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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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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올리기 스크랩 여러나라의 민요
Remnant 추천 0 조회 15 14.03.03 09: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민요(民謠)는 민족적인 감정이나 기호를 자연발생적으로 멜로디로써 나타낸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음악' 교과서를 보면 민요가 한 곡씩은 들어가 있다.

 개요

음악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서민이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최초의 멜로디는 목소리에 의존하며, 악기로 연주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멜로디의 원형은 악보에 기재돼 있지 않다. 기보는 뒤에 음악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 기보한 데 불과하다. 이리하여 악보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멜로디가 구전되는 동안 멜로디는 다듬어진다. 따라서 민요는 작사자도 작곡자도 불명인 것이 대부분이며, 작가가 분명한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 서민이 감정을 넣어 노래를 부르고자 할 때 외국어로 노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반드시 자기 나라 말로 부르며, 따라서 그 나라 말의 악센트가 노래하는 멜로디에 나타나 있다. 리듬도 역시 그 나라 말에 따라 달라진다. 민요는 모국어의 특색을 그대로 반영함과 동시에 국민적인 감정마저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활동적이며 활발한 국민은 리듬이 분명한 노래를 부르고, 비활동적이며 그늘진 국민에게는 우울한 노래가 애창된다. 그리고 고지식하고 실무적인 성격을 지닌 국민이 부르는 민요는 역시 부드럽지 못한 멜로디로 되어 있는 것이 많다. 원시적인 민요는 단순한 악상이나 짧은 악구(樂句)를 단조롭게 반복하는 것이 많으나, 문화가 향상됨에 따라 악상은 복잡해지고 악구는 길어져 악곡 전체의 형이 정돈되고 악구와 악구가 대조적으로 배치되어 스스로 예술적 작품의 향상을 나타낸다. 또한 원시적인 민요는 무반주로 부르는 것이었음에 틀림없으나, 지금 우리가 노래하고 있는 외국민요에는 반주가 붙어 있고, 때로는 그 멜로디를 기악곡으로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민요는 여러 가지로 변화를 가져왔지만, 각 민족의 장점과 특색을 나타내고 있는 데는 변함이 없다.

 이탈리아 민요

이탈리아는 한마디로 '노래의 나라'라고 할 만큼 노래가 번성하여, 화려한 가창법으로 알려진 '벨 칸토'를 낳을 정도의 나라이다. 이탈리아인은 예로부터 아름다운 육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낭랑하고 맑은 목소리, 정력적이며 탄력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즐기는 것이 이탈리아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탈리아 민요로 부르고 있는 것은 도리어 민요풍의 유행가에 속하는 것으로 순수한 이탈리아 민요는 우리 나라에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같은 이탈리아에서도 지방에 따라 다른 특색의 민요가 있다. 스탕달은 이탈리아 민요를 가리켜 "이 장화 모양의 나라에서는 남쪽으로 갈수록 독창적인 민요에 차 있다"고 하였다. 사실 중앙 유럽에 인접한 북부지방, 즉 밀라노, 코모, 보게라를 포함한 롬바르디아 지방이나 비에몬테, 베네치아에는 그다지 특색있는 민요가 없다. 이탈리아의 민요다운 민요가 풍부한 곳은 나폴리를 중심으로 한 남쪽지방이다. 더욱이 남단에 가까운 칼라브리아 또는 시칠리아섬이나 코르시카섬에 가면 한층 이색을 띠며, 그 중엔 근동풍이 감도는 민요가 있어, 고대 그리스나 사라센 문화의 영향이 이 부근에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타란텔라와 살타렐로

이탈리아에는 특유한 민족춤곡으로서 타란텔라(tarantella)와 살타렐로(saltarello)가 있는데, 이들 역시 남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것이다. 타란텔라는 급속한 3박자의 곡으로, 본래 독거미인 타란툴라에 물렸을 때 그 통증을 덜기 위해 춤을 추면 낫는다는 전설에서 생겼다고 한다. 살타렐로도 타란텔라와 닮아 급속한 춤곡인데, 이 두 춤곡의 리듬을 교묘히 삽입하여 작곡된 음악으로는 멘델스존의 교향곡 <이탈리아>의 제4악장이 유명하다.

 나폴리 가요제

나폴리에서는 1년 중 가장 기후가 좋은 9월 7일 저녁부터 8일 아침에 걸쳐 피에디그로타의 마돈나 축제가 열린다. 피에디그로타의 축제란 1744년 카를 3세가 로마의 남쪽에 있는 알바노 언덕 베를레트리에서 오스트리아 대군을 격파한 때를 기념하는 행사였는데, 지금도 유명한 가요제로 남아 있다. 이날 밤에는 이탈리아 각지에서 모여든 남녀가 노래 자랑을 베푼다. 그리고 그날 입상된 곡이 그해의 유행가로 전국적으로 전파되는 풍습이 있다. 이날 밤 포지리포의 언덕에서 피에디그로타의 교회로 통하는 길 양쪽은 일루미네이션으로 장식되고, 성모 마리아의 예배당에 참례하는 남녀노소로 붐빈다. 이 나폴리의 가요제가 가장 성황을 이루고 수많은 명곡들이 나온 시기는 제1차세계대전 전후이며, 이 때 나온 것이 <오, 나의 태양>,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이다. 이와 같이 나폴리에서 나온 노래를 총칭하여 '칸초네 나폴레타나'라고 한다.

 나폴리 주변과 민요

이탈리아에는 "나폴리를 보고 나서 죽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나폴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나폴리만의 언덕에서 베수비오 화산을 바라본 풍경은 특히 인상적이어서 베수비오 산을 정면으로 보면서 카라치오로 해안도로를 거닐면 곧 돌로 된 안벽에 다다른다. 그 방파제에 둘러싸여진 작은 만(灣)이 산타루치아이다. 이 곳은 특히 야경(夜景)이 아름다운 항구이며, 유명한 노래 <산타루치아>는 바로 이곳의 정경을 노래한 뱃노래이다. 나폴리의 거리에서 베수비오 산을 올라가려면 해안에서 산기슭의 프리아노까지 교외철도로 가서 다음은 쿡크 회사의 애프트식 전차로 바꾸어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1880년 이 등산전차가 생겼을 때 이 개통을 축하하는 노래로서 루이지 덴차가 작곡한 것이 유명한 <푸니쿨리 푸니쿨라>이다. 6/8박자로 약동하는 듯한 반주의 리듬이 즐거운 등산의 느낌을 준다. 나폴리를 노래한 민요로는 이 밖에 <머나먼 산타루치아>, <잘 있거라 나폴리> 등이 널리 애창되고 있다.

 산 레모 가요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4, 5년쯤 되어 전후의 혼란이 수습되자, 유럽의 관광지라고도 할 수 있는 이탈리아는 관광선전을 폈다. 그 기회를 잡은 것이 산 레모 가요제(San Remo 歌謠祭)이다. 산 레모는 이탈리아 반도 서북단에 있는 항구도시이며, 거기서부터 모나코, 니스 등 아름다운 남프랑스의 해안이 계속되고 있다. 나폴리 가요제가 비록 오랜 전통이 있기는 하지만 사양길에 접어든 이즈음에는 산 레모가 일약 노래의 세계에서 각광을 받았다. 제1회 산 레모 가요제가 개최된 것은 1951년이며, 이후 1월 말에서 2월 초에 걸쳐 3일간 개최되고 있다. 칸초네라 하여 새로운 인기를 부르고 있는 것은 이 산 레모의 가요제에 소개된 가요곡 중 <알 디라>, <보라레> 등은 널리 애창된 곡이다.

 에스파냐 민요

에스파냐의 민요는 프랑스나 독일의 민요보다 훨씬 리드미컬하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이 춤을 위한 노래이다. 에스파냐은 춤의 나라라고 할 만큼 춤이 번성하여, 그 종류도 여러 가지이다. 호타, 말라게냐, 세기딜랴, 론데냐, 볼레로, 폴로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에스파냐의 특색을 나타낸 것이 호타이다. 호타는 3/8박자로 된 템포가 빠른 음악인데,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붙어 있다. 호타 아라고네자, 호타 발렌시아나, 호타 데 사라곳사 등이 있는데, 호타 아라고네자라는 것은 아라곤 지방의 호타라는 뜻이다. 본래가 호타는 에스파냐에 있던 것으로서, 에스파냐이 아직 무어인에게 지배되고 있던 12세기경부터 있던 춤곡이다. 그 때문에 단지 호타라고 이름붙였을 뿐 그 이상 아무런 설명도 없는 곡이 여러 개 있다. 호타에서나 말라게냐에서 에스파냐 춤곡을 추는 데는 기타와 캐스터네츠로 반주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프랑스 민요

이탈리아의 노래에서는 새로운 민요풍 유행가만이 알려져서 순수한 민요는 의외로 노래되지 않고 있다. 그와 같이 프랑스의 곡으로는 이른바 샹송이 소개되어 옛날부터 있었던 프랑스의 민요는 극히 일부만이 알려져 있는 데 불과하다. 프랑스어는 비음(鼻音)이 많은 발음으로 말의 억양에도 미묘한 뉘앙스가 있어, 이탈리아어나 독일어같이 강한 악센트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프랑스의 노래는 이탈리아 민요와 같이 화려하지는 않으며, 또 독일 민요와 같이 멜로디의 선이 명확하지도 않다. 프랑스어를 학습할 때 잘 불리는 것에 <아비뇽의 다리>가 있다. 이는 동요의 부류에 속하는 것이나, 이런 곡을 들어도 프랑스의 노래가 선율적으로 보아 얼마나 움직임이 적은가를 알 수 있다. 오래된 민요로 유명한 것에 <마브루공(公)>이 있다. 17, 18세기경부터 노래된 이야기조의 노래로서, 마르프라케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마브루공을 노래한 것이다. "마브루가 출정한다. 미롱통, 미롱통, 미롱테느,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다…"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뒤로 22절이나 계속되는 이야기이다. 멜로디는 매우 간단하나, 같은 문구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데에 노래로서의 재미가 있고, 게다가 각절마다 미롱통, 미롱통이라고 같은 소리가 나온다. 또 프랑스어 특유의 리에종이 어딘지 모르게 익살맞은 감을 준다. 이 노래는 루이 16세의 황태자의 유모가 된 마담 포아트랑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부르기 시작해서 파리의 상류계급에 유행하였다는 말도 있다. 이 멜로디에는 "For He's a Jolly Good Fellow"란 영어 가사가 붙어 영국과 미국에서도 많이 노래되고 있다. 또 비제 작곡의 모음곡 <아를의 여인>에서 전주곡의 주선율이 되고 있는 것은 프로방스의 오래된 크리스마스 캐럴 <세 임금님>인데, 이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한편 특기할 것은 캐나다 민요의 대부분은 오래된 프랑스 민요가 그대로 노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17세기 초 아메리카 신대륙의 동해안을 개척한 프랑스의 이민이 가져온 것으로, 본국인 프랑스에서는 이미 잊혀진 노래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다.

 독일 민요

포르크스리이트, 즉 독일민요(獨逸民謠)는 독일국민의 생활에 깊게 뿌리를 박고 있다. 독일민요는 이탈리아나 에스파냐 민요같이 장식적인 것은 아니다. 또 리듬감을 강조하는 일도 없다. 색채적인 것이나 관능적인 것은 독일인의 기질에 맞지 않는다. 극히 간단한 멜로디를 보아도 그 구성이 심메트리컬하여 전체적으로 딱딱한 느낌이 있다. 꾸밈이 없는 소박함과 고지식함이, 찬송가와 같은 종교감과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 많다. 오늘날의 독일민요를 이룩한 것은 14세기 이후 직업별로 모인 마이스터징거나 16세기의 종교운동가 마틴 루터(1483-1546)의 공적이 크다. 즉, 이들 그룹 활동에 필요하여 독일에서는 합창이 널리 보급된 것이다. 합창할 때 하모니를 붙이는 것은 화성학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그 화성학을 가장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이 독일인이다. 사물을 이론적으로, 또한 구성적으로 생각하는 독일인에게는 가장 알맞은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반더포겔

합창하는 독일청소년운동에 반더포겔(Wandervogel)이 있었다. 반더포겔 즉 '철새'라는 이름의 운동이 시작된 것은 1896년 빌헬름 2세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베를린의 슈테브리츠 고등학교 학생들이 도시를 떠나 산야를 돌아다니면서 캠프 파이어에 둘러앉아서 기타를 반주로 합창한 것이 효시이다. 이 운동에 공명하여 적극 협조한 유력한 사람으로 리하르트 실만이 있었다. 실만은 루르 지방의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이 공업지대에서 살고 있는 소년들이 참새라면 매연에 더러워진 까만 참새밖에는 모르며, 물고기라면 어물가게에 있는 고기로만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창백한 얼굴을 한 소년들을 소생시키는 길은 넓은 산야나 농촌을 거닐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실만의 운동은 드디어 결실하여 '유겐트헤야베르크(청년의 집)'가 되었고, 그것이 더욱 발전하여 1925년에는 유스호스텔 조직이 스위스에서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유겐트헤야베르크의 운동이 1933년에 이르러 '히틀러 유겐트'로 탈바꿈된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름이 어떻게 변하든 반더포겔의 정신은 독일청년 사이에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반더포겔은 여가를 즐기는 하이커와는 달리 결코 사치한 차림을 하지 않았다. 더욱이 사람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독일민요의 합창곡집 <츠프가이겐한슬>이었다. <츠프가이겐한슬> 외에도 독일에서는 예로부터 학생가곡집으로 <콘멜스>라는 것이 있었던 것도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가곡집이나 합창곡집이 있다는 것은 독일의 민요운동이 번성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중부 유럽 민요

유럽의 중부지방에 있는 나라들은 지리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국경이나 국적의 변동이 종종 있었고, 따라서 민족의 이동도 심하여 혼혈도 자주 있었다. 이와 같이 민족적 색채가 명확하지 못하거나 오랜 전통과 역사가 없는 곳에는 뛰어난 민요가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헝가리나 체코와 같이 특수한 민족음악이 있는 나라도 있지만, 대개 중부 유럽의 민요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헝가리 민요

지난 날에는 위대한 영광을 자랑했던 나라이지만, 300년 전경 터키인에게 점령되었고, 이어서 오스트리아에 병합된 일이 있다. 그 때문에 정치적인 불안과 문화적인 혼란으로 이 나라는 진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민족음악은 많은 음악가의 주목을 끈다. <헝가리 광시곡>을 작곡한 리스트, <헝가리 춤곡>을 작곡한 브람스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리스트나 브람스가 인용한 것은 헝가리 집시의 음악이며 본래의 헝가리 민요는 아니었다. 헝가리 민요가 큰 각광을 받게 한 사람은 바르토크와 코다이였다. 베라 바르토크(1881-1945)가 순수한 헝가리 민요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1905년의 일이다. 그는 부다페스트의 음악학교에서 피아노 교수를 하는 한편 틈만 나면 지방 농민과 접촉하여 민요와 민악의 채보(採譜)를 계속했다. 이 작업은 1914년까지 계속되었는데, 조르단 코다이(1882-1967)의 협력으로 두 사람이 채보한 헝가리 민요는 6000곡에 달하였다. 그러나 바르토크의 민요 탐구의 손은 더욱 뻗어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루마니아에까지 이르렀다. 본래 순수한 헝가리 민요란 집시의 것이 아니고 토착화된 마자르인의 것이었다. 그것은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알바니아 음악과 함께 헝가리 음악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서, 독일음악과도 다르며 슬라브 음악과도 다른 것이었다. 바르토크가 수집한 헝가리나 루마니아 민요는 그것이 소재가 되어 실내악곡 같은 작곡이 됐다. 그러나 헝가리 민요가 옛날 모습대로 우리에게 노래된 일은 아직 없다.

 체코 민요

음악문화가 높은 수준에 있는 점에서는 체코를 들 수 있다. 체코는 체고인과 슬로바키아인으로 구성된 체코슬로바키아가 1992년도 12월 31일에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각각 분리 독립한 나라로서 그 전까지는 슬라브인과 헝가리인, 독일인이 섞여 있다. 그렇기에 자국 특유의 민요는 그다지 많지 않다.

 오스트리아 민요

예술음악에 뛰어난 나라가 반드시 민요에서도 뛰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는 예로 오스트리아를 들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유럽 음악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등의 대음악가들이 이 도시에서 생활하였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민요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위스 민요

스위스 국경에 가까운 티롤 산악지대에 가면 거짓소리(假聲)를 사용한 요델이 발성법으로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이 지방에는 산악인다운 한가롭고 민족적인 노래가 남아 있다.

 러시아 민요

러시아 전 영토에 2억의 인구와 2백의 종족이 살고 있으므로, 민요에도 다양한 색채의 민요가 있다. 그 민요를 장조인 곡과 단조인 곡으로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단조인 곡이 많다. 따라서 대체로 어두운 느낌을 주고 있다. 또 러시아 민요의 멜로디를 연구해 보면, 본래부터 다성적(폴리포닉)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먼저 독창으로 시작되는 경우에도 곧 이어서 합창으로 옮겨가는 것 같은 연주가 많다. 러시아인이 합창에 대하여 천분을 타고난 것은 정평이 있는데, 돈 코사크 합창단 이후 각종의 합창단의 연주를 들으면 대지의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것 같은 힘찬 느낌을 준다. 가장 유명한 러시아 민요에는 샤리아 핀의 노래로 유명해진 <볼가강의 뱃노래>가 있다. 아직 증기선이 쓰이지 않았을 때 볼가강을 오르내리는 배들은 여울 같은 곳에 이르면 배를 끄는 인부들의 손을 빌려 강을 거슬러갔는데, 이때 인부들이 불렀던 노동가이다. 그 정경은 러시아의 화가 레핀이 그린 배를 끄는 명화에서 엿볼 수 있다. 볼가강은 러시아의 중앙부를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큰 강으로 러시아 민족은 이 강에 깊은 애착을 쏟고 있으며, '어머니인 볼가'(마추슈카 볼가)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민요에도 <어머니인 볼가>, <볼가강 내려가기> 등 이 강을 노래한 것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역시 <볼가강의 뱃노래>이다. 옛 제정시대의 러시아에 어두운 분위기가 있었음은 확실하며, 대부분의 러시아 민요는 그러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오히려 그와 같은 어두운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감명깊은 민요가 나왔다고도 하겠다. <포로>, <유형인>, <작업의 노래>, <밑바닥의 노래> 등 어느 것이나 어두운 제정 러시아를 반영하는 것들이다.

 북유럽 민요

北Europe 民謠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의 북유럽 4개국 중에서 음악활동이 번성한 나라는 노르웨이와 핀란드이다. 북유럽의 민요는 덴마크, 스웨덴을 포함하여 대체적으로 활발한 곡이나 명랑한 곡상으로 된 것이 드물다. 그러나 러시아 민요처럼 격한 감정으로 부른 것도 없다. 그 이유는 이 나라들의 중후(重厚)한 국민성이 민요에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노르웨이 민요

Norway 民謠 노르웨이 민요에는 그레고리오 선법으로 한 것이 많다. 그 이유는 이 나라가 5세기간이라는 긴 세월을 카톨릭 교회의 지배 아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노르웨이가 낳은 최대의 음악가 그리그는 민요나 농민의 춤곡을 따서 많은 피아노곡을 작곡했다.

 핀란드 민요

Finland 民謠 핀란드 농민 사이에 전해오는 민요를 소개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이며, 그 때까지는 거의 무시되고 있었다. 이 나라의 위대한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애국적인 교향곡을 여러 편 작곡했지만, 민요를 토대로 하지는 않았다.

 영국 민요

잉글랜드 제도는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4개 지역으로 구분돼 있으나, 민요에서 뛰어난 것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이다. 잉글랜드의 주민은 튜턴족에 속하는 앵글로색슨 사람이고,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는 프랑스와 같은 켈트족이다. 튜턴족은 기질이 고지식하고 굳세어 종교에서도 이론을 존중하는 프로테스탄트인 데 반하여, 켈트족은 감정형으로 로마 카톨릭을 믿고 있다. 이러한 기질상의 차이가 민요에도 나타나 있다.

 스코틀랜드 민요

<즐거운 나의 집>은 잉글랜드의 민요지만,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은 스코틀랜드의 민요이다. 이것은 영어의 Old Long Since를 스코틀랜드의 사투리로 말한 것이다. 시의 제2절 이하는 로버트 번스 작이다. 또 같은 번스의 시인 <컴인 드루 더 라이>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영시는 라이보리밭에서 남녀가 만나는 노래라고 보통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의 해설서에 따르면 스코틀랜드의 에어셔의 달루리에 있는 라이강의 여울을 징검다리로 건너 온 젊은 남녀가 만나는 노래라고 되어 있다.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가면 우선 서해안 쪽에 있는 것이 던프리스의 도시인데, 시인 번스가 만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니스강을 따라가면 <애니 롤리>의 고향 맥수웰튼에 이른다. 애니 롤리는 맥스웰튼의 귀족 로버트 롤리 경의 딸이며, 원시(原詩)에 의하면 "한때 태양이 비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노래되어 있다. 작곡은 스콧 부인(1810-1900)이 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항구도시인 글래스고에서 북쪽으로 가면 로울랜드라고 하는 평원지대가 나오고, 그 반대쪽에 있는 산악지대가 이른바 하일랜드이다. 로울랜드에는 가는 곳마다 호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로크 로몬드 호수이다. 로크라는 말은 스코틀랜드어로서 영어의 lake에 해당한다. 스코틀랜드 사람이 발음하면 로흐와 같이 들린다. <로크 로몬드>도 멜로디가 아름다운 스코틀랜드 민요의 하나인데 원시는 존 스콧 부인의 작이라 하며, 17세기 말엽 혁명을 일으킨 자코뱅 당원의 노래로서 불리었다.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악기에 백파이프라는 것이 있다. 백파이프와 같은 원리의 악기는 유럽 각국에도 있었으나 가장 유명한 것이 스코틀랜드의 것으로, 18세기 말부터 하일랜드 지방에 있는 군악대용으로 되어 있다. 백파이프를 안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병사의 모습은 그림과 같이 아름답다. 스코틀랜드식의 빨강과 파랑줄이 있는 바둑판 무늬를 타탄이라고 하는데, 이 타탄 무늬가 있는 킬트(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아일랜드 민요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1937년에 독립하여 에이레 공화국이 되었다. 이 나라에는 5세기부터 6세기경 켈트족의 아일랜드에 전성기를 가져온 성인(聖人)이 있었다. 그 성인을 모신 곳이 센트 패트릭스이며, 지금은 아일랜드의 수호신이 되어 있다. 그리고 성 패트릭스의 날을 찬양한 노래가 이 나라의 국가로 되었다. 이 국가는 6/8박자라는 빠른 지그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아일랜드에서는 Jig라고 쓴다. 프랑스의 Gigue와 같은 것이며, 두 나라가 같은 켈트 인종이고 음악의 형식에도 공통점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섬에 있는 32주 가운데 북쪽의 6주만은 옛날부터 스코틀랜드 사람이 많았으므로, 에이레 공화국에 가담하지 않고 북아일랜드라 하여 영국에 속하고 있다. 이 북아일랜드를 알스터라고 하며, 수도는 벨파스트이다. 벨파스트의 서북쪽에 알스터의 한 주인 런던데리주가 있다. 이 지방 사람은 옛날부터 데리라고 부르고 있다. <런던데리의 노래>는 이 지방에 있던 오랜 멜로디로서 이 멜로디에는 여러 사람이 시를 붙이고 있다. 토머스 무어도 그 중 한 사람인데, 이 곡은 <대니 보이>라는 제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 아일랜드의 시인 토머스 무어가 시를 붙인 것으로 유명한 민요로는 <여름 장미>가 있다. 멜로디가 아름다운 민요가 많이 있으나, 주민의 생활 정도는 아주 낮고 빈곤하다. 그 때문에 이 지방에서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잇달아 이민을 떠난 시대가 있었다. 근대 미국에서는 오랜 민요의 리바이벌이 한창인데, 그 리바이벌되는 곡 중에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의 민요가 많은 것은 이런 까닭에서이다.

 미국 민요

미국의 50주에는 75개 국가로부터 혈통이 다른 여러 인종이 모여 있다. 이것을 피부색으로 대별하면 인디언, 흑인, 백인으로 나눌 수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현재의 백인이 유럽에서 이주해 온 몇 세기 전부터 살고 있던 인종으로서, 이른바 레드 맨이라 하는 선주의 토착인이다. 인디언에게는 인디언 특유의 음악이 있으나 미국민요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작다. 그러나 흑인과 백인의 민요에는 들을 만한 것이 적지 않다.

 흑인 민요

흑인이 미국음악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특히 재즈를 낳은 모체는 흑인이지만, 민요를 논할 경우 재즈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흑인민요라고 하면 흑인영가(Nigro spiritual)를 떠올릴 수 있는데, 이것은 특정의 작곡가가 없다는 점에서 민요에 가깝다. 이 성악곡은 흑인이 남부지방의 교회에서 익힌 찬송가와 흑인이 이전부터 부르던 당김법(切分法)이 있는 농원가가 혼합하여 생긴 것이다. 흑인 사이에는 본래 주빌리(jubilee)라고 하는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는 일단 잊혀졌었으나 1871년에 조지 화이트가 학장이 되어 개설한 픽스 대학의 관계자에 의하여 부활되었고, 그 합창운동이 각지에 전개되었다. 흑인영가는 이 운동에 편승하여 각지로 전파되었다. 흑인영가에 종교적 색채가 짙은 것은 <깊은 강> <스윙 로우 스위트 채리 오트> <고우 다운 모제스>, 그 밖의 명가를 들으면 곧 알 수 있다.

 개척자 민요

백인음악은 유럽에서 이주해온 백인의 개척사에 이어져 있다. 1620년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온 영국의 이민이 최초로 신천지에서 자리잡은 곳은 동북부의 보스턴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뉴잉글랜드 지방이었다. 거기서 사람들은 자연과 싸우면서 농지를 개척할 뿐 아니라 선주의 토인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편, 영국의 본국 정부로부터 받는 압박도 있어 개척민의 생활은 완전히 전투적인 것이었고, 이런 상태는 17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와 같은 험한 개척민의 원시적인 생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열렬한 신앙이며 찬송가 합창이었다. 그것은 청교도적인 엄숙함을 지니고 관능적인 일체의 것을 물리치며 악기의 반주조차 없는 것이었다. 당시의 미국음악을 후세의 사가는 '황야의 음악'이라고 하는데, 글자 그대로 황야의 음악이었다고 하겠다. 오늘날에도 미국학생의 노래나 대중적인 가곡을 볼 때 그 속에 항전적인 것이 많은 것은 그러한 역사적 필연에서 생긴 것이다. <성조기>, <헤일 컬럼비아>, <배틀 크라이 오브 프리덤>, <배틀 힘 오브 더 리퍼블릭>, <마칭 드루 조지아> 등은 모두 이에 속하는 것들이다. 신대륙에 건너온 이민은 처음에 동북부의 평원지대인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등의 여러 주에 정착했으나, 평원지대의 개척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로 중앙부의 산악지방, 즉 서부로 뻗어갔다. 어느 나라 민요도 다 그렇지만 교통이 뚫린 곳부터 먼저 오랜 민요는 잊혀지고 교통이 불편한 지방에만 민요가 남아 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순수한 민요의 보고(寶庫)로 되어 있는 곳은 켄터키나 테네시의 산악지방과 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 등의 인적이 드문 지방 등에 민요가 남아 있다. 이런 지방은 개척민의 근거지이기는 했으나 철도의 노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외부와의 교섭이 끊기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악지방의 민요로서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영국의 오랜 발라드이다. 이 오랜 발라드는 그대로의 형태로 노래되고 있기 때문에 현대와는 거리가 먼 기사와 귀부인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또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의 민요에 다른 가사가 붙어 있기도 하다. 민요 중에서도 특히 단순한 아름다운 멜로디의 하나인 <온 톱 오브 올드 스모키>를 예로 들면, 이것도 오래 전부터 영국에 있던 것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의 발라드에서 전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민요는 농민이나 산악지대의 것에 한하지 않고 바다의 노래에도 그러한 경향이 있는데, <셰난도>도 그 중 하나이다. 선원의 노래를 샨티라고 하는데, <셰난도>는 샨티 중에서 특히 아름다운 곡이라 하겠다.

 카우보이 민요

미국에서 가장 소박한 음악감정을 지닌 것은 흑인에 이어 카우보이일 것이다. 카우보이가 활동한 주요 지역은 서부지방이었다. 최근에 와서는 교통망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큰 목장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옛날에는 수십 명의 카우보이들이 많은 가축떼를 몰면서 목초가 있는 지방에서 지방으로 이동하면서 월동(越冬)하였다. 대규모적인 이동은 텍사스에서 캔자스, 몬태나에까지 이르렀으며, 미국의 중앙을 북에서 남으로 종단(縱斷)하는 일도 있었다. 이 기나긴 여행을 위로한 것은 노래와 기타 또는 밴조의 반주였다. 요컨대 그들의 '라운드 업'(목장 순찰)에는 음악이 있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감상적이 될 때에는 <언덕 위의 나의 집> 같은 멜로디를 불렀다. 카우보이의 노래에도 아일랜드 민요를 원곡으로 한 것이 있다. 가령 <카우보이의 애가>는 <랄레도의 거리>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19세기 중엽부터 미국에서 노래되어 왔는데, 이 원곡은 아일랜드 민요인 <언포추네이트 레이크>였다. 또 텍사스의 카우보이 노래로 소개되어 있는 <그린 그로우 더 라일락>도 아일랜드 민요 <그린 그로우 더 로렐>을 바꾼 것이라 한다.

 하와이 민요

하와이는 1959년 미국의 50번째 주로서 마지막으로 연방에 가입되었지만, 이 섬나라는 카나카족을 주체로 하여 복잡하게 뒤섞인 혼혈의 주민으로 되어 있다. 대표적 민요인 <알로하 오에>는 하와이 왕국의 최후의 여왕 리리우오카라니가 1878년에 가사를 지어, 그 가사에 맞추어 독일인곡 밴드마스터가 곡을 붙인 것이다. 그때 멜로디의 힌트로 된 것은 미국의 작곡가 찰스 컨버즈의 꿈 <더 록 비사이드 더 시이>였다고 하며 이것 역시 혼혈적인 명곡에 지나지 않는다.

 라틴아메리카 민요

멕시코와 중남미에 걸쳐 독립국이 20개나 있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는 라틴계의 나라들이다. 이들 여러 나라는 16세기 이후 대략 3세기에 걸쳐 대부분이 에스파냐의 지배 아래 있었고, 브라질만이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따라서 브라질만은 포르투갈어를 일상어로 하고 있으며, 그 밖의 나라에서는 에스파냐어를 쓰고 있다. 이들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 중에서 민속음악으로 특색이 있는 것은 멕시코의 마리아치, 쿠바의 룸바, 아르헨티나의 탱고, 브라질의 바이욘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룸바, 탱고, 바이욘 같은 것은 이른바 파퓰러 음악에 속하는 것으로서, 순수한 민요와는 얼마간 그 취지를 달리하고 있다.

 멕시코 민요

멕시코 특유의 연주형식에 마리아치가 있다. 보통은 바이올린·트럼펫 또는 클라리넷과 같은 멜로디 악기들과 기타·기타론(대형의 베이스 기타)·비웨라(소형의 기타)와 같은 리듬악기로 되며, 7, 8인의 편성이 표준이다. 멕시코에서 마리아치가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며 1907년경부터였다. 그러나 멕시코의 민요로 알려져 있는 <셰리트 린드>나 <라 말라게냐>와 같은 곡은 자주 연주되는 마리아치의 곡목이다. <셰리트 린드>에는 페르난데스곡과 멘도사곡 2종이 있는데, 멕시코에서 자주 연주되는 것은 후자의 왈츠조이다. 셰리트 린드란 '푸른 하늘' 또는 '아름다운 하늘'이라는 뜻이나, 노래일 경우에는 연인을 부르는 애칭으로 하고 있다. 또 멕시코의 민족적인 색채가 짙은'라는 뜻이나 물론 도시에서도 노래되며, 3박자와 4박자의 것이 있으나 대개 슬로우 템포로 감정을 란첼라보다 더욱 향토색이 짙은 것으로는 '손'이 있다. '손'이라 함은 영어의 '사운드'로, '음'이라는 뜻이다. 지방에 따라 각종 '손'이 있는데, 손 우아스테코라 하면 우아스테카 지방의 손, 손 하리시엔이라 하면 하리스코주의 손 등과 같다. 가장 화려하고 일반에게, 환영받는 것이 손 우아스테코이며, <라 말라게냐>와 <라 조로나> 등의 명곡이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가성(假性)을 써서 강한 감정에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라 말라게냐란 에스파냐의 말라가시의 여인을 말하는 것이나, 여기서는 여인의 별칭으로 쓰이고 있다. 마림바라는 악기는 멕시코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통 알고 있지만, 멕시코의 남부 차파스 주에서 인접한 나라 과테말라 일대가 본 고장이다. 이 악기는 실로폰을 대형으로 한 것과 같은 것으로, 보통 저음부에서 고음부까지를 3대로 나누어 나란히 놓고 이것을 몇 사람이 연주한다. 마림바는 티크와 같은 단단한 나무로 만든 것인데, 이것을 개량하여 금속제로 한 것이 비브라폰이다.

 자메이카섬 민요

쿠바나 아르헨티나에도 예로부터 내려오는 민요가 없는 것은 아니나, 특히 해리 베라폰테에 의해서 유명해진 것이 자메이카섬의 민요이다. 베라폰테는 1927년에 뉴욕에서 출생하였는데, 아버지는 마르티니크섬의 선원이고, 어머니는 자메이카 사람이었다. 8살 때 어머니의 고향인 자메이카로 이주하여 거기서 소년시절을 보냈다. 카리브해의 한가운데에 있는 자메이카섬에서 자란 것이 베라폰테의 장래를 크게 좌우했음에 틀림없다. 이 서인도 제도에서 소년시절에 배운 선원의 노래라든가 어부의 노래 등이 뒤에 크게 히트한 곡목이 되었다. 베라폰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데이오 데이오'라고 절규하는 듯한 <바나나 보트>의 노래는 어디에선가 들은 적이 있을 것이고, 또 '마틸다 마틸다'라고 되풀이하여 부른 강한 이상은 잊지 못할 것이다. 서인도 제도의 민요형식인 칼립소는 전적으로 베라폰테에 의하여 소개된 것이다. 칼립소의 본고장은 서인도 제도 중에서도 특히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바르바도스의 여러 섬이며, 원래는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가 톰톰(tomtom, 토인의 원시적인 타악기)의 리듬에 맞추어 부른 것이다. 칼립소는 작업중에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금지되고 있던 토인들이 그들의 방언을 써서 의견교환이나 뉴스의 전달을 위해 부른 노래였다. 아열대에 있는 서인도 제도가 리듬의 나라라는 것은 쿠바의 민속음악에서 하바넬라의 리듬이 나왔고, 그것으로 에스파냐의 작곡가 일라디에르가 불후의 명가(名歌) <라팔로마>를 작곡한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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