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장애인을 중심으로
보건복지가족부가 새로운 장애등급판정기준표를 내놓았다. 수정바델지수 각 항목의 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하여 그들 말로는 '표준진단방법을 제시하여 정확하게 장애등급을 판정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다.
수정바델지수의 체크항목은 위생, 식사, 용변, 목욕, 계단 오르내리기, 착탈의, 대소변조절, 이동, 보행, 휠체어이동 등이 전부다. 각 항목의 체크포인트는 0~5, 0~10, 0~15를 두어 '전혀 할 수 없음, 많은 도움이 필요, 중간 정도 도움이 필요, 경미한 도움이 필요, 완전히 독립적으로 수행' 등의 개별항목으로 채점한다. 정부기관은 장애판정을 함에 있어서 새로운 방법이 도입되었으니 마치 장애인의 삶이 개선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떠들어댄다.
그러나 이에는 몇 가지 중요한 맹점이 있다. 첫째, 장애개념에 있어 아직 개인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수정바델지수의 각 항목은 장애인 개인이 일상생활의 각 영역을 얼마나 수행할 수 '없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그간 장애대중이 그렇게도 외쳐 온, 장애개념에 있어 “사회가 장애를 구성한다”는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둘째, 보행장애인을 장애범주에서 제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보행장애인 대부분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느끼는 불편함도 크지만, 사회일반 활동이나 여가활동, 특히 취직·직장활동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느낀다. 목욕이나 식사와 같은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느끼게 되는 장애요소를 가진 사람만이 장애인이 아니다. 가정에서는 식사는 물론이고 청소 빨래와 같은 일의 수행을 비교적 잘하는 장애인 중에서, 예를 들어 자신이 등산을 좋아하거나 기타 스포츠 활동을 좋아하는 이가 있을 텐데, 자신의 힘으로 여가활동을 즐기기 어려운 이가 많다. 또한, 이들 역시 직업활동을 하기 어려운 이가 상당수다. 면접시험에 가면 그대로 되돌려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택시비 하라며 돈을 쥐여주면서까지. 정부가 들고 나온 이 수정바델지수가 얼마나 많은 장애인의 의견을 수렴할 것이며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자신이 받은 지수에 대해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셋째, 보편적복지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고 선별적복지의 행보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장애등급이 복지수급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이상한 나라다. ‘보편복지’라는 개념은 한국에 없다. 즉 국민이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복지는 요원하다. 복지라는 게 국민 모두의 권리가 아닌 어떤 기준에 의거해 구성원에게 개별적인 ‘혜택’으로 부여되는 현실은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복지‘혜택’을 받는 개개인은 사회로부터 낙인화된다. 사회 유명인사가 언론에서 '한국사회는 복지사회'라며 지난 참여정부를 비꼰 적이 있다. 그 인사는 정말이지 현실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복지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파악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따라서 이번에 발표한 장애판정기준은 그간 이어져 온 복지수급의 기준으로 작용해온 기준을 더욱 강화시켜 복지예산을 절감하려는 '오만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정부가 장애대중의 삶을 무시하고 이따위 기준을 고수하려 한다면 마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