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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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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분과 방 작가와 작품(137) - 서머 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
이동민 추천 0 조회 82 23.07.13 06:50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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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07.13 07:20

    첫댓글 <서머셋 몸>
    그는 현대 영국 소설가로써 1874년 프랑스 파리에서 파리주재 영국 대사관 고문변호사의 아들로, 여섯 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영국사람이지만 그가 맨 먼저 배운 말은 영어가 아니고 불어였다. 윌리엄 서머셋 모옴의 조부는 유명한 변호사였고, 부친 또한 파리의 영국 대사관부 변호사였으니 그만하면 명문의 출신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여덟 살 때 어머니를, 열 살 때 아버지를 각각 여의고 영국에서 목사직에 있던 숙부 헨리 맥도날드의 손에서 자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숙부는 그를 장차 목사로 키울 심산이었으나, 그는 열 일곱 살 때 독일로 건너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귀국 후에는 다시 런던의 세인트 토머스 병원에 들어가서 여섯 해동안의 의학 과정을 수업 한 끝에 내과 및 외과의의 자격을 얻었다.

  • 작성자 23.07.13 07:21

    이 때에 얻은 체험이야말로 후일 그가 한 작가로서 성장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인턴으로서 빈민굴 환자들을 취급하는 동안 인간의 강인한 생의 의욕에 깊은 감명을 받았음은 물론, 인간에 대한 동정과 관용을 뼈저리게 배웠다. 이 때의 고귀한 경험의 결과가 바로 빈민굴의 여공인 라이자의 사랑과 죽음을 그린 그의 처녀작 램베드의 라이자(Liza of Lambeth) (1897년)이다. 1907~1908년 그의 희곡 4편이 런던의 4극장에서 동시에 상연됨으로써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1897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는 그후 작가를 지망하여 10년간 파리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였는데, 소설 ·희곡 등을 계속 쓰다가 1907~1908년 그의 희곡 4편이 런던의 4극장에서 동시에 상연됨으로써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의 희곡은 17세기 이래의 영국의 독특한 풍속희극(風俗喜劇)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 작성자 23.07.13 14:31

    그는 제 1차 대전 및 제2차 대전 때에는 각각 프랑스의 정보기관에서 활약하였으며, 2차 대전 후에는 잠시 미국에 가서 머무른 적도 있었다. 그의 사생활로 말하자면 마흔 한 살 때 결혼하여 쉰 세 살때 이혼한 후로는 여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그는 스물 두살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아흔 한 살에 죽을 때까지 반 세기 이상을 꾸준히 써왔던 것인데, 그것도 단지 소설이면 소설, 희곡이면 희곡만을 쓴 것이 아니고, 장편 소설, 단편 소설, 희곡, 수필 및 여행기, 영화의 갖가지 표현 수단을 사용했으므로, 실로 그는 시 이외의 거의 모든 형식의 문학적 기술을 사용한 셈이다.
    만년에는 자작소설의 영화화를 위하여 협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스스로 영화 해설자로서 은막에 등장하기까지 했다.

  • 작성자 23.07.13 14:31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완성한 장편소설 《인간의 굴레》는 1915년에 출간,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1919)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났는데, 이 작품으로써 그의 작가적 지위가 확립되었다. 긴 생애에 걸쳐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장편으로는 앞에서 든 2편 외에도 《과자와 맥주 Cakes and Ale》(1930) 《극장 Theatre》(1937) 《면도날 The Razor’s Edge》(1944) 등과 단편집 《나뭇잎의 하늘거림 The Trembling of a Leaf》(1921), 희곡 《순환 The Circle》(1921 초연) 《높은 사람들 Our Betters》(1923), 자서전적 회상(回想) 《서밍업 The Summing Up》(1938) 《어느 작가의 노트 A Writer’s Notebook》(1949)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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