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걷기
혼자 밖에 나가 운동하거나 자기 동네가 아닌 곳을 걷는 다는게 쉽지가 않아 친구들과 모여 함께 걷기를 하면 운동도 되고 재미 있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웃고 즐기면 힐링도 되고 좋을 것 같아 서울 시내 여기 저기를 걸어 보기로 했다.
1차 걷기는 도심속 깨끗한 물이 흐르는 청계천입니다.
ㅇ. 날짜 : 24년 2월 1일 목요일 ㅇ. 걷는 곳 : 청계광장 ㅡ> 청계8경 버들습지 까지 -. 거리 : 5.6km ㅇ. 모이는 곳 : 청계광장. 11시 ㅇ. 준비물 : 간식 조금, 물, 기타 개인별 필요물품 ㅇ. 점심 : 매식 ㅇ. 복장 : 모자달린 방한복, 장갑, 신발은 운동화나 워킹화
ㅇ. 참가자 : 5명
-. 청계광장 조형물 "스프링 SPRING " 청계천 조형물 스프링은 세계적인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와 코샤 반 브루군의 공동작품. 조형물의 외부는 탑처럼 위로 상승하는 다슬기 모양으로부티 영감을 얻어 다이나믹하고 수직적인 느낌을 연출함으로써 청계천의 샘솟는 모양과 문화도시 서울의 발전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전통한복의 옷고름에서 착안된 푸른 색과 내부리본은 자연과 인간의 결합을 상징하고 있다. 청계천 조형물 스프링은 도심 속에서 재생된 자연의 기념물이며,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의 상징이다.
-. 맑은 물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쇠백로와 청둥오리
-. 대백로와 왜가리
-. 왜가리
-. 대백로
-. 쌀쌀한 날씨에 얼음이 녹지않고 있다.
-. 천안의 능수버들 식재 -. 간식시간
-. 청둥오리 암수 한 쌍 -. 성북천 합류지점 -. 청계7경 '존치 교각' : 옛 청계천 고가도로의 교각 중 세 개를 남겨 두었다.
-. 비오리 한 쌍
-. 오늘 걷기 마지막 지점 용두역 부근에서 국밥 점심에 막걸리 한잔으로 오늘 걷기를 마감했습니다. 약간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걷기에는 딱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겨울 청계천, 철새화 함께 운치가 있었습니다.
<청계천( 淸溪川 )> 1. 총길이 : 10.84km 2. 청계고가도로 건설 ㅇ. 1969년 일부 첫 개통 ㅇ. 1976년 완전 개통 3. 청계천 복원(고가도로 철거) : 2003년 ㅇ.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ㅇ. 복원된 다리 : 22개
1. 들머리 청계광장(청계 1경) 인공폭포 아래에는 팔석담(八石潭)을 조성했다. 경기 일동석 등 전국 8도의 대표 석재로 만들었다.
2. 첫 번째 다리 모전교 예부터 과일가게(毛廛, 모전)가 많아 ‘모전교’ 무지개처럼 반원형으로 휜 홍예교 형태다.
3. 두 번째 다리 광통교(청계 2경) 경복궁에서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연결. 한양에서 가장 큰 다리 수표교와 더불어 정월대보름 다리 밟기 명소
<조선 3대 왕 태종과 신덕왕후 강씨(태조의 계비)에 얽힌 이야기> 신덕왕후는 1392년(태조 1년)에 자신의 아들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며 권력의 중심. 1396년에 돌연 병으로 사망한다. 이후 태조의 첫째 부인의 아들인 방원(태종)이 권좌에 오르며 복수가 시작 . 신덕왕후의 아들 때문에 왕좌에 오르지 못할 뻔했던 태종은 다양한 방법으로 신덕왕후 묘를 핍박했다.
1410년 광통교를 흙다리에서 돌다리로 개축할 때 신덕왕후의 능을 지키던 신장석을 뽑아 교대(다리 양쪽 끝을 받치는 석축이나 기둥)의 부재로 사용. 광통교 아래 교대의 신장석은 지금도 거꾸로 뒤집혀 있다.
4. 하이커 그라운드(HiKR Ground) 사진 명소. 한국관광공사가 운영. 다양한 스마트 기술과 접목돼 1층부터 5층까지 펼쳐진다. 5층에 밖으로 돌출된 베란다가 나 있다. 입장은 무료
5. 세 번째 다리 광교 광통교가 있던 자리에 새로 놓인 다리다. 조선시대 광통방에 있던 크고 넓은 다리를 광교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됐다. 교량 밑 공간도 넓다. 아래 공간에선 미술전, 사진전 등의 이벤트가 곧잘 열린다.
6. 네 번째 다리 장통교 조선시대 도성 중부의 행정 구역이었던 장통방(長通坊) 자리에 세워진 다리다.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청계 3경)> 장통교 아래에 있다. 김홍도의 그림을 바탕으로, 조선 22대 왕 정조가 수원 화성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도자 타일 5120장에 이어 붙여 표현했다.
7. 다섯 번째 다리 삼일교 3·1 만세운동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8. 여섯 번째 다리 수표교 청계천의 수위를 재는 수표(水標)가 있었다는 다리다. 1420년(세종 2년)에 세워진 수표교는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졌고, 수표(보물)는 홍릉 세종대왕기념관 청계천 복원 때 원래 위치로 돌려놓으려 했으나 다리 너비와 강폭이 맞지 않아 수포로 돌아갔다고 한다.
<조선 19대 왕 숙종과 장희빈의 이야기> 숙종이 수표교 남쪽의 영희전을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아리따운 여인을 보게 된다. 나중에 그를 불러 궁녀로 삼았는데, 그가 바로 희빈 장옥정이다.
9. 일곱 번째 다리 관수교 1918년 일제강점기 때 세워졌다. 현재의 다리는 청계천 복원 때 조성된 것이다.
10. 여덟 번째 다리 세운교 조선시대 효경교가 있던 자리에 근처에 소경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맹교(盲橋), 소경다리 로도 불렸다. 현 이름은 세운상가에서 따왔다. 다리 상판에 약 1m의 강화유리를 깔아 아래를 볼 수 있게 했다.
11. 아홉 번째 다리 배오개다리 들끓는 도적 탓에 길손 백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었다는 ‘백고개’에서 유래
12. 열 번째 다리 새벽다리 방산시장과 광장시장에서 새벽을 여는 시장 사람들의 활기를 담았다. 보행자 전용
13. 열한 번 번째 다리 마전교 소와 말을 매매하는 마전(馬廛)에서 유래
14. 열두 번 번째 다리 나래교 3차원의 아치로 나비를 형상화. 인근 동대문 의류 상권이 세계 패션 1번지로 비상하라는 뜻을 담았다. 바닥에 투명 아크릴을 깔아 아래가 보이게 했다.
15. 열세 번째 다리 버들다리 (전태일다리) 전태일 열사의 반신상이 세워져 있다. 봉제공. 1970년 11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며 분신 왕버들이 많았다 해서 버들다리로 불린다.
16. 청계 4경인 ‘패션광장’ 전태일다리와 오간수교 사이에 조성되어 있다. 현대미술가들의 작품과 음악분수 등을 즐길 수 있다.
17. 열네 번째 다리 오간수교 오간수문이 있던 자리에 세운 다리다. 오간수문은 도성을 몰래 들고 나려는 범죄자들이 종종 통로로 이용
조선 13대 왕 명종 때는 임꺽정의 무리들이 전옥서에 갇힌 가족들을 구한 뒤 오간수문을 통해 달아났다고 전해진다.
1926년 6월엔 순종황제의 국장 행렬이 이 다리를 지났다.
18. 열다섯 번째 다리 맑은내다리 청계천을 순 우리말로 바꾼 이름.
19. 열여섯 번째 다리 다산교 정약용을 기리는 다리로, 사장교 가운데 주탑을 풀잎 형태로 세워 인상적이다.
20. 청계 5경 ‘청계빨래터’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 조성돼 있다.
21. 열일곱 번째 다리 영도교 6대 왕 단종의 슬픈 역사가 서렸다. 원래 이름은 영미교(永尾橋)다.
1457년 음력 6월 22일, 노산군으로 격하돼 강원 영월로 유배 가던 단종이 이 다리에서 나이 어린 부인 송씨(정순왕후)와 생이별을 했다. 이후 ‘영원히 건너가신 다리’라 해서 영도교(永渡橋)가 됐다고...
22. 열여덟 번째 다리 황학교 황학교는 황학(黃鶴)의 전설에서 유래
23. 청계 6경 ‘소망의 벽’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 있다. 각자의 소망을 표현한 도자 타일 2만여장이 부착됐다.
24. 열아홉 번째 다리 비우당교(庇雨堂橋) 세종 때의 청백리 유관의 집 이름에서 각각 명칭을 따왔다. 비우당은 ‘비나 피할 정도의 집’ 이라는 뜻이다. 높은 벼슬을 지낸 유관이었지만 집은 방 안에서 우산을 써야 할 정도로 허름했다고 한다. -. 성북천 합류
25. 청계 7경 ‘존치 교각’ 비우당교와 무학교 사이에 있다. 옛 청계천 고가도로의 교각 중 세 개를 남겨 둔 것이다.
26. 스무 번째 다리 무학교 조선 개국 초기 무학대사의 법명에서 따왔다.
27. 스물한 번째 다리 두물다리 성북천과 정릉천 등 청계천과 두 물길이 합류하는 지점이라는 뜻에서 각각 이름을 따왔다. -. 정릉천 합류
28. 스물두 번째 다리 고산자교
29. 버들습지(청계 8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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