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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4년 1월 17일 토요정례법회 ○
법회 후
청년 교화단별로 1박 2일간 MT가 있었습니다.
박원진 예비교무님 출가감상담
반갑습니다.
저는 원기 87년부터 김제원 교무님 모시고 청년회 활동하면서
공부와 생활에 교법이 들어가면서 굉장히 재미를 느끼고 환희를 느끼다가
원기 89년에 출가 서원을 세우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90년부터 2년동안 안암교당에서 간사 생활을 하고
지금은 원불교대학원대학교 2학년에 진학하고 올해 12월에 출가식을 한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한 달 동안 원불교 총부에 있는 박물관에서 체험을 하고 왔는데
하루는 관장님께서 영산에 다녀오시더니 말씀하시기를
출가여행으로 온 안암교당 청년들에게 당신이 기운이 빼앗길 정도로 집중해 주었다고 칭찬을 많이 하셨다.
덤으로 나도 안암교당 출신으로서 좋은 인상을 심어드리고 왔다.
내가 원불교를 만나서 교법으로 재미를 느끼고 살면서 나도 대종사님을 어느 정도는 모시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김제원 교무님께서 대종사님 말씀을 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시더라.
나는 그저 기쁘고 대단하신 분이다 라고 생각하며 살 뿐이었는데
교무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곰곰이 하였는데,
그 때 들었던 생각은 대종사님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그런 눈물은 쉽게 흘리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나도 대종사님을 진정으로 모시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 교전도 보고 마음으로도 모셨었다. 잘 안됐었다.
다행히 출가하게 되어 영산에서 2년 동안 살게 되었는데 때는 이때라고 생각하였다.
영산은 탄생하셔서 법인 기도 하시기 전까지 10상 중에 7가지 상이 어려 있는 곳이다.
그래서 2년동안 대종사님을 많이 찾아다녔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런데 감격의 눈물이 아닌 억울한 눈물이죠.
나는 대종사님을 이렇게 찾아다니는데 왜 대종사님은 나한테 안오십니까 그런 억울한 눈물.
그래도 내가 이 회상에 있는 한 언젠가 꼭 만나게 될 것이다 생각을 하고,
익산에서 근무를 하던 중에 그런 마음이 있었던 인연인지 박물관에서 실습을 나면서,
어느 정도 마음 속에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박물관 2층에는 소태산실이 있다. 거기 유품은 대종사님이 실제 쓰셨던 것들이다.
나중에 가시면 유심히 보시기 바란다. 대종사님 정신이 많이 어려있다.
일례로 경상이 있다. 변산에서 초기 교전을 편찬하실 때, 열반하시기 전 불교정전을 편찬하실 때도 그 경상을 사용하셨다고 한다.
내가 실습하며 그 경상을 만져볼 수 있었다.
대종사님께서 영원한 세상을 일체 생령을 위해 교법을 짜 주신 것이 어떤 기운이실까 하는 마음이 아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때부터 마음이 많이 꿈틀거리고, 대종사님을 옆에서 모시고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하루는 대종사님-특수수장고에 들어갔는데, 어떤 유물이 들어있는 사물함을 꺼내보라고 하셨다.
나는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고 영광스런 마음으로 조심히 꺼내서 열어보니,
대종사님의 캐시미어로 된 겨울 외투가 보존처리 되어 있었다.
관장님 몰래 살짝 만져보았다.
내가 그것을 방에 있는 한 교우에게 대종사님 입으시던 옷을 만져봤다고 자랑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나는 입어봤는데 하더라.
부럽기도 하고 만약 내가 입어봤으면 나는 아마 기절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실습을 나면서 대종경을 봐도 ‘아, 이런 말씀 이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내가 그 법문 상황 속에 들어가는 감정이입이 되더라.
일례로 신성품에 보면 똥이라도 먹겠는가 했을 때 똥을 가져왔을 때 그 신심이 어떤 것이었겠는가.
죽어도 좋으리라는 기쁜 마음을 가지고 똥을 가지고 오시지 않았을까.
내가 때로는 제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대종사님의 제자가 되어보기도 했다.
상황에서 내가 그 속에 주인공으로 들어가 보는 그러한 법문을 읽는 시간이 되었다.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보면 내 마음 속에 끊일 것 같지 않은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쁨 계속 이어가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것을 공부표준으로 잡고
교무님 흘리시던 눈물처럼 대종사님을 그리워하고 생각하며 진정한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그렇게 되기까지 열심히 할 것이구요.
내가 예화 하나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대종사님이 팔타원 황정신행님을 말씀해 주셨다. 어떻게 보면 우리 회상의 공덕주이시다.
특히 물질적으로 대종사님께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이다.
하루는 대종사님께서 법복과 양복이 필요한 때가 되셨다.
그래서 팔타원님에게 그것을 부탁했더니 팔타원님께서 흔쾌히 해 드리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서 대종사님께서 서울에 가셨을 때 양장점에 가셨다.
그 때 대종사님이 옷을 고르시는데 법복을 30벌, 양복을 30벌 골라서 대 중 소로 나누어서 사겠다고 하셨다.
조금 놀라셨을지 몰라도 팔타원님이 흔쾌히 사주셨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대종사님께서 가셔서 즉흥적으로 3,40벌을 사신 것이 아니라
미리 총부에 대 중 소로 캐비넷을 만들어 놓고 갔다 오셨던 것이다.
옷감을 만드실 때도 재단을 맡겨놓고 그만두실 거 같은 데 뒤에 딱 서셔서 ‘저건 이렇게’ 식으로 다 지시를 하셨다고 한다.
이러한 예화를 듣고 제가 교무님이 많이 떠올랐다. 대종사님 교법을 생활 속에서 가장 제대로 실천하신 분은 누구실까.
누구 실 것 같으신가? 대종사님이시겠죠.
대종사님 법을 생활 속에서 가장 잘 실천하신 분..
그렇다면 우리는 대종사님을 모시고 그런 분의 교법을 받들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간다면
내 마음과 몸과 행동이 대종사님과 닮아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교무님의 서원, 열정, 모든 것들이 대종사님을 모시고 흠모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당신의 생활 모습에서도 같은 모습이 나오는 게 아닐까.
늘 공경하지만 더 교무님이 공경스럽고 더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교무님을 추천교무님으로 길이길이 모시게 되었다는 것이 참 기뻤다.
나도 항상 마음속에 대종사님을 모시고 흠모하려고 닮아가려 노력한다면
내가 굳이 닮아가려고 하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대종사님을 모실 수 있겠다.
함께 대종사님 닮아가는 모습으로 공부하는 여러분들 되셨으면 좋겠다.
김제원 교무님 설법
반갑습니다.
부처님을 알아서 부처님의 마음을 잘 지키고 그 삶을 살아가려는 것. 그
것이 가장 지혜가 되는 삶, 행복한 삶, 영생의 복록이 되는 삶이다.
우리는 항상 그것을 염두에 두고 그 방편으로 화합, 단결이나 이러한 것들을 생각을 해 봐야겠다.
오늘 내가 길게 하면 엠티를 늦게 갈 것이고, 짧게 하면 빨리 갈 것이다.
내가 출가하기 전에 출가를 결정하기 며칠 전에 느꼈던 마음을 말씀드리고 싶다.
내가 군대에서 전서를 여섯 번 보고, 수행의 체험도 있었지만
법문을 어떤 교무님이 하시는데 앉아서 듣고 있는데 가슴에서 폭포수 같은 눈물, 기쁨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또 선을 하다가 느끼는 편안한 가운데 충만하면서 한가하면서 넉넉한,
내가 없어져버리는 그 마음, 그 기쁨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을 멀리하고 엠티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여러분들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가 느낀 그 맛을 이 중에는 독경 끝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고
때로는 기도 하면서, 성가 부르며, 내가 누군가에게 법문 전해드리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수도 있고, 한방 봉사하면서,
단원들을 챙기면서,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예뻐하는 마음이 좋지,
일반 사회에서 느끼는 술을 먹어서 느끼는 기쁨, 나이트 간 그 감각적 재미, 흐릿한 정신과는 다를 것이다.
우리의 기쁨은 감각적 기쁨이 아니다. 정신이 오롯해지고 초롱초롱해지는 느낌이다.
여러분 그러한 영혼을 가지고 싶어서 여기에 온 것 아닌가.
헌배했을 때 땀을 흘리면서도 시원한 마음, 법문을 들을 때의 재미. 우리 그런 재미로 살자.
사은을 배우고 지극히 당연한 것을 나만 받았냐 같이 받았지 하는 원망으로 살다가
정말로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이 없다면 일순간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우리가 사은을 공부하다 보면 자력이 없으면 지자가 가까이 되지 않는다.
자력이 있어 지자를 가까이 하고, 타자녀교육도 하고, 공도자도 받들고, 장학사업도 하려하고,
나도 공도자가 되어야겠다 생각하는 것. 그러면서 이 사회가 평등사회, 낙원세계로 가는데 참여해야겠다.
수행을 하면서 느끼는 재미. 여러분 그거 느끼려 하는 거 아닌가.
죽어서 관에서 누웠을 때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관에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한번 쯤 생각해 봐야 한다.
일반 범부, 일반인들처럼 유형의 재미, 감성적인 것만 쫓아갈 것인가.
내가 그것을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나만 바라보면서 살 것인가. 내 주위도 바라보고, 나 아닌 나도 바라고, 참 나도 바라보고. 이러한 재미가 있는 데.
엠티를 가도, 공적인 모임, 그런 것을 하기 위한 화합 단결의 장으로서의 엠티인 것이다.
오늘 내가 퀴즈를 하나 내 보겠다.
이 세상에 현존하는 것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이 먹은 나무는 몇 살이나 먹었을까.
현존 나이 2100년 된 것이었다. 캘리포니아에 지금 있다.
메타세콰이어 나무를 찍은 사진을 보았다. 열 몇명이 서 있는데도 그보다도 더 넓었다.
그리고 가장 키가 큰 나무는 몇 미터였을까.
143미터였다고 한다. 현존은 111미터이다.
나무 하나가 몇 톤일까.
2000톤, 성냥개비를 50억 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 나무 껍질 두께가 61cm이다.
내가 왜 이 말을 했느냐.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인도에 여름에 가야 하니 인도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대 이야기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아란존자와 탁발을 하러 나가셨다.
인연을 짓는 것이다.
아란존자는 누구?
아란존자는 다문제일, 아란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시다.
사촌동생의 형제가 있다.
아란존자와 아란존자 형.
조달이다. 석가모니를 가장 괴롭히신 분이다.
사촌이다. 인연은 가까이 있는 것이다.
아란존자는 25년간을 시자로 하였다. 아주 총명하여 기억력이 우리 호겸이같다.
처음에는 부처님의 법을 가섭존자가 법을 이었잖아요.
이 분이 가섭 법문을 듣고 툭 터져내는데 그동안 들었던 법문을 엄청 했다고 한다.
그 중에 아란이 가장 잘 생겼다. 아란은 30상까지 구족했다고 한다. 아란 때문에 여자들과 복잡한 일도 많았다 한다.
아란과 시중에 가고 계셨다. 어떤 동네에 탁발을 하러 가셨는데, 그 동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을 반대하는 동네였다.
그러므로 밥을 주겠는가. 밥을 안준다.
어떤 변두리에 갔더니 아주 못생긴 노파 할머니가 밥을 하려고 곡식을 씻고 남은 뜨물을 버리려고 나왔다.
그랬더니 아란도 잘 생겼지 석가모니도 잘 생긴 것이다. 그 광채에 너무나 놀랐다.
그래서 쳐다보니 부처님께서 들고 계신 바루가 텅 비어있었다.
인도에서는 맨 먼저 밥을 해다 스님에게 준다. 우리도 가을에 추수하면 스님이나 절에 가져다 준다.
이 노파가 그것을 보고 저렇게 훌륭한 양반을 어찌해서 아무도 밥을 올리지 않았냐 하면서
올리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간절하지만 너무나 가난하여 드릴 것이 없어서 내가 밉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그 노인 옆에 가셔서 그대는 참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가지고 있구나,
그 버리려고 하는 뜨물을 나를 주라고 하였다.
그러니 노파가 그것은 말이나 소가 먹는 것이지 어찌 사람이 먹겠냐고 빼앗으니
부처님이 그것을 도로 빼앗아 바루에 담아 후루룩 먹고는 웃고 지나갔다.
그랬더니 아란존자가 왜 웃느냐가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뜨물이 맛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니 부처님은 ‘아란아 내가 뜬물이 맛있어서 웃는 게 아니고, 노파가 더러워서 웃는 것도 아니고
그 노파의 마음이 순진하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 내가 너무 기뻐서 웃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마디를 하시는데
‘그 노파는 반드시 불국정토에 날 것이다.’ 하는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뒤에 따라가던 바라문(브라만)이 들었다.
(브라만 - 크샤트리아 - 바이샤 - 수드라
승려 - 무사 - 평민 - 노예)
그래서 그 브라만. 승려죠. 그 사람이 딱 듣고서는
“그런 더러운 뜬물을 줬다 서 부처가 된다고 하는 것은 그대는 거짓말이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나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노파는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누구든 그런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바라문이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묻는다.
그대는 니구르다수 나무를 아는가.
그 나무가 크면 500의 마차가 들어간다. 그 나무의 씨는 겨자씨보다 작다.
그대는 그 나무의 씨가 작아서 니구르다수 나무가 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 노파가 부처가 된다는 것도 그러한 의미와 같다.
아무리 적은 행동이라도 그것이 좋은 행동이라면 쌓이고 쌓여서 훌륭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법문을 하셨다.
자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 분은 아주 못생기고 더러운 노파이다.
외형적인 것은 가난하고 못났다.
그럼에도 그 사람의 마음은 착하고 깨끗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데 바라문은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한 것이다.
현재 외형적으로 가난하고 못나고 어떻다 할지라도,
우리의 씨에, 겨자씨보다 작은 그 씨가 엄청나게 큰 나무가 되듯이, 우리의 마음의 씨도 이미 다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발아되려면 서원과 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무서운 힘이 나온다.
작은 씨가 엄청나게 큰 나무가 되듯이,
우리의 마음에 활활 타오르는 새 마음이 나면, 얼마든지 원불교를 늦게 만났어도 현재 어떤 상황이 좋지 않아도 될 수 있다.
그것이 진리의 유무자리이다.
대소유무의 유무자리는 변화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유무 인과이다.
얼마든지 착한 마음으로 선을 쌓고 쌓다보면 변화된다.
중생이 불보살로 될 수 있고, 보통급이 항마 출가 여래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서원에 바탕한 신분의성이다.
내가 까페에 글을 올렸다.
홍신자 씨가 쓴 글이다.
나는 그 글을 보면서 정말 감동을 했다.
야, 바로 이것이다
이 맛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이렇게 많다.
내가 감동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나에게 감동을 해야 사은이 나를 도와준다.
홍신자 씨는 매우 열린 사람이다. 껍데기를 다 벗어던진 사람이다. 깨어있는 사람이다.
100%의 삶이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전체를 던지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에 승부를 건다.
내 삶 전체가 용광로와 같은 활활 타오르는 열정적인 삶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세워서 확실히 된다는 신념하에 분발심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이 뭐라 했는가.
무엇이든지 적당히 하면 안된다 하였다.
밥을 먹어도 적당히 먹어서 안된다. 소식하라는 말은 밥 먹으면서도 마음공부하라는 것이다.
수행에 도움이 된다. 먹거리 문화, 지구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조그만 밥알 하나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직장을 선택해도 적당히 남의 눈에 맞게, 결혼도 때 되니깐 하고 이래서는 진짜 나를 찾을 수 없다.
적당히, 라는 말 안에는 간절히 원한다는 영혼의 울림이 빠진 것이다.
영혼의 울림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100% 자신을 열어놓는 감각을 익히고 나면 세상은 비슷한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가 우주의 기운을 끌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노래에 100%의 열정을 쏟아 넣는 사람은 다른 분야에도 어렵지 않게 접근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글을 잘 쓰기도 한다. 왜, 원리를 알고 체험이 있고 된다는 것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대상을 향해 몰입하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다.
여러분 선할 때 헌배할 때 몰입하는가. 밥 먹을 때 공부할 때 일심으로 하는가.
이것은 100% 깨어 있는 상태를 경험한 것이다.
바로 총총한 것이다.
총총이란, 우리 공부의 핵심이다.
성성이란 말과 같다. 정신 차리는 것과 같다.
이것은 선천적일수도 있지만 본인의 의지에 맞게 원하는 만큼 깨우는 것이다.
영혼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불가능하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서 에고가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나. 비춰지는 나.
내가 광주에서 묘한 것을 보았다.
어떤 아가씨가 오통바이를 타고 가고 있었다.
오토바이 기사가 급하게 커브를 틀면서 이 아가씨가 떨어졌는데 아픈데도 불구하고 바로 주위를 살펴보는 것이다.
내가 쑥스러운 장면을 누가 보는가 안 보는가 하는 것이 관심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벌써 의식적이다.
우리가 삶을 살 때, 너무 주위를 인식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천상 천하, 주위를 의식한 작은 나가 아니다.
전체, 주위와 함께한 나이다. 에고가 만들어낸 관념인 것이다.
나이, 가정, 성별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쉽지 않을 뿐이다.
내가 오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베트공에게 미군이 잡혔다고 한다.
그 미군이 세 부류가 있었다.
한 부류는 살아 날거야, 풀려 날거야 쉽게 생각하는
한 부류는 난 죽었다.
한 부류는 쉽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나는 성공할 것이라고 한 사람이다.
앞의 두 부류는 다 죽었다.
너무 부정적인 사람은 알아서 죽는다. 죽이기 전에 죽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쉽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는 것이다.
여러분, 예를 간단히 들지만 내가 직장이 없다, 돈이 없다, 건강이 없다, 돈이 없다 한 사람도 내가 쉽게만 생각해볼 것인가.
아니면 내가 쉽지 않은 현대사회이지만 반드시 해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나에게 적용해 보자.
이것 저것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변명은 어떤 것을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다.
변명 합리화 조건.
누가 성공했다면 그 사람은 부잣집 아들이거나 인물이 좋아서, 서울대 나와서? 아니면 그 사람은 부모를 잘 만나서?
온갖 조건을 갖다댄다. 하지만 그런 조건 아닌 사람 많다.
여러분 김규환 명장이라고 들어봤어요? 옛날 대우중공업에 있었다.
학교도 거의 못 나온 사람이지만, 우리 나라에서 발명 제일 많이 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나중엔 그걸로 교수도 되었다.
예전 대우중공업이면 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연구하고 공부한 사람들도 많았다.
특허 발명만 해도 몇십 개를 낸 사람이다. 그 사람이 조건은 매우 안 좋다. 인물도 별로 안 좋다.
이번에 명인명사에 모셔볼려고 했는데 도저히 연락처를 알 수가 없어서 못 모셨다.
이번에 화요일에 오실 이종규 님도 마산상고 졸업한 사람이다.
중학교 올라갈 때도 엄마가 돈이 없어서 일을 시켰던 사람이다.
마산상고 나온 사람이 롯데우유, 롯데삼강, 부산롯데호텔 사장까지 역임하셨다.
여러분들 롯데그룹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도 어려운데, 고졸 출신으로 군대 갔다와서 가장 말단 경리부에 들어간 사람이 사장까지 지냈다.
이 분은 종교가 없지만 적어도 항마위인 것 같다. 내가 인정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학벌 때문인가? 그 분은 100%로 산 분이다. 책 제목이 “나는 하루하루를 불태웠다”라는 책이다.
하루 하루를 완전연소 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홍신자 씨와 똑같은 소리 아닌가.
기독교를 전환한 계기를 가져온 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다.
불교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조사로서 불법을 중흥시킨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용수보살이다.
용수보살은 깊이가 아주 대단하다. 출가 전에는 아주 꼴통이었다.
그러나 서가모니 부처님의 법을 만나고 출가 후에는 아주 뛰어난 조사가 되었다.
성 어거스틴 아세요? 참회록, 출가 전에는 아주 못된 짓을 많이 했지만, 이름 앞에 ‘성(聖’)자가 들어간다.
원불교도 이런 분들이 많아야 한다. 원불교에서만 잘 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對) 사회적으로 원불교의 교법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원불교의 교법을 활용한 사람이다.
결국 묶어서 말하면 신분의성으로 100% 최대한 정성을 다한 사람이다.
그러면 나는 이제 만났는데 어떻게 100% 하겠는가 물어볼 수 있다.
자기 처지에 맞게 하라는 것이다. 보통급은 거기에 맞게 100%, 항마위는 그에 맞게 100%이다.
그러면 ‘내가 나에게는 이런 능력이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살 뻔 했구나’ 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기쁨을 가질 수 있다. 여러분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대종사님이나 서가모니부처님이 뭐라고 했어요? 본래 니가 부처다. 그것을 본자구족이라고 한다.
본래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우
리는 죄인인데 닦고 닦아서 부처가 된 것이 아니다. 이미 갖춰져있는 것을 가려져 있는데 그냥 밝혀버리면 된다.
유념공부를 통해서 습관을 들여서 바꾸면 된다.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신분의성으로 삼학인 것이다.
삼학만 해도 부처님 되지만 사은에 바탕한, 감사생활에 바탕한, 신앙에 바탕한 유념공부인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내가 소식을 한다 하여도 100% 최대한 해 보라. 소식 하라는 것이 그냥 하라는 것이 아니다.
헌배, 사경, 선을 해도 오롯하게 했는가 생각해 보라.
도학 과학 시험공부 신분의성으로 제대로 해봐라. 내가 이런 능력이 있었구나 하고 체험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헌배를 하는데 ‘어떻게 500배를 해요’ 걱정한다.
같이하면 할 수 있다. 봉은사 주지는 하루에 1000배씩 1000일동안 했다.
혼자서 하루도 안 빼먹고.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같이 하는, 중간에 쉬어가면서 하는 500배를 못 한다는 것은 그런 마음으로는
헌배를 떠나서 이 생에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결국 스스로도 만족 못 할 것이다.
내가 중학교 때 그런 경험이 있다.
우연히 저녁마다 책을 2시간씩 읽고 잤다. 내가 완전히 촌에서 자라서 원불교 대종사님 만나서 용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아버지가 책을 15권짜리 위인전기 전집을 사오신 것이다.
내가 그것을 저녁마다 2시간씩 읽고 아예 외워볼 정도로 보았다.
또 하나는 학교 끝나고 저녁에 공부를 하는데 아주 큰 집에 나 혼자 살았었다.
혼자서 공부하니 편안하고 너무 좋았다. 내가 너무 예뻐졌었다.
아마 여러분들 그럴 것이다.
지금 현재 환경 여건 등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한번 쯤은 염불 좌선하다 편안한 적 있을 것이고, 내가 생각해도 예쁘다고 일심 들어서 해본 적도 있을 것이다.
원불교학과 4학년 때 일차고시.
내가 성격이 모나서 이해를 했으면 하지 외우는 것을 싫어한다.
나의 공부방식, 이해하지 않고 외우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원불교의 까닭있는 공부이며, 모르면서는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드리는가.
나는 고시 보기 전에 그깟것 내가 못 붙겠냐 하는 생각을 하고 훈련도 나고 산도 갔다 와서 고시 2주일 전에 나타났다.
그리고 나서 옛날 고시 출제 문제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봤더니 문제가 인도품에 가정을 다스리는 법 12가지, 이 원상을 각하면 괄호, 괄호, 괄호 그렇게 나왔다.
원불교 신앙과 수행에 대해 써라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잘못하면 떨어질 것 같았다.
일주일간 잠이 안 왔다. 8킬로그램이 빠졌다.
교헌도 다 외워야 했다.
그 때 느낀 것. 일주일간 한 공부가 일년동안 한 공부보다 양이 많다.
완전한 집중이다. 잠도 안오고 밥먹는 시간도 아까운 것이다.
내가 했던 서머리 노트가 있다. 나같이 멍청한 사람도 다 외워져 버리더라.
내가 그 때 무엇을 느꼈는가.
그동안 이렇게 공부를 별로 안 해 봤구나
100% 간절히 원하는 공부를 안해봤구나 생각했다.
한국사람들이 40시간 하면서 10시간은 헛 생각한다고 한다.
좌선도 10번 하면 1번은 헛 생각한다. 그런데 발등에 불 떨어지면 무섭게 하는 것이다.
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왜 드리는가.
실패를 경험하면서 합리화하는 그 마음,
여러분 세대는 그것이 훨씬 더 유망하다. 여러분은 40 넘은 사람이 나 빼고는 없다.
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신분의성으로 하면 누구나, 내가 이렇게 예쁘구나 내 능력이 이렇게 있었구나 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헌배를 하면서 내가 500배 1000배를 어떻게 하겠는가 생각할 수 있다.
보문사 주지는 하루에 1000배씩 하루도 안 빼놓고 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년동안 하는지 모른다.
같이 하면서 하는 500배도 못해서는 안된다.
그런 마음으로는 헌배를 떠나서, 이 생에 마음을 바꾸어먹지 않고는 스스로가 예쁘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 엠티 후 바로 후기를 올려주시는 은전부처님 감사해요 ^^
정성스럽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