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기가 끝나면서부터 마음이 조금 여유로웠다. 가을이라고 해서 편히 쉬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정말 단풍구경, 꽃구경 한 번 못 가보고 늘 바쁘기만 한 가을이 아쉽기만 하다. 며칠 전에 다녀온 연홍도 여행은 금방 잊히고 또 이렇게 심통이 올라오는 나다.
복숭아나무 두둑이 비틀어진 이유는 두둑 시작점에 죽은 감나무가 있었던 탓이었다. 하필 가장자리 입구에 있어서 농약기계나 예초기 등이 들어갈 때, 조심스러웠다. 이번에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가지 유인작업을 하다 보니 허리와 무릎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여태 구입을 미뤘던 고소작업차를 장만했다.
새 제품을 검색하고 업체와 견적 상담을 받던 중, 깨끗한 중고를 구입해도 될 것 같았다. 농사에 소용되는 장비들이 고가라서 무턱대고 새 제품만 구입하는 것도 현명하지 않는 소비 같아서 당근마켓이나 중고 시장을 이용하던 습관이라서 이번에도 중고를 알아보기로 했다.
3년 전 생산된 제품인데, 감나무 밭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배터리를 새로 교체했고, 외관도 새것처럼 깨끗한 제품이 천만원가량 저렴하게 나왔다. 제조업체도 여러 곳이 있었는데, 유튜브 검색 등으로 가장 신뢰를 받는 업체의 제품이었다.
고소작업차가 들어가려면, 감나무를 뿌리까지 파내서 두둑옆에 진입로를 확보해야 했다. 어차피 죽은 감나무이기 때문에 뿌리를 캐내면 되겠거니 단순하게 생각했다. 복숭아밭 전체의 두둑 경사로와 울퉁불퉁한 바닥도 평탄작업을 하면 되겠다 싶어서 2톤 포클레인을 임대했다.
감나무뿌리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고 깊어서 포클레인으로 건드려도 꼼짝도 안 했다. 호미와 괭이, 도끼, 톱까지 동원해서 흙을 캐내고, 뿌리들을 자르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늘은 전기톱을 써봤는데도 몇 번의 톱질에 날이 무디어져서 나무가 끄덕도 안 했다. 파낸 흙구덩이로 내려가 뿌리 주변을 호미로 긁는 일을 했더니 아픈 발목과 허리에 무리가 와서 너무 아팠다.
간단하게 생각했던 일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해결도 못해서 몸과 마음이 지친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줄리언 반스의 소설 제목이 생각난다. 잠깐, 뿌리도 나무만큼 깊다는 말이 떠올랐었다. 이렇게 일이 힘들게 진행될 줄 정말 몰랐다. 블루베리 하우스 한쪽 면의 부직포 깔기가 숙제처럼 남아 있는데, 감나무가 도와주지 않는다.
내 속에도 이토록이나 파내기 힘든 검고 딱딱한 슬픔과 아픔들이 엉켜서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 같아서 나의 가을 노래는 이토록 구슬프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