관에 적힌 ‘소춘’은 그해 가을에 쓰거나 그린 작품을 의미한다.
집에서 이른 점심까지 해결하고 느긋하게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버스 정류소에서 동정동으로 나가는 차를 탔다. 창원 항교 근처에는 2일과 7일이면 오일장이 서는 날인데 장터는 관심이 없었다. 우리 집에서는 과일과 푸성귀가 웬만큼 확보되어 당분간 시장을 봐 나를 일이 없다. 창원 읍성이 있기도 했을 옛적 도호부에는 성터나 성문은 윤곽조차 없고 창원 향교만 남아 있는 정도다.
장터 시장을 봐 둘 일이 없어 중동초등학교 앞에서 남산공원으로 올라갔다. 공원으로 오르는 산책길에 절로 자란 마삭 넝쿨이 친환경적이고 자연스러움을 더해주었다. 아침마다 누군가 손길에 빗자루로 낙엽을 깔끔하게 쓸어 놓아 암자로 가는 길을 연상했다. 산마루로 오르니 체육 기구에 몸을 단련하는 사내가 있고 황토 진흙을 발바닥에 발라 머드팩해서 발을 씻는 아낙들도 보였다.
야트막한 남산공원 산마루에는 남산루(南山樓) 누각과 남북통일 염원탑이 세워져 있었다. 조선 개국과 함께 지방 행정 체제로 나타난 창원 도호부 연혁을 빗돌에 새겨 놓았다. 신라 왕릉을 연상하는 정상부 구릉은 선사와 삼국시대 유적이 발굴된 현장을 보존했다. 날씨가 덥다는 느낌이 들어 소나무 그늘 쉼터에 앉아 몇몇 지기들에게 늦가을 도심 공원의 풍광을 사진으로 담아 보냈다.
남산공원에서 고향의 봄 도서관으로 내려가 연락이 닿은 지기와 찻길과 접한 카페로 들어 한동안 한담을 나누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날 무렵 오래전 근무지에서 연이 닿아 지금껏 교류하는 퇴직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더랬다. 통화 목소리에서 평소 지병이 재발해 힘들게 몸을 추슬러 정신력으로 버텨냄이 역력했다. 지기와 헤어져 중앙동 주택 퇴직 선배를 문병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두 차례 암 수술을 이겨낸 퇴직 선배는 처와 함께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도 완주한 강철 체력을 앞으로도 믿고 싶었다. 주택가 골목길을 걸으면서 지난날 함께 근무했던 또 다른 팔순 선배가 떠올라 전화를 넣었더니 반가워했고 건강을 잘 유지해서 마음이 놓였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랗게 물든 잎이 흩어진 보도 따라 걸어 신월동 주택지 알려진 중화요리 음식점으로 갔다.
22일이면 격월로 초등 남녀 동기들을 만나는 날이다. 버섯요리와 탕수육으로 각자 주량만큼 잔을 채워 비웠다. 우리는 지난달 목포 일대로 가을 소풍을 다녀왔고 다음 주는 베트남 여정을 동행한다. 함께 한 자리에 후두암과 뇌졸중을 꿋꿋하게 극복한 친구가 있다. 일전 고향 조카 일손을 돕는 감을 따다 낙상해 이마에 상처를 입은 친구가 안쓰러웠다. 우리 가을은 이렇게 저물어갔다. 23.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