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지 4 일곱 등잔
37.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38.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찌니 39.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출 25:37-39)_ 23. 등잔 일곱과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을 정금으로 만들었으니 (출 37:23) | |
1. 구약에서 등잔의 중요성: 사람이 하나님을 체험함
기름을 채워서 심지에 불을 펴서 빛을 비추는 등잔이 모든 가지 위에 놓는 것은 외적으로 보이기에 매우 간단하다. 그러나 내제적 의미에서 볼 때 이것은 매우 심오하다. 등잔대 전체가 등잔을 위한 것임을 우리는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은 등잔대가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사실 등잔대의 목적은 빛을 비추기 위함이다.
구약의 성막 안에서 빛을 비추는 기구는 오직 등잔대뿐이다. 그 빛으로 인하여 진설대와 분향단의 실제를 계시한다. 등대 위에 등잔없이 사람은 하나님을 실제로 체험하고 누리며 거룩한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즉 증거궤로 예표하는 순수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2. 신약의 등잔대: 거듭난 믿는이들과 교회들
신약에서 주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에서 아홉 가지의 천국 백성들이 필요한 미덕들을 선포하신 후 (마 5:3-12), 등대를 언급하시기 전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도시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마 5:14) 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빛”은 산위에 있는 도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도시는 단체적으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춘다.
어떻게 이것이 실제가 될 수 있는가? 주님은 즉시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대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마 5:15) 고 말씀하신다.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 이 구원은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하는 역사이다. 즉 등잔이 빛을 비출 때 사람이 구원되고 거듭나게 된다. 주님의 말씀은 강하시다. 등잔의 등불은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대 위에 둔다.
여기 “말(modios, 헬라어)”은 밀가루와 같은 마른 가루를 측량하는 단위이다. 밀가루를 측량하기 위하여 “말”이라는 측량 도구를 사용한다. 이것은 곡식처럼 사람의 기본 필수품은 세상적 필요와 관련있음을 가리킨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난 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말”아래 있던지 아니면 “등대”위에 있게 됨을 주님께서 지적하신 것이다.
말 아래 있는 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오직 그들이 먹고 마시고 생존하며 성공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은 “에바(ephah)”의 절반의 양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실제적으로 매우 작은 양이다. 이 작은 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의 존재의 의미를 잃어 버리고 다른 길로 갈 수가 있다.
등잔을 킨 후에 등대 위에 놓아야 한다. 모든 거듭난 믿는이들은 주님에게 속했고 그의 간증을 비추어야 한다. 등대는 산 위에 위치한 도시와 관련이 있다. 도시는 주님의 간증이 결코 감추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숨기우지 못한다. 모든 등잔들이 있는 등대는 그 도시의 실재이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계속적인 공급을 받고 하나님의 갈망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 표현되는 증거가 필요하다.
세상이 아니라 교회이며
“말” 아래가 아니라 등대 위에 있고
땅에 속한 생활이 아니라 교회 생활이다.
등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하는 자들
계시록 21장에서 하나님은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계21:23)고 말씀하신다.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는 등잔의 실재이시다. 하나님의 눈에서 그는 사람이 타락한 후 첫 번째 등잔이시다.
오늘날 모든 거듭난 믿는이들은 불을 켜서 비출 수 있는 등잔이며 말 아래 두지 않고 등대 위에 있어야만 한다. 동시에 등잔들은 원칙적으로 침례자 요한과 같은 영적인 자들이다 (요 5:35). 가장 영적인 자일 지라도 증거를 위하여 등대 위에 있어야 한다.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요 5:35-36).
기름을 채우기 위하여 등잔을 비움: 성숙한 자는 겸손하게 거함
등잔은 아마 비운 잔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것이다. 개인 또는 단체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가지 꼭대기에 기름을 저장할 수 있도록 등잔이 비워있어야 한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 인들이 배워야할 인성의 원칙이다. 그리스도 자신도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후에도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게 하셨다 (빌 2:9). 그는 또한 마리아에게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요 20:17)고 말씀하셨다. 그는 겸손하게도 우리를 그의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등잔이 비워있기 때문이다.
등잔들의 배열:그리스도의 몸의 약한 지체를 강화시킴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출 25:37) 에서 문자적 번역은 “…등잔들이 마주보고 비춘다” 이다. 이것은 등잔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서 서로 빛을 주고 받는 것이다.
우리는 등잔들이 등대의 가지 위에 있기 때문에 등잔들은 등대에 매우 특별한 위치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일곱 등잔과 가지를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한 달란트의 정금으로 만들었다. 모든 가지와 등잔들은 하나님 자신의 솜씨로 만들어졌다. 하나님은 어떤 가지나 등잔이 자신을 높임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거두어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지와 등잔 모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40장에서 모세는 등대 위에 있는 등잔에 불을 킨 첫 번째 사람이다. 민수기 8장에서는 아론이 등잔의 등을 켜서 등대 앞으로 비취게 하였다.
“그(모세)가 또 회막 안 곧 성막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하고, 또 여호와 앞에 등잔에 불을 켜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출 40:24-25)
“아론에게 고하여 이르라 등을 켤 때에는 일곱 등잔을 등대 앞으로 비취게 할찌니라 하시매 아론이 그리하여 등불을 등대 앞으로 비취도록 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민 8:2-3)
뿐만 아리라 등잔의 방향이 두 가지 경우에 있어서 다르다. 출애굽기 25:37에서 등잔은 “서로 마주보고 빛을 비추다”. 민수기 8:2에서 등잔은 등대 앞으로 비췬다.
이것은 가지 위에 있는 등잔 일곱이 자유롭게 방향을 움직인다. 등잔 일곱은 서로 다른 가지들 위에 자유롭게 놓여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등잔의 소유는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 때의 필요에 따라 등잔을 운행하게 된다.
한 등잔이 매우 연약할 때 다른 등잔들이 특별히 연약한 등잔을 위하여 더욱 빛과 힘을 얻도록 서로 비추는 것이다.
어떤 한 등잔이 너무 연약하다면 여섯 개의 다른 등잔들이 그 약한 등잔에게 촛점을 맞추어서 그로 힘을 얻도록 “서로” 비추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개인과 많은 교회들이 함께 운행하는 원칙은 매우 놀랍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빛을 비추다.” (출 25:37)의 구절에서 히브리어의 “얼굴 (faces: panah)” 은 복수 명사이다. 이것은 서로 마주 대하여 비춤으로 다른 등잔이 많은 면에서 많은 풍성 안에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풍성은 생명과 본성 안에서 풍성이며, 신성한 속성이 인간적인 미덕에서 표현되는 풍성이고, 하나님을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풍성이며, 심지어 생명의 성숙 안에서 풍성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감사를 드려야 한다. 개인이나 단체적으로 빛으로 결론된다. 이기적인 자기 중심의 빛이 아니며 자신을 높이는 빛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빛은 개인과 교회들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증거를 위해야 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할렐루야 나는 가격을 지불했다: 나는 하나님의 치는 역사를 통과하고 있다. 일생동안 계속해서 나는 잔이 되었고 꽃받침이 되었으며 꽃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얻은 빛은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다.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과 교회로 부터 오는 빛은, 줄기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에게 오는 축복이다.” 라고 선포할 수 있다.
첫댓글 내가 얻은 빛은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다.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과 교회로 부터 오는 빛은, 줄기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에게 오는 축복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