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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예향에 글을 써봅니다. 다들 안녕하시죠? 제목 자체가 굉장히 무거운 주제이지만 그만큼 그것에 대해 방황하거나 관심을 갖는 분들이 읽어보시길 권장합니다.
먼저 당부드리고자 하는 것은 '교회개혁'의 실마리는 남이 나와 어떻게 다른가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시작되어야하며 개혁의 귀결점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제자와 믿는자들에게 남겨놓은 부탁을 실현하는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도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습니다. 지구상에 흩어져있는 기독교 3만7천개의 갈래(교파, 교단, 종단, 그리고 기타 등등)들이 어떻게 해야 사교회(개교회) 현상을 극복하고 '예수 안에서의 동질성 회복'을 해야하는가 하는 차원해서 글을 씁니다.
교회개혁이란 다름을 발견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닮음을 통해 서로를 껴안고, 연합하는 방식을 성경적 바탕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글을 쓴 주요 목적은 예배당의 비성경적 굴레에서 방황하다가 가나안 교인이 된 분들에게 드리는 글입니다. 그래도 예배당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참교회와 참예배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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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짝퉁교회와 참교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으로부터 시작하였으며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And I also say unto thee, That thou art Peter, and up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여기서 주목할 것은 I will build로서 미래의 어느 시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제자들이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지금 시점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응답으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비로소 나의 증인이 되기 위해 땅 끝까지 퍼지게 될 것이다" 라며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교회 선언 - 제자들이 기다림 -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이런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제시한 예의 본문 속에서 보면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이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교회개혁 차원에서 하나님나라와 교회의 구분은 별도의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이 주제는 좀 긴 설명을 요하므로).
교회는 성령 없이 성립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에게 교회를 선언하면서 그 설립 시점을 미래형(I will build my church)으로 둔 것은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하심)의 성취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일종의 스케쥴 가운데 있음). 오순절 성령 강림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할 수 있는 항구적인 토대를 마련하신 것이며, 그렇게 됨으로써 교회가 성립됩니다. 성령강림으로 교회는 이미 설립(과거 완료형)되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함께라면 누구나 교회이며(한사람이든 천사람이든 1억명이든), 성령과 함께하지 아니하면 아무리 '예수교'라는 간판을 붙일지라도 교회가 아닙니다.
매우 짧게 줄인다면 '교회란 성령이 사람에게 임재된 상태'를 뜻합니다. 주가 내 안에 오시고, 내가 주안에 들어가 동행하는 삶이 곧 교회 안에서 하나 됨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비 가시적인 무형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하나님나라는 실종되고 성령의 임재함에 대하여는 크게 강조하지 않으면서 개신교적 틀 안에 있는 일정한 형식을 갖고 있는 종교 집단을, 특히 특정 건물을 중심으로 교회라는 간판을 가져다 붙이면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속에서 말하고 있는 참 교회와는 많이 동떨어진 상태입니다. 개혁이란 잘못된 것을 알았으면 재빨리 본질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교회는 예수님에 의하여 과거 완료형으로 이미 세워졌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오심으로 충족되며 부족된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임의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용어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여야 하며 따로 세워져서는 안됩니다. 이미 세워진 교회를 인간이 세우다 보니 교회는 사교회(분열을 거듭하는 현상) 현상을 초래했습니다. 참고로 카토릭은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교회만 인정되며 로마교황청에서 완전히 통제하여 필요에 따라 교구를 세울 뿐이지 교회를 세우지는 않습니다. 이런면에서는 카토릭은 매우 성경적입니다(시스템적으로 교회분열이 없음).
신학교를 나와 목사안수를 받거나하면 특정 건물을 임대하거나 건축하여 규격화된 종교행위를 할 준비를 하게되면 교회라는 간판을 달게되는데 이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교회와는 너무나 다릅니다. 그것은 짝퉁교회입니다. 참 교회는 성령께서 사람에게 임재하여 함께하는 현상입니다. 그것은 지구촌 어디에서나 하나로써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짝퉁 예배와 참예배
오늘날 개신교는 정해진 날자와 시간에 정해진 규격으로 종교행사를 하고 그것을 예배라고 부릅니다. 이 이상한 예배의 기원은 카토릭으로부터 99% 전래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배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 종교행사는 카토릭의 예식인 미사에서 그 성경적 당위성을 추적해야 합니다.
카토릭의 시작은 역사적으로 로마시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칙령(주후 313년)에 의한 '종교인정'으로부터 본격화 되었습니다. 그 이전 안디옥에 있는 이그나티오가 서신서에서 카토릭교회(he kaholike ekklesia)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유대교 및 기타종교와 분리되었다는 의미를 사용한데서 처음 발견되며 이것이 명칭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카토릭 이라는 용어 자체가 '구분된 교회'라는 뜻입니다.
카토릭의 가장 중심되는 행사는 미사(성찬례)로써 이는 정식 서품된 사제만 집전 권리를 갖습니다. 미사 라는 말의 본래 뜻은 mitto(보내다)로서 '복음을 전하기 전에 갖는 모임'의 의미입니다. 미사의 전체적 흐름은 개신교의 주일 의식 행사와 99% 유사합니다. 서로 용어적 차이만 다를뿐 본질적으로 거의 같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배와 카토릭의 미사, 개신교의 예배의식이 동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예배에 대하여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아이러니하게 성경에서는 예배에 대하여 의무적 요구가 없습니다. 신약에서 예배를 의무화하고 있는 구절은 딱 한구절이 있는데 이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라 이것이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이다(로마서 12장)라는 한 구절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일요일 순서에 따라 행하는 종교행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12장의 줄거리는 종교행사랑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 읽히는 것은 지체된 이웃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지에 대하여서 입니다.
성경속에서 예배라는 낱말을 접근해 보겠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배라는 낱말을 추적하다보면 3가지 서로 다른 단어에서 번역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단어는 ①minister ②worship ③service 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예배와 우리 머리속에, 그리고 개신교의 전통과 유전 속에서 관념지어진 예배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한글 성경에서는 이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예배'라고 번역하여 혼선을 초래하였습니다.
3. 참예배의 패러다임 변화
예배라는 단어는 사복음서에서는 요한복음에만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용어는 구약의 제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의미는 worship 입니다.
①worship의 진행(신약과 구약 공통)
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예배'라는 단어를 언급합니다. 여기에서 예배라는 용어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상황에 대하여 구약적 의미를 둡니다. 구약에서는 '예배하려는 사람 - 제사장 - 특정예배장소 - 하나님께'라는 요소가 있어야 예배가 성립됩니다. 그러므로 이 예배라는 단어는 곧 구약의 제사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4장의 본문에서 예수님의 예배에 대한 선언을 통해 예배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자가 예수님께 묻고 있는 핵심은 '도대체 어디로 찾아가야 진짜 예배냐?' 입니다. 당시 유대는 정치적으로 남과 북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예배를 하려고 예루살렘까지 먼 길을 가야했지만 남과북이 갈라져 국경선을 넘어가는 일이 생겨 정치적인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남유대의 정치가들은 그리심산에다가 임시성전을 만들어놓고 거기서 예배하는 것이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것과 같다고 하며 국경을 넘지 말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민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심산에 가서 예배하는 것이 왠지 예루살렘에 가는것보다 못해 보였습니다. 그것이 꺼림칙했고 이 여인은 바로 이 문제를 묻고 있습니다. 거기에 답하는 예수님의 선언은 매우 놀랍습니다. "그리심산의 임시성전도 아니고 예루 살렘도 아니다. 지금부터는(본문에 now is) 아버지께 참 예배를 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실 것이다"
이는 놀라운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성소에 가면 제사장이 중계 역할을 하여 worship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언 후에는 그것이 필요없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직접 찾아오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다가 하나님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직접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변화죠.
예수님이 오시고 예배 패러다임의 변화는 사람이 하나님께 찾아가던 것이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게 된 것으로 바뀌었으며 특정 장소의 예배 개념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로마서 기록자는 구약 예배의 연장선상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라. 이것이 너희가 행할 도리에 맞는 봉사다.(로마서 12장 1절)
※ 한글은 여기서 '도리에 맞는 봉사' 부분을 '영적 예배'라고 번역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음 부분에서 설명합니다. 영어 원문에서는 reasonable service 입니다.
②service의 의미
위 로마서 12장에서 언급된 '예배'의 번역은 의도적 오역인지 알 수 없으나 로마서 12장을 살펴보면 이 예배라고 번역된 부분은 이웃들과의 관계, 지체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핵심적인 서술이 연속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기록자는 '섬김'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으며 우리가 참 제사(예배)를 하려면 이웃을 섬기는 것이 곧 도리에 맞는 것이다라고 강조합니다.
요식행위(특정 장소에 가서 제사장이 집전하여 희생제물을 불사르는 등의)가 필요한 예배에서 영과 진리로 하는 예배로 바꼈으며 이것을 신약적으로 해석하자면 예배의 대상이 곧 이웃과 지체들로 바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적으로 되돌아가 특정 장소에 가서 목사가 집전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행위는 예수님의 선언을 무위로 돌리는 불충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이런면에서는 현대 예배당에서 하는 행위가 얼마나 비성경적으로 예수님에 대하여 반역하는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에 따르면 참예배란 곧 이웃과 지체들을 섬기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③minister의 종료
제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향하여 하는 봉사 부분입니다. 이 minister는 성막이나 성전등의 특정 장소에서 성직자들이 행하는 일종의 중재자적 역할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장 28절)
Even as the Son of man came not to be ministered unto, but to minister, and give his life a ransome for many.
이 구절에 minister가 쓰였고 예수님의 이 섬김은 자신이 희생의 제물이 되는 제사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섬김이 필요한 이웃들을 찾아다녔으며 결국에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참 예배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브리서 7장 27절)
히브리서 기록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나 의례를 종료시켰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minister의 필요성이 없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것을 종결시켰기 때문입니다.
위에 있는 것들을 짧게 정리하자면
service : 일상적인 삶에서 복종적인 경향이나 자세(여호와를 섬김)
worship : 특정인 또는 하나님을 향한 숭배 또는 경배(주로 거의 개인적인 일)
minister : 성막이나 성소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향하는 의례의 표현
이 글을 통하여 읽는 여러분들이 참교회와 참예배가 무엇인지, 짝퉁교회와 짝퉁예배가 무엇인지 고민할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교회개혁 차원에서 성경적인 토론들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예배당의 비성경적인 굴레에서 견디지 못하고 가나안 교인이 된 여러분이 이 글을 복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예배와 교회의 개념정립이 새롭게 된다면 복음전도의 전략과 선교 전략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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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빌더 - iDea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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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ttp://bible.com/88/mat.25.37-40.krv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정확한 대목이네요.
'형제 중 작은자에게 한 것'
그것이 예배의 기본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사도행전에 예배했다는 기록이 없는게 신기했었는데 알고나니 이해가 되더라구요. 거듭난 성도들이 서로 주님의 지체개념으로 서로 사랑하며 친교한거예요. 그 구원의 기쁨을 외부로 전하면서 말이죠.
귀한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네, 감사해요.
근데 이의제기도 하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ㅎㅎ
@iDeaRush 사람이 교회지요..!
@leave 감사합니다~ ^^
두루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