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웅 전 충청 관찰사 시절 쓴 근엄한 서체
천등산 봉정사 강직한 성품 드러난 1913년 작품
◇신원사 대웅전 편액
◇봉정사 만세루 편액
동농 김가진(東農 金嘉鎭/ 1846∼1922)은 1877년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감찰, 동부승지, 주일본판사대신, 안동대도호부부사, 전우국총판, 공조판서, 농상공부대신, 황해도관찰사, 중추원 의장, 충청도관찰사, 규장각제학 등의 벼슬을 지냈다. 또한 그는 1909년 대한협회 회장이 되어 친일단체인 일진회를 성토했고, 비밀결사인 대동단의 총재로 추대돼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했으며, 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으로도 활약했다.
동농은 이처럼 조선 말기로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행정 요직을 두루 지낸 문신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독립에 헌신한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16세에 이미 경사자집(經史子集)을 모두 배워 한학에 밝았고, 진당(晉唐) 이후 제명가의 필의를 체득해 당대 명필로도 이름이 높았다. 사찰에 남아 있는 그의 글씨로는 공주 신원사 <대웅전>, 문경 김룡사 <운달산김룡사>, 안동 봉정사 <천등산봉정사>, <덕휘루>, 부산 범어사 <금정선원> 편액 등이 대표적이다.
공주 신원사 <대웅전> 편액에는 액판 좌측에 ‘동농, 김가진인(東農, 金嘉鎭印)’이라는 2과의 도서가 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1876년 보연 화상(普延 和尙)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하는데 편액의 글씨는 1906년 동농이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해 있던 시기쯤에 쓴 것으로 보인다. 편액의 글씨는 미불과 동기창(董其昌)의 글씨를 익혀 쓴 해서로 서품이 근정(謹整)하며, 변화보다는 후실한 맛이 나는 글씨이다.
안동 봉정사 만세루 앞쪽에 걸려 있는 <천등산봉정사> 편액에는 액판 우측에 ‘백운동리인(白雲洞裏人)’, 좌측에 ‘동농노어서(東農老漁書)’라는 관지가 있다. 이 편액은 함께 쓴 것으로 보이는 만세루 안쪽의 <덕휘루> 편액에 ‘시년육십유팔(時年六十有八)’이라는 도서와 ‘계축중하 김가진(癸丑中夏 金嘉鎭)’이라는 관지가 있어 1913년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편액의 글씨는 그의 다른 글씨와 마찬가지로 서품이 강직(剛直)하고 근정(謹整)함이 드러나는 글씨이다.
안병인<대한불교진흥원>
첫댓글 소녀도 가 보긴 했지만 그 땐 사전정보가 부족해서 자세히 못 보았네요 다시가면 잘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서각인이라 좋은 정보로써 참고하겠습니다. 늘 좋은 정보를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깊은 밤! 좋은 꿈 꾸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