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양왕 원년에
위나라에 대비하기 위해 평읍(平邑)과
중모(中牟)의 길을 개통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2년에 이목(李牧)이 장수가 되어
연나라를 공격하여 무수(武遂)와 방성(方城)을 함락시켰했다.
진나라가 춘평군(春平君)을 불러들여 그를 억류했다.
설균(泄鈞)이 그를 위해서 문신후(文信侯, 여불위)에게
“춘평군은 조왕이 매우 아껴는 인물로 낭중(郎中)들이 시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들 ‘춘평군이 진나라에 가면
진나라는 분명 그를 억류시킬 것이다’라고 공모하여
진나라로 들여보낸 것입니다.
군께서 그를 억류시키면
조나라와는 사이가 끊어지고 낭중들의 계략이 들어맞게 됩니다.
군께서는 춘평군을 보내 평도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춘평군은 말과 행동 모두 조왕의 신임을 받고 있는 터라
조왕은 분명 넉넉하게 조나라의 땅을 떼어 평도와 바꾸려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문신후는 “좋다.”며 춘평군을 보냈다. 한고(韓皐)에 성을 쌓았다.
3년에 방훤(龐煖)이 장수가 되어 연나라를 공격하여
장수 극신(劇辛)을 포로로 잡았다.
4년에 방훤이 조나라, 초나라, 위나라, 연나라의 정예병을 거느리고
진나라의 최(蕞)를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동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여 요안(饒安)을 취했다.
5년에 부저(傅抵)가 장수가 되어 평읍(平邑)에 주둔했다.
경사는 황하 남쪽 동양(東陽)의 병사를 통솔하여 황하의 다리를 지켰다.
6년에 장안군(長安君)에게 요(饒)를 봉해 주었다. 위나라가 조나라에 업(鄴)을 주었다.
9년에 조나라가 연나라을 공격하여 이(貍)와 양성(陽城)을 취했다.
군대가 철수하지 않았는데 진나라가 업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도양왕이 죽고 아들 유목왕(幽繆王) 천(遷)이 즉위했다.
조 효성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도양왕(悼襄王)이 즉위하여
악승(樂乘)을 염파 대신 장군에 임명했다.
염파가 노하여 악승을 공격하자 악승은 달아났고,
염파도 결국은 위나라의 대량(大梁)으로 달아나 몸을 맡겼다.
그 다음 해, 조나라는 이목(李牧)을 장군으로 삼아
연나라를 공격해 무수(武遂)와 방성(方城)을 함락시켰다.
염파가 오래 양(梁)나라에 머물렀으나
위나라는 그를 믿고 기용하지 않았다.
조나라는 오랫동안 진나라의 군대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조왕이 다시 염파를 쓸 생각을 했고,
염파 역시 조나라에 기용되고 싶어 했다.
이에 조왕은 사신을 보내 염파가 아직 쓸모가 있는지를 살피게 했다.
염파와 원수 사이인 곽개(郭開)는
사신에게 많은 돈을 주어 염파를 모함하게 했다.
조나라의 사신이 염파를 만났다.
염파는 밥 한 말과 고기 열 근을 먹고는
갑옷을 입고 말에 뛰어올라 아직도 자신이 쓸모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조나라의 사신은 돌아와
왕에게 “염 장군이 늙었지만 밥은 잘 먹습니다.
그러나 신과 같이 앉아 있는 동안 자주 변(오줌)을 지리더군요.”라고 했다.
조왕은 염파과 늙었다고 생각하여 결국 부르지 않았다.
초나라가 위나라에 염파가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몰래 사신을 보내 그를 맞아들였다.
염파는 초나라의 장수가 되었지만
아무 공도 세우지 못한 채
“나는 조나라의 병사들을 지휘하고 싶다.”라고 했다.
염파는 결국 (초나라의) 수춘(壽春)에서 죽었다.
- 김영수, 사기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