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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이해인/ 샘터사 펴냄
아름다운 감성과 정갈한 글로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이해인 수녀가 5년 만에 선보이는 봄햇살처럼 포근한 산문집.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은 이해인 수녀의 많은 글들 중에서 사색과 묵상을 통해 깨달은 자연과 일상에 대한 고갱이만 가려 뽑았다. 풋풋한 풀냄새와 꽃향기가 물씬 배어나는 이번 산문집에는 세상에 향한 수녀의 따뜻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부산의 성 베네딕도 수녀원의 수녀이자 시인이기도 한 그녀는 일반인과 다소 거리가 있는 수녀원의 생활과 그 속에서 생활하는 개인으로서의 경험을 특유의 문체와 곱고 담백한 글로 풀어냄으로써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 책에는 글에서나 삶에서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향기를 이웃에게 전하는 한송이 작은 꽃처럼 살고 싶다는 작가의 뜻이 강하게 담겨 있다.
동아일보 조이영 기자 의 서평
《민들레 솜털처럼 온 세상으로 날아간 그의 글은 외롭고 힘든 사람들의 마음에 내려 앉아 희망의 씨앗이 된다.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57). 최근 출간한 산문집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샘터)도 온 세상으로 날아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주 신간 출간으로 부산의 수녀원에서 서울로 올라와 수유리에 있는 오빠 이인구 교수(서울예대·광고창작과)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던 이해인 수녀를 만났다.
해인수녀는 목이 한참 잠겨 있었다. 독감으로 몸이 좋지 않은데다, 최근 연세대(원주캠퍼스) 채플시간에 강사로 초대돼 3시간에 걸쳐 강의를 하느라 다소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북한산이 여느 때보다 좋아 보인다”며 사방 가득 펼쳐진 초여름의 자연을 한껏 누리는 모습이었다.
“하나님의 좋으심, 선하심을 나눈 향기로운 시간이었어요. ‘수녀가 하는 얘기, 다 뻔하겠지’라며 삐딱한 눈으로 보던 학생들이 마음을 열더라구요. 채플이 끝나고 저와 얘기를 나누려고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어요.” 》
# '시인 수녀' 보다 '수녀 시인'이고 싶다
“제 글을 읽고 교도소에서 편지가 많이 와요. ‘이해인’이라는 시인보다는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한 수도자에게 전하는 마음 같아요. 몸은 수도원 안에 있지만 글을 통해 이뤄지는 만남이 참으로 귀하지요. 종파를 초월해 꿈과 격려를 줄 수 있어서 감사해요.”
안양교도소의 한 재소자는 ‘당신은 엄마 잃고 혼자 길 가는 아이의/ 콧물 훔쳐주던 누님/ 비포장 도로의/ 비에 젖은 이정표입니다 …’라고 쓴 편지를 보냈다.
“‘글을 쓰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에 있는 영혼, 순결에 대한 그리움을 건드리는 것이죠. 독자들이 제 시를 사랑해주는 것은 곱기 때문만이 아니라 진실과 순수를 향해 가는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일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이해인 수녀 한 사람의 두 손으로 그 수많은 손을 다 잡아주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의 글은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
“삶 자체를, 사람 하나하나를 시라고 생각해요. 또 아침 점심 저녁, 시를 통해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자의 역할을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드리죠. 늘 세상에 작은 기쁨과 평화를 주는 작은 천사가 되고 싶어요.”
# 이명숙(李明淑)과 이해인(李海仁), 클라우디아(Claudia)
“예비자로 있을 때, ‘이해인’이라는 이름으로 가톨릭 잡지에 글을 실었어요. 의도적인 필명이라기 보다는 제게 어떤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죠. 늘 마음을 넓혀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넓음의 상징인 바다를 뜻하는 해(海)자를, 사랑과 어진 마음, 자비를 담은 어질 인(仁)자를 썼지요.”
수녀로 서원할 때 삶의 지표로 삼은 성서 구절은 루가복음 10장 42절.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이름이 알려진 수도자로서 유명세를 치러야 하거나 마음이 번잡스러울 때 중심을 잡아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라는 별만 따라가면 된다는 것.
1980년대 갑자기 ‘세상의 인기’를 얻으면서 가던 길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는 해인수녀는 ‘기도의 힘’이 자신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수도자가 유명해져서…’, ‘저러다 일 나지’(웃음)라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인기와 명예가 수도 생활에 걸림돌이 된적도 있지만 삶의 유한함과 허무를 체험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했던 측면도 있거든요. 골방에 혼자 앉아 기도하지만 기도의 힘은 나비처럼 날아 사방에 흩어져요.”
이해인 수녀는 “돌이켜보니 ‘깊은 기도의 우물’에 잠겨 마음을 씻어낸 뒤 제자리로 돌아올 때마다 한 편의 시가 태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불같은 뜨거움이 물같은 담담함으로’ 세월과 더불어 승화했다는 이해인 수녀는 모든 일을 담백하게 볼 수 있는 ‘평상심’을 지닐 수 있는 나이가 이제 된 것 같다고 했다.
“수녀(修女)라는 말이 난 참 좋아요. 닦는 여자, 닦아가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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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의 프로필과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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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시인 이해인님에 대해서...
좋은글 많이 쓰신 이해인님 우리 살짝 함봐요~~ ^*^
나의 하늘은/詩 이 해 인
그 푸른 빛이 너무 좋아
창가에서 올려다본
나의 하늘은
어제는 바다가 되고
오늘은 숲이 되고
내일은 또 무엇이 될까
몹시 갑갑하고 울고 싶을 때
문득 쳐다본 나의 하늘이
지금은 집이 되고
호수가 되고
들판이 된다
그 들판에서
꿈을 꾸는 내 마음
파랗게 파랗게
부서지지 않는 빛깔
하늘은 희망을 고인 푸른 호수
나는 날마다 희망을 길어
땅에서 긴 두레박을
하늘까지 낸다
내가 물을 많이 퍼가도
늘 말이 없는
하늘..
작가 이해인의 모습들
가족과 함께-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두 갈래로 머리를 땋아 내린 소녀가 이해인 수녀.
초등학교 시절 -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이해인 수녀.
상상력이 풍부하고 '생각이 엉뚱한' 조숙한 소녀였다
풍문여중 재학시절 -
새침한 성격에 도도해서 '석고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문예반원들과 함께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이해인 수녀.
이 때부터 각종 백일장에서 글솜씨를 발휘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중학교 2학년 때 - 뒷줄 오른쪽이 이 수녀.
수녀가 된 언니의 권유로 부산 동래여중으로 전학했고,
당시 그는 프랑스 유학을 꿈꿨던 문학소녀였다
김천 성의여고 재학시절 - 2학년 때인 1963년,
제2회 신라문화제 전국고교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지원자시절의 이해인 수녀 - 1964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 입회했다.
1967년 4월, 어머니, 오빠, 동생(영경)과 함께
1968년 첫 서원 후 찍은 사진.
이 때도 꾸준히 시를 썼다. 물론 발표하지는 않았다.
첫 서원 무렵 찍은 사진- 이 때 오빠 이인구는
'언제든 네가 원한다면 세상으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이해인 수녀의 결심은 확고했다.
유학시절-1970년 필리핀으로 5년간 유학
(세인트 루이스 대학교 영문학과)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이해인 수녀.
왼쪽의 키 큰 이는 문정현 신부
필리핀 유학 시절, 동료 수녀들과 함께 -1975년
'김소월과 에밀리 디킨슨의 자연시 비교 연구' 논문으로 졸업
종신서원 무렵-
사람들은 이 사진을 '모나리자'그림과 비교하곤 했다고 한다.
이 무렵,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출간됐다.
1976년 2월 2일 종신서원식날 가족들과 함께.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도 보인다.
종신서원 기념 촬영(왼쪽에서 네번째) 수녀원 입회 후 12년,
첫 서원 후 8년 만이다.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
이해인 수녀는 유학시절과 서울에서의 몇 년간을 빼고는 줄곧
이 곳에서 수도 생활을 해 오고 있다.
기도의 샘.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 '로자리오 기도의 길' 안에 있다.
이해인 수녀는 이곳에서 산책과 묵상을 통해 많은 시를 썼다.
'황홀한 고백'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황홀한 고백'전문
'해인글방' 앞에서 -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 있는 이해인 수녀의 작업실 겸 사무실
시인 홍윤숙, 양한모씨와 함께-
첫 시집 <민들에의 영토>는 홍윤숙 시인이 먼저 읽고,
출판을 권유해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
1981년 새싹문학상 시상식
1985년 제2회 여성동아 대상 시상식
마더 테레사와의 만남, 1994년 인도를 방문했을 때
구 상 시인과 함께 -
김광균, 박두진 시인과 함께 이해인 수녀의 든든한 문학적 후견인이 돼 주었다.
동화작가 정채봉씨와 함께 -
두 사람은 피천득, 법정, 최인호 작가와 함께
<샘터>5인방으로 불릴 만큼 <샘터>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 피선생의 딸 피서영 박사와 함께
가수 노영심과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서
파도의 말
울고 싶어도
못 우는 너를 위해
내가 대신 울어줄게
마음 놓고 울어줄게
오랜 나날
네가 그토록
사랑하고 사랑 받은
모든 기억들
행복 했던 순간들
푸르게 푸르게
내가 대신 노래해 줄게
일상이 메마르고 무디어질 땐
새로움의 포말로
무작정 달려 올게....
소프라노 조수미씨와 함께
배우 윤석화, 김희애, 이찬진 부부, 가수 노영심과 함께
소설가 박완서씨와 함께 수녀원에서
소설가 최인호, 시인 김형영씨와 함께 해운대 바닷가에서
김남조시인, 조광호 신부와 함께
독자들과의 만남. 1990년 서울 도서전시회에서
강의실에서. 이해인 수녀는 부산 가톨릭대학교 지산교정에서
'시와 영성'과목을 통해 학생들과 시 읽는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요즘 애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할 때 기쁘다는 이해인 수녀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 김 펠리치다 여사는 이해인 수녀의 든든한 기도의 후원자이다.
수녀원 정원에서
내가 사랑하는 너는
친구와 나란히 함께 누워 잠잘때면
서로 더 많은 이야기를 밤새도록 나누고 싶어
불끄기를 싫어하는 너였으면 좋겠다
얼굴이 좀 예쁘지는 않아도
키가 남들 만큼 크지는 않아도
꽃내음을 좋아하며 늘 하늘에 닿고 싶어하는
꿈을 간직한 너였으면 좋겠다
비오는 날엔 누군가를 위해
작은 우산을 마련해 주고 싶어하고
물결위에 무수히 반짝이는 햇살처럼
푸르른 웃음을 반짝이는 너였으면 좋겠다.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애써 마음의 정리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편안한 친구의 모습으로
따뜻한 가슴을 가진 너였으면 좋겠다
한잔의 커피향으로 풀릴것 같지 않은
외로운 가슴으로 보고프다고 바람결에 전하면
사랑을 한아름 안아들고
반갑게 찾아주는 너였으면 좋겠다
나를 소중히 안겨주는
온통 사랑스러운 나의 너였으면 좋겠다
아래 동영상은 이해인시인의 모습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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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약력
◆ 1945 강원도 양구에서 이대영, 김순옥의 1남3녀 중 셋째로 출생
◆ 서울 청파동에 살 무렵(6세) 한국 전쟁발발. 9월에 부친이 납북 됨
◆ 1952 부산 피난시절 부산 성남초등학교에 입학
◆ 1958 서울 창경초등학교 졸업
◆ 1958 무시험으로 서울 풍문여중 입학
(특활반 문예반에 들어 임영무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삶에 영향을 주는 친구들을 사귐)
◆ 부산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언니의 권유로 중3때 학교를 동래여중으로 옮김
(프랑스 유학을 염두에 두고 한 학년 월반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이행하지 않음)
◆ 1961 부산 동래여중 졸업
◆ 1964 김천 성의여고 졸업 1963 제2회 신라문화제 전국 고등학교 백일장에서 시 장원
◆ 1964 부산 성베네딕도 수녀원 입회
◆ 1968 첫서원
◆ 1968~70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근무
◆ 1970 <소년>지에 동시 '하늘',' 아침'등으로 추천 완료
◆ 1975 필리핀 성 루이스 대학 영문학과 졸업
◆ 1976 종신서원과 더불어 첫시집 <민들레의 영토> 출간
◆ 1976~78 부산 성분도 병원 근무
◆ 1978~82 수녀원 교육팀에서 일함(80~82:지원자 담당)
◆ 1985 서울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졸업
◆ 1985~87 수녀원 자료실 담당
◆ 1988~90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신심분과에 근무
◆ 1990~91 수녀회 설립 60주년 준비위원으로 일함
◆ 1992~97 수녀회 총비서로 근무
◆ 1997~2000 현재 수녀원 내 문서선교실 근무
◆ 1998~99 부산 신라대학 사범대학에서 시감상 교양 강좌
◆ 2000.3~ 부산 가톨릭대학 지산 교정에서 '생활 속의 시와 영성' 강의
1981 제9회 새싹 문학상
1985 제2회 여성동아 대상
1998 제6회 부산여성 문학상
<..퍼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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