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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6.8.7.) 말씀/ 로마서 1:14-16 빚진 자의 심정으로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본문 14절에서 바울 사도는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왜 그는 자신을 빚진 자라고 합니까? 복음 안에서 자유자요 하나님나라의 상속자이나 하나님께 받은 사명과 자신을 불러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죄인 중에 괴수로서 일군 된 자격이 없는 자인데 사도로 부름을 받았으니 얼마나 그 은혜가 컷겠습니까? 여기의 '빚 진자' 를 뜻하는 '오페일레테스' 는 죄와 의무의 개념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즉 빚을 갚지 않음은 죄가운데 있는 것과 똑같고, 자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갚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를 가진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런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짐으로 복음의 사역자로서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겠다는 각오를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찬송가 28장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주의 귀한 은혜 받고 일생 빚진 자되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굳게 매소서." 하나님의 큰 은혜의 빚을 진 바울은 '어떻게 이 빚을 갚을까?' 하며 늘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았습니까? 구체적으로 로마교회 성도들을 위해 항상 기도했습니다(9). 또 로마교회 성도들을 견고케 하고 피차간에 격려와 위로를 삼기 위하여 신령한 은사를 나누고자 했습니다(11.12)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서 로마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려 했습니다(13). 그리고 은혜의 빚을 값을 대상은 유대인들로 제한하지 않고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 모두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열심을 낸 이유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였습니다. 바울 뿐 아닙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빚을 떼지만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빚을 값지 않고는 살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 빚은 어떤 빚 입니까? 은혜는 선물로 주어지기 때문에 값아야 할 윤리적 의무는 없지만 이도 또한 사랑의 빚입니다. 성 프란시스의 제자가 환상 속에서 천국에 가게 되어 가니 높은 보좌가 있었습니다. “이 보좌에는 누가 앉게 되는지요?” 하고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천사는 복음을 위해 많이 수고하고도 가장 겸손한 성프란시스가 앉을거라 대답했습니다. 환상에서 깨어난 제자는 스승 프란시스에게 시험합니다. “선생님 당신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이때 프란시스가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라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제자가 얼른 받아 “그것은 위선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성자라 말을 합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이때 성 프란시스가 답을 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라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많은 줄 아는가, 내게 입히신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주셨다면 그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복음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비젼과 소원을 위해 수고했을 것이네. 그러나 나는 이 정도 밖에 안 되니 하나님 앞에 아주 게으르고 악한 사람이라네...” 라고 복음에 가장 큰 빚진 자임을 고백 했습니다. 고전9:16절에 바울은 이렇게 고백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 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 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라” 왜 그렇게 화까지 자처하면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겠습니까? 그 역시 빚진 자의 심정 때문 인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을 보면 “그러므로 할 수 있는데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하고 있습니다.
프레드릭 레에만이라는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는 가난한 시골 교회에서 생활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레에만 목사가 치즈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할 때 부인이 점심 도시락 안에 "바다가 먹물이고 하늘이 두루마리인들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적으랴" 라고 적혀 있는 시 한 구절을 넣어주었습니다. 이 시를 읽고 감동을 받아 쓴 찬송이 404장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측량 못할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랑의 빚을 졌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냥 가만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네가 높으냐 내가 높으냐' 서로 신분과 자리의 문제로 다투고 있을 때 예수께서 섬김의 본을 보이시려고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발을 씻기셨습니다. 다 씻기신 후에 겉옷을 입으시고 식탁에 앉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의 발을 씻긴 뜻을 알겠느냐? 너희는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주요,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남의 발을 씻어 주어야 옳지 않겠느냐?"(요한 13:14)
테레사 수녀와 함께 살고 있던 한 사람이 그녀에게 왔습니다. 그 때 마침 테레사는 한 어린이의 고름을 짜며 치료를 하던 중입니다. 이 사람이 그녀 곁에 다가서서 "수녀님, 당신은 잘 사는 사람, 평안하게 사는 사람,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사는 사람들을 볼 때 부럽지 않으세요? 이런 삶으로 만족하세요?" 라고 묻자 테레사는 대답을 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은혜 받은 사람은 항상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섬기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자신의 위치 여건들을 생각하고 따질 시간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크니 네가 크니 비교하며 다투고 분쟁할 시간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의 빚을 값는 데만 마음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지난 주는 인천 송도 연희 국제대학에서 8.1-4일까지 선교사수양회를 가졌습니다. 선교사 목사 사모 120명이상 참석 하여 은혜스럽게 잘 마쳤습니다. 수양회 내내 말씀과 교제 세계 각국 선교사님들의 간증식 은혜스런 역사보고를 듣고, 건전한 CMI 공동체를 위한 포럼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세째 날 오후에는 모두가 인천 송도주변 테마 여행을 했습니다. 인천상육작전 기념관, 맥아더 동상과 월미도, 기독교 백주년 기념탑과 언더우드 선교사 동상, 이민사 박물관 등을 돌아보면서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간단한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는데 막상 현장을 가보니 인천이 참으로 역사적인 곳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포도 '목포의 눈물'이란 민족적 애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천도 인천상륙 작전을 비롯하여 언더우드 선교사가 상륙하여 최초의 선교사가 되고, 또 가장 어려운시절 노예처럼 팔려간 이민 역사가 시작 된 역사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이런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며 열악한 환경 속에 풍전등화 같았던 대한민국이 오늘날 어떻게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되었는지 생각하며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옆에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목사님, 한국이 빚을 많이졌네요"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맞장구쳤습니다. 정말 대한민국이 얼마나 많은 빚을 졌습니까! 홀로 결코 오늘에 이를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필리핀보다 북한보다 못 살 때 전쟁으로 초토화 될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우리는 필리핀, 터키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런 은혜를 입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거꾸로 언조하고, 봉사하고 기여하는 나라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이뿐 아닙니다. 우리가 잊지 않고 특히 감사해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에 와서 최초로(1885) 복음을 전해준 언더우드같은 선교사님들이 있었다는 것 입니다. 그 때문에 기독교국가의 초석이 될 수 있었고, 또 온 국민이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혜를 입을 수 있게 되는 것은 감사 중에도 가장 큰 감사제목입니다. 문맹에서 벗어날뿐 아니라 이제는 반대로 엄청난 교율열에 대하여 미국도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오바마가 일주일에 3번이나 한국 예찬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 세계에서 건립중인 원전 56기 가운데 6기를 한국이 건립하고 있다(2.16). 요즘같은 경쟁 시대에 고속열차 강국인 한국을 보라(2.19) 한국이 잘 된 것은 부모들의 교육 열 때문이다. 우리도 미국도 이런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2.22). 이렇게 되기까지 그냐 저절로 되었겠습니까? 정말 암흑같은 조선시대 선교사들이 목숨걸고 들어와서 복음을 가르쳐준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우리는 분명 큰 빚을 진 자들입니다.
최초의 선교사로 들어온 언더우드 선교사가 당시 남긴 일기장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 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 뿐 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 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 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언더우드가 만큼 대를 이어 사랑을 우리에게 쏟아부었던 외국인은 없었다고 합니다. 1세가 연세대와 새문안교회를 세우고 YMCA를 조직해 캄캄했던 그 시대 민중들을 위해 신(新)문명의 빛을 밝힌 이래 후대(後代)들은 이 땅에서 나거나 자라며 사랑을 기울여 왔습니다. 3대 모두 이 땅에 뼈를 묻었다고합니다. 그러한 영적 빚을 지고 대한민국이 세움 받게 된 것 입니다. 아멘! 오늘날 경제대국, 최고의 교육열, 최고의 기독교 복음화가된 배경에 이런 은혜의 빚이 있었다는 것,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런 역사의 현장인 인천 언더우두가 세운 연희 국제 대학에서 선교사 수양회가 이루어졌다는 것 자체가 큰 은혜 였습니다. 수양회를 참석하면서 저는 이번 수양회가 나름대로 이제 빚진 자의 심정으로 앞으로 CMI 미래와 세계복음화문을 열고자 하는 제삼의 인천상육작전 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빚은 부담스러운 세상 빚이 아닙니다. 값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랑의 빚입니다. 감사함에서 나오는 자원적인 마음입니다. 로마서 13:8절을 보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빚은 지지 말라고 하면서 그러나 사랑의 빚은 에외로 져도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에게 빚이 없다면 그렇게 빚을 값으려 할까요? 사랑의 빚이 있기에 또 사랑을 하게 되는 참으로 신비한 역사이지요. 수양회 끝나고 호주의 오누가 선교사님과 함께 무안까지 내려왔습니다. 저도 박중용 목사님과 호주에 갔을 때 이분에게 사랑의 빚을 많이 졌습니다. 맛있는 음식으로 대접도 받고 시드니에서 멜버른 항공편도 제공받았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지금 기회가 있을 때 사랑의 빚을 값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무안의 낙지 염포탕을 섬겨드리고, 저년에는 재중 집사님과 만나 회도 섬겨드릴 수 있었습니다.목포도 처음 목포 음식도 처음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저도 감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언제 재중집시님도 호주에 한번오라고 초청을 합니다. 사랑의 빚은 어쩌면 가장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고가면서 오누가 선교사도 이번에 형님에게 학창시절 진 빛을 값으려고 호두 달라를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00만원을 지원받았는데 계속 값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배로 값으려고 준비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사도바울의 빚진 자의 심정을 많이 배웠습니다. 우리가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산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저는 인천 수양회를 하고, 역사탐방을 하면서 마음이 있어도 자세히 구체적으로 무엇을 빚을 지었는지 어떻게 빚을 지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모르면 구체적 행동 실천이 안 되고, 알 때 실천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어떤 은혜의 빚을 지었습니까? 또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은혜의 빚을 짓고 살고 있나요? 조용히 생각하고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받은 사람과 은혜의 역사가 나 당대에 멈추지 않고 제 2대 삼대 계속해서 흘러 넘치고, 또 세계로 퍼져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마지막 롬 1:14-15절 읽고 마치겠습니다. "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롬 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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