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譬如生盲不見日이나
요건 이제 비유입니다. 생맹(生盲)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 있죠. 생맹(生盲)은 저 태양을 보지 못하지마는
非爲無日出世間이니
그러나 태양이 그렇다고 해서 세간(世間)에 나오지 않는 게 아니여.
해가 저렇게 잘 떠있잖아요. 우리는 해가 떠있는 거 환하게 보잖아. 우리는 생맹이 아니라서 그래. 왜 생맹이라고 했느냐? 후천적으로 맹인이 된 사람은 태양이 떴다 하면 태양 뜬 줄 아는 거야. 과거에 눈 어둡기 전에 그 태양을 일찍이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근데 생맹은 그게 아니야. 한 번도 태양을 본 적이 없으니까. 태양 하면은? 태양이 뭔고 아주 너무 궁금한 거야. 그 상황을 우리가 한 번 상상해 봐요. 그 상황을. 아찔하지요.
그 내가 그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지만. 아 생맹인데 해가 떴다 뭐 졌다 오늘은 왜 해가 저렇게 밝노? 왜 저렇게 침침하노? 뭐 그런 소리를 여러 해 동안 무수히 들어왔어.
그래서 해가 어떤 거냐고 하니까? 아 이거 참 눈 밝은 사람이 설명하기가 참 곤란하잖아. 이 사람은 생맹이야.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라. 그 모양을 생각을 해가지고 큰 다라이처럼 생겼다 그랬어요. 해가 잘 떴을 때는 다라이처럼 생겼잖아요. 그 다라이가 또 어떻게 생겼는고? 그것도 또 모르는 거야. 그래서 징처럼 생겼다. 비슷하거던. 징처럼 생겼다. 징. 풍물. 징처럼 생겼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이제 어느 날 이제 시장에 가서 징을 큰 징을 무슨 뭐 동네에서 필요해가지고 징을 사가지고 이제 가면서 심심하니까 징을 둥 치고 가거든. 그러니까 저기 징 간다고 누가 그랬어. 징. 그 징을 치고 가는데, 이 사람은 이제 징처럼 생겼다고 하니까 항상 해만 생각하고 있었어. 뭘 비유를 들어도 해만 생각. 그래서 징소리는 저게 징이라고 하니까 저게 해가 간다 해가 간다 그랬다는 거여.
그 생맹(生盲)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의 사정을 우리는 모르죠. 모릅니다. 정말 아찔하잖아요. 그렇게 안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것만으로.
봐요. 생맹에게는 태양은 보지 못했어. 그렇지만 태양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그 우리가 눈을 덜 뜨고 항상 깨어있는 것처럼, 깨달았다치고 우리가 『화엄경』을 보자 그렇게 해도 얼른 그 뭔가 가려져 있는 게 그 벗어지지가 않는 거야. 시원하게 그렇게 번뇌가 싹 사라져 버리고 이런 말들이 마음에 그냥 확확 와닿고 그래야 되는데 아직도 그렇지 못하는 거죠.
諸有目者悉明見하야
모든 눈 있는 사람, 밝은 눈 있는 사람은 전부 환하게 보는 거야.
各隨所務修其業이니라
그래서 각각 맡은 바 자기 일을 따라가지고 그 업(業)을 닦는 거여.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짓고 뭐 목수 하는 사람은 목수하고 어디 길을 까는 사람은 길을 까고 책을 보는 사람은 책을 보고, 그 태양빛 가지고 일체 뭐 눈 밝은 사람은 모든 일을 다 하지 않습니까.
그와 같습니다. 여기서 광명이야기를 계속 끊임없이 했는데, 사실은 우리 삶은 하나하나가 전부 광명의 표현입니다. 개미 한 마리가 꼼지작거리는 것도 그 나름의 그 광명을 방광하는 거요. 광명을 놓는 일이라.
이치를 잘 생각해 보면 참 이 『화엄경』이 참 정말 뛰어난 가르침이 다하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56) 大士光明亦如是하야
보살이, 깨어있는 사람, 눈 뜬 사람, 깨달은 사람의 광명(光明)도 또한 이와 같아서.
우리도 이런 상태가 돼야 돼요. 뭐 어느 정도 됐을 거요. 하도 이제 『화엄경』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큰 선비, 보살들의 광명이 이와 같아서
有智慧者皆悉見이요
지혜(智慧)로운 사람, 유지혜자(有智慧者) 지혜로운 사람은 다 본다 말이야.
凡夫邪信劣解人은
그런데 넘겨서 범부(凡夫) 어리석은 사람, 삿된 믿음을 가진 사람 중요한 거요. 우리 범부는 보통 불법을 모르는 사람을 범부 그러고 사신(邪信)은, 삿된 믿음 가진 사람. 뭐 불교 명패 하에 드나들어도, 불교 간판 밑에 드나들어도 삿되게 불교를 믿으면은 마찬가지입니다.
또 열해자(劣解者) 이해가 너무 얕은 사람, 용렬한 이해를 가진 사람, 아주 이해가 작은 뭐 세상으로 치면 뭐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정도 되는 사람들에게 그런 거죠. 그 불교에 대해서 너무 이해가 없는 사람들은 또 이게 또 이제 뭐 오래 다니느냐? 불교공부 오래 했느냐? 아니면 뭐 한 이틀 했느냐 그런 차이도 있겠지마는
또 선천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있어. 선천적으로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이해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이 있고, 육조혜능스님 같은 이들은 나무 팔러 왔다가 그 『금강경』 한 구절을 읽고 그냥 그 순간 눈을 확 떠버렸지 않습니까. 그 순간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거여.
뭐 불법(佛法)이란 불(佛)자도 모르고, 그것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고, 불교가 있는 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나무꾼일 뿐이야. 그냥 20세 전후의 그냥 중국의 아주 시골 나무 해다가 팔아가지고 그거 가지고 부모 봉양하고 어머니 봉양하고 겨우겨우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선천적으로 이 사람은 마음이 그 다른 사람들하고 달라. 한 마디에 마음이 확 열려버린 거여. 그 아마 뭐 과거생에 우리처럼 이렇게 오랫동안 공부했겠죠. 그러니까 아마 그럴리라고 생각합니다.
於此光明莫能覩니라
그러니까 범부(凡夫) 또 삿된 믿음을 가진 사람. 참 중요합니다. 절대 이제 불교 공부하면서 삿된 믿음 조심해야 돼요. 부디 삿된 믿음 조심해야 됩니다. 정법(正法) 그래 정법, 정법 노래 부르는 게 바로 그거요. 정법이 중요합니다. 바른 법.
그리고 열해자(劣解者) 이와 우리가 인연을 맺어서 불교 공부를 한다면은 좀 많이 해. 깊이 하고 책도 더 많이 읽고 법문도 좀 많이 듣고, 열해인(劣解人)은 이 광명(光明)에 있어서 능(能)히 그 보지를 못한다 이 말이여. 보지를 못한다.
인생은 이 순간순간이 광명을 놓는 일이고 두두물물 사물 하나하나가 세상 만물, 천지 만물이 전부 광명을 놓는 일이다 하는 사실을 모른다 말이야.
(157) 摩尼宮殿及輦乘을
마니(摩尼)로 된, 마니보석으로 된 궁전(宮殿)과 그리고 탈 것 아주 그 연(輦)은 그 가마 연자지요. 아주 그 왕이나 귀인들이 타는 것을
妙寶靈香以塗瑩이라
아름다운 보배와 아주 신령스러운 향(香)으로써 발라서 빛나게 한다. 이도영(以塗瑩)이라.
有福德者自然備요
복덕(福德)이 있는 사람은 자연(自然)히 갖추고, 자연이 갖추고
뭐 마니보배로 궁전을 꾸몄다. 그리고 뭐 아주 좋은 탈 것을 뭐 갖추고 있다. 그다음에 묘(妙)한 보배로써 또 신령스러운 향(香)으로써 세상에 칠을 해가지고 밝게 빛나게 한다. 이런 것들이 그야말로 바른 믿음을 가지고 눈을 좀 뜬 사람은 이 순간 이 자리에서 그대로 그것을 누리고 느끼는데, 복덕이 있는 사람은 저절로 그걸 누려요.
뭐 꼭 집에 그것을 가지고 있단 뜻이 아닙니다. 집에 가지고 있는 게 뭐 아무리 부자라 한들 얼마나 가지고 있겠어요? 이 『화엄경』에서 말하는 데다 비교해 보면은 뭐 억만 분의 일도 안돼요. 사실은
이 복덕자(福德者)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깊은 인연이 있고 이런 그 무루복(無漏福) 이 불법을, 정법을 공부하는 사람을 무루복이 많다 그래요. 그걸 또 청복(淸福)이라고 하고, 맑은 복이라고도 하고
그런 복덕을 갖춘 사람은 저절로 갖췄고. 그런 복덕이 있는 사람은
非無德者所能處니라
덕(德)없는 사람, 그런 그 덕이 없는 사람에게 능(能)히 있을 곳이 아니다. 처(處)할 곳이 아니다 그랬어요. 비무덕자소능처(非無德者所能處)니라.
(158) 大士光明亦如是하야
보살의 광명(光明), 눈 뜬 사람의 광명도 또한 이와 같아서
有深智者咸照觸이어니와
깊은 지혜 가진 사람, 깊은 지혜 가진 사람이 다 그것을 비춰 본다 말이야.
앉은자리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에서 아무 뭐 더 보탤 것 없이 그대로 그대로 다 비추고 있다 말이야.
邪信劣解凡愚人은
여기 또 나왔네요. 삿된 믿음을 가졌거나 열해(劣解) 아주 이해가 부족하거나 그리고 어리석은 범부의 사람들은
無有能見此光明이니라
이러한 광명(光明)을 능(能)히, 이 광명을 능히 봄이 없느니라. 이러한 광명을 능히 볼 수가 없어.
우리가 늘 읽고 내가 자주 말씀드리는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우리 인생은요. 눈 뜨고 보면은 이 자기 처지가 어떻든 간에, 어떠한 처지에 놓여있든 간에 그야말로 금은보화가 만허공(滿虛空) 허공 가득하게 쏟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숨 쉬고 있단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숨 쉬고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그거 하나만으로도, 살아있다고 하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금은보화가 하늘에서 가득히 쏟아지는 거 하고 같아요.
뭐 있다 없다 세상에서 있다 없다 하는 거 별 차이 아닙니다. 정말 근소한 차이예요. 숨 쉬고 있다고 하는 거, 살아있다고 하는 이 사실, 이 큰 사실 하나는 너무너무 큰 사실이라. 이건 평등해. 이게 만(萬)이라면, 만이라고 하는 숫자라면은 그다음에 뭐 지위가 높다 낮다 있다 없다 얼마나 가졌다 하는 거.
근래 세계 제일 부자가 부틴이라고 200조 대요. 200조. 우리 돈으로 200조를 가졌더라구요. 200조 그렇지 200조. 그렇게 가졌어도 그거는 별 차이 아닙니다. 200조 가진 사람이나 200만 원 겨우 재산이 200만 원 있는 사람이나 큰 차이 아니에요. 그거.
살아있다고 하는 이 큰 사실, 큰 사실은 동등한 거요. 큰 사실은 동등 그 나머지는 백만 분의 일도 안됩니다. 그 차이는. 200만원 가진 사람이나 200조 가진 사람이나 그 백만 분의 일도 안돼요. 그 차이는. 그거 잘 생각해 보면 이해될 거요. 아마 이해될 거요. 우리가 살아있다고 하는 이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것을 삿된 믿음을 가진 사람 또 용열한 이해, 아주 작은 이해를 가진 사람 또 어리석은 사람 그건 다 바깥 눈에 보이는 것만 알고, 눈에 보이는 어떤 차별만 알고 그냥 아등바등 아등바등 그냥 올라갈라고 올라갈라고 그렇게 복을 지어놓으면 저절로 내려가고 싶어도 올라갈 텐데 짓지 않고 아주 아등바등 그렇게 올라갈라고 그렇게 발버둥 치니 그게 피곤해서 어디 살 일이에요?
그 저기 옛날부터 뭐 뱁새가 뭐 황새 따라갈려고 하면은 다리가 찢어진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철든 사람들은 그런 짓 안 해요. 자기 자리에서 그냥 만족하고 사는 거여. 자기 그 수준만치, 자기 분(分)만치 『명심보감』같은데 뭐 자기 분 지키고 살라고 하는 거, 자기 분 제대로 알고 살면은 그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하는 거 그런 이야기 많잖아요.
그렇게 살면 그 편안하고 그 살기 쉬울 텐데. 그 수준도 안되고 몸도 불편하고 힘도 없고 하면서 TV에 저기 뭐 몰디브 같은 그 휴양지 좋은데 보고 ‘아이구 저기 가봤으면, 가봤으면’ 그냥 그림으로 보고 말지 ‘가봤으면 가봤으면’ 하면 그 허기져서 그 되겠어요? 그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그 우리가 이 『화엄경』 공부하는 것은 이건 정말 참 복 많은 사람들의 공부라. 그래서 그전에 어떤 스님이 그래 우리나라에 아주 유수한 그런 그 공부 많이 한 스님을 찾아가서 이제 뭘 좀 좋은 말씀 좀 들으러 왔다라고 하니까. 어떤 스님은 그러더래. “자네가 『화엄경』을 공부했냐?”고 하니까. “아 『화엄경』 공부 좀 했습니다.”“그 『화엄경』 공부했다면 십지보살의 오른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십지보살에 오른 거나 다를 바 없다.
『화엄경』을 거꾸로 봐도 니는 십지보살에 오른 거다 말이야.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은 인연만 맺어놓으면 각자 그릇대로 보는 거지. 똑같이 여기서 공부한다고 똑같이 이해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전부 이해가 다 다릅니다. 제가 설명하고 있지만 저보다 훨씬 더 툭 터지게 이해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많을 것이고, 내가 목 아프게 아무리 설명해도 뭐 열해(劣解) 아주 소견이 좁아가지고 열해의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용렬하게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
그것도 그 스님이 딴 스님한테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대요. “『화엄경』을 공부해야 부처님 은혜를 갚는 일이다.” 『화엄경』 공부는 지 혼자 하는데, 지 혼자 하고 아무도 누구에게 보답한 적도 없는데, 『화엄경』 공부하는 것 만으로 부처님 은혜를 갚은 것이다라고 하더래요. 그거 내가 구체적인 이름을 안 밝혔어 그렇지 다 잘 아는 분이라.
그래 『화엄경』 공부하는 것은 부처님 은혜를 갚는 일이고 또 뭐라고? 『화엄경』 공부하면은 십지(十地)에 오른, 십지보살에 오르는 것이다. 오늘 모두 십지보살에 올랐어요.
그런데 그 삿된 믿음을 가졌거나 열해(劣解) 아주 용렬한 이해를 가졌거나 어리석은 사람은 이러한 광명을 모른다니까. 이러한 광명 없어요. 무유능견차광명(無有能見此光明) 능히 이러한 광명을 보지 못한다.
|
첫댓글 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生盲, 凡夫, 劣解者가 邪信를 벗어나 正法의 光明으로 有智慧者가 될 수 있다.
복 많은 사람들의 공부. 화엄경 공부로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
🙏🙏🙏
밝혀서
고맙습니다_()()()_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