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고후 2:14절
제 목 : 이기는 자가 되라
일 시 : 2023. 8. 9.
고린도후서 2: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사도 바울은 그의 삶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다가 다메섹 길 위에서 해보다 더 밝은 예수님을 만난 후 평생 주님께 붙들린 바 된 그가 감사한 일이라면 우리 또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무엇을 감사했습니까?
1.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승리자이십니다. 그리고 항상 이기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자기 백성들에게 항상 이길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힘만 믿고 살다가 넘어지고 실패한 사람들을 불러서 이기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시29:11/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고 했으며, 시68:35/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되면 반드시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또한 고전10:13/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가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전쟁에서든지 마귀의 시험에서든지 항상 이길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성도들이 넘어지고 실패합니까? 성도들에게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셔서도 아닙니다. 다만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마28:19-20절에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관계없이 함께 하시는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더욱더 친밀한 관계로 만들기 위해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여 마음 판에 세길 때 주님은 더욱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를 보시면 대부분의 교회와 성도들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1) 에베소교회는 처음사랑을 끝까지 지키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계2:4-5/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했습니다. 버리다란 압히에미 라고 하는데 a) 보내다 b) 버리다, 포기하다 c) 하게 하다, 허락하다 라는 뜻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이 떠나는 것을 허락했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예수님과의 관계가 점점 더 친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강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부관계가 그렇듯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지게 되면 나중에는 별거하게 되고 이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처음 사랑했던 그 사랑을 점점 더 승화시키고 성숙한 사랑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 일을 하지 않게 되면 부부의 관계는 깨어지게 되는 것처럼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믿는 자들은 예수님과의 뜨거운 처음 사랑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 사랑을 성장시키고 발전시켜서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믿을 때보다 더 뜨거운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는 그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더 이상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을 마땅히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하지 않음으로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2) 버가모교회가 이기지 못한 것은 이단자들을 용납한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딛3:10/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단을 멀리하지 않고 경계하지도 않고 가까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단에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단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니다. 벧후2:1/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단을 용납하게 되면 두 가지의 일이 일어납니다.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게 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버가모교회는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퍼트린 이단을 멀리하고 경계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3) 두아디라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했습니다.
그래서 계2:20-21/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세벨을 용납했다는 것은 두 가지를 용납했다는 것인데 음행과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를 책망하여 꾸짖고 쫓아내야 하는데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고 주님의 눈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목회자는 주님의 눈치를 보아야 하지 사람의 눈치를 보아서는 안됩니다. 두아디라교회는 주님보다 사람을 더 귀하게 여김으로 실패했습니다.
4) 사데교회는 유명무실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계3:1-3/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데 교회가 외적인 형식과 모습은 갖추었으나 신령한 모습은 상실했음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교회건물도 있고 예배도 드리고 하는데 생명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성도로서의 능력을 상실하면 안됩니다. 모든 것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기도도 살아 있고 예배도 살아 있고 전도도 살아 있고 그 외에 모든 것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예배와 모임에 오셔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떠난지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거기에 순종함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실에 실패했습니다.
5)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만과 자기만족에 빠져서 예수님을 쫓아낸 교회입니다.
계3:14-18/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자기 만족에 빠져서 뜨겁지도 차지도 않는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어 보면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지 지금 졸고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못하는 분들은 어쩌면 앞에서 소개한 사데교회나 라오디게아 교회와 동일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기는 자가 됩니까? 사도 바울과 같은 삶을 살면 됩니다. 바울이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항상 예수님 안에 있으면 됩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이 항상 내 안에 살아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때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있게 됩니다. 그러면 항상 이길 수 있습니다. 나와 함께 하신 예수님께서 이기게 하십니다.
2. 두 번째로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어디를 가든지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는 향기가 되도록 만드신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많이 자생하는 백합은 어느 지역으로 옮겨 놓아도 그 향기는 멀리까지 퍼져 나갑니다. 우리 나라에 천리향이라는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향기가 천리까지 같다는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정말 향기가 멀리까지 퍼집니다. 그리고 악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백합이나 천리향과 같은 아름다운 냄새를 풍기는 아름다운 향기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디를 가든지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이고 전도자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교회 다니는지 그렇지 않는지 목사인지 집사인지 비전교회 성도인지 아무도 모른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 내가 목사이며 지금 전도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두 가지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아멘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