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진 '성인'(saint)
반복되는 남편의 불륜을 견디지 못해 아들과 함께 집을 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갖지 못해 입양한 아들이지만 그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것을 원했던 이 여인은 병원의 단층촬영기사로 퇴근이 보장되지 않은 힘든 일을 해야만 했지만 새로운 삶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새로운 결심을 늘 응원해주지 않았죠. 이사하는 첫날부터 이삿짐센터 기사의 실수로 이웃집 나무를 부러뜨리고 떨어진 가지가 주차해놓은 이웃차의 유리를 망가뜨립니다. 아들을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에 보내지만, 유대인이던 아들이 적응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동급생에 비해 작고 약했던 아들은 등교 첫날부터 지갑과 핸드폰, 열쇠를 친구들에게 빼앗기고 교복마처 감추는 바람에 반바지 체육복을입고 먼 길을 걸어 집으로 와야했습니다. 하지만 집 열쇠 마저 친구들에게 빼앗겼기에 현관 앞에 앉아서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때 잘 정돈되지 않은 정원과 부서진 차와 울타리를 가진 이웃집 할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덥수룩한 머리에 정돈되지 않은 수염, 구겨지고 오래전에 세탁한 듯한 복장을 한 괴팍스러워 보이는 할아버지 였습니다. 싸구려 담배를 입에 물고 오래된 카셋트라디오를 목에 건 그 할아버지가 두려웠던 것은 온 몸에 난 상처때문이었는데, 이 상처들은 대부분 술기운에 몸을 가누지 못해 생긴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할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 통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결국 그 집에서 티비도 보고 저녁식사도 하게 됩니다. 연신 담배를 입에서 떼지 않고, 집안은 먼지와 뭔가를 독촉할 때 보내는 붉은 표시가 있는 편지봉투와 서류들로 어지럽습니다. 텅빈 냉장고에서 간신히 찾아낸 정어리 통조림을 비스켓에 얹어 '스시'라고 하며 아이의 주린 배를 채워줍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이 알 수 없는 할아버지가 두려움에 대상에서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뀌고, 마침 퇴근이 불분명하고 야근이 잦은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베이비시터를 요청하면서 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동급생들에게 부당하게 괴롭힘을 당할 때 피할 수 있는 방법(좀 공격적인 방법이지만)도 가르쳐주고, 경마장에도 데려갑니다. 본인의 것은 아닌게 확실하지만 어느 고급요양원의 한 할머니의 옷을 세탁하기 위해 바구니를 함께 옮기기도 하고, 저녁에는 노인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술집에 가서, 콜라를 마시고, 함께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합니다.
한편 양육권을 요구하는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재판이 진행되는 데, 아버지는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제대로 양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녀가 고용한 베이비시터 즉 이 알 수 없는 할아버지와의 행적이 드러나게 됩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경마장이나 술집을 하고, 싸움을 가르치는 것이 좋게 보여질 리 없었죠. 법원은 이 할아버지가 더 이상 아이의 베이비시터가 될 수 없다고 판결합니다. 이 와중에 빛 독촉을 받던 할아버지는 뇌졸증으로 쓰러지게 되고, 우연히 발견한 아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채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게 됩니다. 매일 가던 양로원에서 다급한 전화가 왔지만 받을 수 없었죠. 퇴원후 요양원을 찾아간 할아버지는 그가 돌보던 할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유골이 든 상자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지럽게 쌓여있는 온갖 청구서들과 그가 악착같이 살아가려고 버티느라 생긴 수많은 흔적 곁에 유골이 든 상자가 놓여있습니다. 빛쟁이들에게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지켜려 했던 아내의 패물들과 자신의 과거를 한 때 자랑스럽게 해주었던 참전용사의 기록들을 그는 모조리 쓰레기 봉지에 담아 버립니다. 그리고 늦은 밤 옆집의 아이는 이 알 수없는 할아버지의 알 수 없는 행동들을 쓰레기통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 온갖 고생을 했고, 베트남에 참전해서는 조국을 위해 명예롭게 싸웠고,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까지 받은 용사였습니다. 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 평생을 함께 하다가 그녀가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에 걸리자 자신의 분수에 넘치는 좋은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고 8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녀를 찾았고, 그녀의 옷가지들을 세탁했습니다. 자신은 값싼 정어리로 끼니를 땨우지만 아내가 사랑했던 고양이에게는 최고의 식사를 마련했고, 그래서 그는 늘 돈이 부족했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고 어려운 환경에 있으면서도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려 애썼고, 약하다는 이유로 차별이나 고통을 받고 있는 이웃과 늘 함께 했죠. 이사첫날부터 자신의 차를 망가뜨린 이웃집 모자에게 쌀쌀맞게 대하긴 했지만, 그들이 필요로하는 것들을 주는 것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고, 부러진 나무와 파손된 차에 대한 보상금을 늘 달라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마침 아이의 학교에서 '성인(saint)'라는 주제의 공부가 있었고, 학교행사로 '내가 생각하는성인'을 선정하는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소중한 기억들을 토대로 이 '괴팍해보이는 할아버지'를 성인으로 선정합니다. 이 아이에게 성인은 성인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자질, 그의 도덕성이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느가였습니다. 무언가를 필요로하고, 도움이 절실한 사람에게 자기의 것을 사용하여 그 필요를 채워주고 함께할 수 있는자가 바로 성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성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이 아이의 생각이었습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누가 진정한 이웃이냐고 물으시던 예수님의 질문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