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애고無罫碍故 무유공포 無有恐怖’의 의미를 말하다.
마음에 걸림이 없기에 공포도 없다. 이는 반야심경의 공사상을 몸에 체득한 자가 누리는 대자유의 이상적 모습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크고 작은 갖가지 공포가 깃들기 마련이다. 공포는 무서움과 두려움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닥쳐오는 갑작스런 재난은 물론 엄존하는 고통스런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공포가 없다는 것은 무슨 말이며 과연 그렇다면 무엇 때문인가? 무가애고, 즉 마음에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 걸림, 곧 장애가 없다는 심무가애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마음에 걸리는 온갖 장애를 떠났다면 온갖 공포도 없어지는 것이 자명하다. 문제는 논리적으로는 그리한데 실제적으로도 그러한가 하는 것이다. 불교의 기본적 가르침은 논리적이다. 논리적이기에 실천적일 수도 있다. 논리와 실천 사이에 마음이 있다.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이 흔들리면 아무리 이론이 논리적이어도 실천이 불가능하다. 마음자리가 확실하고 요동이 없으면 이론은 실제가 된다. 참으로 마음이 공한 자리에 머물면 어떠한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른바 요지부동의 마음이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가능한 일이다.
무유공포, 즉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참으로 자유의 사람이다. 마음에 걸림이 없는 자유의 사람은 일체의 경계에 걸리지 않는다. 스스로 경계를 짓고 차별하며 분별함으로써 끝내는 적대시되고 때로는 원수가 되기도 한다. 마음에 생기는 차별과 경계심은 스스로 자기가 만들어 내는 경우일 뿐이다.
보살은 걸림없는 마음을 통해 공을 통찰함으로써 슬픔과 분노와 좌절과 배신과 죽음 등의 온갖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의 의미를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