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날이 참 더운 요즘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권할 작품은 스릴러죠.
여름이라고 하면 미스터리나 공포, 추리와 스릴러를 빼놓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외국 작품은 아닙니다. 이번 스릴러는 국산, 한국의 작가가 쓴 거-예요.
도서명: 현장검증
저자: 이종관
* 이 책은 아이프리 도서관 9번 문학에 3번 추리 부분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추리 소설이나 스릴러 등의 장르는 외국이 유명하다. 멀게는 셜록 홈즈의 코난 도일부터 가깝게는 링컨 라임 시리즈의 제프리 디버, 마르틴 S. 슈나이더 시리즈의 독일 작가 안드레아스 그루버 등이 내가 선호하는 작가들이다.
물론 한국에도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로 유명한 도진기, 훈민정음 암살 사건으로 알려진 김재희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2% 정도는 ‘그래도’라는 약간의 미흡함이 남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 들게 된 이 작품 ‘현장검증’은 조금 색달랐다.
우선 소재부터가 구미를 확 잡아끌었다. 모방 범죄를 저지르는 연쇄살인범, 사고로 기억은 물론 시력까지 잃은 형사, 그 둘의 팽팽한 대결이라니!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설정인가? 책을 보지 않고는 도저히 배기지 못할 일이었다.
“뭐가 두려운 거지? 이런 식의 공포에 시달리는 자신이 당황스러웠다. 기억을 잃고 눈도 안 보이는 마당에 죽는 건 크게 두렵지 않았다. 그가 두려운 건 아무것도 모른 채 살해당하는 것이었다. 카피캣을 기억해 내지 못하고, 잡지 못할까 봐 느끼는 두려움이 공포를 키우고 있었다.”
한 남자가 병실에서 의식을 회복한다. 그러나 눈을 떴음에도 보이는 건 새카만 어둠뿐이다. 그는 주변에서 들리는 대화를 듣고 자신이 ‘이수인’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경감’이며, 화상을 입었다는 것, 방화사건 현장에서 살인마와 사투 끝에 부상을 당했다는 것, 그리고 그 범죄자가 연쇄살인마 ‘카피캣’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남자에게 그런 기억은 없다. 시신경이 손상이 된 것은 아니지만 앞은 보이지 않는다. 의사는 차차 나아질 거라고 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남자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각 사람별로 발자국 수를 세고 그를 통해 누가 왔는지 구별한다. 간호사, 의사, 병실 문앞을 지키는 경찰들. 그러나 남자는 은연중 두려움을 느낀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도 그들이 알려주었기에 아는 것일 뿐 실제의 그는 누구일까? 이수인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온 것인가?
그러나 남자에게 한가롭게 자신의 기억을 찾을 여유는 없다. 기억을 급하게 찾아야만 하는 이유만 있을 뿐이다.
살인사건의 유력한 피의자이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사람들을 그들이 살인을 저지른 방식과 똑같이 모방해 살인하는 카피캣.
익사로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증거가 부족해 풀려난 남편은 익사로, 가출 여학생을 흉기로 찔러 실혈사로 죽게 했다는 혐의를 받던 남자는 똑같이 실혈사로, 아내를 죽여 그 시신을 유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교수 남편은 똑같이 실종사로, 그리고 노래방 방화로 여러 사람을 죽게 한 것 같으나 증거가 불충분해서 풀려난 남자는 똑같이 화재로 살해한다.
이수인 경감은 바로 그 화재 현장에서 범인 카피캣과 조우했다. 카피캣은 지금 냉각기였지만 언제 다시 살인을 시작할지 모른다. 카피캣을 잡으려면 그와 싸웠던 이수인 경감의 기억이 한시라도 빨리 돌아와야 한다. 어쩌면 카피캣은 그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도 시력도 돌아올 기미가 없다.
그때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는 과학수사계 한지수 경사가 그를 찾아온다.
“한지수는 김영학에게 ‘당신이 죽였다는 걸 알아요’라고 했고, 그는 ‘시체가 없으면 살인도 없어요’라고 선생님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한지수는 메스를 닮은 수사관이다. 용의자와의 어떤 심리적 및 감정적 교류도 없이 객관화된 논리와 이성으로만 심문하기 때문이다. 그런 전략으로 인해 동료들에게서는 다소 불편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또 과거 끝까지 밀어붙이는 경향 탓에 그녀가 맡은 살인 용의자가 자살한 적도 있다. 그리고 현재, 한지수가 취조했던 용의자가 자살로 의심되는 실종에 빠졌다. 그 결과 그녀는 감찰 대상이 되고 말았다.
살인 용의자가 자살이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한지수 경사는 이수인 경감을 찾아간다. 눈도 보이지 않고, 기억도 잃은 이 경감을 보고 실망하는 것도 잠시, 그가 보여주는 수사 예측은 그저 놀라움을 자아낸다.
카피캣이 냉각기를 깨고 다시 살인을 저지르면서, 이수인 경감은 한지수 경사와 수사를 시작하고, 현장검증을 통해 단서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생각도 못한 반전들이 숨 쉴 틈 없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과연 카피캣의 정체는 누구인가?
“진술녹화실에서 형사와 용의자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으면 용의자와 형사 중 누가 더 많은 거짓말을 할까?”
이번에 독서한 ‘현장검증’이라는 작품은 철저한 조사와 검증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그 점은 군데군데 드러나는 과학수사 도구나 프로그램 등의 전문적인 용어나, 형사들의 은어 같은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워낙 단어들이 잘 녹아들어 있어 해설하는 느낌이나 이질감은 들지 않는다. 국내 유일 수사 잡지 편집장으로 근무했던 작가의 이력을 보니 이런 내공이 어디서 발휘된 건지 짐작이 간다.
‘현장검증’이라는 제목답게 현장에서의 생생함이 살아 있으면서 그 쫀쫀함이 탄력성을 준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인해서 독자들도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고 있다. 눈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작품은 꽤나 현장감이 탁월하다.
또 하나, 이 소설의 특징은 거짓과 거짓의 교차, 의심의 의심을 하게 만드는 서술 방식이다. 인물의 심리와 불안, 초조감이 잘 버무려져 어딘가 쫓기는 듯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내밀한 심리까지 파고들어 마음을 쥐락펴락하고 악마처럼 교활하고 치밀한 범인과, 동물적인 감각과 직관, 논리적인 사고로 그를 추적하는 수사관의 대결 구도가 외국 스릴러의 뺨을 가볍게 친다. 거기에 더 흥미를 돋우는 대목은 반전의 역습이다.
카피캣이 경찰 내부 인물이거나, 수사관이거나, 혹은 그와 인접한 누군가라는 건 작품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다. 모방범죄를 저지르려면 용의자가 어떤 식으로 혐의를 받고 있는지, 왜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지, 범죄 현장은 어떤지, 범행 도구는 무엇인지 등 매우 디테일한 정보가 필요하다. 당연하지만 이런 건 관계자가 아니면 입수하기가 무척 어려운 축에 속한다.
그렇지만 경찰 수사를 죄다 간파하며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카피캣의 지능범적인 면이 나타날 때면 소름이 돋는다. 경찰인 듯 경찰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범인을 쫓는 이수인 경감에게도 반전이 있다. 이 양반도 수사관인 줄 알았다가, 알고 보니 수사관이 아닌 듯한 분위기를 잡다가, 하지만 결국에는 관계자인, 롤러코스터 같은 반전이다. 자세한 건 책을 읽으면 나오니 굳이 적지 않겠다.
그러나 이수인 경감이, 아니 김현이 범인의 인질이 되고 한지수 경사가 카피캣의 표적이 된다는 점만 밝힌다. 특히 땡땡 인물이 자신의 책장 컬렉션을 보며 사색할 때는 소름이..... 나중에 그 장면의 의미를 알게 된 후에는 오싹한 공포였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등장인물 가운데서 당신은 진범을 찾아낼 수 있을까? 답은 생각보다 코앞에 있다. 단지 마지막 장면이 좀 열린 결말로 끝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왕이면 모든 기억과 수수께끼가 풀리고, 카피캣이 수갑도 차고, 그러면 더 통쾌했을 텐데.....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 이를테면 김현 범죄분석 자문위원의 집에서 나온 사진에 대한 것이라든가 하는 게 아직 명확하지 않아서 은근히 시리즈나 후속작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PS. 이 작품이 영상화가 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진짜로 영화로 제작되어 극장에서 개봉하면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 이제 인터넷에서 떠도는 ‘현장검증’의 사행시를 마지막으로 감상을 접도록 하겠다.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지은 것 같다.
현: 현실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장: 장면마다 기억의 퍼즐을 맞춰가는 듯한 스릴
검: 검은 그림자를 쫓는 직관적 혹은 동물적인 감각
증: 증발한 미로 속 기억으로도 증거를 찾는 수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