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4세기 前 저술된 〈도덕경〉 노자 저술… 열자·장자로 이어져
불교의 中 정착 사상적 조력 禪문화 정립에도 지대한 영향 노자 ‘虛心’·불교 ‘無心’ 개념 언어 달라도 동일한 깨달음 “평상심을 통해 道를 이루라”
〈도덕경〉이라는 책
우리가 지금 통용본으로 보는 〈도덕경〉은 왕필본(王弼本)이다. 왕필은 A.D. 3세기경 위진남북조시대 사람이다. 20세기 중반까지도 학자들은 단행본 주석서로는 왕필본이 가장 오래된 문헌이라고 알고 있었다.
1973년에 획기적 사건이 하나 터진다. 중국 호남성 마왕퇴의 분묘에서 백서(帛書) 〈도덕경〉 2종이 출토된 것이다. 이 분묘의 연대가 B.C. 168년이라고 하니 여기에 묻힌 백서본은 최소한 B.C. 3세기나 그 이전에 존재했던 문헌임이 분명하다. 백서본은 내용 분량에 있어서도 왕필본과 80% 이상 일치한다.
그런데 1993년에 학계를 크게 뒤흔드는 또 하나의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졌다. 호북성 형문시 곽점촌(郭店村)의 분묘에서 죽간(竹簡)으로 된 〈도덕경〉 3편이 나온 것이다. 곽점 죽간본은 갑(甲)·을(乙)·병(丙) 3조로 되어 있으며, 그 분량은 왕필본의 40% 정도나 된다. 이 분묘가 만들어진 시기가 B.C. 300년경으로 추정되므로 죽간본 〈도덕경〉은 늦어도 B.C. 4세기 이전으로 올라간다고 볼 수 있으니 백서본보다 두 세기는 앞선 문헌이다.
지금 실존인물로서의 노자, 즉 역사적 노자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도덕경〉은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진 〈논어〉 같은 문헌과는 달리 매우 건조한 논문형식으로 되어 있고 분량도 적다. 따라서 〈도덕경〉은, 만약 ‘노자’라는 어떤 인물이 실존해 있었다면, 그 노자가 이 문헌을 혼자 썼을 것이다. 노자가 홀로 죽간〈도덕경〉과 비슷한 내용의 글을 남겼으며, 그 뒤에 후세 사람들이 여기에다 조금씩 보충해가서 백서〈도덕경〉이 성립되었을 것이다. 이 문헌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왕필본의 원형이다.
노자의 ‘없음(無)’과 불교의 ‘공(空)’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았던 한(漢)제국이 멸망하고 〈삼국지〉의 배경이 된 삼국시대가 도래하자 인도의 불교가 중국으로 본격 유입되기 시작한다. 불교가 중국에 어느 정도 정착한 시기는 왕필(王弼), 하안(何晏), 곽상(郭象), 완적(阮籍), 혜강 같은 학자들이 주도한 청담(淸談)사상이 유행하던 위진남북조 시대였다.
윤회의 주체인 불변하는 아트만(atman; 자아)을 부정하는 석가모니의 불교는 인도보다 중국이 더 안전한 깨달음의 집이였는지도 모른다. 중국에는 불교와 비슷한 사상을 가진 〈도덕경〉을 비롯해서 〈열자〉와 〈장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 처음 들어온 불교사상은 반야학의 공(空)사상이었다. 초기불교는 중국 사람들에게 공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자의 허·무(虛無) 개념으로 격의(格義)를 했다. 중국 사람이 잘 아는 허·무 개념을 가지고 반야의 공을 설명함으로써 어려운 불교사상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노자는 도(道)를 ‘비움(虛)’이라고 달리 표현하며 또한 ‘없음(無)’이라고도 한다. 비움의 반대는 채움(盈)이고, 없음의 반대는 있음(有)이다. 노자의 비움 또는 없음이 반야의 공이다.
“함 없음을 하라!〈도덕경 63장- (본문 인용할 때 장만 표기)〉”는 명제가 있다. 함 없음(無爲)이란 비우는 방향으로 하는 행위이고, 반대로 함 있음(有爲)은 채우는 방향으로 하는 행위이다. 비우는 행위인 무위를 행해야 다시 무엇이든지 채울 수 있기 때문에 비움이 도가 된다. 그러므로 “도는 항상 함이 없지만 하지 못할 것이 없다.〈37장〉”
〈도덕경〉에 나오는 ‘만물(萬物)’은 ‘모든 사물’이란 뜻으로 불교의 ‘제법(諸法)’과 똑같은 말이다. 법이 제6식인 의(意)작용을 통해 개념이 생긴 상태이듯이, (사)물은 개념 없음(無名)에서 개념 있음(有名)으로 생성(生)한 상태다. 개념을 채우면 사물 있음(有物)이 되고 개념을 비우면 사물 없음(無物)이 된다. 개념 생성으로 하나의 사물이 된 뒤에는 다시 “사물 없음으로 복귀한다〈14장〉” 임제 선사는 “지혜의 칼이 나타나면 하나의 사물도 없다.(無一物)”고 했다.
종합해서 말하면, “만물이 모두 허하다(萬物皆虛)”는 노자의 말이나 “제법이 모두 공하다(諸法皆空)”는 불교의 명제는 동일한 의미다.
“천하의 사물은 있음에서 생기고, 있음은 없음에서 생긴다〈40장〉” 없음에서 있음으로 생성했다가 다시 없음으로 “뒤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40장〉” 제법은 공으로부터 생했다가 다시 멸하여 공으로 돌아간다. 공하다는 것은 생멸한다는 뜻이다. 노자의 없음 또는 비움은 모든 있음 또는 채움을 가능하게 하기에 모든 생긴 것들의 ‘바탕(素)’이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서양의 실체론에서 말하는 ‘본체’나 ‘근원’이 절대 아니다.
본체나 근원으로서의 있음을 ‘실유(實有)’라 하는데 노자의 있음은 실유가 아니다. 불교의 공처럼 노자의 있음과 없음도 단멸한 상태가 아니다. 노자는 “있음과 없음이 서로 생한다〈2장〉”고 했다. 있음 속에 없음이 있고 없음 속에 있음이 있다. 있음과 없음이 각각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생성 속에 있음과 없음이 함께 녹아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있음도 없고 없음도 없고 오로지 생성만 있다. 그래서 노자는 “도는 생성해 가는 것이다〈51장〉”라고 말했다. 생성이 곧 도이고 도가 곧 생성이라는 의미다.
노자의 핵심사상에 ‘스스로 그러함(自然)’이 있다. 이 말은 불교의 진여(眞如), “참으로 여여하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25장〉” 도는 비움이니 사물에서 개념 혹은 언어를 비우면 스스로 그러한 상태가 된다. 불교의 진여도 마음의 개념작용인 언어가 비워진 상태이니 노자의 스스로 그러함과 같은 상태다. 또한 도는 생성이니 생성은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고 해도 된다. 있음이 없음에서 생성하는 모습은 스스로 그러하고 참으로 여여하다. 명나라 선승인 감산 덕청(?山 德淸)은 〈도덕경〉 주석에서 “있음이 없음에서 생성함을 안다면 스스로 그러할 것이니 사물에 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노자도 “일 없음을 일하라〈63장〉”고 말했다. 노자의 생성은 오직 스스로 그러한 생성일 때만 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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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명나라 화가 장로(1464~1538)가 그린 노자기우도(老子騎牛圖). 노자 사상은 중국으로 전래된 불교가 정착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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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속의 선(禪)
노자의 〈도덕경〉 사상은 열자의 〈열자〉로, 다시 장자의 〈장자〉로 이어져 내려갔다. 인도불교가 중국에 정착한 뒤에 중국화하면서 중국불교는 모두 선(禪)으로 수렴되었다. 중국불교는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아 선불교를 탄생시켰다. 카마타 시게오는 “선사상의 배경에는 노장사상이 깔려 있음이 분명하다. 말하자면 선은 노장사상이 불교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달마어록〉에 나오는 ‘무심(無心)’은 노자의 ‘무위(無爲)’을 패러디한 표현이다. 선불교는 노장사상에서 단순히 이런 개념들만 빌려 쓴 게 아니라 사상 자체를 노장에 가깝게 틀어서 안착해 놓는 바람에, 선어록을 읽다보면 이게 노장인지 불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특히 임제종 혹은 홍주종은 장자와 거의 같다.
장자 사상은, 이 사이에 열자가 있지만, 노자 사상을 그 뼈대에 삼고 뻥튀기해서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다만 문체에 있어 노자가 철학논문의 시 형식이라면 장자는 문답과 비유 형식이 많다. 인도불교에는 없는 ‘선문답(禪問答)’ 형식도 스승 장자와 그 제자들 간에 이루어진 문답 형식을 흉내 낸 것이다. 〈장자〉의 호접몽(蝴蝶夢) 설화가 대표적이다.
선에 영향을 준 장자의 심성론은 노자의 심성론으로부터 전수받았다. 노자는 “그 마음을 비우고 그 배를 채우며; 그 의지를 약하게 하고 그 뼈를 강하게 하라〈3장〉”고 말했다. 노자의 ‘마음 비움(虛心)’ 사상과 달마의 ‘마음 없음(無心)’ 사상은 설명하는 언어가 다른 뿐이지 동일한 깨달음을 갖고 있다. 의지도 마음의 한 작용이니, 의지를 약하게 하는 것은 마음 없음의 한 양태다. 마음은 또한 앎의 주체다.
양무제가 달마에게 “내 앞에 서있는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물었을 때 “모른다.(不識)”라고 대답한다. 노자는 “백성들이 앎이 없고 욕망이 없게 하라(無知·無欲)”고 했다. 달마의 ‘불식’과 노자의 ‘무지’는 같은 깨달음이다. 노자의 앎 없음이란 제6식으로 생긴 사물에 대한 개념을 비운 상태를 말한다. 나 자신에 대한 앎도 비운다면 달마처럼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 고 표현하면서 무아(無我: 자아 없음) 상태에 있을 것이다.
노자는 “성인은 일정한 마음 없이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49장〉”고 했다. 이 구절은 성인의 무아를 말할 뿐만 아니라 노자의 정치철학을 피력하고 있다. 마조 도일은 “평상심이 바로 도”라는 명언을 남겼다. 백성의 마음이 바로 평상심이다. 제8식인 아뢰야식이 깊게 숨어있는 인간의 마음은 그 자체로 오염된 번뇌덩어리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평상심인 이 마음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주장했으며, 선종에서도 신수(神秀)는 마음을 “시시때때로 깨끗이 닦아내서 먼지가 묻지 않도록 하라”는 게송을 냈다.
하지만 백성의 마음인 평상심은 내버려야 할 번뇌덩어리인 것만이 아니라, 그 속에 진심(眞心)인 불성을 가지고 있는 여래장이다. 승조는 〈조론〉에서 “유마는 ‘번뇌를 떠나지 않고 열반에 든다’고 했다”고 말한다.
혜능은 “마음 속의 불성은 항상 청정한데 어디에 먼지가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마음이 곧 깨달음의 나무요,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다”라고 신수에게 받아쳤다. 혜능은 또 “나는 본래 자성(自性)이 청정하니 내 마음을 잘 알고 견성하면 저절로 불도(佛道)를 이룬다”고 말했다.
자성청정심은 번뇌로 오염될 수 없으니 신수처럼 닦고 말고 할 필요조차 없으며, 오염덩어리인 번뇌 또한 전식성지(轉識成智)하여 견성성불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노자 또한 백성의 평상심을 가지고 정치철학을 통해 그들을 불국토로 인도하려고 했다.
노자에게 마음은 쓰임(用)의 대상이다. 장자도 ‘용심(用心)’이란 표현을 썼다. “있음이 이로움이 되는 까닭은 없음이 쓰임이 되기 때문이다.〈11장〉” 이를 심성론에 적용하면, 마음 있음이 이로울 수 있는 까닭은 마음 없음이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없음을 쓴다는 것은 마음이 항상 생멸하는 공한 상태에 있음을 알고 그 마음을 우리 삶을 위해 잘 쓰라는 뜻이다. 마음 없음은 마음 비움이다.
마음 비움은 마음 자체를 버리는 게 아니라 일정한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이 스스로 그러하게 생성하도록 내버려 두는 수행이다. 마음은 깨달음의 나무이기 때문이다. 백성의 평상심은 비록 떠들썩한 시장 한복판에서 오염된 마음이지만 무여열반 할 때까지 자신의 삶을 위해 잘 써야 할 수단이라고 노자는 말한다. |
첫댓글 _()_
격의(格義)란 외교(外敎, 즉 타교) 교리로 불교의 도리를 해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_()_
중국에 불교가 들어왔을 때 이러한 방법으로 불교를 이해하려 노력했는데, 이를 격의불교라 합니다.
중국 위진(魏晉) 남북조 시대에는 노장(老莊)사상이 성하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불교의 반야사상을 이해하고자
하였으며, 노장의 무(無)와 반야경의 공리(空理)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불교가 활성화
되자 격의불교는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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