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민심이 국힘당으로 가는 현상이 있다. 이는 20대가 보수화되어서도, 국힘당 정권 시절을 겪어보지 않아서도 아니다. 20대가 문제라는 인식으로는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없고 올바른 대책도 낼 수 없다. 지금 20대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이해도 할 수 있고 해답도 볼 수 있다. 20대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20대#대선#진보진영 20대는 주권의식이 높다는 특성상 변혁성을 내포하고 있다. 진보진영은 적폐세력이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남녀갈등 같은 것이 20대의 본질이라고 현혹되어선 안 된다. 진보진영은 20대의 본질적이고 변혁적인 요구를 파악하고 그와 완전히 일치되는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그들의 힘을 응집, 폭발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20대는 정치세력에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20대가 국힘당을 지지하는 걸 보고 보수화되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20대가 국힘당 정권을 겪어보지 않아서 국힘당을 지지하는 거라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2021년 3월 26일 재보궐선거 때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민주당이 20대에게서 지지율이 낮게 나온 것에 대해 “20대 같은 경우는 아직까지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좀 30~40대나 50대보다는 경험한 경험수치가 좀 낮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20대는 이명박근혜 정권을 겪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이 타올랐을 당시 14세 중학교 1학년이 지금 27세 청년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을 가장 먼저 들어 항쟁의 포문을 열었던 게 바로 그 중고등학생이다. 한겨레는 2008년 12월 19일 <광우병 촛불집회의 주역, 청소년>이라는 기사에서 “2008년 올 한해 우리 국민을 가장 뜨겁게 했던 것은 광우병 촛불집회였고, 이 모든 것은 모두가 주저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촛불을 들었던 청소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라고 평가했다. 당시 중고등학생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촛불을 들었던지 이명박 정권이 각 학교에 공문을 내려 학생들의 집회 참여를 차단하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전두환이 5.18학살을 자행했다면 박근혜는 세월호 학살을 저질렀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의 동년배 학생들이 촛불을 들었듯이 세월호참사 때도 또래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세월호 아이들의 동갑내기가 지금 25세다. 청소년은 2016년 박근혜 탄핵촛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촛불세력의 한 축을 당당히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니 20대가 국힘당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 20대가 국힘당 정권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보수적이라고 하면 애초에 왜 문재인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표를 몰아주었겠는가. 2020년 총선 땐 진보적이었는데 1년 만인 2021년 재보궐선거에선 보수적으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20대가 국힘당을 지지하는 것은 정말로 국힘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발의 성격을 갖는다고 봐야 한다. CBS라디오 심층취재팀은 2021년 4월 6일과 7일 20대를 인터뷰했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보수화라기보다 어떻게 보면 지금 자칭 진보세력을 주장하는 그쪽 정부랑 여당이 마음에 안 들어서 반대쪽으로 가는 게 전 보수화라고 볼 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그 사람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발생한 것이지 보수화라고 딱히 보진 않아요.”(최모 씨. 20대 남성)
김웅 국힘당 의원은 재보궐선거 직후 “20대들이 국민의힘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을 과시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국힘당 자신도 20대가 정말 자신을 지지하는 게 아님을 아는 것이다.
(3) 주인의식 표출
어떤 이는 20대가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심해서 보수적이고 국힘당을 지지하는 거라고 지적한다. 20대가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심하다는 건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번 따져보자. 40·50대는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적다고 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40·50대도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가족 이기주의가 심하다.
2016년 정유라가 최순실과 박근혜의 권력을 빌어 대학에 입학했을 때 40·50대는 “미안하다. 힘없고 빽이 없어 우리 아들딸이 고생만 하게 만들었다”라고 분노를 터트렸다. 불공정한 상황을 지적하느라 한 말이겠지만, 곱씹어 생각해보자. 할 수 있다면, 줄이 있고 빽이 있다면 아들딸에게 특혜를 줘서 고생하지 않게 만들고 싶다는 40·50대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다. 지인에게 연락하는 것으로 내 아이가 대학에 합격할 수 있고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거라는 뜻이다.이건 잘못된 것이니까 안 하는 게 아니라 할 수가 없어서 못하는 것에 가깝다. 한국 사회 전반에 이런 심리가 깔려 있다. 그래서 20대만 특별히 이기주의적이라고 할 상황이 아니다.
최근 국민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두는 공정이다. 그런데 이 공정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평등은 강남과 비강남, 이른바 SKY대학과 그 외의 대학, 고액연봉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차이를 타파하자는 것이다. 비강남 사람도, 지방대학 학생도, 고액연봉자가 아닌 평범한 노동자들도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평등이다.
그런데 공정은 이런 불평등을 타파하자는 게 아니다. 공정은 불평등한 구조를 그대로 두되 내가 강남사람, 고액연봉자가 되고 내 자녀를 SKY대학에 보낼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계층 격차를 좁히는 게 아니라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오르게 해달라는 것이다.
공정과 평등을 비교해보면 공정이라는 구호에 제한성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공정은 불평등을 용인한다. 나에게 기회만 제공되면 된다. 공정은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전제로 한 개념이고 욕망이 담겨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정해져야 한다고 주장하지 더 평등해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공정이란 화두를 봐도 개인주의, 이기주의는 이미 사회 전반에 퍼진 공통의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20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옛날에 시골 사람은 순박한데 도시 사람은 자기만 아는 깍쟁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도시는 눈 뜨고도 코 베일 곳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시골 사람이라고 해서 도시 사람보다 순박한가? 지금은 시골, 도시 나눌 것 없이 모두 돈을 추종한다. 돈 때문에 가족 간에, 동네 사람들 간에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황금만능주의가 전국, 전 세대에 퍼져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20대의 특성이 아니라면, 20대는 40·50대와 무엇이 다른가? 20대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은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다른 세대보다 주권의식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 20대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을 앞장서 연 세대다. 2014년 세월호참사 추모와 진상규명,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에 나섰던 사람들이다. 지금의 20대는 이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인생 자체를 광장의 주인으로 살았다. 청소년이 먼저 나서서 어른들을 이끌어내는 경험을 했고 실제로 정권을 교체하는 데 성공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하며 자랐다. 그래서 20대는 다른 세대보다 주권의식이 높다.
물론 40·50대도 진보적이고 정치에 적극적이다. 40·50대의 정치방식을 보면 어느 정치인을 추종할지 판단해 그 정치인에게 자기를 투영한다. 그런 문화가 노사모를 만들었고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이재명 후보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정치방식은 위험한 면이 있다. 특정 정치인을 추종하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그 정치인이 잘못을 해도 두둔하는 경향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실패했을 때도 일부 40·50대는 모두 다 이명박근혜 정부 탓이지 문재인 정부는 잘못이 없다고 두둔했다. 과거 40·50대 이전 세대도 김대중, 김영삼을 추종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을 하던 김영삼이 1990년 군사독재세력과 3당 합당을 하며 보수로 돌아서자 김영삼을 지지하던 부산·경남 사람들이 덩달아 보수가 되었다. 이런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지지하는 후보라도 민의에서 탈선하는 모습을 보이면 채찍을 들어 올바른 길로 견인하는 게 필요하다.
반면 20대는 특정 정치인을 추종하는 게 아니라 누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실현해 줄 것이냐를 두고 정치인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정치행위를 한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에 맞서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20대의 삶을 절망에 빠뜨리자 누가 20대의 이야기를 들어줄지 찾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2021년 12월 6일, 7일 여론조사 한 결과 20대 중 72.6%가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홍준표가 20대와 소통하려는 걸 보고 홍준표를 지지해보기도 했다가 홍준표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다시 지지를 철회한다. 20대가 어느 정치인을 추종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보다.
이렇게 주권의식이 높은 20대가 학교를 벗어나 사회로 나왔을 때 절망적인 현실을 마주했다. 그래서 ‘헬조선’을 끝내겠다고 문재인 민주당에 그야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절대적인 힘을 줬는데 그게 오히려 더 큰 절망을 가져왔다. 그래서 20대는 문재인 민주당에 심판의 몽둥이를 들었다. 국힘당을 지지한 건 문재인 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20대가 국힘당을 지지하는 건 그들이 보수화되어서도, 국힘당을 겪어보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것 말고는 문재인 민주당을 혼낼 방법이 없는 것뿐이다.
혹자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20대 청년에게 “아무리 그래도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보다는 낫지 않느냐”라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러자 대답은 “우리가 고작 박근혜보다 나은 정부를 바라고 촛불을 든 건 아니다. 어떻게 박근혜랑 비교를 하느냐”라는 것이었다. 지금 20대는 문재인 정부 수준을 뛰어넘는 더 높은 단계의 정부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눈높이가 올라갔다.
4. 20대 극우화를 추구하는 적폐세력
미국과 국힘당, 조중동은 20대를 극우로 이끌고 있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021년 5월 10일부터 13일까지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력하면 상층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질문에 만 20세~만 34세 청년 중 62%가 없다고 대답했다.경제난이 극심해지고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여기면,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게 자연스럽다. 따라서 사회환경을 보면 20대가 그 어느 세대보다 더 진보적이고 기득권층에게 위협적인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적폐세력은 20대가 진보로 분출하는 걸 막으려고 한다. 그래서 20대를 진보가 아니라 극우화시키려 한다. 극우는 전체주의 같이 폭압적이며 타 인종, 타 민족, 타 국가 사람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특성이 있다. 상대방에 대한 혐오감이 크고 배척하려 하다 보니 폭력성을 동반하게 되는 게 일반적인 특징이다.
극우화는 제국주의자들의 전통적인 수법이다. 나치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식민지를 잃고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게 되어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고 국민의 불만도 극에 달했다. 그러자 독일 국민은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시위를 벌이고 독일 공산당도 창당해 성장시키고 있었다. 이때 나치가 등장해 공산당을 탄압해 진보의 싹을 제거하는 한편 독일 국민의 분노를 유대인, 영국, 프랑스로 돌렸다. 그래서 독일 국민에게 적대심과 혐오감을 심어 극우화시켰다. 그 결과 나치 독일은 유대인 대량 학살과 2차 세계대전 발발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 적폐세력인 미국과 국힘당, 조중동도 마찬가지다. 앞서 살펴봤듯 한국 경제가 어려워진 건 미국과 미국이 강요한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국힘당, 조중동 등 적폐세력은 20대에게 미국과 신자유주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20대의 분노를 세대갈등, 남녀갈등으로 유도한다.경향신문이 케이스탯에 의뢰해 2021년 10월 3일부터 4일까지 여론조사한 결과 지난 4년간 가장 심각해진 갈등 1위(34%)로 빈부갈등이 꼽혔다. 반면 20대는 가장 심각해진 갈등 1위(48%)로 남녀갈등을 꼽았다. 적폐세력의 극우화 준동이 20대에게서 빈부갈등보다 남녀갈등을 더 심각한 문제로 여기게 만들었다.
극우화 추세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세계 자본주의 전체가 심각한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자본가들이 직접 자기 입으로 위기를 인정하는 상황이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회장은 2020년에 열린 포럼에서 “급격한 경기 침체는 이미 시작되었고 1930년대 이후 최악의 불황이 찾아올 수 있다”라며 “자본주의의 ‘위대한 리셋’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 회장은 2019년 4월 “나는 자본가다. 그러나 심지어 나조차 자본주의가 망가졌다고 생각한다”라며 자본주의는 개혁하지 않으면 “엄청난 갈등과 어떤 혁명”을 맞닥뜨릴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본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세계 민중 속에서 평등을 추구하고 더 나아가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나올 수 있었다. 당장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021년 『사회주의가 시급하다』라는 책을 발간해 자본주의가 파국을 피할 수가 없다며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세계 민중의 진보적 분출을 막기 위해 독점자본가들은 독일의 나치처럼 국민을 극우화하려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경제난의 원인이 유색인종, 이민자, 중국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혐오 정서를 부추기면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원래 트럼프가 등장하기 전 미국인은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 나서고 있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삶이 피폐해지자 미국인들은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시위를 벌여 미국의 금융자본에 맞섰다. 그리고 미국인은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한 버니 샌더스에 환호했다. 샌더스는 경선 초반 지지율이 3%에 불과했지만, 경선이 끝났을 땐 22개 주에서 승리했고 전체 대의원 중 39.5%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거세게 불었던 진보의 바람은 2021년 현재 자취를 감췄다.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미국을 극우화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극우세력은 빠르게 성장해 2021년 미 의사당을 점거할 정도로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미국 말고도 유럽에선 헝가리, 폴란드에서 극우세력이 집권하고 독일, 스페인 등에서 극우정당이 성장해 원내진입에 성공하기도 했다. 브라질이나 칠레 같은 중남미 나라에서도 한때 극우세력이 집권하거나 주요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한국에서도 더욱 강력한 촛불개혁을 바라는 국민이 있는 한편 반대로 태극기부대가 창궐하는 등 극우 움직임도 거세졌다. 국힘당의 경우 검찰 파쇼를 하던 윤석열이 전두환을 찬양하며 대선 후보로 등장했다. 적폐세력은 20대를 극우화하기 위해서 각종 혐오를 조장하고 호남을 비하하며 중국을 배척하는 등의 일베 문화를 유포한다.
적폐세력이 20대를 극우화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는 게임이다.
게임이 극우화 장치가 되는 이유는 첫째, 극우화의 주요 방식인 우민화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게임 중독은 성인에게도 많지만 어린이, 청소년에게 더 심각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1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게임 이용률은 71%인데 10대는 94%, 20대는 86%에 달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0 게임 과몰입 종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일 기준으로 하루 평균 2시간 이상 게임을 하는 청소년 비율은 초등학교 저학년 20%, 초등학교 고학년 37%, 중학생 39%, 고등학생 28%다. 주말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40%, 초등학교 고학년 48%, 중학생 59%, 고등학생 55%가 하루 평균 2시간 이상 게임을 한다.
초등학생의 경우 지나치게 어릴 때부터 게임에 너무 많이 노출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대부분 학교 수업을 마치고 사교육을 받는 게 현실인데 그 와중에도 평일에 평균 2시간 이상 게임을 한다면 쉬는 시간의 대부분을 게임으로 보낸다고 봐도 될 듯하다.
어린이, 청소년 시기는 공부를 해서 지적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게임에 빠지면 공부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지적 능력도 저하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대체로 남성 청소년이 여성 청소년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게임을 한다. ‘2020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컴퓨터게임과 인터넷 검색으로 여가를 보낸다는 청소년 비율은 남성 청소년의 76.4%, 여자 청소년의 58.2%다. 남성이 월등히 높다.
그런데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보면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학업성취도가 낮다. 중학교 3학년의 경우 국어에서 보통학력 이상의 학업성취도를 보인 비율은 남성 68%, 여성 83%였다. 영어에선 남성 59%, 여성 69%였다. 수학의 경우 남성 56%, 여성 60%로 엇비슷했다.
반면 중학교 3학년 학생 중 기초학력 미달의 학업성취도를 보인 비율은 국어에서 남성 10%, 여성 3%, 수학에서 남성 16%, 여성 11%, 영어에서 남성 10%, 여성 4%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어떤 이들은 청소년의 학업스트레스와 획일화된 진로 선택에 대한 반항심을 이용해 모든 사람이 다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건 아니라거나 게임을 잘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식으로 청소년을 선동한다.
미국 컬럼비아 메일맨 공공보건대와 프랑스 파리 데카르트대 공동연구팀은 게임을 많이 하는 어린이가 인지능력이 높을 확률이 1.75배, 학업성취도가 높을 확률이 1.88배라는 황당한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호주의 한 연구팀은 비슷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온라인 게임을 하며 레벨을 높이기 위해 수학·읽기 등의 지식을 이용해 퍼즐을 푸는 행위가 성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청소년을 통제하는 건 뭘 모르는 무식한 행동이고 오히려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게임이 정말 청소년에게 장려할만한 것이라면 적폐세력 자신부터 자녀에게 게임을 권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폐세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독점자본가들은 자녀가 게임과 전자기기에 중독되지 않도록 관리한다. 빌 게이츠의 경우 자신의 자녀가 만 14세가 되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가지지 못하게 했다. 빌 게이츠는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집에서 컴퓨터를 하루 45분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도 자녀의 컴퓨터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잡스는 집을 ‘테크 프리(현대 기술에서 동떨어진 공간)’로 만들었다. 잡스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아이패드를 판매하면서 정작 자기 자녀들에겐 아이패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미 독점자본가들은 자기 자녀들을 그렇게 관리하면서 서민들에겐 게임을 장려한다. 국민을 우민화하기 위해서다. 우민화는 극우화의 주요 수단이다.
게임이 극우화 장치가 되는 이유는 둘째, 게임이 사람을 극우이념에 물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임은 특성상 대체로 상대방을 적대하고 혐오하며 몰살하는 내용이다. 상대방과의 공존을 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임은 혐오 문화, 적대시 문화를 주입한다. 전쟁 게임의 경우엔 북·중·러를 적으로 삼고 중동 사람을 테러리스트로 묘사해 죽이게 만든다.
게임문화는 실제 전쟁과도 연결된다. 최근 미국은 멀리서 컴퓨터로 드론을 조종해 상대를 죽인다. 현장에 나간 보병도 첨단무기를 사용해 직접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화면을 보며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야말로 게임하듯 사람을 학살한다.
시야를 좀 더 넓혀 보면 어린이 만화도 문제가 심각하다.
예를 들어 ‘라바’라는 만화가 있다. 라바에는 괴팍한 빨간 벌레와 식탐 많고 바보 같은 노란 벌레가 서로 이기적으로 굴며 괴롭히고 싸운다. 힘이 강한 장수풍뎅이는 폭력을 행사하며 왕처럼 군림한다.
‘스푸키즈’라는 만화도 있다. 스푸키즈는 도깨비와 좀비, 흡혈귀 등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식탐을 채우기 위해 폭력을 저지르고 재미로 약한 이를 괴롭힌다. 어떤 등장인물은 폭력을 당해 머리, 팔, 다리가 떼어져 발에 차이곤 한다. 머리를 떼어내서 걷어차는 행위를 즐겁게 여기게 만들어 생명을 경시하게 만든다.
라바나 스푸키즈는 서로를 괴롭히는 질 나쁜 내용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해 아이들에게 전달한다. 이런 걸 계속 보면 어린이, 청소년의 심성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걸 재미로 여기게 만들고 이기주의와 약육강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해도 그게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 툭 튀어나오게 만든다. 이런 만화는 집에서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라바와 스푸키즈는 버스 광고판에 방영되어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보게 된다.
저런 내용의 만화여야 인기를 끄는 게 아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뽀로로의 예를 보자. 뽀로로에는 주인공 펭귄이 백곰과 여우, 비버, 공룡 등과 공존한다. 뽀로로에서 백곰은 다른 친구들에게 힘자랑을 하지 않고 평등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여우는 자기 지식으로 친구를 골탕 먹이지 않는다. 요리를 잘하는 비버는 요리를 못하는 펭귄을 무시하지 않는다. 예쁜 캐릭터가 못생긴 캐릭터를 괄시하지 않는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공룡을 누구도 놀리거나 따돌리지 않는다. 이런 내용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내용이다. 충분히 어린이에게 인기를 얻으면서도 긍정적인 문화를 전파할 수 있다.
과거 전두환 정권은 성(Sex), 영화(Screen), 스포츠(Sports), 소위 3S 정책을 펴 독재정권으로부터 관심을 돌리는 우민화 정책을 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적폐세력은 게임과 만화 등을 통해 20대를 우민화·극우화하려고 한다.
721호ⓒ시사IN 조남진〈시사IN〉·한국리서치 공동기획 ‘반중 정서 인식조사’ 두 번째 이야기의 주제는 중국만이 아니다. 중국, 그리고 미국이다. 지난 기사(〈시사N〉 제717호 ‘반중 정서 이끄는 핵심 집단 2030’)에서 우리는 반중 정서가 시대정신으로 떠오를 만큼 광범위하게 퍼졌고, 이를 이끌고 있는 집단이 2030 세대임을 확인했다.이번 이야기는 그 거울상이다. 격렬한 반중 정서의 대척점에 매우 뚜렷이 보이는 현상이 있다. 미국에 대한 우호적 감정이다. 반중 정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은 아주 광범위하게 미국에 대한 우호적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기사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왜, 그리고 얼마나 미국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미국에 대한 감정 온도부터 보자. 0도는 매우 차갑고 부정적인 감정, 100도는 매우 뜨겁고 긍정적인 감정이다. 중국이 26.4도로 가장 낮고, 미국이 57.3도로 가장 높다. 일본은 28.8도, 북한은 28.6도다. 중국에 대해서는 물론 일본·북한보다 미국이 두 배가량 높다(16쪽 〈그림 1〉 참조). 함께볼기사
각국 지도자에 대한 감정 온도도 마찬가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한 감정 온도(46.6도)가 압도적으로 높다.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16.6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18.7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19도)은 물론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44.7도)보다 높다. 올 초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라고는 해도 자국의 대통령에게보다 후한 감정을 느끼는 건 이례적이다.미국에 대한 우호 감정은 중국과 달리 세대를 초월한다.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고루 뜨겁다. 진보(57.2도), 중도(54.4도), 보수(63.6도)에 따른 이념적 차이도 유의미하게 발견되지 않는다. 반중 정서가 그랬듯 ‘친미 정서’에도 진보와 보수 간에 뚜렷한 온도차가 없다. 폭발하는 반중 정서가 친미 정서로 수렴하는 모양새다.한때 한국은 반미 정서가 들끓는 나라였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신효순·심미선 두 여중생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전례 없는 반미 감정이 폭발했다. 가해자인 군인이 미군 군사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며 서울 광화문에 수만 명이 운집해 대규모 촛불시위를 벌였다.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반미 시위를 한국 촛불시위의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2007년 6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선이, 효순이 5주기 촛불문화제’ 풍경.ⓒ연합뉴스이후 2007~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국내에서도 ‘미국의 시대는 끝났다’ 식의 언론 보도와 출판물이 인기를 끌었다. 미국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중국굴기(中國崛起:중국이 우뚝 선다)’의 시대가 온다는 장밋빛(물론 중국 처지에서) 환상이 번져갔다. 그 가운데에는 중국식 시장경제 모델이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대체하고 국제사회의 지배체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중국=반민주주의’라는 인식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설문조사로 돌아가 보자. 미국과 중국에 대한 온도차는 나라별 역량평가에서 확연히 두드러진다. 〈시사IN〉은 경제, 정치 및 민주주의, 국제사회 리더십, 의료·과학·통신 분야에서의 기술 수준, 대중문화, 전통문화, 복지 등 10개 영역에서 두 나라의 역량을 평가해달라고 물었다(오른쪽 〈그림 2〉 참조). 그 결과 전통문화를 뺀 모든 분야에서 미국이 중국을 압도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 대중문화 등의 격차가 큰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부분이 정치 및 민주주의 항목이다. 70.1% 대 8%로, 극단적이라고 할 만큼 갈린다. 이에 비하면 경제 경쟁력(미국 86.4%, 중국 65.6%)이나 군사력(미국 86.7%, 중국 59.7%)에서 양국의 차이는 차라리 미미해 보인다.‘소프트파워’라는 말이 있다. 미·중 패권 경쟁 이슈를 다룰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군사력·경제력 같은 ‘하드파워’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민주주의·인권·문화·사회규범 등에서 발산되는 국가적 매력을 뜻한다. 중국이 미국을 앞서려면 이 소프트파워를 통해 세계를 매혹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중국의 부상 이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위 항목의 경우, 경제력과 군사력을 빼면 질문 전체가 소프트파워 평가와 다름없다. 적어도 양국의 소프트파워에 대한 한국인의 평가에선 미국이 완승을 거뒀다. 소프트파워 중에서도 정치 및 민주주의에서 미국의 압승이다.〈시사IN〉 제717호에서는 공산당, 기업, 문화유산 등 중국의 각 부문에 관한 부정적 인식을 물었다. 그 가운데 공산당이 81.1%로 1위(가장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다는 의미)였다. 이 기사는 이 같은 결과가 놀랍지 않다고 서술했다. 이번에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그림 3〉 참조). 진보·중도·보수 모두 중국공산당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가운데서도 응답자별로 체제 선호에 따른 차이가 보였다.우리는 응답자를 ‘민주주의 정부가 다른 어떤 정부보다 낫다’는 층과, ‘때로는 권위주의 정부가 민주주의 정부보다 낫다’는 집단으로 분류했다. 민주주의 정부가 낫다는 응답층(55%)이 때로는 권위주의 정부가 낫다는 응답층(24.9%)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중국공산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두 집단 간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민주주의 정부 선호층(85.5%)이 권위주의 정부 선호층(74.2%)보다 중국공산당에 더욱 부정적이었다.이 결과는 생각보다 꽤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중국공산당은 중국 정치체제의 최정점에 선 ‘상징’이다. 민주주의 정부를 선호할수록 중국공산당에 부정적이라는 결과는, ‘중국공산당=반(反)민주주의’라는 등식으로 이어진다. 이는 곧 ‘중국=반(反)민주주의’라는 인식으로 확대될 수 있다. 18쪽 〈그림 4〉를 보자.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가를 물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에 대해 강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나라다’(78.6%)를 필두로, ‘먼저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다’(77.4%), ‘국제사회의 법과 질서를 해치고 있다’(75.1%) 등 부정적 평가 일색이었다. ‘다른 나라의 군사독재 정권을 지원하고 있다’(72.6%)라는 항목도 눈에 띄었다.이처럼 전폭적인 부정 평가는 난데없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법과 질서를 해치고, 군사독재 정권을 지원하는 나라라는 평가는, 홍콩 민주화운동이나 미얀마 군사쿠데타 이슈가 직접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같은 소프트파워에서 중국의 무력함이 국제 뉴스를 타고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세상이다.국제사회, 특히 미국은 중국의 약한 고리를 집중 타격하고 있다. 6월13일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은 중국의 신장·홍콩·타이완·남중국해 정책을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서는 새로운 파트너십도 구축하기로 했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 G7의 자본을 투입함으로써 이들 국가가 중국과 손잡을 필요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요구했던 대중국 강경 노선을 각국 정상이 대부분 수용했다는 점에서 큰 이슈였다. 중국은 G7과 미국을 겨냥해 “내정간섭이다. 소수의 나라가 국제질서를 정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2013년 12월 중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EPA중국 처지에서 가장 예민한 대목은 일대일로 전략에 대한 서방세계의 포위망이 갖춰질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신실크로드 전략’이라 불리는 일대일로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경제 벨트를 만들어 미국을 뛰어넘겠다는 시진핑의 거대 구상이다. 포괄하는 국가가 60여 개국에 이른다. G7 가운데 이탈리아가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G7 정상회담 이후 이탈리아 총리가 일대일로 참여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명분 삼아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적중했다. 시진핑의 ‘중국몽’을 흔드는 최대 장애물이 민주주의와 인권인 셈이다.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부상에 발맞춰 차근차근 진행해왔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은 그 변곡점이었다. 무역전쟁의 승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미국이 더욱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리라는 점이다.“지금은 경제도 안보도 모두 미국”이런 흐름의 영향일까. 〈시사IN〉의 반중 정서 인식조사에서도 국제질서에 관한 오랜 전망을 뒤집는 결과가 나왔다. 바로 ‘10년 뒤 미국과 중국의 위상’에 관한 전망이다(오른쪽 〈그림 5〉 참조). 이번 조사에서 2030의 반중 정서 폭발과 함께 가장 중요하게 본 대목이다.먼저 현재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 어디인지 물었다. 81.8%가 미국이라고 답했고, 7.7%만이 중국이라고 답했다. 이어서 유럽연합 3.7%, 일본 0.7% 순이었다. 문제는 그다음 질문이다. ‘10년 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 어디겠냐는 질문에서도 미국(49.4%)을 택한 이가 중국(27.8%)보다 훨씬 많았다. 군사력도 마찬가지다. 현재 세계 최고의 군사대국이 어디냐는 질문에 미국 83.5%, 중국 6.8%로 압도적인 차이가 났다. 10년 뒤 군사대국이 어디겠냐는 질문에도 미국 64.2%, 중국 16.7%로 격차가 확연했다. 향후 10년간 한국의 국익 실현에 중요한 나라를 묻는 질문에도 미국은 66.3%였고, 중국은 9.7%에 불과했다.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5년 전만 해도 이런 현상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5~15년 전만 해도 미·중 사이에서 한국 시민들의 균형추는 중국으로 크게 기울어 있었다.〈그림 6〉을 보자. 동아시아연구원이 2005년, 2015년, 2020년에 각각 조사한 내용이다. ‘10년 후’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나라를 물었다. 2005년에 이미 중국(40.7%)이 미국(31.3%)을 추월했다. 2015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더 큰 격차로 따돌렸다가 2020년에 다시 격차가 줄어들었다.〈그림 7〉도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연구원이 조사한 자료다. 한국 통일에 가장 장애가 되는 나라를 물었다. 2005년에는 북한(28.1%)보다 미국(43.6%)이 통일에 장애가 된다는 응답이 훨씬 많았다. 여중생 사망 사건 이후 반미 감정이 끓어오르던 시기였다. 이후 2010년, 2015년 중국이라는 응답이 눈에 띄게 증가하다가 2020년에는 북한(32.6%)보다 중국(36.2%)이 통일에 장애가 된다는 응답이 다수로 떠오른다. 통일과 관련된 질문이기는 하지만, 반미 정서가 반중 정서로 바뀌는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나타난다.20쪽 〈그림 8〉은 아산정책연구원 자료다. 한국의 경제와 안보에 가장 중요한 나라가 어디인지 물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이 미국보다 중요하다는 응답이 꾸준히 오르다가 2018년에 확 고꾸라진다. 반대로 미국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은 2018년에 확 치솟는다. 2016~2017년은 사드 배치 논란과 그에 따른 한한령(중국 내 한류 금지령)으로 한·미·중 관계가 차갑게 변한 시기였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연구위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거에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수였다. 이 여론이 무너졌다. 지금은 경제도 안보도 모두 미국이다. 10년 뒤에는 중국의 위상이 미국을 뛰어넘는다는 여론이 다수였는데 이 또한 흔들리고 있다.”그래서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나라와 더 우호적으로 지내야 하는가? 답도 단도직입이었다(20쪽 〈그림 9〉 참조). 64.5% 대 11%. 중국보다 미국과 더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다는 응답이 압도적이다. 무려 6배 차이.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4.5%였다. 이 수치는 징후적이다. 앞선 감정 온도 차이보다 훨씬 크게 벌어졌다. 미·중 갈등이 깊어질수록, 즉 미·중 가운데 양자택일을 해야 할 상황이 다가올수록 이 차이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그런데 이 답변에 정치 성향별 차이가 보인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83.8%가 미국과 더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다고 답했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는 62.8%가 그렇게 답했다. 반면 중국과 더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다는 응답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12.3%)이 국민의힘 지지층(5.3%)보다 많았다. 표본은 많지 않지만 정의당 지지층(14.4%)과 열린민주당 지지층(31.1%)에서도 중국과 더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다는 답변이 상대적으로 많았다.정리하면 이렇다. 반중과 친미가 한국인의 지배 정서인 가운데 그나마 중국에 우호적인 이들이 진보층에 존재한다. 이런 추세라면 이들도 언젠가 반중으로 이동하거나, 아니면 소수파로 남을 공산이 크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는 한국의 처지에서 여론이 한쪽으로 급속히 쏠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냉철한 현실 인식 없이 여론에 떠밀려 과거 정부처럼 균형을 잃고 악수를 두는 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미·중이 만든 논리로 국제관계 보면 안 된다” 기사 참조).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골라 달라고 했다(〈그림 10〉 참조). 1, 2순위 중복 응답이었다. 환경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협력관계 강화(38.2%), 경제 협력관계 강화(36.1%) 등에 대한 응답이 많은 반면 민간교류(17.5%)나 정부 차원 대화 확대(11%)에 대한 응답은 적었다. 정부 차원이든 민간 차원이든 중국과 대화와 교류를 통해 뭔가 나아지리라는 기대감이 낮다는 방증이다. 이는 한·중 양국 정부 모두에게 좋지 못한 결과다. 손쓸 도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중국공산당은 1921년 7월23일 상하이에서 창당했다. 올해 창당 100주년이다. 창당 100주년인 2021년에 소강사회(小康社會:절대빈곤이 사라진 사회)를 건설하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 부강한 사회주의 강국을 실현하겠다는 것이 이른바 ‘두 개의 백년’ 프로젝트다. ‘탈빈곤’은 이미 성공했다. 건국 100주년을 향해 가는 다음 프로젝트의 목표는 부강하고 민주적이며 문명을 갖춘 사회주의 강국 건설이다. 19세기 아편전쟁의 굴욕 이후 2세기 만에 중국의 세계사적 위상을 되찾아 세우겠다는 것이다.두 번째 백년의 도정에서 중국은 거대한 난관을 만났다.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반중 정서다. 더욱이 오랜 교류 역사를 가진 한국의 반중 정서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그 배경에 중국의 정치 및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반감이 작동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했다. 내년은 한·중 수교 30주년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백원담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이 〈황해문화〉 여름호 권두언에서 밝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홍콩, 타이완, 미얀마 문제 등에 대한 중국의 강압적 대응이나 침묵은 중국의 당-국가체제의 정치 역량과 한계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근대를 극복하려는 중국의 출발점이 사회주의 강국 건설이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 곳곳 노동의 숨결을 보듬는 진보 지향이었으면 좋겠다.”
전문가 칼럼] 대한민국은 친미, 친중이 아닌 친민, 친미래를 선택해야 한다!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국내 현실에서 리더의 판단 중요 역사 속에서 고난을 극복한 지혜 찾을 수 있어
2019-06-02 안진홍 전문기자
사진=안진홍 전문기자
영어 속담에 "History will repeat itself(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이 있고, 한문에는 "전사불망 후사지사"(前事不忘 後世之師 : 지난 일을 잊지 말고 미래의 스승으로 삼자)란 고사성어가 있다. 미중패권시대에 갈팡지팡하는 오늘날의 이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대응책을 찾으려면 역사의 이야기들 속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천여 년간 한반도는 대국 사이에 끼여서 수많은 고난을 겪었고 또한 그들과 공존하는 지혜를 키웠다.
당나라와 고구려 백제 사이에 끼여있던 신라, 송나라와 요나라 사이에 끼여있던 고려, 원나라와 명나라 사이에 끼여있던 고려, 청나라와 명나라 사이에 끼여 있던 조선,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여있던 대한제국.
대국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며 단일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내며 독립국가로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현시대 우리 민족이 한반도의 주인이 되어 7천년 역사 속에서 긍지와 계보를 이어받았지만 그 기나긴 세월 속에서 우리 선조들이 겪은 고난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기 속에서 이 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이 안일하게 생각하고 판단을 잘못하면 그 시대의 국민들에게 큰 비운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더욱더 명심해야 한다.
중국 상하이 도시 풍경. 사진=안진홍 전문기자
임진왜란 전 일본의 침공을 걱정하는 서인들이 전쟁의 위험을 대비해 대대적으로 군사를 정비하자고 주장하였지만 동인의 반대에 의해 실천에 옮길 수 없어 결국 전쟁이 일어나자 국방이 와르르 무너져 수년간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하였으며, 병자호란 전 중립외교를 주장하는 광해군을 재조지은(再造之恩 : 거의 망하게 된 것을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을 입은 명국의 은혜를 모르는 패륜아로 간주하여 친명(親明) 사대부들에 의해 폐위당하였고, 그 후 새로 부상하는 강대국 청나라와의 외교를 파탄으로 몰아가 결국 두 번의 호란을 맞게 되었다.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잘못 된 판단과 결정이 이처럼 온 나라를 비극으로 몰아갈 수 있고 백성들에 엄청난 재앙을 안겨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잘못된 생각을 가진 리더들도 그 출발점은 애국이라 볼 수 있지만 역사는 결과로 평가 받는 것임으로 취지가 어떠하든 안 좋은 결과를 낳게 된다면 그 책임자는 매국노가 아닌 애국적(愛國賊)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과거의 오랑캐와 중화문명의 충돌은 오늘날의 유교문명과 기독교문명의 충돌로 업그레이드 되였다.오늘날 중국과 미국의 충돌을 보며 그냥 단기적인 무역분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필자는 미중분쟁은 단순한 경제분쟁이 아니라 수십 년 간 지속 될 문명의 충돌로 간주한다. 그 끝은 결국 한 측의 완전한 패전으로 끝나야 비로소 멈출 것으로 본다.
국내 여론은 일변도로 미중 분쟁 중 중국이 패전하여 항복할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라 본다. 국력이나 영향력을 봤을 때 중국은 미국의 상대가 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역사의 흐름이란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였다.
중국 상하이 야경. 사진=안진홍 전문기자
▶역사 속으로 돌아가 보자.
참혹했던 병자년(丙子年)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오늘날 대한민국의 외교 현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이 때문에 영화는 개봉당시, 정치권에서도 일찌감치 화제가 되었다.
①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할 때 청나라는 일개의 오랑캐 지방정권에 불과하였다. 아무도 8년 후 그들이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의 주인이 되리라 예상하지 못하였다.
지난 번 오랑캐가 중원을 점령한 것은 1127년 금나라가 북송을 멸망시킨 정강사변(靖康事變) 때라 500여년이 지나 역사가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결국 청나라는 명나라를 이겼다. 30만 대군이 100만 대군을 보유한 나라를 이긴 것이다. 청나라와 명나라의 국력차이를 보면 현재의 미중 양국의 격차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역사는 청나라를 선택했다. 물론 청나라가 직접 전쟁을 통해 명나라를 항복시킨 것은 아니다. 명나라는 반란군에 의해 망국했지만 청나라가 이러한 국제정치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국내에선 청나라를 중국으로 명나라를 미국으로 비유하는 시각이 있다.
②한국전쟁 때 남한을 도운 미국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와 흡사하였고 미국편이냐 중국편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도 친명이냐 친청이냐의 갈림길에서 선조시대 조중대신들의 논쟁과 비슷하다.
역사를 무조건 현실에 대입할 수는 없지만 한가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나라를 이끄는 리더들은 명분보다 실리를, 외국에 대한 의리보다는 내 나라 국민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이 나라 백성들이 다시 한번 어려움에 처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역사는 물론 그 시대적인 국한성이 있다. 오늘날의 국제정치에서 대국 사이에 물리적인 전쟁을 통해 상대방을 굴복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정말 그러한 일이 발생된다면 아마 인류는 터미네이터가 사는 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명의 시대에 전쟁은 군사수단 대신 경제수단이 무기로 더 많이 사용되며 그 승자도 상대방의 절대적인 굴복을 강요하지는 않고 자기 중심적인 패권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무역전쟁도 전쟁인 만큼 적군과 아군으로 갈리게 된다.
중국 심천 푸티엔코안(福田口岸 : 홍콩가는 출입국). 사진=안진홍 전문기자
▶화웨이 사태를 겪으며 적아관계가 갈수록 명확히 갈리고 있는바 미국기업들이 미국정부의 지침에 따라 화웨이와의 거래를 끊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해외 기타 국가와 기업의 동참을 요청하고 있어 세계 정치와 경제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은 전세계를 상대로 중국을 왕따 시키려고 각국의 반중연대 동참을 호소하는 것은 명나라가 조선에 반청연군 참가를 강요하는 것과 비슷한 대목이다. 이러한 행위는 과거 패권도전의 위협을 느끼게 한 소련과 일본을 대한 수법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중국은 소련이 아니고 일본이 아니다.
미국이 그 동안 굴복시킨 나라를 보면 소련의 전성기에 미국의 GDP 40%밖에 달하지 못했으며 일본도 69%가 상한선이다. 그러나 중국은 2019년 70%의 저지선을 뚫을 것이며 가파르게 미국을 추격할 것이다.미중무역전쟁이 전면 확대 되어도 10년간 최소 미국보다 4%이상의 성장을 할 수 있다. 즉 10년 내 중국의 명목 GDP가 미국을 능가하여 세계 최강국으로 되는 역사적인 흐름은 막기 어렵다.
중국은 이미 세계의 최대 제조국으로 등극하였으며 5년 내 최대 수입국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커다란 시장과 잠재력을 가진 나라를 굴복시킨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선례를 찾기 어렵다.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있다. 미국은 4년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집권여당이 바뀔 수 있지만 중국은 일당 집권이 수십 년간 지속 될 수 있다.
미국의 정책은 대통령과 여당이 교체되면 바뀔 수 있지만 중국은 10년이상 정책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국내 모순을 미국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언론 통제력과 사회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상기 논점에 대한 사례를 살펴보자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의 최대 피해자는 대두 재배 농민이라고 한다.
물론 트럼프가 12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며 농민들을 달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트럼프의 임기는 1년남짓 남았고 공산당 지도자의 임기는 무제한이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재선이 안되면 그 보조금은 공수표가 될 수 있지만 중국과의 거래는 수십 년을 해야 하지 않는가?
미중분쟁이 해결 안되면 수년 내 중국이 대두 자체공급을 실현하게 되어 미국 대두의 대중수출이 구조적으로 어려워져 영원히 중국시장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차기 대통령 선거 때 미국농민들이 트럼프를 선택할 것이란 보장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체제의 차이가 미중경쟁의 미래를 좌우지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중갈등 속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는 부득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친미반중은 최대수출국인 중국의 보복을 초래할 것이고 친중반미는 한반도 평화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이러한 상황 어찌도 광해군 시대에 놓인 상황과 비슷하지 아니한가?
필자의 조언은 대한민국은 친미(親美),친중(親中)이 아닌 친민(親民)을 선택해야 하고 친미래(親未來)를 선택해야 한다.
▷["편협한 진영 논리 벗어나 애국의 본질 생각했으면..."; (소설/영화)' 남한산성' 원작자 김훈]
(소설/영화) ‘남한산성’에서 이시백은 ‘당신은 어느 쪽이냐’라는 최명길의 물음에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장수일 뿐”이라 답한다. 서날쇠 역시 상헌을 향해 “조정 대신들이 명나라 황제를 받들든 청나라를 따르든 백성들에겐 의미가 없소. 그저 백성들은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거둬들이고 겨울에 굶지 않는 세상을 꿈꿀 뿐이오”라고 말한다.
김훈 작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사에 의미가 그대로 담겨 있듯 백성은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논과 밭, 소와 말, 그리고 처자식을 걱정하는 사람이 백성”이라며 “논밭을 일구는 백성의 생활을 보호하고 그 생활이 애국이 될 수 있도록 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충고했다.
중국 계림 풍경. 사진=안진홍 전문기자
▶무엇이 친민이고 친미래인가?
친민이라함은 대다수 국민이 이득 보는 선택을 해야지 정권과 당파의 이익이 우선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이야기이고 친미래는 현실에만 착안 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국익을 내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부임하면서 미국은 몰상식하고 예측불가한 국가로 변하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분쟁은 그렇다치고 멕시코가 불법입국자를 단속하라고 5%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은 동서고금 유래를 찾기 어려운 망동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트럼프의 임기는 1년 남짓 남았고 재선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본다. 트럼프 같은 예측불가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미국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려고 최대 수출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파국으로 만든다는 것은 일시적인 난관을 타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수십년을 내다봐야 하는 국민들과 우리 자손들의 미래에 주는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역사를 다시 돌이켜보자.
인조시대 병자호란을 맞이 하게 된 이유는 청나라의 막강한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 국내 정치인들의 잘못 된 판단에 있다고 본다. 그 당시 정확한 시대적, 국제적 감각과 판단으로 외교를 잘 하였다면 과연 두 번의 호란이 발발했겠는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조선의 정치인들은 인접국가인 청나라의 부상을 외면하고 개화 되지 않은 오랑캐로만 간주하며 사대의 예만 지키려다 보니 국민에게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였던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누르하치 같은 인물이 없어 만주족은 소수의 부족으로 중국 동북지역에서 힘이 없었지만 인조 시기엔 이미 동북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고 명분과 의리만 주장하다 결국 고스란히 그 판단실수의 대가를 치렀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리더들의 오판의 결과이다.
리더의 오판으로 한반도에 다시 병자호란 같은 무력침공이 재발하지는 않겠지만 경제, 문화, 사회 전반의 무혈의 난이 오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721호〈시사IN〉·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확인한 국내 반중 정서의 대전제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구도다.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한다는 압박이 반중 또는 친미 정서를 부채질하는 분위기다.국제정치경제학자인 박홍서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HK+ 연구교수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지난해 펴낸 〈미중 카르텔〉을 통해 미·중 관계를 자본주의 국제질서 안에서 경쟁하는 ‘카르텔 관계’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미·중 양자택일’ 역시 텅 빈 논쟁일 수밖에 없다. 박홍서 교수에게 국내 반중 정서와 미·중 관계에 대해 물었다. 그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가 미국과 중국에서 생산되는 논리로 국제관계를 봐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중략
현대중국학회 국제 추계학술대회 _ ‘한·일 양국의 반중 정서 확산’ 주제 “중국·중국인 모두를 비호감…온라인상 혐오 댓글이 ‘자유민주주의 수호’?” “일본 젊은층은 한·중 친근감 높아…중국엔 이미지 저하 보완할 요소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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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가 코로나19로 힘겨워했던 지난해 10월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14개 국가에서 조사 대상자의 70%가 “중국은 비호감(unfavorable)”이라 응답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반중 감정이 역대 최고치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웃 나라인 우리나라와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혐오에 가까운 반중 정서가 나타나고 있다. 이때 일본 정부와 일본인을 분리해 접근하는 반일 정서와는 다르게, 반중 정서에서는 중국 정부와 중국인 모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지난 19일 현대중국학회가 ‘한국과 일본의 반중 정서 확산,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연 국제 추계학술대회에서 서울시립대 하남석 중국어문화학과 교수는 석사과정 학생인 김명준·김준호씨와 함께 ‘한국 청년 세대의 온라인 반중 정서의 현황’을 발표했다. 이들이 2018년 한·중·일 20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한국 청년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2.14점(5점 만점, 1에 가까울수록 비호감),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2.83점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양국에 대한 호감·비호감의 주요 이유가 서로 달랐다는 점이다. 중국에 대한 비호감의 이유로는 “(교양 없는) 중국인”이 48.2%로 가장 높았고, “독재와 인권탄압”(21.9%)이 뒤를 이었다. 호감의 주요 이유로는 “중국에 대한 단순한 관심”(41.4%)을 가장 많이 꼽았다. 반면 일본에 대한 비호감 이유는 “역사문제(위안부, 일제강점기)”(79.7%)가 압도적으로 높았던 반면, 호감의 이유로는 “선진적인 시민의식”(40.1%)이 가장 높았다.이에 대해 하 교수는 “한국-일본 간 역사 갈등은 양국 간 정부 문제로 한정되며 이와는 별도로 일본 시민들의 선진적인 시민의식은 일본에 대해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풀었다. 이와 달리 중국 정부와 중국인은 사실상 분리되지 않았는데, 하 교수는 “중국인들에 대해 한국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국가의 주장에 동조하는 애국주의자’라는 단편적인 형태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차이는 앞으로 반중 정서에 대한 대책 수립이 일본의 경우보다 더 어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중국인을 자극한 뒤 그 반응을 웃음 소재로 삼는 유튜브 콘텐츠. 현대중국학회 발표 자료 갈무리
온라인 공간에서 드러나는 반중 행태들을 볼 때, “온라인상의 반중 정서는 대체로 중국이 한국을 침략하려는 야욕을 품고 있다는 위기감과 불안감에 기반하고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문화 침투 전략설’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중국에서 촬영된 ‘틱톡’(동영상 플랫폼) 영상들이 유튜브에도 올려지는데, 이를 두고 “중국 정부가 중국에 대한 친숙(함)을 유발하려 계획적으로 뿌리는 영상”이라고 반응하는 식이다. ‘중국 혐오 댓글을 다는 것은 침략 야욕을 지닌 중국에 대항하여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행위’라는 식의 태도도 나타난다.2018년 설문조사에서 스스로 ‘진보적’이라 주장하는 청년일수록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낮게 나타난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이념 정도를 1(진보)부터 5(보수)까지 나눠봤을 때,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1집단에서 1.75로 가장 낮고 5집단에서 3으로 가장 높았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1집단에서 2.87, 5집단에서 3.6으로 나타났다. 한국을 연상할 때 떠오르는 인물로 한국 연예인들을 다양하게 꼽은 중국·일본 청년들과 달리 한국 청년들은 중국과 일본에서 대부분 마오쩌둥과 시진핑,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토 히로부미를 꼽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역사교육과 언론, 각종 매체의 재생산을 통해 문화적 교류보다는 주로 정치와 역사적 관점에서 중국과 일본을 사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또 다른 발표자 히구치 나오토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는 일본에서 중국과 한국에 대한 감정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 등을 풀이했다. 기본적으로 양국 모두에 걸려 있는 역사문제 등이 친근감을 떨어뜨리지만, 한국의 경우 ‘한류’ 같은 정치 외적인 긍정적 요인이 “정치적 여건에 농락당하기 어려운 친근감”을 가져오는 반면 “중국에는 이미지 저하를 보완할 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에 (친근감이) 하락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젊은층일수록 한국과 중국에 친근감을 느끼는 비율이 높게 나타난 사실을 제시하며 “젊은이가 내셔널리즘에 경도되어 있다거나 젊은층이 배외주의적이라고 하는 견해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권력을 쥔 장년 남성 위주의 현재 한-일 관계는 한국을 친근하게 여기는 젊은 여성의 시민적 감각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고도 짚었다.
중국 게임 유저를 괴롭히며 그 반응을 웃음 소재로 삼는 콘텐츠. 현대중국학회 발표 자료 갈무리
학술대회 전체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에서 심화하는 반중 정서의 배경에 있는 ‘중국 때리기’를 불러온 미-중 갈등을 비롯한 국제관계에서부터, 중국 청년의 강한 애국주의 성향 등 각국 청년 세대의 처지, 인터넷과 매체의 영향, 역사와 문화의 문제 등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을 조망했다. 무엇보다 상호 인식과 이해를 넓히기 위한 민간 차원의 교류 확대 같은 대안들이 제시됐다. 사회와 토론을 맡은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혈통론에 기반한 세습 권력의 등장 등 중국이 가고 있는 길이 위험하고 주변 국가들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반중 문제와 별개로) 주변 국가들이 이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기조강연을 맡은 서승 우석대 동아시아평화연구소장은 “중국은 미국·일본과 다르게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동아시아 민족해방투쟁의 중추, 세계 약자의 지지자로 스스로를 분명하게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아야 할때는 역사를 되돌아 봐야 한다 친미주의 자는 미국이 대한민국을 신식민지로 만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주권이 없는 한국의 미래는 밝지 않다 주체사상을 주장하며 한국이 어느 나라에게나 독립되었을때 공정을 대할 수 있다 사대 주의를 비판하자 그것이 우리의 독립을 말할 수 있다.
첫댓글
자기자신의 부귀영화 보다 가장 먼저 역사을 알아야 한다 역사인식이 없으면 가문의 웬수 조상님의 웬수 나라의 웬수들을 은인들을 로 대한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아야 할때는 역사를 되돌아 봐야 한다
친미주의 자는 미국이 대한민국을 신식민지로 만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주권이 없는 한국의 미래는 밝지 않다
주체사상을 주장하며 한국이 어느 나라에게나 독립되었을때 공정을 대할 수 있다
사대 주의를 비판하자 그것이 우리의 독립을 말할 수 있다.
지금의 국제정세, 시대상황이 1차 세계대전 터지기 직전의 상황과 아주 많이 비슷합니다.
조금 달라진 건 한국이 일본되고 일본이 한국됨.
자본가들이
탐욕을 위하여,
패권을 위하여,
지배를 위하여,
마구잡이로 개발하고 생산하고,
마구잡이로 식민지배 영력을 늘이고,
침략과 간섭을 주구장창 벌리니
세계적인 판도에서 부익부빈익빈의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갈등과 전쟁으로 인민들의 피와 눈물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자연환경도 점점 황페화 되여가고 있지요
자본주의에 의한 페해의 "덕"이지요
더이상 자본주의, 자본체제에는
인류의 미래,
지구의 미래가 없지요
어느 학자가 말한것 처럼
사회주의가 인류가 지향해야할 미래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리상사회이고
지구가 살아갈 길도 거기에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