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 양성하는 (주)플립 박경돈 씨
- “꽃에 행복, 기쁨, 따스한 메시지를 담아요”
5월은 가정의 달인 동시에 감사의 달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에 꽃을 선물한 적이 있을 것이다.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꽃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위안을 얻는다. (주)플립은 꽃을 통해 행복과 기쁨, 따스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여성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를 양성하는 한편 생화 정기구독 서비스를 진행 중인 박경돈 씨를 만났다.
Q. 꽃을 선물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한창 바쁘실 것 같아요.
A. 하루 평균 150여 개의 꽃다발을 만들어 배송하고 있어요. 싱그러운 꽃에 둘러싸여서 그런지 힘들기보다는 즐거운 마음이 앞섭니다. 2019년 설립한 ‘플립(FLIP)’은 ‘Flower(꽃)’와 ‘Leaf(잎)’의 합성어로, 꽃잎을 통해 세상에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2020년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2021년에는 세계교육문화원과 협약해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를 양성하고 있어요. 꽃을 정기구독할 수 있는 브랜드인 ‘플립플라워’를 론칭해 매달 3천여 건의 꽃을 발송합니다. 현재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 1명과 전문 속기사 등 비장애 직원 6명이 일하고 있는데, 함께 일할 청각장애인을 모집 중입니다.
Q.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A. 육군 장교로 복무하던 중 이명과 청력 손실을 경험했어요. 사격훈련 때 귀마개를 착용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었죠. 다행히 청력이 회복되었는데, 그때 청각장애인의 생활과 취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어요. 청각장애인을 지원할 방법을 찾던 중 한 장애인 직업개발원을 방문하게 됐고 그때 “여성 장애인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부에서 지원하는 청각장애인 직업 교육 모델이 이공 계열에 집중돼 있다 보니 여성의 취업률이 낮다는 게 그 이유였죠. 그래서 떠올린 직업이 플로리스트입니다. 청각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시야가 1.5배 정도 넓고 색감 활용 능력이 뛰어난 편입니다. 조화롭게 꽃을 배치하고 꾸미는 플로리스트 업무가 그들에게 꼭 맞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어머니가 꽃집을 운영하셨기에 화훼산업에 대한 지식도 갖고 있었고요.
Q. 플로리스트 양성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A. 여성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 양성 교육은 연 2회 진행됩니다. 교육은 2~3개월 과정으로, 원활한 진행을 위해 6명의 수강생을 뽑습니다. 플로리스트이자 수어통역사인 전문 강사가 수업을 진행해요. 꽃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 수업은 물론이고 관련 소품 만들기와 같은 실습도 병행합니다. 지역의 복지센터나 농학교 등 다양한 기관과 협력해 수강생을 모집합니다. 플로리스트에게 필요한 자질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시각적인 감각을 꼽고 싶어요. 꽃다발을 제작할 때 색상의 조화, 형태의 조화 등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Q. 꽃 정기구독 서비스도 운영 중이라고 들었어요.
A. 주기적으로 플로리스트의 꽃다발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예요. 화훼산업은 성수기와 비성수기가 뚜렷해 플로리스트의 수입이 안정적이지 못해요. 코로나19로 행사가 줄고 대면 만남까지 줄다 보니 운영에 차질이 생겼죠. 그런데 위기는 기회를 가져왔어요. 외출이 줄어든 사람들이 실내 분위기 환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떨까 싶었거든요. 간행물처럼 꽃을 구독하고 배송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까지 생각이 뻗쳤지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70여 명의 구독자를 확보, 꽃 정기구독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꽃도 구독할 수 있는 것이냐”며 재미있어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었고, 서비스를 경험한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장기 고객이 생겨났어요. 현재 월평균 3천여 명이 정기구독 중입니다. 회원 가입 후 홈페이지, 스마트스토어 등에서 신청할 수 있고, 배송 주기(2주에 한 번 또는 4주에 한 번)와 받는 곳, 꽃의 크기(스몰, 미디엄, 라지)를 선택하면 계절에 따라 가장 예쁘고 신선한 꽃을 받아볼 수 있어요. 지역 화훼농가와의 협업으로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어요. 화병 등 화훼 용품도 구매할 수 있지요.
Q. 꽃에 메시지를 담기도 한다고요.
A. 그렇습니다. 생화와 함께 플라워 푸드(생화보존액), 배송된 생화의 특징과 꽃의 의미를 담은 꽃말카드, 엽서받침 등을 제공해요. 플로리스트가 고르고 준비한 꽃이 좀 더 오래, 더 의미 있게 여겨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구성한 패키지인데요.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사안을 꽃에 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발발했을 때 우크라이나 국화인 해바라기를 메인으로 구성한 꽃다발을 제작한 것이 그 예입니다. 해바라기를 활용하면서 생산 비용이 다소 많이 들었지만,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의가 알려지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어요.
Q. 어떤 분들이 서비스를 이용하시나요.
A. 개인뿐 아니라 기업이나 기관 등 단체 구독 신청이 들어옵니다. 카페나 네일샵 등 개인 영업장의 인테리어를 위해 구독 신청하는 사례가 늘었어요. 기업이나 기관에서는 임직원을 위한 꽃 선물이나 육아휴직자를 위한 정기배송 등으로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종종 SNS에 “꽃이 풍성하고 신선해 가격 대비 만족도가 좋다”, “나를 위한 최고의 소확행이다” 등의 구독자 후기가 올라오는데요, 그때마다 더 정성을 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한 할아버지께서 임신한 며느리를 위해 구독 서비스를 신청한 때가 생각납니다. 함께 주문한 엽서에 “엄마가 먼저다. 매 순간 행복하길 바란다”는 문구를 넣어달라셨는데, 그 마음이 플로리스트에게도 깊은 여운을 주었어요.
Q.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와 함께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요.
A. 없습니다. 수어, 구어, 필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기 때문이지요. 처음 강의를 할 때는 수어에 핸드타이드(꽃다발을 제작하기 위해 꽃 위치를 잡아가는 과정)나 센터피스(테이블 중앙에 놓는 꽃 장식물을 뜻함) 같은 표준화된 플로리스트 관련 용어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어요. 직접 꽃다발을 제작하다 보니 강사가 손을 많이 활용하는데, 수어까지 하면서 시범을 보인다는 게 쉽지 않았죠. 하지만 속기사와 함께 하니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Q. 앞으로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A. 장애, 성별, 인종을 떠나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믿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터 문화를 만드는 것, 그것이 제 목표입니다. 양질의 교육과 서비스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 또한 좋아지길 희망합니다.
<박스> 박경돈 대표가 추천하는 5월의 꽃 Best 3
1. 장미
5월은 컨디션 좋은 장미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달입니다. 같은 가격이라도 더 좋은 품질의 장미를 고를 수 있습니다. 프로포즈용으로도 적합합니다.
2. 카네이션
붉은 카네이션뿐 아니라 주황, 파랑, 보라 등 다양한 색감의 카네이션이 국내에 수입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카네이션과 이색적인 카네이션을 섞어 존경, 감사의 마음을 전해보세요.
3. 해바라기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해바라기가 대량 출하를 시작했습니다. 동일한 예산이라도 비교적 풍성하게 제작이 가능합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도서출판 점자 협력 월간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 199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