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전통정원' 청평사 문수원...............
이자현은 베옷 입고 나물밥 먹으며 선(禪)을 하였고,
평생 수도생활로 일관하다가 청평사 에서 생을 마감.
청평사에 약 37년간 머물며 문수원과 8 암자를 만든다.
그러나, 이자현에 얽힌 청평사의 역사는 더 유명하다.
더불어 이곳 회전문에 얽힌 상사뱀의 전설이 백미이다.
이자현의 문수원과 아울러 상사뱀의 전설 또한 알아보자.
1089 ~ 1125년에 만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정원.
청평사 입구 구성폭포에서 오봉산 식암까지 3km의 계획된 정원.
지금은 자연에 묻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일부분만 남았다.
문수원은 동서남북의 네 구간으로 나뉘어 조성했다.
구성폭포 서쪽의 축석, 연못. 석실. 정자터 중원(中苑),
복희암 연못, 동굴, 좌선대, 수만식(水滿式)의 남원(南苑)
동쪽 작은 계곡의 정자와 소규모 축석한 지역이 동원(東苑).
왼쪽 계곡 위쪽의 해탈문을 지나 적멸보궁까지가 북원(北苑).
이자현이 주야로 선도(仙道)를 닦았던 장소는 북원(北苑).
선동(仙洞), 석산(石山), 석실(石室), '淸平息庵'(청평식암),
그 주변의 좌선대와 돌계단 등등 선경(仙景)을 이루는 정원.
이자현은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려 계곡에 수로를 만들고,
정원 안 영지에 오봉산이 비치게 만들고 물레방아를 돌렸다.
오봉산 정상까지 가파른 계곡을 돌로 쌓아 숲과 절묘한 조화.
문수원은 일본 교토 사이호사(西芳寺) 정원보다 200년 앞섰다.
'우리나라 고산수식(古山水式)이 일본보다 앞선 또 다른 증거.'
현재, 이자현의 부도 오른쪽에 있는 연못이 영지(影池, 南池)
영지의 밑바닥에서 고려말 청자편과 조선시대 백자편이 발견
규모는 남북19.5m, 북쪽 호수 안이 16m, 남쪽 호수 안이 11.7m
뒤쪽이 넓은 사다리꼴인 이유는 사각형으로 보이게 하기 위함.
연못 속에 큰 돌 셋을 놓아둔 것은 삼신산의 봉우리를 상징한다.
영지는 물이 맑고 깨끗해 오봉산 부용봉(芙蓉峰)이 비치기 때문.
이자현은 영지를 중심으로 정원을 꾸민 것.
누석식(壘石式)정원을 중심으로 영지와 정자,
청각적인 효과를 위한 수구식(水溝式)정원양식.
평지의 정원(平庭)과 계곡에 자리한 정원(溪庭),
산속 정원(山庭)은 지형에 따라 여러 형태의 정원
<청평사 문수원기비> 기록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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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는 어떤 역사를 품은 사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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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3년(고려 광종) 승현선사가 백암선원 명칭으로 창건한 청평사.
1068년(고려 문종 22년) 이개가 절을 중창해 보현원이라 불렀다.
고려 불교의 선구자 '이자현'(1079~1125. 4. 21 )
"평소에 그대 보기를 원하여 그리움이 날로 더하는 도다.
어진 이 뜻을 빼앗기 어렵지만 내 그리운 마음은 어이할꼬"
1117년 예종이 시를 지어 수차례에 걸친 부름에도 불구하고
청평사에서 은거하며 참선을 닦았던 그의 부도는 구성폭포 위.
이자현이 관직을 버리고 36년간 참선을 하며 일생을 보냈다는 곳.
아버지 이의가 20년 전 암자를 차린 보현원에 들어간 이자현.
이인로의 파한집에도 이자현이 이곳에 문수원을 꾸몄다는 기록
현재 문수원에는 암(唵), 당(堂), 정(亭), 헌(軒) 등 십여 채의 건물.
순종때 진사과 급제 29세때 청평사에 은거한 이자현
날마다 유유하게 거닐거나 홀로 앉아 밤새도록 명상
견성암에서 입정에 들어가 7일 만에야 나오기도 했다.
이자현은 과거에 급제, 재상이 되고도 남았을 명문 가문의 선비.
부귀영화를 버리고 삶의 의미를 찾는 일에만 전념해 존경받았다.
이자현은 고려건국 초기에 왕가와 혼인관계를 맺은 가문의 학자.
이자연은 불심 깊은 가문이고 그 딸 셋은 모두 문종의 비가 되었다.
"과욕을 버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 이자현이 한 말.
'나옹화상, 매월당 김시습이 거주했던 유서깊은 사찰.'
1557년(이조 명종 12년) 보우스님이 사찰을 다시 중건하고 청평사.
뱃길에서 호젓한 산책로를 따라 30 분 정도 걸으면 나타나는 청평사
고찰다운 전설들을 간직한 곳인데 <회전문>에 얽힌 전설이 애틋하다.
보물 164 호, <회전문> 아래층은 3층, 위층 축대는 7단.
건물정면 3칸, 측면 1칸, 기둥 8개, 문짝 매다는 기둥 2개.
가운데 한칸은 통로, 양쪽의 좁은 벽 공간에 사천왕상 안치.
'하필이면 좁은 벽 공간에 사천왕을 안치했을까?'
안쪽 측면에 마루를 놓아 매우 소박하게 꾸민 맞배지붕 건물.
특히, 절에서 보기드문 홍살을 천장에 가로로 배열한 <회전문>
'청평사 탐방의 하일 라이트는 회전문에 얽힌 상사뱀의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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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회전문에는 어떤 전설이 얽혀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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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의 딸 평양공주가 민속경연에서 묘기를 보인 청년과 첫만남.
두 사람은 신분 차이를 초월하여 깊은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청년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밤마다 남모르게 공주궁으로 찾아갔다.
공주가 청년과 사랑에 빠진 사실을 뒤늦게 안 당 태종은 분노했다.
태종은 신분이 낮은 청년을 못마땅히 여겨 죽이자 상사뱀으로 환생.
밤마다 찾던 공주궁으로 들어가 공주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밤낮도 없이 공주의 몸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상사뱀.'
이것이 꿈결인가? 생시인가? 무지개 위를 걷는 것일까?
비몽사몽 구름타고 하늘을 나르는 듯한 혼미함 속의 나날.
사랑하는 청년이 다시 살아 돌아온듯 하다가도 징그러운 뱀.
공주는 상사뱀이 몸안으로 들어온 후 날이 갈수록 병색이 짙어갔다.
전국의 사찰을 돌며 불공을 드리고 치성을 쏟아도 아무 소용 없었다,
병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공주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사찰은 '청평사'.
청평사 입구에 있는 구성폭포 부근에 여장을 푼 공주.
몹시도 힘들었기에 상사뱀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한다.
“내가 절에서 밥을 얻어 올테니 잠시만 몸에서 떨어져 줄 수 없나요?”
"몸이 너무 피로해 걷기가 힘드니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주시어요"
'어찌된 영문일까? 공주의 몸에서 내려오는 상사뱀.'
지금까지 한번도 공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던 상사뱀.
공주는 목욕재계한 후 법당에 들어가서 불공을 시작했다.
동굴에 남았던 상사뱀은 기다리다 못해 공주를 찾아 나섰다.
흰 바위벽 암봉이 가득한 오봉산. 청평 호반을 달리는 배. 청평사.
연인의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들이 아름다운 낭만적인 데이트 코스.
깊은 산속 밤하늘의 은하수와 이른 새벽에 들려오는 범종 소리.
아련하게 피어 오르는 소양강 물안개도 청평사에서의 추억거리.
돌아오는 길에 춘천 명물 닭갈비와 막국수를 맛보는 것도 좋을 듯.
청평사 찾아가는 길
춘천 시내에서 소양강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선착장 하차.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배를 타고 15분 정도 달리면 청평사
승용차로 갈 경우 46번 경춘도로를 따라 가면 소양강댐에 이른다.
차로 갈 경우 소양강댐 입구에 도착하기 2Km 전 양구 방향으로 좌회전
10 분 거리. 남부지방의 경우 중앙 고속도로를 타고 춘천에 도착해 청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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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청평사 뒷산 <오봉산>은 당일 산행으로도 참 좋은 곳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