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1년 3월 28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10328월] 고강도 감사로 공직기강 다잡을 시기
감사원이 올 상반기에 교육과 공기업, 재외공관, 방위산업 등 기강 해이 및 비리 의혹이 잇따른 4대 분야에 대한 전면적 감사에 들어간다.
가장 먼저 교육 분야의 인사ㆍ회계 비리에 칼날을 겨눈다. 교사 채용과 교장ㆍ교감 승진 관련 부정, 시설물 공사와 급식을 비롯한 각종 납품 과정에서의 비리 근절이 우선 목표다.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이자, 국가 미래가 걸린 교육현장의 투명성은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다만 교육자치제 실시 이후 주요 광역단체 교육감이나 전교조의 영향력과 관련한 논란이 잇따랐다는 점에서 정치적 오해를 살 만한 감사는 최대한 자제해야 마땅하다.
공기업 감사는 민영화를 비롯한 공기업 선진화 방안의 이행 실태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체 주식의 49%를 민간에 공개, 정부가 경영권을 여전히 지배하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는 민영화 방안 자체의 검증보다는 시장경쟁으로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근본 취지를 중심으로 실질적 감사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면서도 경영합리화보다는 임직원 처우를 앞세우는 나태한 관행에 대해서도 철퇴가 내려지길 기대한다. 아울러 전면적 감사 결과를 현행 실적 위주의 공기업 평가 기준을 대대적으로 손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재외공관 감사는 비자발급 업무와 관련한 비리 개연성이 큰 중국과 동남아 지역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공직사회의 몸조심 의식을 지나치게 자극해 필요한 노동력 및 관광객의 입국에 엉뚱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어디까지나 실질 숭상의 감사가 되길 바란다. 국산무기 개발과 구매에 초점이 맞춰질 방위산업 감사는 관련 민간 업체를 포함한 철저한 회계감사도 좋지만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체계 안정성이 중요한 분야인 만큼 무리한 국산화 여부에 대한 정책감사도 이뤄져야 한다.
이번 감사가 부정ㆍ비리 구멍을 메우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정권 후반기 무사안일과 비효율에 빠지기 십상인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소리만 요란해서는 안 하는 것만도 못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10328월] 강남의 ‘다자녀가정’ 자녀가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니
2011학년도 서울지역 자사고와 외고 등 33곳의 입학전형을 분석한 결과,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합격자 2199명 가운데 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 학생은 918명에 그쳤다고 한다. 반면 비경제적 대상자가 1281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으로 추정되는 ‘다자녀가정’ 자녀의 합격률(46.7%)이 저소득층 학생 비율(41.7%)을 뛰어넘는 것으로 드러나 이 제도의 악용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다자녀가정 출신의 합격 비율이 높은 곳은 주로 서울의 강남·서초·강동·양천구 등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의 학교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고의 경우 전체 사회적 배려 대상자 합격자 91명 가운데 75명이, 서초구 반포동 세화여고는 84명 가운데 61명이 다자녀가정 출신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를 수 있을 만큼 상당한 경제적 여력이 있는 계층에서 이 제도의 허점을 교묘히 활용했다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은 사회·경제적 소외계층 자녀들에 대한 교육기회를 넓히기 위해 도입된 매우 의미있는 제도다. 하지만 이런 취지가 무색하게 그동안 제도 악용과 편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서울지역 자사고 입시에서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아닌 학생들의 무더기 편법 입학 사실이 드러나 132명의 합격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과부는 지난해 8월 선발 기준과 절차 등을 강화하면서 “개선안이 시행되면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으나 헛된 호언장담에 그쳤던 셈이다.
교육당국이 왜 다자녀가정 출신을 굳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넣었는지도 의문이다. 출산장려 효과는 둘째 치고 무엇보다 이 제도의 애초 취지와 동떨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규정은 경제형편이 어려운 학생 선발을 꺼리는 학교 쪽과, 자녀들의 좋은 학교 진학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학부모가 짝짜꿍이 되도록 멍석만 깔아놓은 셈이다. 비경제적 대상자 중에서도 다자녀가정을 제외하고 소년소녀가장,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장애인 자녀 등은 거의 합격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이 제도가 얼마나 허점투성이인지를 잘 보여준다. 교육당국이 언제까지 ‘무늬만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계속할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조선일보 사설-20110328월] 외국 독자가 한국 문학을 찾게 하려면
소설가 신경숙씨의 밀리언셀러 '엄마를 부탁해'의 영어판을 발행하는 미국 유력 출판사 크누프(Knopf)사가 초판 10만부를 찍을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국내 유명 작가들의 외국어 번역판이 많아야 1만부 정도를 찍는 수준이었고, 미국 문학분야 시장에서 외국작품 비중이 3%밖에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판 10만부 발행은 놀라운 일이다. 공식 발매일을 열흘 앞두고 초판 10만부에 이어 증쇄(增刷)준비를 시작했으며 전 세계 24개국 출판사와도 번역·출판이 계약됐다고 한다.
국내산 작품의 해외 진출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해외 독서 소비층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 있는 콘텐츠다. '엄마를 부탁해'는 지하철 서울역에서 사라진 엄마를 찾아나선 자식들의 이야기를 추리적 기법으로 다루면서 가족의 와해(瓦解) 과정과 자신의 살을 깎아 자식을 키우다 마른 지푸라기처럼 시들어가는 어머니의 모습, 그런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자식들의 마음까지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크누프사의 부사장은 "동료들이 돌아가며 번역원고를 읽었는데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미국 편집자의 이런 독후감을 통해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는 말처럼 한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세태적인 요소들이 문학적 형상화의 완성도에 따라 얼마든지 지구촌의 공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외국어를 모국어로 하면서도 작품 속 한국어의 맛과 멋을 번역어 속에 고스란히 살려낼 수 있는 번역가를 찾아내는 일이 필수적이다. 지금 번역 작업의 60%가량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인·외국인 2인1팀 방식은 아직은 불완전하다. 우리 문학 작품의 해외번역은 2010년의 경우 130건쯤이고, 이 중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을 받은 번역이 111건, 대산문화재단 지원 번역이 12건이다. 외국출판사가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에이전시 계약이나 개별적인 번역은 10여건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 작품을 초록(抄錄) 번역 또는 샘플번역해서 외국 출판사에 배포하고, 계약으로 성사시킬 수 있도록 세제 지원 등을 통해 출판에이전시(출판저작권대리인)를 육성하는 것도 큰 과제다. 신경숙씨의 성공이 디딤돌이 돼 한국 문학 국제화의 도약대를 마련했으면 하는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경향신문 사설-20110328월] ‘더불어 사는 능력’ 낙제점 받은 우리 청소년들
우리 청소년들이 이웃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했다. 국제교육협의회가 전 세계 36개국 중학교 2학년 학생 14만6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제 시민의식 교육연구’(ICCS) 자료를 토대로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을 지표로 산출한 결과 우리나라가 35위였다는 것이다. 조사에 참여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22개국 중에서는 최하위였다. 부문별로 보면 지역사회나 학내 자치단체 활동에 참여한 실적을 평가한 ‘관계 지향성’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가늠하는 ‘사회적 협력’ 부문의 점수가 모두 0점(1점 만점)으로 36개국 중 최하위였다. 대신 사회 갈등의 민주적 해결 절차와 관련 지식을 묻는 ‘갈등관리’ 영역에서는 2위로 나타나 뚜렷이 대비됐다. 이웃과 소통하며 사는 능력이 태국과 인도네시아, 아일랜드, 과테말라, 칠레 등에도 뒤처졌다.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문화·사회경제적으로는 이질적인 상대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능력이다. 그런데 설문 응답 결과를 보면 우리 청소년들이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게 돼 있다. 청소년들은 견해차나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비교적 높은 이해도를 보였다. 반면 지역공동체와 체육활동 등에서는 현저히 낮게 참여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교실 밖 사회활동 참여는 저조하고 교실 안 학업 경쟁만 극심한 기형적 교육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연구진도 지필 시험 성격이 강한 영역에서만 점수가 높고 대내외 활동과 관련된 부문의 결과가 극히 저조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정부와 교육계가 봉사활동 등 사회참여를 강화하는 쪽으로 지도해왔지만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OECD는 상호작용 역량을 세계화·다문화 추세에 적응하며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양한 견해와 문화, 인종에 대한 이해와 다른 구성원과의 상호작용이 핵심 능력이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이 저하될 경우 개인의 소외를 넘어 사회불안, 나아가 국가 경쟁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은 지식만으로 길러지는 게 아니라 사회 참여활동을 통해 함양될 수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청소년 인성교육 강화를 위한 정책적 접근의 시급성을 말해주고 있다. 청소년들이 지식 편중 교육에서 벗어나 공동체 참여의식을 갖춘 균형적인 인간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와 학교, 학부모 등 사회구성원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10328월] 한국 청소년 더불어 사는 능력 키워라
중등교육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데 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동시에 나만이 아닌 다른 이들을 되돌아보는 삶의 태도를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진학에만 몰입하는 사교육과 다른 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고교 청소년생들에게 배려, 양보, 협동, 타협 등과 같은 공동체 의식은 결여된 측면이 적지 않다.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청소년의 사회역량지표는 세계 36개국 중 35위에 그쳤다. 세부 항목인 사회적 협력과 관계지향성에서는 꼴찌를 차지했다.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연구 결과는 2009년 국제교육협의회(IEA)가 세계 36개국의 중학교 2학년 14만 600여명에게 설문한 국제 시민의식 교육연구를 근거로 삼았다. 문화·사회·경제적으로 이질적인 상대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능력인 사회역량지표의 상위권에는 태국, 인도네시아, 아일랜드, 영국 등이 포함됐다. 우리 청소년들은 갈등의 해결을 위한 지식을 중시하는 갈등관리에서는 덴마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지식 개발에 함몰된 바람에 다양한 이웃들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나아가 모든 게 ‘나’에게 맞춰진 탓에 정부와 학교에 대한 불신도 컸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전체 평균 62%의 3분의1인 20%, 학교는 평균의 절반을 약간 웃돈 45%에 불과했다.
청소년들의 부족한 공동체 의식을 더 이상 묵인하거나 방치할 수 없다. 그렇다고 청소년만을 탓할 수 없다. 오히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시스템과 교육 풍토의 피해자다. 뛰어난 친구들을 칭찬하고 인정하기보다 경쟁 상대로 여기는 상황에서 더불어 사는 의식을 기대하기란 무리다. 결국 공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정부는 학벌의 병폐를 깨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능력에 따른 차이는 인정하되 학력에 의한 차별은 금지해야 한다. 학교는 성적 줄세우기보다는 전인교육에 비중을 두고,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외향적 출세보다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의 구축은 사회적 비용과 맞물려 있는 만큼 우리 모두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328월] 도대체 준법지원인은 또 뭔가
지난 11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 상법에 상장사의 '준법지원인' 강제 채용 조항이 끼어들어 논란을 빚고 있다. 내년 4월부터 일정 규모 이상인 상장사는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법대 조교수 이상 등 법률 전문가를 1명 이상 임기 3년의 상근 준법지원인으로 둬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기업의 의사결정 및 업무집행 과정에서 상시적으로 법적 위험을 진단해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10년 전 도입된 금융사 준법감시인의 일반 상장사용 버전이다.
준법지원인은 2009년 노철래 의원(미래희망연대) 등 33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 포함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중 19명이 변호사 출신이고 6명은 법대 교수 등 법학 전공자들이다. 전형적인 밥그릇 만들어내기라는 말을 듣게 생겨 먹었다. 경제단체들은 물론이고 시민단체까지 법률로 의무화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반대의견을 냈던 법안이었다. 그러나 변변한 논의도 없이 2년이 지난 뒤 법무부가 올린 상법 개정안에 이 조항(제542조의13)이 슬쩍 끼어들어갔다. 준법지원인을 고용해야 할 당사자인 상장사들조차 법이 통과되고 나서야 이 제도가 의무화된 사실을 알았다고 할 정도다.
기업의 법적위험이 커지는 추세여서 기업들 스스로 변호사 채용을 늘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웬만한 기업이면 감사나 감사위원회 외에 감사실 법무실 고문변호사 등 다양한 내부통제 수단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선진국에서도 변호사 채용을 의무화한 이런 법은 없다. 더구나 준법지원인은 기업의 의사결정까지 감시하게 돼 감사의 역할과도 중복된다.
준법지원인 제도 도입은 최근 정부가 추진한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소득검증제가 국회에서 제동이 걸린 것과 맞물려 법조계 출신들의 지겨운 직역(職域) 이기주의로 비쳐지고 있다. 기존 감사제도가 제 기능을 못했다면 그 원인을 가려내 보완하는 게 순서다. 외환위기 이후 중구난방으로 도입된 내부통제 기준부터 명확히 한 뒤 준법지원인 제도의 필요성 여부를 논의했어야 했다. 시행을 보류하는 게 맞다.
[매일경제신문 사설-20110328월] 日 독도관련 교과서 검정 재고하길
독도(獨島)가 일본 고유영토인데 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내용의 중학교 사회교과서 검정 결과를 일본 정부가 오는 30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검정 결과 발표는 2008년 일본 정부가 펴낸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라는 가이드라인이 독도영유권 주장을 적시한 교과서로 구체화되는 최초 공식 승인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런 내용을 담은 10여 종 사회교과서가 각급 학교에서 얼마나 채택될 것인지 현 단계에서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향후 보편적인 교육내용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 매우 심각한 염려를 금할 수 없다.
최근 일본을 강타한 동북부 대지진 이후 한ㆍ일 간 선린의식이 한 단계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은 자발적으로 의식 변화를 보여주기 바란다. 그렇다고 한국이 일본의 불행에 손을 내밀고 도움을 준 것은 어떤 조건을 건 게 아니라 인류애적인 사고의 발로였음은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양국 관계가 긍정적으로 발전하려고 할 때일수록 한ㆍ일 간 역사 문제에 대한 우리 태도는 더욱 분명해야 한다. 독도 문제는 한국민에겐 사실을 전제로 한 역사인식 문제지만, 일본은 역사적 접근은 회피하고 객관성에 시비를 거는 영토 문제로 접근하겠다는 속셈을 보여왔다. 독도 문제를 놓고 한국과 지속적인 분쟁을 전개함으로써 이것이 일부 극우세력 주장이 아닌 객관적인 사실로 조작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에 소개된 자료에 따르면 독도는 6세기 중엽 지증왕 시기 지금 울릉도인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된 이래로 독도는 역사 속에서 우리 영토로 분명하게 자리 잡았다. 역사적 정통성, 국제법적 근거, 실효적 지배 등 어떤 기준으로 비춰보더라도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작년 한 해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북방 영토 문제와 센카쿠열도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을 전개한 점을 상기할 때, 우리 정부는 이번 일본 정부 발표를 동북아 지역의 역사와 미래라는 관점에서 더욱 엄격하고 냉정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지진 참사를 꿋꿋하게 이겨내는 일본인의 시민정신이 역사 인식 문제에서도 발현되기를 다시 한 번 일본 정부에 촉구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황호택 칼럼/황호택(논설실장)-20110328월] 가짜 박사女의 Kiss & Tell기사
사회적 기업 수다공방을 경영하는 전순옥 대표는 신정아 씨의 자전적 에세이 ‘4001’이 나오기 전까지는 신 씨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품었던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는 “신 씨가 우리 사회의 관음증(觀淫症)과 상업주의 저널리즘에 희생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4001을 보고서는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등장인물들에 대한 가정 파괴와 사회적 매장 행위를 너무 쉽게 내지르고 있다”며 분노를 표시했다. 그의 말마따나 4001에는 인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는 비수가 곳곳에 번득인다.
가짜 박사학위에 관한 장황한 배경설명과 구차한 논리를 뭉뚱그려 한 줄로 요약하면 ‘예일대가 있는 뉴헤이븐에 상주하지 않고 논문 대필자(代筆者)를 두어 박사학위를 따려다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신 씨는 1981년 버지니아대의 논문을 베낀 학위논문과 가짜 박사학위로 대학 사회와 미술계를 뒤흔들어놓고서도 ‘학위를 위조했던 것은 아니고, 나름대로 박사학위를 따보려고 노력했다’고 둘러댄다.
좀 두꺼운 영어사전을 들춰보면 ‘kiss-and-tell’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직역(直譯)하면 키스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해 소문낸다는 뜻이다. ‘키스 앤드 텔’은 매력 있는 여성이 사회적 명사들에게 접근해 성적 관계를 가진 뒤 배신을 때리고 황색 신문에 폭로하거나 책으로 출판해 수익금을 챙기는 행태를 의미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신 씨는 4001 서문과 책 홍보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근사한 말을 쏟아냈지만 이 책이 전형적인 ‘키스 앤드 텔’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 인세 수입 노린 명사 상처내기
신 씨는 변양균(卞良均) 씨를 책에서 똥아저씨라고 부른다. 卞을 똥 변(便)으로 읽어 놀리는 말이다. 기획예산처 장관, 대통령 정책실장을 지낸 변 씨는 신 씨와의 일로 불명예 퇴진했고 수감생활을 했다. 고위공직자가 아니었더라면 그처럼 혹독한 죗값을 치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신 씨는 ‘똥아저씨가 대학 다닐 때 꽃뱀에게 걸려 처음으로 여자와 잔 이야기도 불었고, 처음에 나를 꼬시려고 예술에 관심이 있는 척했지만 나를 자빠뜨리고 난 뒤에는 예술의 예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빈정거린다. 이것이 5년 동안 ‘아픈 사랑’을 나누었다는 남자에 대한 예의인가. 변 씨와 가족을 두 번 죽이는 짓이다.
이 책에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현 동반성장위원장)과 C 기자(현 공직자)가 가장 심하게 난타당했다. 신 씨가 너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 줄소송이 제기되면 책이 얼마나 팔릴지 모르지만 인세(印稅)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내용이 진실에 부합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지만 4001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집필한 책으로 보기에는 사익(私益) 추구와 보복심리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
나는 성곡미술관을 방문해 신 씨에게서 직접 작품 설명을 들으며 전시회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큐레이터는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미술 공부에 미련을 접을 수 없어 전공이 다른 국내 대학을 중퇴했고, 캔자스대를 졸업하고 MBA를 했으며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말했다. 그의 정체가 드러난 후에 돌이켜보니 배우의 연기처럼 거짓말을 천연스럽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도 거짓말을 가끔 하고 산다. <늦은 저녁/그녀는 어떤 옷을 입을지 망설였지/화장을 하고 긴 금발머리를 빗어 내렸어/그리고 내게 물었지 “나 괜찮아 보여”/나는 대답했네. “그래 오늘 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워”> 에릭 클랩턴이 부른 ‘멋진 오늘밤(wonderful tonight)’의 가사처럼 성장(盛裝)한 아내가 집을 나서며 “나 괜찮아 보여”라고 물을 때 “별로야”라고 대답할 수 있는 간 큰 남편은 거의 없다. 우리 모두는 가정과 직장의 평화, 그리고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조금씩 거짓말을 하고 산다.
* 진실한 사죄 없는 자기합리화
그러나 신 씨의 거짓말은 사회적 신뢰를 파괴한 행위다. 그는 가짜 학위로 교수 자리를 얻고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획득했다. ‘나는 나를 위로한다’의 저자 이홍식 교수(연세대 의대 정신과)는 “책에 나온 인물들의 존엄과 가치를 대중 앞에서 망가뜨리고 그 사람들의 가족과 자녀들에게 지울 수 없는 수치심을 주었다”고 말했다. 자기애(自己愛)의 집착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자기합리화가 심해 분노나 섭섭함을 자기중심적 사고체계 속에서 극단적으로 표출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신 씨는 책 서문에 “오랜 세월, 천천히, 나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고생하신 많은 분들을 위해 가슴 깊이 사죄드리며 살아갈 것이다”라고 썼다. 하지만 이런 식의 ‘키스 앤드 텔’은 진정으로 사죄하는 마음과 한참 거리가 멀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남정호(국제선임기자)-20110328월] 안중근 기념비
옛 어른들은 “징징대면 범이 물어간다”며 우는 아이를 얼렀다. 이탈리아에도 비슷한 게 있다. “계속 울면 한니발이 쫓아온다”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로마의 후예 이탈리아인들에겐 호랑이와 맞먹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거다. BC 218년 코끼리를 몰고 로마를 침공한 한니발은 트레비아·트라시메누스에 이어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단을 전멸시킨다. 여의도만 한 칸나에 들판이 난도질 당한 7만6000여 명의 시체로 뒤덮였다.
이처럼 지독하게 당했던 로마인들이지만 세월이 흐르자 로마 한복판에 한니발의 동상을 세운다. 적장이었을지언정 위대한 인물임을 인정했던 거다.
베트남의 명장 보 구엔 지압에게 유린당했던 프랑스와 미국 국민도 적장에 대한 외경심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 타임지는 그를 ‘붉은 나폴레옹’이라고 치켜세웠다. 많은 프랑스인은 1954년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던 디엔비엔푸 전투 현장을 지금도 방문하고 있다. 위대한 지압 장군의 족적을 더듬기 위해서다.
어디보다 걸출한 적장에게 예를 갖추는 나라가 일본이다. 러일전쟁 승리 후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 일본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가장 존경하는 이로 이순신을 꼽은 건 알려진 사실이다. 도고의 영향인지 러일전쟁 이후 일본 해사 생도들은 매년 통영의 이순신 사당을 찾아 예를 올렸다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도 이런 일본인들의 기질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1945년 미군 맥아더 사령관이 점령군으로 도쿄에 진주하자 일본인들은 그를 ‘푸른 눈의 천황’이라며 열렬히 환대한다. 각종 선물과 함께 그를 칭송하는 편지가 하루 수백 통씩 맥아더사령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의 백미는 일본인 12만 명이 한 땀 한 땀 수놓아 헌정한 맥아더 초상화 자수 작품이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1주년을 맞아 지난 25일 일본인들이 일본 사가현 무량사(無量寺) 앞에 안 의사 기념비를 세웠다 한다. 수년 전 일본 역사교육자협의회에서 펴낸 『인물로 읽는 근현대사』란 책에서는 안 의사가 “일본인 간수들이 흠모할 정도로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로 묘사돼 있다. 일본 측 입장에선 존경받는 정계의 거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한 테러리스트이건만 그의 의기를 높이 사는 이들이 적잖은 모양이다. 적이든, 내부 경쟁자든 내 편 아니면 무조건 깎아내리는 게 이 땅의 세태다. 적이었을망정 한 인물을 온당하게 평가할 줄 아는 분위기가 부럽고도 가상하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10328월] 교과서 아리랑
민요 ‘아리랑’에 나오는 ‘아리랑고개’는 어디에 있을까.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있다”고 하면 농담으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이는 실없는 얘기가 아니다. 돈암동에 실제로 있는 아리랑고개는 원래 정릉고개로 불렸는데, 춘사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이후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여기서 찍었기 때문이다.
1926년 개봉한 영화 <아리랑>에서 미친 영진은 악덕 지주이자 일본 순사의 앞잡이인 오기호를 낫으로 찔러 죽인다. 누이동생을 겁탈하려 하자 눈이 뒤집힌 것이다. 오랏줄에 묶인 영진은 아리랑고개를 넘어가고, 이때 구슬픈 가락이 흘러나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조선사람이라면 눈물 없이는 못 들었던 ‘본조(本調) 아리랑’ 이다. 수많은 아리랑 가운데 가장 흔히 불리는 곡이다.
구한말 이후 조선 팔도에서 불려진 아리랑은 대략 50여종에 2000여수나 된다고 한다. 아리랑이라는 말의 뜻을 알 수 없듯이, 각 지방에 구전되는 아리랑의 유래도 알 수 없다. 그런데 아리랑은 지역마다 달라도, 그 속에 흐르는 한은 다르지 않다. 대표적 아리랑인 정선, 진도, 밀양 아리랑을 봐도 그렇다. 얽힌 전설은 각기 달라도, 그 속에 담긴 정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정선아리랑’은 망국의 신하가 고려 왕조를 그리워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정선 고장의 노래에 뜬금없이 개성 만수산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날 좀 보소”로 경쾌하게 시작되는 ‘밀양아리랑’의 고장에도 ‘만수산 구름’만큼이나 어두운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영남루의 원혼 ‘아랑 전설’이 그것이다. ‘진도아리랑’도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하는 첫머리는 흥겹지만 후렴은 눈물로 홍건하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아리랑’에 관한 뜬소문이 실렸다고 해서 말이 많다.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꼽혔다”는 대목이 사실무근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거짓말을 해도 노래는 거짓말을 안한다는 말이 있다. 아리랑 노래에는 거짓이 없는데, 아리랑에 관한 이야기에는 거짓이 끼어든 셈이다. 어찌된 경위인지 아리송하기만 한 아리랑 이야기다.
[서울경제신문 칼럼-기자의 눈/조상인(문화레저부 기자)-20110328월] 바람 잘 날 없는 미술계
요즘 미술계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비자금 조성에 갤러리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또 제기됐다. 지난 2007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오리온그룹이다. 두 사건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가 '수상한 거래'의 의혹을 받아 곧 소환 조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귀국해서 수사를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로비 의혹과 관련해서도 요절 작가 최욱경의 유작 '학동마을'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졸지에 이 작품은 예술성에 대한 평가보다 로비용 그림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고 작품 가격은 뇌물의 액수로 전락했다.
심지어 불법 대출에도 연루됐다.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돼 영업 정지 중인 부산저축은행과 계열은행들이 대주주인 은행장 아들이 운영하는 갤러리에 360여억원을 불법 대출해 준 것으로 드러나 갤러리 대표와 은행 임원 등 6명이 25일 불구속 입건됐다. 관련된 은행장과 아들은 중국과 한국에 파트너갤러리를 설립해 심사 없이 대출을 받았고 심지어 작품 평가액을 부풀려 이중ㆍ삼중으로 담보설정을 하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직 큐레이터 신정아 씨가 낸 자전적 에세이도 연일 화제를 일으키며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에 한몫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술계 현장에서 뛰는 큐레이터나 갤러리스트들은 나오느니 한숨 뿐이다. 종사자 일부의 행태지만 마치 미술계 전체가 비리의 온상인 양 비춰지기 때문이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온 개울물을 흐린다고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미술인들이 싸잡아 매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경제력에 기반한 국가 경쟁력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려면 문화라는 소프트파워가 이를 지탱해줘야 한다. 세계 대전 후 강국으로 등극한 미국이나 오늘날 G2로 떠오른 중국이 예술에 대한 적극적 후원을 통해 명실상부한 선진국을 지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술계의 도덕성 회복과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돈 가치와는 상관없이 작가 후원과 미술 발전을 위해 기꺼이 사비를 터는 비영리 전시 기획자나 순수하게 예술 자체를 사랑하는 애호가들이 문화 선진화를 위해 쏟는 노력까지 평가절하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