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용
출15장 26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1. 들어가는 말
목회자에게 세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고 선배님들로부터 들었다. 정욕, 명예욕, 물욕 그래서 이 세 가지와 멀게 살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런데 요즘 교회 내에서도 명예욕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함을 많이 느끼게 되었고 그 명예욕이 얼마나 목회자들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주위에서 많이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명예욕에 사로잡혀서 목회 그르치지 않고,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명예욕이 있어서가 아니라 곡성지역에서 9년째를 지내다 보니까 그렇게 거절했던 곡성지방 지방회 회장과 기독교 연합회 부회장, 시찰장, 중고등부 지도위원장, 아동부 지도위원장, 그리고 노회에서의 사역들이 이어졌다. 그것이 3년 연속으로 이어지는데 특히 2008년도에는 한 달에 3차례 이상 회의가 진행되면서 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물론 초급과정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영혼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2008년 12월에 와서 결심했다. 2009년도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를 충전시켜서 신명나는 목회를 하려는 기도를 하고 나를 회복시킬 방법을 찾았다. 그런 와중에 사랑하는 정기진 전도사님의 소개로 기도치유아카데미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매주 대전에 가야 하는데 특히 12월 대심방이 있고 성탄절과 송구영신예배를 지나야 하는 나로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것을 포기하고 나에게 주어진 교회 사역이나 열심히 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1월 2일날 나의 영적 상태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기진 전도사님이 말씀하신 기도치유아카데미 카페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대전으로 전화를 했다. 뜻밖에 강사 목사님인 장요한 목사님과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목사님! 2주가 지났는데 지금 가도 됩니까’ 하고 물었더니, 장목사님 말씀하시길 ‘지금 와도 되는데 숙제가 많습니다.’ 하시며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다. 사실 나는 기도치유사역자란 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2009년 새해 벽두부터 이렇게 힘들어서 어떻게 사역을 감당할까 생각해서 목사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다. ‘목사님! 제가 너무 힘든데 숙제가 문제가 아닙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와 보라고 하시면서 허락을 해 주셨다.
그래서 1월 8일 간다고 하였는데 그 사이에 사단이 못가게 장난을 쳤다. 특히 아내가 “돈도 없는데 뭐 그렇게 멀리 매주 다니려고 하느냐? 다른 곳도 많은데 왜 그곳을 가야 하느냐?”고 하였다. 그 때 나는 분명히 말했다. “내가 힘드니까 가는 거야. 내가 힘들단 말이야.”하고 나는 ‘하나님! 살려주세요.’하며 대전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시작한 <기도치유아카데미>를 통한 나의 간증 겸 변화를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2. 간증과 변화
1) 첫날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철저한 인도하심을 보게 됨.
사실 1월 8일이 되었는데 조금 걱정되기도 하였다. 어떻게 찾아갈까?의 문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런 가운데 인터넷으로 열차표를 예매했는데 다른 일을 하다보니까 곡성역까지 20분 이상 걸리는데 15분을 남겨놓고 집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스치며, 가야한다는 것과 아내의 말대로 다른 곳에 가자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놀랍게 역사하실 것이라는 장요한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는 가방만 가지고 움직였다. 경고등을 켜고 무조건 달렸다. 곡성역에 도착했을 때 기차는 왔고 겨우 몸을 실었다. 서대전역에 도착했으나 서대전역에서 시청까지 거리가 얼마나 걸리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타고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기차에서 내린 분들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주위를 기웃거리다가 지나가는 분에게 시청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택시를 타면 얼마나 나오고, 버스는 많이 있느냐고 물었다. ‘시청 어디를 찾아 갑니까?’ ‘네! 둔산 순복음교회를 찾아 갑니다. 시청 사거리에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가야할지’, ‘무슨 일로 갑니까?’, ‘거기서 기도 집회를 하는데 처음으로 갑니다’, ‘어디서 오시는데요?’ ‘전남 곡성에서 왔습니다.’, ‘그렇게 멀리서도 오시네요. 그럼 제 차로 시청 앞까지 모셔다 드릴께요’, 뜻밖의 하나님이 예비하신 분을 만났다. 이렇게 쉽게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언제나 초행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왜냐하면 길눈이 어둡다는 생각에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 그런데 하나님이 시청 앞까지 데려다 줄 분을 예비해 주시다니...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분은 대전의 어느 침례교회 강창선 집사님이셨다. 그분을 통해서 첫 날 쉽게 찾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고 갈 때도 서대전역까지 인도해준다는 분이 계셨다. 그분이 바로 강빌립 목사님이셨고, 마치고 그분의 인도로 무사히 첫 날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분들을 통해서 앞으로 기도치유아카데미를 다닐까 말까 하는 갈등의 문제를 접었다. 그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날 인도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2) 당뇨 약을 먹어야 할 상황에서 정상이 됨.
선친이 당뇨로 25년 동안 고생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부모 중 한 분이라고 당뇨이면 자녀들의 반은 당뇨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이 당뇨로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고생하는가? 발이 썩어서 절단하고, 어떤 분은 발이 썩어 그대로 죽어가는 분도 보았다. 그리고 목사님들 중에서도 얼마나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는가? 이것을 잘 아는 나는 선친의 그 당뇨가 나에게 들어온다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며 운동을 조금씩 했다. 그런데 문제는 운동만으로 되지 않았다. 결국 공복시에도 140이상 올라가고 식사 2시간 후에 199까지 나왔다. 지난 1월 6일 화요일에 보건소장님은 ‘목사님’ 이렇게 되면 약을 복용하셔야 합니다.‘하며 경고하셨다. 그런 가운데 새해 세이레 작정 기도를 하면서 당뇨가 없도록 기도하는데 이 기도치유아카데미를 준비하면서 당뇨를 기도로도 나을 수 있다는 글을 읽었다. 그 들을 읽고 기도로 나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1월 8일 기도치유아카데미에 다녀온 후 6일이 지난 수요일 오후 점심 후 혈당을 체크하러 갔다. 놀랍게도 102가 나왔다. 보건 소장님은 무슨 운동을 했느냐? 아니면 밥을 먹지 않고 나왔느냐? 말씀하셨다. 나는 흥분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공복시에 다시 체크하러 갔다. 공복시에도 정상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정상이다. 하나님은 나를 기도치유사역자로 세우시기 전에 나를 먼저 치유하시고 계신 것을 느낌에 날마다 흥분된다.
3) 가장 일어나기 어려운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자- 새벽 3시 30분
1월 15일 두 번째로 가는데 5~6강 과제를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갔다. 물론 그때까지도 기도치유사역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나 자신이 회복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날 강의를 마치고 장요한 목사님의 인도로 시키는데 기도회를 하는데 기도할 때에 특별히 회개에 초점을 맞춰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나는 그 날 기도하며 내 모습을 보았다. 그날처럼 회개에 초점을 맞춰서 기도한 적이 지금까지 없었다. 그리고 많이 울었다. 내 인생 전부가 죄의 덩어리인 것처럼 느껴졌고, 내 모습이 이렇게 된 것도 죄로 인한 것이라는 생각과 자유해지기 시작했다. 그 자유함이란 그 단계에 가 본 사람들만 알 것이다.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모세의 기도를 드릴 때에 “진정한 기도치유사역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마치고 열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그날 밤 내 자신의 위치가 변하고, 삶이 변하고,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을 느끼기는 처음이었으며, 내가 기도치유사역자가 되어야겠다고 기도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리고 오면서 결심했다. 이제부터 작정하고 기도해야겠다는 결심이다. 작정 시간은 가장 일어나기 힘든 시간을 드리기로 했는데 바로 새벽 3시 30분이다. 그리고 계속 기도하는데 그 시간은 짜릿짜릿한 시간이다. 특히 이번 주에 들어와서는 왜 이렇게 회개해야 할 것을 보여 주시는지, 회개하며 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면서 너무 너무 행복했다. 나는 진정한 기도치유사역자가 되기 위하여 계속 그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것이다.
4) 치유 사역을 다시 시작했다.
곡성에 온지 9년째인데 사실 곡성에 처음 왔을 때 치유 사역을 좀 했다. 그런데 나의 영적 상태가 흐릿해지면서 그만 뒀다. 그리고 시작한 일은 아픈 환자들이 있으면 병원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되었다. 때로는 교인들이 ‘목사님! 아픈데 기도해주세요’라고 말하면 가장 쉽게 나의 집에서 나오는 말이 ‘병원엔 다녀왔어요?’라고 물으면서 속으로 ‘내가 목사인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끌려 다녔다.
그런데 나를 회복시키는 강의가 1월 15일 있었다. 바로 ‘나는 기도하고 하나님은 치유하신다.’ 이 말은 나에게 자유함을 주었다. 치유사역 한다고 할 때 왜 낫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지금은 기도도 해주지 않고 ‘의사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면서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고 전하는 나는 이중생활을 한 것이다.
너무 부끄러웠다. ‘지금까지 밥만 축내는 목사가 아니었는가?’ 생각하며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 이제 치유목회를 하자. 그것도 영․혼․육․환경’ 그렇게 결단하고 주보에 광보를 냈다. “주일 저녁예배와 수요일 예배 때에 아프신 분들은 앞자리에 앉으십시오.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금요일에 2구역에서 치유 집회가 있습니다.”
나는 계속 기도할 것이다. 성도들이 영․혼․육․환경의 치유를 위하여...나는 기도하고 하나님이 치료하신다.
5) 시시각각으로 기도하게 되었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목사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목사다. 그러나 깨어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어디서나 기도하라고 가르쳤지만, 과연 그렇게 기도해 왔을까? 절대로 아니다. 아니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을 만큼 내 영혼은 지쳐있었다. 남들에게 일 잘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내 속은 빈 깡통이다. 그런데 이젠 달라졌다. 열차를 탔을 때는 성경을 읽든지 아니면 기도하든지, 버스를 타도, 택시를 타고 기도하게 되었으며, 잘못된 생각이 들어올 때면 즉시 회개하고, 전쟁 뉴스가 나오면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욕을 하던 나는 사라지고, 건강한 정치를 위하여 기도하게 되었다.
3. 나가는 말.
지난 29일 강의를 마치고 기도회를 하는데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처음으로 느낀 것이 손이 짜릿짜릿하다는 것이다. 견딜 수가 없었고, 그 후 기도치유 사역자인 장요한 목사님으로부터 안수기도를 받았다. 사실 옛 기억에는 목사가 목사에게 안수하면 자존심 상해하고 어떻게 목사가 목사를 안수할 수 있나?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장요한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기도치유아카데미 1개월 다닌 것이 25년의 목회 생활에서 잘못된 모습을 회개하면서 나는 자유해진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나의 목회 방향을 바꿀 수 있었고, 회복되어지는 나를 나 자신부터 느끼고, 성도들이 목사가 변했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아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지금까지 나를 이렇게 변하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서 사역을 감당하신 장요한 목사님과 나의 장신 80기 동기인 오규만 목사님, 그리고 신경수 목사님과 그 외에 만난 모든 분들게 감사드리며, 앞으로 진정한 기도치유사역자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면서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