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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禪軒 독서일기 2025년 11월 14일 금요일]
《『대동야승』 中 趙慶男 著 『續雜錄 속잡록』
대사간 박정(朴炡) 등의 상소》 (181)
<1628년 무진년 하 숭정 원년, 인조 6년>
○ 8월 대사간 박정(朴炡) 등의 상소는 다음과 같다.
천재(天災)가 거듭 닥치고 시변(時變)이 겹쳐 나타나며, 변방의 염려가 대단히 급하고 백성의 생명이 거의 죽게 되었으며, 위급한 존망의 화가 조석 간에 박두하였고 나라일이 궤열(潰裂)하고 있으나 구제할 만한 계책이 없으니 한탄스럽습니다. 재앙은 공연히 생기지 않는 법입니다. 지금 성상께서 위에 계시고 훌륭한 인재들이 조정에 가득하여 안으로는 풍류와 여색을 즐기는 일도 없고 밖으로는 총명을 가로막는 간계를 부리는 일도 없으며, 마음을 좀먹고 정사를 해치거나 나라를 병들게 하고 백성을 상하게 하는 일이 한두 가지도 거론할 만한 사단이 없는데, 하늘의 노여움과 백성의 원망이 날로 이런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저도 모르게 통곡이 나옵니다. 이것은 필연코 구제하기 어려운 증세와 나타나지 않는 병이 장부(贓腑)에 들어 있는 까닭이니, 분별없이 약을 쓸 것 같으면 단지 그 외부만이 치료될 뿐 그 병든 근본에는 전연 관계됨이 없고 마침내는 그 원기만 상하게 되어 그 사망을 재촉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 이 나라의 명맥은 마치 노인의 병과 같아서 이미 원기가 소모되어 온갖 처방이 효험이 없으니 그대로 천명(天命)을 기다려 보는 것만 못하다.’ 하나, 이 사이에는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무릇 사람의 신체는 오로지 기운과 피를 가지고 사는 것이고, 기운과 피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미 기운이 쇠약해지고 피가 다하면 원래 늙은이를 다시 젊어지게 하지는 못하지만,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이와 다르니 자고로 중흥(中興)한 인군은 누구든지 그 나라가 이미 쇠약한 뒤를 이어받아 혼란을 변화시켜 치세(治世)가 되게 하고, 위급을 돌이켜 평안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인군이 진작(振作)시키는 여하에 달려 있는데, 어찌하여 시대 운수에만 맡겨버리고 손을 묶어 놓고 죽기만 기다리기를 노인의 병과 같이하여야 할 것입니까.
신 등이 삼가 성상의 전교를 보건대, 말씀하시는 뜻이 간절하고 측은하여 비록 성탕(成湯)의 지극한 덕으로도 이보다 나을 것이 없으니, 참으로 이 마음을 미루어 그 실효를 극진히 하기를 힘쓰신다면 종묘사직과 생민의 복이겠습니다. 생각건대, 성상의 전교 가운데 10가지 사항이 반드시 모두 다 오늘날의 병폐는 아닙니다마는, 진실로 그중 한두 가지는 족히 재앙을 불러들이고 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신들의 우매한 의견으로는 이것보다도 더 큰 것이 있으니, 큰 뜻을 세우지 못하고 성의가 극진하지 못한 것은 전하의 몸에 절박한 병이온데 유독 여기에 대해서 언급하시지 아니한 것은 무슨 까닭이십니까.
신들이 전하께서 큰 뜻을 세우지 못하신 까닭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맹자》에 이르기를, “사람이 모두 다 요(堯)ㆍ순(舜)이 될 수 있다.” 하였는데, 끝내 되지 못하는 것은 대범하게 할 뜻이 없는 까닭입니다. 인군된 분이 참으로 요ㆍ순 되기에 뜻을 두어 모든 일에 맞게 하려고 하면, 요순 되기가 무엇이 어려울 것입니까. 한(漢)ㆍ당(唐) 이래로 정치를 잘한 인군들이 비록 우열(優劣)을 말할 수는 있습니다마는, 선비를 높여주고 도를 존중하여 뜻이 인(仁)과 의(義)에 있었던 까닭으로 다스림이 비록 옛날과 같지는 못하였어도 1대(代)를 변화시킬 수 있었고, 우리 왕조에 이르러서도 선묘(宣廟) 이전에는 유명한 유학자가 많이 배출되어 경연에 가득하여 인군을 요순의 길로 인도하려는 이가 대대로 그럴 만한 사람이 끊이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다 임금이 유학의 학술에 뜻을 두어 인재 양성을 솔선하였던 효과입니다. 때문에 백성의 풍속과 선비의 습관이 오늘과 비교할 바 아니었는데, 그 뒤부터 퇴락하고 쇠미해져서 날마다 저속한 곳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으며, 전번의 일 같은 것은 말하기도 부끄럽습니다.
지금 우리 성상께서 극도로 어지러운 뒤를 당하시어 윤리를 붙잡아 바르게 하고 다시 종사(宗社)를 안정시키시므로 조야에서는 눈을 씻고 반기며 민중들은 환호성을 올리지마는, 풍조의 오염이 너무 오래되었고 세속의 경향에 고질이 박혀 있으니 참으로 큰 뜻을 분발하여 정령(政令)을 일신하기를 창업 때와 같이 하지 아니하면 구습이 얽히고 설키어 실로 헤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성상께서는 탕무(湯武)와 같은 업적이 있지마는, 요순(堯舜)과 같은 뜻이 없으시기 때문에 탁연(卓然)하게 자립하지 못하고 솔선하여 시행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지점에 이미 확립된 바가 없기 때문에 시행하는 즈음을 당하여 점차 비근(卑近)한 데로 빠져들어가고 세세한 사무는 분명히 살피면서도 대체(大體)는 빠뜨리고 소홀히 하여 흠 있는 정사와 폐해가 되는 일이 겨우 한두 가지만 제거되었으니, 성상의 마음은 그만하면 족하다고 여기시나 백성은 그 혜택을 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 요순을 본받으려면 마땅히 조종(祖宗)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세운 초기에 시끄러운 혼란을 소제하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 때에 맞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백성을 구휼하는 뜻과 후세에 넘겨준 법이 근대와 같이 넘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런데 중엽의 풍성하던 시절이 되자 공봉(供奉)하는 경비가 점차로 많아지게 되어 공부(貢賦)의 징수가 증가하게 되었고 수십 년 이래 폐단이 점점 심하다가 폐조(廢朝)에 이르러서는 더할 수 없게 되었으니, 사물이 극도에 이르면 돌아오게 되는 것은 이세(理勢)의 당연한 법칙입니다. 오늘날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은 전국 초의 검약한 정치요, 근대의 사치와 풍성을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공안(貢案)의 남발이나 내수(內需)의 폐단이 건국 초에는 반드시 이렇지 아니하였고 귀족들이 어염세(魚鹽稅) 징수와 노전(蘆田) 이익의 독점도 건국 초에 있던 것이 아닌데 전하께서 잘못된 규례에 얽매어 경장(更張)하려고 하지 않으시니, 이것은 모두가 성지(聖志)가 확립되지 못하여 상례(常例)를 편히 여기고 예전대로만 지키려고 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내가 실덕(失德)한 것이 없으면, 비록 근대의 규모만 준수하더라도 족히 국민을 보호하고 나를 지킬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날에는 다행히도 전쟁의 변과 사상(死傷)의 참혹함이 없어서 나라의 형세와 백성의 힘도 오늘날과 같지 아니하였지마는 불행히도 이와같이 전례 없는 병화와 망극한 재이(災異)를 만났으니, 참으로 대단하게 노력하고 대단하게 변통하지 아니한다면 어떻게 이같이 치료하기 어려운 병을 구료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먼저 큰 뜻을 세우셔서 조금도 스스로 꺾이지 마시어 한편으로는 요순이 되기를 기약하고, 한편으로는 건국 초기의 법을 본받으십시오.
무엇을 성의가 극진하지 못하다고 하겠습니까. 《중용(中庸)》의 구경(九經)은 성인이 정치하는 큰 법인데 실행하기를 삼달덕(三達德)으로써 하고 관통하기를, 하나의 성(誠) 자로써 하였으니, 대개 비록 구경과 삼덕이 있더라도 성이 없으면 한갓 문구(文具)가 되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정신을 가다듬고 치적을 강구하신 지 6년인 이 마당에 어진 마음과 어진 소문이 현저하지 않은 것이 아니요 근심하는 부지런함과 두려워하는 생각이 깊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더 다스려지는 효과는 보이지 않고 나라 일은 날마다 틀어져 가기만 하니, 아마 전하의 성의가 극진하지 못한 바가 있어 만물을 감동시키지 못하여 그렇게 된 것인가 합니다. 백성을 걱정하심이 비록 간절하나 정령이 타당함을 잃는다면, 지극히 우매하면서도 신령한 인간을 어찌 능히 감화시킬 것입니까.
대신은 국가의 안위(安危)가 달린 바이니, 진실로 중하게 위임하지 아니하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전하께서 위임하시는 정성은 간절하였으나 묘당(廟堂)에서는 담당한 실적을 볼 수 없습니다. 대저 소소한 혐의를 피하지 아니하고 대체를 견지하기에 힘을 다하며, 문을 열어놓고 현자(賢者)를 맞아들여 사방의 물정을 수집하고 내 몸을 굽히고 선비를 높여주어 일시의 공론을 받아들여, 위로는 임금의 걱정을 풀어드리고 아래로는 백성의 소망을 위로해 주는 것이 대신 된 사람의 책임이어늘, 상례에만 얽매어 임금을 뵙는 때가 드물고 문부(文簿)만 번거로울 뿐 순모(詢謀)하는 일이 있음을 들어보지 못하였으니, 아마도 전하의 추성(推誠)이 극진하지 않고 대신도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인가 합니다. 곤직(閫職)은 국방을 맡은 자리입니다. 하물며 이렇게 전쟁을 하는 시절에는 참으로 추심(推心)하지 아니하면 힘을 얻게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전하께서 퇴곡(推轂)하시는 성의가 지극하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난에 임하여 적을 만나면 자신을 잊어버리는 절개를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병을 핑계하여 편하기를, 도모하고 혹은 일을 피하려는 흔적이 있으니, 순국(殉國)하는 의리가 과연 이러해야 할 것입니까.
성지(城池)가 든든하지 못하고 갑옷과 무기가 공급되지 못하며, 군량이 다 떨어지고 전투와 수비에 계책이 없는 것은 유독 변신(邊臣)만의 실책이 아니라 조정의 처분이 또한 정산(定算)이 없는 까닭입니다. 대저 부월(斧鉞)을 받아들고 정벌을 전담할 때에 중책을 부여하였으면 크고 작은 변방의 일을 모두 맡긴 다음에야 공효를 책임지울 수 있을 것인데, 지금에는 일마다 먼 상부에서 결정하고 좌우로 견제를 받기 때문에 위급한 날을 당해서도 오히려 스스로 갖추지 못하고, 명령을 내리는 데에 일정한 곳이 없으므로 군사들이 믿고 좇을 바가 없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다가 피로하게 되며 일을 그르친 신하도 핑계할 데를 얻게 되니, 아마 전하께서 위탁하는 성의가 극진하지 못하시고 신하도 또한 그 재지(才智)를 다하지 못한 것인가 합니다.
하늘이 경계를 보여 주었고 변괴가 여러 가지로 발생할 때에는 전후로 나쁜 징조가 그 징험이 있었으니 전하를 인애(仁愛)하는 바가 지극하거늘 전하께서 대응하심이 그 정성을 다하지 못하여 감동시키지 못하였고, 조심하는 방법도 거행하지 아니한 바 아니나 경천외인(敬天畏人)하는 실적이 그 공효를 나타내지 못하여 재이의 발생이 갈수록 더욱더 심하니 마음을 놀라게 하고 보기에도 참혹함이 전에 들어보기 드물던 일입니다. 신들이 진술한 두어 가지 폐단과 전하께서 전교하신 10가지 일의 실책은 모두 다 성심으로 하지 못한 소치이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그 자책하는 선단(善端)을 인하여 끊임없는 성심(誠心)을 확충하시어 한가히 있을 때에나 혼자 있는 곳에서도 항상 자기(自欺)하는 것으로써 경계를 삼고 호령을 발하고 명령을 내릴 적에는 반드시 진실하기로써 일을 삼으면 천덕(天德)과 왕도(王道)가 성기(成己)하고 성물(成物)함이 실지로 여기에 있을 것이니, 어찌 천(天)과 인(人)을 감동시키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성상의 전교 중에 10가지 일은 모두 다 말할 만한 사단이 있으니 오늘날 재이가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 그 일의 보응인지는 알 수없습니다마는, 작은 것이 쌓여 큰 것이 되고 미미한 것이 현저하게 되면 위로는 하늘의 노여움을 불러들이고 아래로는 백성의 원한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니, 화(和)를 상하고 괴(乖)를 이루어 근심을 끼침이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이 또한 어찌 10가지 일 밖에 있겠습니까. 알지 못하였으면 그만이려니와 알았으면 오직 마땅히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아서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아끼는 도리를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첨언] 대사간 박정(朴炡) 등이 참 어렵고 무거운 마음을 담아 상소를 올렸다. 이러한 상소가 올라오면 그것을 정성껏 읽고 국정에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인조와 조정 대신들은 상소에서 보듯이 그저 무사안일만 구하고 있다. 임진왜란을 이순신 한 사람이 명량해전, 임진왜란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넘겼다. 군사가 아무리 많아도 대장이 무능하면 필패하고, 군사가 적어도 대장이 유능하면 군사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워 승전할 수 있다. 광해군왕을 몰아내고 임금 자리에만 앉았지 인조는 제왕의 그릇이 못 되었다. 그 결과가 비참하고 부끄럽기 한량없는 삼전도 항복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 지도자가 강인하면 어떠한 국난이라도 극복했다. 반대로 아무리 큰 나라도 왕이 무능하고 지도층이 분열하면 멸망하고 말았다. 우리 역사에서도 고구려와 백제, 태봉과 후백제가 어떻게 해서 망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가장 가깝게는 조선이 어떻게 망하고, 왜 일제의 식민지가 됐는지를 알 수 있다. 왕조국가는 벌떼와 같다. 여왕벌 한 마리가 벌통을 지배하듯 왕 한 사람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온 나라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무능한 왕을 쫓아내려고 해도 봉건유교의 충효사상 때문에 반역으로 몰렸다. 그러나 벌떼는 여왕벌이 무능하면 일벌들이 쫓아내고 새 여왕벌을 기른다. 벌떼의 슬기보다 못한 왕조들은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인조반정은 성공했기 때문에 반역이 아니라 반정으로 역사에 남았다. 그럼 쫓아낸 광해군왕보다 더 양질의 군왕을 세워야 할 게 아닌가. 선조의 아들들 모두가 도토리 키재기였는가, 반정공신들이 선택한 인조가 결국 정묘, 병자호란을 초래하더니 기어코 굴욕의 항복을 하고 말았다. 고려 태조 왕건은 자기 힘으로 고려를 개창했다. 이성계는 정도전 등의 문신과 무신들에 업혀서 고려를 배신하고 조선을 건국하여 왕위에 올랐다. 왜구를 박멸한 공은 크지만, 이성계는 단순한 무골이었다. 5대를 국경 밖에서 여진족들과 함께 산 전주이씨 이성계를 왕으로 세운 정도전의 잘못이 크다. 전주이씨 왕들 때문에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식민지로 조선 백성들이 도마 위 어육이 됐다.
[한국고전종합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