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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93년 7월 15일 화요공부방
□김제원 교무님 설법
-수심결과 마음공부 제 1,2,3장
반갑습니다.
보조국사 지눌은 고려시대 스님으로서 현재 순천 송광사가 지눌스님 덕택에 큰 절이 된 것입니다
일찍이 53세에 돌아가셨는데 지눌 스님은 외국에 유학을 다녀오신 분도 아닙니다.
여러 선사들의 책을 통해서 수행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
후학들을 위해서 당신 스스로 자문자답으로 내 놓으신 겁니다
우리가 반야심경, 금강경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수심결도 상당히 좋은데,
쉬우면 법이 깊지가 않다는 생각을 우리가 많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심결은 일본, 청나라에 외국 스님들이 공부하러 가져간 책입니다
수심결 나름 공부해 보신 분들이 계신가요?
마음대로 해도 되겠네요 (하하)
1부에서 우리 청년이 직역이라든가, 원문을 간단히 해석을 했는데요
제가 한자로 설명하다기 보다, 내용으로, 마음으로 들어가서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심결은 총 40장인데요, 20장까지만 하고 8월 달까지만 끝내자 생각을 했다가 끝까지 다 해 볼 생각입니다.
제 생각에는 10월 달까지 해서 수심결이 끝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끝나고 나면 명인명사 초청강사로 강연이 있고,
그 다음에는 정전으로 다시 공부해 볼 생각입니다.
여기까지 큰 걸음 큰 마음 먹고 오셨는데, 한번 와서 판단한다는 것은 다 할 수 없을거 같아요.
여기에는 불교에 대해서 상당히 공부하신 분들고 계신거 같고,
원불교에 대해서 마음공부에 대해서 관심있는 분들이 계신거 같은데,
여러번 오셔서 판단해 보시길 바랍니다
1장, 중생살이, 그 뜨거운 번뇌의 삶이여.
三界熱惱가 猶如火宅이어늘 其忍淹留하야 甘受長苦아
삼계열뇌가 유어화택이어늘
삼계라는 말은, 욕계, 색계, 무색계의 준말입니다.
우리 현상의 세계를 삼계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부처님은 삼계의 대도사고, 사생의 자부이시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들어보셨습니까?
도자는 인도할 도자로 인도하실 스승님 이십니다
지혜를 통해서 삼계의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스승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법문을 보면 앉아 있는 대상에게만 법문을 설하는 것이 아니라,
삼계의 어둔 중생들에게 법문을 설하는 것입니다
욕계는 오감의 세계라고 간단히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땅기운을 받은 욕심들 세계입니다
축생들은 땅을 쳐다보고 다닙니다.
사람은 멀리 이상, 꿈을 보고 다닙니다
그래서 사람의 뿌리는 땅이 아니라 허공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욕계라는 것은 지(地)계, 욕심의 세계입니다
욕심이 가득한 세계이기 때문에 화택입니다
주로 오욕을 이야기합니다. 재색명리식수를 말합니다
재물, 색, 명예, 식, 수면(나태) 빠지는 것을 욕계에 빠지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삶의 중심이 자기 하나입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욕계의 세계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산에 절을 찾아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만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예의염치도 없고 종종 악업도 없고, 정신없이 허덕이는 중생 세계가 욕계의 세계이다라는 것입니다
큰 부처님에게 가면 복이 더 많을 줄 안다는 것입니다
색계의 세계는 마음의 감정의 세계다라고 말합니다
색계의 세계는 때로는 주위의 이목 때문에 복도 짓고, 열심히 공부도 하고, 사회 산업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잘 나가는 사람은 시기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은 차별세계에서 바로 무시하게 됩니다
윗 사람에게 아부하고, 아랫사람들은 발로 밟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마음 속에는 계교심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종교가에 잘 오지 않습니다
색계의 사람은 그러다가 종교가에 한 번씩 가보는 것입니다.
종교가에 가서도 음악하나 보고도 음악세계에 빠져서,
음악을 위해서 종교에 빠지겠다하는 것은 감정의 세계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부처를 찾고 싶은 그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는 것입니다.
무색계라는 것은 색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고, 생각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나는 계교심이 없어, 끌리지 않아, 법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바로 비법자들을 싫어합니다. 이런 사람은 공심이 있고, 수행도 열심히 하지만
수행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은 은근히 무시합니다.
무색계에 빠진 사람을 고급중생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지식과 사견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부처도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부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상당히 수행에 열심히 합니다. 때로는 수행의 맛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이런 사람은 중근병에 걸리게 됩니다
스승을 자로 재고, 자기가 스승이 되어 심독을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참 마음을 깨치면 모두가 하나다라는 것을 아는데
이 무색계의 사람은 자기의 국한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세계를 상대의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3차원의 세계입니다.
욕계의 사람은 항상 자기가 중심입니다
자기가 슬프면 남의 사람도 슬퍼야 하고, 제가 기쁘면 남도 기뻐야 하는 것입니다
색계는 감정으로 하는 것입니다. 희로애락에 자기도 모르게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한 번씩 복도 짓습니다. 그러나 복을 지었다가 칭찬을 하지 않거나,
누가 섭섭해 하면 바로 섭섭해 하는 것입니다
무색계의 사람은 은근히 마음속에 ‘내가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라고 해서 ‘나’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런 중생들에게 마음을 깨치도록, 자기의 실체를 깨치도록,
어떤 것이 참 행복인가를 깨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깨침을 통해서 얻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수행을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 하지만,
결국은 어떤 것이 가장 핵심인가는 수심결을 통해서 공부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삼계의 뜨거운 번뇌, 번뇌뿐만 아니라 락도 포함됩니다.
인간락에 삶니다. 우리 아들이 좋은 곳에 취직하면 기쁜 것입니다.
현상락도 있습니다. 수양을 하면서 스승님들이 이런 재미가 있었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적 세계로서 항상 짝이 있는 것입니다
좋다 그러면 안좋다가 있고, 밝다가 있으면 어둡다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수행을 하면 좋은 것을 취하면서 좋지 않은 것을 미뤄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신 분 계십니까?
삼계를 넘어 선 사람은 사가 없고 깨친 사람입니다
사(私)가 없는 그 마음은 삼계를 초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성자들은 삼계의 세계를 넘어 섰기 때문에 삼계의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을 칩니다.
그 이유는 삼계의 중생들을 놀라게 하면서 정신 차리게 하고, 깨우치게 하는 것입니다
염불을 하는 것도, 염불의 인연으로 삼계의 업장이 소멸해 지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삼계의 고혼을 천도하는 것이 염불입니다
삼계의 일체 중생들을 부처님이 넘어서신 것이고, 천도할 수 있는 것이 부처님입니다
삼계를 초월하고 삼계를 해탈하려면 집착에서 벗어나면 된다라고 어떤분이 말씀하시던데,
맞는 이야기 입니다.
그 세계를 뛰어 넘기 위해서는 집착만 놓으면 되느냐?
그건 아닙니다. 정력(定力)이 있어야 합니다.
정력(定力), 계력(戒力), 혜력
지속적인 수행을 통해서 힘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속의 스님들이 열심히 수행하고 하는 것은 힘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계정의 삼학공부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화택 속에서 머물러서 고통을 달게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통을 어떻게 받느냐 하면,
정력이 없으니깐 요란합니다
혜력이 없으니깐 어리석습니다.
계력이 없으니깐 아닌 짓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얽혀서 성질 내 놓고 성질 낸 내가 미워서 다시 성질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 적 없으신가요? 이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법을 만나서 마음의 원리를 확실히 아는 거가 그 실타래를 확실히 풀어내는 것입니다
바로 터닝포인트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심결의 마음자리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선행을 하고, 복을 지어도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欲免輪廻인댄 莫若求佛이요
욕면윤회인댄 막약구불이요
윤회라고 하는 것은 돌고 도는 것이요.
이런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부처를 구해야 한다.
부처는 바로 마음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세계에 대해서 공부를 해봐야 합니다
그러면 우선 부처는 무엇입니까?
흙으로 빚으면 흙부처님이고, 나무로 만들면 나무 부처님이고, 금으로 만들면 금부처님인가요?
이런 불상도 부처님이지요?
이것만 부처님으로 아는 사람은 불교를 초등학교 밖에 다니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 인도에서 깨어난 서가모니를 부처님으로 아는 사람은 중학교 수준입니다.
세 번째, 깨달은 사람을 부처님이다라고 아는 사람, 불즉각이다라고 아는 사람은 고등학생정도입니다.
네 번째가 모두가 부처님이다, 원불교에서는 처처불상이다고 합니다.
옛날에 성철 스님이 처처가 부처다라고 하니깐 절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모두가 부처님이다라고 하면 우리가 뭐 먹고 사냐고 절에서 쫓겨 났다고 합니다.
이 정도 되는 사람은 대학생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대학원 정도, 제대로 부처가 뭔지 아는 사람은 하! 마음이 부처구나를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 것도 모두 부처님이 맞지요.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마음이 부처님을 아는 것이 제대로 부처님을 아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마음은 무엇입니까?
순자가 가만히 보니깐 아이들이 먹을 것을 주니깐 자기 먹을 것을 챙기는 것을 보면서 아무래도 사람의 마음이 조금 불량한거 같다라고 해서 성악설을 말을 했지요
맹자가 가만히 보면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서로 구해줄려고 하고 마음이 안타까워 하는 것을 보니깐 서로 본심은 모두 착하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원남교당에 있을 때, 회장님이 계셨는데 사회에서 살아보시니깐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하고 여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아무래도 성악설이 맞는거 같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살아보니깐 모두 도둑놈이고, 이렇게 도둑질을 하고 저렇게 해서 도둑질을 한다는 것인거 같고 제대로 하기 보다는 회사도 잘 되기 위해서는 기름칠을 해야 하는 것 보니깐 아무래도 세상은 아닌거 같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음이란 무엇이고, 마음 공부란 무엇일까요?
‘마음은 거울과 같다’ 좋은 표현입니다
저를 보세요.
정전에 마음이 있다고 새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몸에서 내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를 보십시요. 저 사람이 김제원 교무라고 눈으로 보고 아시고 귀를 통해서 목소리를 듣고 아십니다. 귀를 통해서 눈을 통해서 마음이 아시는 것이지요.
자기 자신을 꼬집어 보세요
꼬집을 때 아픔을 느끼고 아는 것이 신경일까요? 마음있지요?
마음 있습니다.
제 목소리를 듣고 알고 눈을 통해서 아시고, 꼬집어서 아는 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 있지요? 그러면 어디에 있습니까?
아는 것이 마음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문 보니깐, 수심결과 마음공부가 하니깐 가고 싶네라는 마음이 들어서 여기까지 오시게 되었는데
그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 대답해 보세요
그러면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태중에 있었습니까? 태중에도 있었겠죠
태중에 있는 것이 영이 아직 들어가지 않는 태아도 있습니다.
수행을 오래한 고급 중생이나 늦게 들어가지 보통 중생들은 바로바로 들어갑니다.
불보살은 삼계를 넘어선 그 마음으로 자유자재 합니다.
욕심이 많고 무게가 많을 수록 천도를 해도 영이 뜨지 못합니다
현실을 넘어선 영들은 가벼워서 시공을 초월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영이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어제 밤에 꿈을 꾸고 있습니다. 꿈에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푹 잠들어서 꿈이 없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꿈이 없을 때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꼬집어도 잘 모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자면 큰방에서 자면 작은 방에서 자고 있습니다.
자고 있는 저를 데려다 놓아도 저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때 마음이 자고 있는 것입니까? 허공에 있습니까?
그러면 다른 것을 물어 보겠습니다.
자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허공에 올라갔다는 것입니까?
숨을 들이쉴 때 단전에서부터 올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호흡을 쉬는 그 때에도 마음이 있습니다
호흡이 끊어졌습니다. 그 때 마음은 어디에 갔을 까요?
몸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실어다가 다른 사람에게 이식을 합니다.
그때 마음은 없나요?
그러면 아까 저 친구가 허공에 마음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예를 들겠습니다
아침 5시에 알람을 맞추어 놨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늦게 잤습니다.
그래서 수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5시에 벨이 올리는데 정신없이 꿈도 없이 자고 있습니다.
벨이 한번 울립니다. 다시 5분 후에 벨이 울립니다.
소리가 한 번 울리고 두 번째 울렸습니다. 두 번째 우린 끝 부분에 그 소리를 듣고 알았습니다.
첫 번째가 소리가 울릴 때에는 꿈을 꾸느라 소리는 있어도 내 마음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는 듣는 마음이 아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때 마음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의식과 무의식입니까?
꿈도 없이 잠잘 때 그 아는 영지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화두입니다.
부모로부터 몸 받기 전 몸은 그 어떠한 몸인가? 이것이 의두입니다.
나눠준 것을 펴보세요.
종법사님이 하셨던 저희 학교 다닐 때 의두성리할 때 설명해 주신겁니다.
맨 위에 일원상이 있습니다. 저것도 형상입니다
부처님의 실체를 형상화한 것을 일원상으로 모신것입니다.
좌측에 가면 성품, 우측에는 백정의식이 있습니다
성품에서 한 기운이 통합니다. 성품이라는 것은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자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아직 분별하는 마음이 나오기 이전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를 성품이다라고 말합니다.
아까 욕계, 색계 무색계에서 생각의 이전 자리라서 삼계를 초월한 자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분별 주착이 없는 자리이다, 법신불자리이다 무극한 자리이다. 여여한 자리이다 참 마음 자리이다라는 것입니다
성품자리에서 한 기운이 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볼 때 김제원 교무님이구나라고 하면 정신이 든 것입니다.
거기에서 저 희로애락이 도는 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저 양반 얼굴이 저렇게 생겼구나 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 다음에 한번 수심결 잘 공부해 보자 하는 것이 바로 뜻입니다.
생명으로 가고 대뇌를 가고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메모도 합니다.
육경이라는 것은 대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컵을 봅니다. 이 컵을 보는 것이 색입니다.
눈으로 통해 보았기 때문에 안식이 이루어 집니다.
이것이 바로 육근이라고 합니다. 육근이 육경을 만나서 이것이 18개입니다
안식을 일으키는데 제7식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컵을 보고도 컵인지를 모릅니다.
어른들이 이것이 컵이다 알려주면 컵인줄을 아는 것이 제7식입니다.
문제는, 제 8식에 컵만 보면 먹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동으로 제8식입니다
종법사님이 법문을 하는데 미국으로 갔는데 공항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서 사람들이 줄을 서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길도 횡단보도를 지키지 않고 바로 건너간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교통질서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은 제7식에서 제8식까지 자동으로 지켜지는 것인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자동으로 지켜지지 않는 것입니다.
제7식 마음의 세계는 변화가 많습니다.
치매만 와도 잊어버립니다.
머리만 다쳐도 잊어버립니다
현생에는 7식밖에 기억을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영어를 아무리 잘해서 내생에 영어를 못합니다.
제8식은 아뢰야식이라고 해서 무형의 것은 가져가고 유형의 것은 못 가져갑니다
아이가 태어납니다. 어떤 아이는 성질이 더럽고, 어떤 아이는 성질이 온순합니다.
이것은 제8식에 가져간, 길들여진 성품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버리면 끝이잖아요라고 말을 하는데
육신은 끝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쌍둥이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도 좋고 똘똘하고 인물이 좋게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나오자 마자버림 받고, 장애로 나오고 가난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의 인과보응을 알지 못하면, 도저희 용서가 안되는 것입니다.
제 8식은 계속적으로 반복을 하면서 오토매틱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야동을 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길에 가다가 어떤 여자만 쳐다보고도 바로 그것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종법사님께서 말씀하시길 법문을 듣고 듣고 들어도 안 들릴때까지 들어라
법문을 보고 보고 보아도 안보일때까지 보아라 이런 법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고 하고 해서 함이 없어도 저절로 될 때까지 해버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제7식에서 머뭅니다.
그런데 8식까지 되기 위해서는 오토매틱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정도 좌선을 해 보았고 경전도 해 보았고, 사경도 해 보았는데 왜 별로 안바뀌나요?
7식의 선에서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8식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자동으로 되어야 합니다.
욕을 잘하는 사람은 원불교를 다녔어도 자동적으로 욕이 나오게 됩니다.
거기에 길이 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래 마음은 요란함도 어리석음도 없는데 경계를 그 마음에 대면 뭔가가 나오게 됩니다.
그 뭔가가 선한 마음으로도 나오고 악한 마음으로도 나옵니다.
아까 부처가 마음이다라고 하는 것은 선과 악을 모두 포함한 것입니다.
즉심시불이다라고 하는 것은 정신, 마음까지 포함한 말입니다.
마음을 수양이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챙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성이다 공부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신은 수양한다라고 합니다. 오롯한 정신은 수양하면 됩니다.
성품은 오득한다, 단련한다라고 말합니다.
보통 우리가 정신과에서 일하는 교무가 둘이 있는데
나 정신과 의사 전문의 딸 때 이것도 모르고 했다는 것입니다.
정신이라는 것이 적적성성이다, 공적영지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이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저를 바라보면서 훤히 아는 것이 정신입니다.
거기에 분별이 들어갑니다. 이쁘다. 듣기 싫다 좋다라고 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선한 마음을 길들여서 쓰되, 악한 마음을 길들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은 챙겨서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대조한다고 해서 대조공부라고 합니다.
제 8식에는 무형의 습관의 종자를 갖고 간다
그래서 이생에 닦은 지혜력 수행력, 복업은 가지고 갑니다.
그 다음에 인연복도 함께 연결이 됩니다
제 9식은 그것을 넘어선 백정입니다.
존재자체다, 없다라고도 할 수 없는 그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9식입니다
평상시에 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드러납니다
우리가 보통 1분에 열 몇 번 바뀝니다.
좌선을 할때에도, 그것 좀 앉아 있는데 나무아미타불을 할 때에도 여러 생각이 솟아납니다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수심결에 나온 마음은 이것을 포함한 전체로서의 마음이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성품은 깨치는 것입니다.
생각으로서 들어가는 자리가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은 뜻을 어디에 갑니까? 돈을 벌어야 겠다. 명예를 얻어야 겠다 이쪽으로 갑니다.
그런데 불자의 뜻은 서원, 믿음, 확신, 신념을 말합니다.
보통사람들은 서원을 향해서 살고 있느냐? 돈을 벌기 위해서 살고 있느냐?
돈을 버는 목적이 성불제중이냐, 제생의세냐?
수단의 돈이 최종 목적지이냐에 따라서 안이비설신이 작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 불교학과나 불교 대학원에 가면 한 학기 강좌입니다. 제가 단 몇분에 해드렸습니다.
佛卽是心이니
불즉시심이니,
마음은 뭐냐? 내 몸에서 아는 이것인데 언제부터 이것이 있느냐에 대한 의문만 드리고
정답은 아직 드리지 않았습니다.
色身은 是假라
색신은 시가라
색신은 가짜요. 생겼다 멸했다 하는 것이요
참 마음이라는 것은 비워져서 끊어짐도 없고 절단되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별망상은 뱅뱅 돕니다. 육신도 있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2장 슬프다 요즈음 사람들
嗟夫라 今之人이여
차부라 금지인이여
슬프다,
迷來久矣라
미래구의라, 오래되었다
不識自心이 是眞佛하고
불식자심이 시진불하고 자신이 부처인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부처도 되고 중생도 되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不識自性이 是眞法하야
내 성품이 참 법인지를 알지 못하고 법을 구하고자 하고,
欲求法호대 而遠推諸聖하며
성자들만 쫒아다닌다는 것입니다.
법을 제일 빨리 보는 것이 서원과 믿음인데, 그 믿음 중에서도 최고는 사람입니다.
깨친 스승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깨친 스승이 부처인줄 알고 거기에만 머무는 것입니다.
스승이 너가 부처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欲求佛호대 而不觀其心하나니
욕구불호대 이불관기심 하나니
관(觀)= 회광반조(廻光返照)
반야심경에 보면 조견오온개공이다라고 합니다
오온이 개공하는 것을 관한다는 것입니다
관(觀)이다라는 것은 회광반조입니다.
견(見)이다라는 것이 육신이 바깥에 보는 것입니다
관(觀)이다라는 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안에서 안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반조다라고 합니다
3차원의 세계에서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생각으로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이전자리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반드시 무엇이 필요하냐?
절대 서울대 나왔어도, 하바드대학에 나왔어도 생각으로는 절대 갈 수 없는 자리입니다
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수양과 연구입니다. 일단 가능합니다.
더 나아가 취사까지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 마음이 요란해 지니깐 챙겨야겠다고 하는 것이 마음공부입니라고
그러나 분별의 마음 공부입니다
성품이 빠지고, 정신이 빠지고 마음이 마음이 대조하는 삼계의 세계에서 생각하는 수행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관이라는 것은 마음을 떠난 자리에서 합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생각을 넘어서서 밝아지는 것이고 이것을 회광반조라고 하는 것입니다
밖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안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관하나요?
마음, 정신, 성품을 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를 구하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찾아야 하고 그 마음을 찾을려면 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한다는 것은 바로 삼학 공부입니다
마음의 원리를 알아서 마음을 지키고 마음을 챙겨서 그 마음의 주인이 되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는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욕계는 재색명리가 주인이고
색계는 감정이 주인이고
무색계는 어중간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그 지식이 노예입니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초탈해서 바라보는 자리인 것입니다
반야심경 독경에서
불생불멸(不生不滅) ,
불구부정(不垢不淨) ,
부증불감(不增不減)
들어 보셨죠?
어떤 사람은 불생불멸이라는 진리가 있구나라고 이야기를 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까 바깥에서 불생불멸을 찾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불생불멸이고 , 불구부정이고 , 부증불감 이다라는 것입니다
부증부감이라는 진리가 있구나, 불구부정이다라는 진리가 있구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불생불멸 하지 않는 것이 많잖아요
우리의 번뇌 망상을 돌고 돕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불구부정, 이 마음은 더럽거나 깨끗한 것이 아니고,
부처의 마음 따로 있고 중생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증불감은 재산이라는 것은 증감이 있겠지만 내 마음에는 증감이 없는 것입니다
상대적 세계가 없고 절대적 세계다라는 것입니다
삼계를 초월한 법신불이고 이것이 참 마음이다라는 것입니다
若言心外에 有佛하고
약언심외에 유불하고
만약에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고 말고 성품 바깥에 법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堅執此情하야 欲求佛道者인댄
정이라는 것이 바로 무색계입니다. 생각으로 고집하는 것입니다.
욕구불도자인인댄, 부처 되는 도리를 구하고자 할때
縱經塵劫토록 燒身燃臂하며 敲骨出髓하며 刺血寫經하며 長坐不臥하며 一食卯齋하며
乃至轉讀一大藏敎하야 修種種苦行하야도 如烝沙作飯하야 只益自勞爾니
이것이 전부다 모래를 따뜻하게 증기탕에 넣고 하는 것과 같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강을 건널 때 배를 이용해서 건너면 놔두고 목적지를 가면 되는데
그 배를 이어서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사경을 하고 헌배를 할 때, 이것이 마음자리, 고행을 통해서 마음의 자리에 가기 위한 방편인데
그것이 주가 되어서 하는 것은 지익자로이이다. 곧 헛수고다라는 것입니다
번뇌는 누를수록 더 나오는 것이 번뇌입니다
지혜는 집착하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선악을 가리는데에만 급급하면 선악의 이면자리를 알 수 없습니다.
자성자리에는 번뇌와 이것이 다 근원적으로 녹아나고
수행을 할 때 녹아나는 방법을 하느냐 , 누르는 방법을 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원리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아는 것도 비우고 채우고가 맞아져야 합니다
보통사람들은 채울줄만 압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울즐만 압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이해가 약하던가. 이치가 약하던가 합니다.
但識自心하면 恒沙法門과 無量妙義를 不求而得하리니
단식자심하면 항사법문과 무량묘의를 불구이득하리니
다만 스스로의 마음만 깨달으면 찾지 않아도 얻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기본은 견성입니다
이것이 진짜 내 마음이구나,
내 마음은 어디에서 왔으며 형체는 어떻게 생겼으며 내 마음은 도대체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故로 世尊이 云普觀一切衆生하니
고로 세존이 운보관일체중생하니
일체중생은 나죠.
내가 이미 여래지혜덕상을 이미 다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一切衆生種種幻化가 皆生如來圓覺妙心이라하시니
일체중생종종환화가 개생여래원각묘심
개생여래원각묘심이라는 것은 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정신이라는 것은 하나다라는 것이고 둘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더 들어가면 단지 죄가 되고 복이 될 따름이지 하나다라는 것입니다
離此心外에 無佛可成이로다
이차심외에 무불가성이로다.
마음 밖을 떠나서 부처는 가히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주가 있고 지구가 있고 한국이 있고 서울이 있고, 내가 있다가 아니라
불교의 우주관은 내 마음 안에 우주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밖에서 어떻게 구합니까?
3장 부처는 마음 훈련으로
過去諸如來도 只是明心底人이며 現在諸賢聖도
과거제여래도 지시명심저인이며 현재제현성도
과거도 현재도 마음을 닦고 마음 공부법에 의지하는 것이다
사경을 하고 하는 것은 공부의 방향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신심으로 하다보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크게 보면 사경을 하는 것도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願諸修道之人은 切莫外求어다
원제수도지인은 절막외구어다.
원컨대 수도를 원컨자는, 나는 절대 밖에서 마음을 구하지 말지어다.
心性이 無染하야
심성이 무염하여,
여기에서 무는 무이비무(無而非無)를 말합니다.
오염되지 않는 자리가 아니고, 오염이라고 할 것도 없는 자리를 무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원래 심지는 그름도 어리석음도 없는 것입니다. 본래 둥글에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원만구족인 것입니다. 이미 몸 안에 다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중간한 사람들은 나는 중생이다, 나는 안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본자본성이다라는 것입니다.
圓滿具足
至公無私
원만구족, 본체는 원만이고, 현상은 구족입니다.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지공무사, 우리의 마음은 지공무사다. 지공무사라는 것은 지극히 공이다.
즉 비워서 사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공(空)이라는 것은 비었다는 것도 없이 비는 것을 말합니다.
있다는 것은 있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있잖아요. 있지만 유의비유(有而非有)라
但離妄緣하면 卽如如佛이니라
단리망연하면, 즉여여불이다
영사기가 있습니다. 영사기 빛이 필름을 통해서 화면으로 비춰지게 되는 것입니다.
화면이 캄캄만 밤입니다. 필름이 밤인가요 빛이 밤인가요?
필름이 어두운 것이지요?
우리의 마음도 똑같습니다.
습관과 업력을 통해서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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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이연교우님의 정성스러움이, 교무님의 설법 말씀이.. 지쳐있던 제 마음에 힘을 줍니다~ 고마워요^^
이연교우님, 감사합니다^_^
우리 이연교우님이 너무너무 정리를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쪽^^
고맙고 고맙습니다.. 무지하고 부족한 저로서는 그저 고마울 뿐 입니다.....
최근 어릴때 친구를 만났는데, 잘 익은 종교인이었습니다. 익지도 못한 제가... 우리 교무님 소개하며 수심결 강의를 들으라했더니, 일정이 있어 안된답니다. 언젠가 인연이 되면 공부하겠다고...그 마저 고마웠습니다. 자식도 친구도 그 누구도 이끌려하나 이끌어지지 않은 삼대력^^ 아직도 눈으로 보려합니다. 눈을 감고 마음으로 보라 즉 관하라 하시는데, 자꾸 색에 끌립니다. 그럼 화택을 벗어나지 못한게지요. 새로울게 없다하셔도 교무님 법문은 늘~새롭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