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儒·佛·禪에 두루 밝았던 철학자들의 스승
기독교와 유(儒)·불(佛)·선(禪)에 두루 밝아 '철학자들의 스승'으로 불렸던 현재(鉉齋) 김흥호(金興浩·93) 전 이화여대 교수가 5일 오전 7시 28분 별세했다. 김 교수는 개신교 사상가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1890~1981)의 제자 가운데 함석헌(咸錫憲·1901~1989)과 함께 가장 큰 업적을 남긴 학자로 꼽힌다.
김 교수는 1919년 황해도 서흥 태생. 감리교 목사였던 그의 부친은 3·1운동을 이끈 죄목으로 3년간 투옥됐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김 교수는 평양고보를 나온 뒤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고, 귀국 후 고당 조만식의 권유로 황해도 용강군에 용강중학교를 세웠다. 공산정권의 탄압을 피해 1947년 남한으로 내려온 그는 위당 정인보의 주선으로 당시 양주동 등이 재직하던 국학대학에서 철학교수로 강의하게 된다. 비록 법학 학사였지만, 독학으로 공부한 철학의 학문적 수준을 인정받은 데다, 철학 전공자가 절대 부족했던 시대상도 작용한 결과였다.
김 교수는 35세 때인 1954년 춘원 이광수의 소개로 다석 선생을 만나며 삶의 일대 전기를 맞는다. 다석의 강의를 듣던 중 십자가와 부활의 문제에 관해 품어왔던 의문이 일시에 풀리는 경험을 한 것. 1960년대 중반에는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됐고, 귀국 후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종교철학, 기독교문학 등을 28년간 가르쳤다. 김 교수는 특히 2009년까지 45년간 주말마다 이화여대 대학교회 연경반에서 성경과 동서양 고전을 강의·강독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2009년 12월 마지막 강의 때는 학자·종교인 등 300여명이 함께 '스승의 은혜'를 합창했다.
주요 저서로는 '사람 삶 사랑' '하루를 사는 사람' 등 설교집, 요한복음 강해 '빛, 힘, 숨'(전 5권), '주역 강해' '화엄경 강해' '법화경 강해' 등이 있다. 2009년부터는 강영훈, 김동길, 서영훈, 이규행, 이어령, 장상 등 그의 동학과 후배들이 '김흥호 사상전집'(150권 예정)을 펴내고 있다. 현재 13권이 나왔다.
유족은 부인 배인숙 전 금란여고 교장과 아들 동철(평택대 컴퓨터학과 교수)·동근(이화여대 교목실 교수)씨. 빈소는 이대 목동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7일 오전 9시, 장지는 청계산 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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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기자 2012년 1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