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할미산에 슬픔이
늦가을인 요즈음엔 6시도 어둑합니다. 허리가 굽은 모양의 할미산 자락 숲속의 아슴푸레 한 여명은 화기애애한 사랑으로 채워 활기찹니다. 어디서 어느 곳으로 가다 머무는지 가을 철새의 아침 노래도 맑습니다.
매일 아침 83세 동갑나기 건강한 할아버지 세 분이 나무의자에 의좋게 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김없이 그 시간에 나와서 서예 이야기며 바둑 마작 이야기도 가끔 들립니다. 직장생활 추억을 되살리는 이야기는 더 신이 납니다. 나는 어른들의 방담을 부담 없이 들으며 가벼운 운동을 합니다. 타이어에 눕기도 하고 철봉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팔 굽혔다 펴기, 무릎 굽혔다 펴기, 허리 돌리기 등 기분대로 움직입니다.
운동하다가 이따금씩 3총사 할아버지들 세상이야기에 끼어들기도 합니다. 나도 지하철을 공짜로 이용하는 지공도사에 이르렀지만 어른들 앞에서는 젊은이로 통합니다. 세분 외에 국방부장관을 역임한 윤석민님도 스스럼없이 그룹에 끼어들어 담론하고 금융계 고위직을 지냈다는 분도 합류하지만 분위기가 흐려진 일은 없습니다. 옆쪽에서는 할머니 급 아주머니(65-70대 초반)가 구령을 붙이며 체조를 하는데 5명 내외가 동참 합니다. 우리들 아침 산책 가족은 이처럼 건강을 챙기며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몇 달 전부터 70대 할머니 급 아줌마 한 분이 합류 했습니다. 타고난 체질인지 몸 관리를 잘 했는지 할머니라 부르기엔 날씬한 몸매가 곧고 탄력 있어 보여 아줌마라 해야 제격입니다. 내보다 여섯 살 위 이므로 나는 누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큰누님이 살아계시면 82세니까 흠 잡힐 호칭은 아닌 듯싶습니다. 누님은 참으로 쾌활하고 봉사정신도 몸에 배어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테니스 선수로 국가체전에 참가 경력이 있답니다. 유명한 엄앵란 배우와 동기라며 우리 영감이 어설픈 정치만 안했더라면… 말끝을 흐립니다. 운동기구와 의자를 걸레로 닦고 그 걸레를 집에 가서 빨아 옵니다. 어쩌면 맘이 저리 고울 수 있을까요? 남녀 불문 누구하고든 먼저 인사하고 잘 어울리는데 단 한 분의 할머니는 미워합니다. 하얀 머리칼에 청각장애가 있는 할머니는 교장을 지냈다 들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전교조를 빨갱이라 몰아치는 걸 듣고 섬뜩 했습니다. 바로 그 분이 누님이 미워하는 할머니입니다.
할미산에는 약수가 곳곳에 넉넉하고 밤나무도 많습니다. 밤송이가 자궁을 열고 알밤을 쏟아 낼 때입니다. 한 왕밤나무에서 알이 떨어지는 곳에 향기 찐한 옥잠화 꽃밭이 있습니다. 그런데 산을 찾은 분들이 알밤을 줍느라 옥잠화를 휘젓거나 짓밟아 심한 상체기를 냈습니다. 그러자 공원을 관리하는 구청에서 줄을 치고 출입 말라는 팻말을 세웠습니다. 그런대도 교장선생님이 밤을 줍기 위해 옥잠화꽃밭에 들어가자 누님이 말렸습니다. 그런데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 말라고 퉁명스런 홍두깨가 날아온 것입니다. 허참, 교육자라 자칭하면서 모범을 보여야지 뭐 저래. 저런 교장 때문에 전교조가 생긴 거지하면서 혀를 찼습니다. 남이하면 불륜이요 내가하면 낭만이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내까지 가담할 사안은 아닌 듯싶었습니다.
활달하고 후덕한 누님에게도 슬프고 고달픈 사연이 있습니다.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자리에 누운 지 10년이 넘었답니다. 대소변 다 받아내고 좋아한 음식 챙겨드리고 극진히 보살펴도 좋아지지 않는다 했습니다. 건강은 건강 할 때 지켜야지 회복할 수 없는 병마에 붙잡히면 참으로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혼자만이 아닌 가족 모두를 불행의 장막에 가둘 수 있습니다. 오늘아침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누님은 더 슬픈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영감 병이 심화 되어 의식을 잃었고, 중환자실에서 목을 뚫어 가래를 뽑고 배를 뚫어 음식을 투입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누구나 죽는 것은 틀림없는데 가는 길이 저렇게 험난하니 참으로 안타깝다는 음성에는 평소의 활기가 자지러진 떨림 이었습니다. 나는 말대꾸가 어려웠습니다. 잠시 침묵 후 「누님을 배필로 두신 아저씨는 참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명운이라며 운명론을 펴 위로했습니다. 고혈압 때문에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뇌경색에 이르렀으니 이는 유전적 요인이 큰 것입니다. 유전은 누구든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운명이랄 수밖에 없습니다.
일생의 마감이 요절이나 갑자기 죽음이면 너무 슬플 수도 있고, 긴 세월 병상에 누우면 괴롭도록 힘들고 지칠 수도 있어 어느 쪽이든 고해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누님은 갈림길이 가까워지자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일반 병실로 옮기면 매달려 간병해야 하니 내일 아침부터 산책도 못나올 것 같다며 감긴 목소리입니다. 이따금 논란되는 안락사문제가 떠오릅니다. 현대의학으로 회생이 불가한 소위 식물인간으로 지칭되는 질병의 경우 가족에게 선택권이 허용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주장은 생명경시 에 속할까요?
누님이 어서 고해를 헤엄쳐 나와 활기를 되찾길 기원 합니다. 청아함을 안겨주던 가을철새의 가냘픈 소리가 설운 사연과 겹치니 가슴 저미는 슬픈 가락으로 울립니다. ㅎㅎㅎ
첫댓글 "人命은 在天" 이라 하늘이 하시는일 어찌하리요?
시와 수필을 융합한 것 같은 글이기에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작가의 누님의 운명이 제발 나의 것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노후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