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전체 경찰관의 4.8%에 해당하는 4천500여명의 여경이 생활안전, 교통, 정보, 수사, 형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시작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여경의 시초는 간부 16명과 여경 1기생 64명으로 출발했던 미 군정당국 경무부 여자경찰국으로부터 시작된다.
초대 국장은 여성 교육자였던 고봉경(납북 후 행적 불명) 여사로, 당시 계급은 감찰관(현재 경정급에 해당)이었다.
여경은 창설 이듬해인 1947년 정원이 500명으로 늘면서 일선 경찰서 곳곳에 배치됐고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에는 `여자경찰서'까지 설치되는 등 한동안 각광을 받았다.
당시 짙은 자주색 치마와 점퍼를 제복으로 입은 여경들은 부녀자 및 청소년 범죄 수사, 풍기문란 단속, 성매매여성 선도, 미장원 영업 감사, 가정문제 해결 등을 맡았으며, 여경 행진은 호기심에 몰려든 시민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
한동안 각광을 받던 여경 조직은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11월 치안국 여자경찰과로, 1950년 3월 치안국 보안과 여자경찰계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1957년에 여자경찰서 폐지에 이어 1961년 별도 여경 조직이 전면 폐지되면서 전원이 일반 편제로 흡수됐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는 한동안 여경 존폐 논란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동안 침체를 겪던 경찰 내 여성 파워는 1972년 여성 순경 공채가 정식 도입된 것을 계기로 되살아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부터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성화되면서 여경의 위상도 점점 높아졌다.
첫 여성 경무관인 김인옥 울산지방경찰청 차장과 경찰청 여성ㆍ청소년과장인 홍태옥 총경이 여성 순경 공채 1기 동기생이다.
경찰 초급간부 양성기관인 경찰대에 1989년부터 여성의 입학이 허용되고 2000년부터는 여성 경찰간부후보생이 배출됨에 따라 경위(일선 경찰서 반장급) 이상 간부로 경찰관 생활을 시작하는 여성들도 드물지 않게 됐다.
작년에는 사법시험 합격자 특채를 통해 경정(일선 경찰서 과장급)으로 경찰에 투신하는 여성도 나타났다.
여성경찰관의 역할은 한동안 생활안전과 교통 등 특정 영역에 집중돼 있었으나 남성 위주로 운영되던 수사ㆍ형사 분야에도 여성경찰관의 수가 늘어나 현재 800명에 육박하고 있다.
김강자 전 총경이 1998년 여성 최초로 총경으로 승진하고 2000년 서울 종암경찰서장을 맡았던 것도 날이 갈 수록 커지는 여경 파워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1999년 여경기동대가 생기고 이듬해에 여경특공대가 창설됨으로써 금녀(禁女)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던 진압 및 특공 분야에도 여성이 진출하게 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순경 공채에서 매년 20∼30%의 인원을 여성으로 뽑아 2014년에는 여경이 전체 경찰관의 10%인 1만여명 수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