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 영화의 대가라는 평판을 받고 있는 Mike Leigh 감독의 영화 'Another Year'를 보았다. 영화의 장면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사계절로 나누어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제목을 <세상의 모든 계절>이라고 번역했다. 이 영화를 만든 Mike Leigh 감독은 지금 67세다.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칠순이 다 된 노인네다. 그리고 영화 속 톰과 제리 부부는 60대 부부이고 메리는 60대를 바라보는 싱글녀이다. 그 밖에 인물들은 톰과 제리의 아들과 걸프렌드 그리고 조카 칼을 제외하면 모두 은퇴를 앞두거나 홀로 된 60대를 넘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인생의 힘든 한 고비를 넘겨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Another Year'를 <또 다른 세월> 정도로 제목을 달고 싶다. 사실주의 영화답게 흔히 있는 반전이나 아름다운 로망 따위는 하나도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결론 없는 이야기 처럼 느닷없이 끝나버린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식이다. 계절이 바뀌어 갈수록 나이든 사람들의 일상은 점점 외로움에 지쳐가고 혼자는 짊어질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다. 다만 톰과 제리의 부부만큼은 흔들림 없이 일상을 지켜나가며, 힘든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기도 한다. 겨울이 와도 세상이 힘들어져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Mike Leigh 감독은 이 톰과 제리 부부의 평범한 일상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삶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톰과 제리 부부의 삶 속에서 뭔가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영화관을 나서며 백작부인이 말했다. "젊어서는 외로움같은 것도 열정으로 이겨낼 수 있지만, 나이들어 가면 철학이 있어야 하는거 아냐?" 그렇지... 우리는 철학을 잊고 사는 세상을 살고 있을지도 몰라. 인생철학이랄까? 우리에게 중요한게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며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선택의 삶... 그걸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거지. 가치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에 대한 현명한 선택 같은 것을 말이다. 왜 Mike Leigh 감독은 사계절 내내 톰과 제리 부부가 가꾸는 텃밭을 보여주고, 그 부부가 가을에 거둔 빨간 토마토를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장면들을 보여 주었던 것일까? 가꾸는 삶과 나누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은유일까? 스크린이 꺼지면서 괴로웠던 마음이 복잡해지기만 했다. 'Another Year'는 나이 든 사람들이 보기에는 괴로운 영화이다. 등장인물들의 위기와 고뇌, 외로움과 고통들이 우리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철학으로 풀어내기에는 절박한 코 앞의 현실이기도 하고... 아무튼 현재 괴롭고 외로운 노년은 이 영화를 보지 않는게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너무나 사실적이기 때문에 앉아서 영화장면을 보고 있기가 힘들 것이다.
지질학자 톰과 심리상담사 제리는 60대 부부다. 톰과 제리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고, 소일거리 삼아 텃밭도 가꾸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낸다. 잘 정돈된 부엌, 꽤 오래 정성을 들였을 텃밭, 톰의 능숙한 요리솜씨와 눈빛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짐작하는 부부의 모습은 이름만큼이나 찰떡 궁합인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준다.
톰과 제리 부부, 그리고 인권변호사인 아들 조이와 애인이다. 서로 마음의 상처를 주고 받으며 파탄난 톰의 형인 로니의 가정과 대비된다. 톰은 곧잘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한다. 외로움에 시달리는 싱글녀 메리는 요리에 대한 흥미조차 없다. 요리를 한다는 것... 분명 음식을 만든다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란 걸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일상에 메리가 예기치 않은 문제를 일으킨다. 제리의 20년차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메리는 톰과 제리 그리고 부부의 아들인 조이와도 오랜 우정을 쌓아왔다. 사실 메리는 톰이나 제리와는 달리 불안하고 외롭고 불안정한 여자다. 60이 가까운 나이에 싱글이고 셋집에 살고 함께 갈 사람이 없어 휴가 계획도 세우지 못하는 메리는 미치도록 깊은 외로움과 패배감에 휩싸여있다.
아내와 사별한 톰의 형 로니와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 온 싱글녀 메리... 마치 조난당한 들짐승들처럼 자신들의 거처에서 달아나 톰과 제리의 집으로 피난을 온다. 가정이란 건 무엇인가를 생각나게 하는 장면들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옥도 될 수 있고 천국도 될 수 있는 것이 가정이란 공동체이다. 따뜻하게 마음과 육신을 쉬게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게 쉬운 노릇은 아니다.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려야 하는 불운한 여인 ‘메리’로 분한 여배우 레슬리 맨빌(Lesley Manville)은 불안정하고 상처 많은 여성의 내적인 심리 변화를 놀랄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세계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캐릭터와 완벽하게 교감을 이뤄내며 생애 최고의 연기를 펼친 그녀는 ‘고통과 절망이 서린 얼굴에서 때때로 희망의 빛이 교차되는 연기는 놀랍고 탁월하다’라는 호평을 얻으며 2010년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2010년 유럽영화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어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을 뿐 아니라 영국 가디언 선정 여배우 TOP 10, 전미 비평가 협회에서 선정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연기파 배우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60대 노장 감독, Mike Leigh의 시선으로 담아낸 60대 언저리 사람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는 평범하지만 날카로운 현실성과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을 품고 있다. 누군가는 메리와 켄처럼 자신의 현실을 헤쳐나가기 버거워하고, 누군가는 톰과 제리처럼 삶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고 충만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들 모두가 완벽한 것은 아니며, 그들 모두가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마이크 리는 노년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진심을 주고 받으며 그 속에서 때론 부딪히고 아파하는 기울어짐의 시간들을 통해 만들어내는 삶의 순간들을 응시한다.
영화관 "CGV 상암'이 있는 월드컵 경기장은 오늘 홈팀인 'FC 서울'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첫댓글 영화"세상의 모든 계절" 에 대한 내용설명및 해설에 감사.캡틴, 이 영화는 보려 가지 않으키여.
안 보는 것이 몸에 정신건강에 조을 거 담다...^^
때론 너무 사실적인것들이 우리를 불편하게도 하더군요.그러나 용기를 갖고서 직시하고 괴롭드래도 껴안고 가야하는게 우리숙명인것을,그래서 종교가필요하고 신이존재가 아쉽고요..
그러게...
현실은 너무 삭막하고 거친 것 같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