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단양의 저잣거리에는 온갖 장사꾼들이 차려놓은 가게가 줄지어 있다.
옷가게·포목점·방물가게들이 서쪽에 몰려 있고 동쪽으로는 먹자골목이,
그 뒤로 쌀가게와 채소·잡곡가게가, 이어서 생선가게가 자리 잡았다.
희한한 것은 옷가게도 몇 집이 있고 국밥집도 여기저기 있어 서로 경쟁하고 서로 손님을 끌려고 친절을 베푸는데,
이놈의 어물전은 딱 하나.
완전 독점이라 주인장 표지심이 부르는 게 값이요,
손님이 와도 그만 가도 그만, 한마디로 배짱 장사다.
칼잡이를 하나 두고 표지심은 시장통을 어슬렁거리는 게 일이다.
그러니 이재에 밝은 장사꾼들이 어물전에 눈독을 들였다.
영월에서 온 배 서방이란 작자가 가게를 세 얻어 목수를 부리더니
‘영월생선’이란 간판을 달고 ‘우리 가게는 싱싱한 생선만 팝니다’라는 입간판까지 세웠다.
저잣거리 상인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꿰뚫어보고 숨을 죽여 마른침을 삼켰다.
표지심은 우람한 체격에 얼굴과 팔뚝에는 칼자국이 난무하고 술은 말술이요, 목소리는 하늘을 찢는다.
젊은 시절 한양에서 망나니를 하며 사람 목 자른 걸 셈하려면 두 손 열손가락이 모자란다고 큰소리쳤다.
게다가 표지심은 저잣거리의 왕이 돼 가게보호비 명목으로 모든 가게로부터 정기적으로 돈을 뜯었다.
거금을 받고 청부살인까지 마다하지 않는 악질 조직폭력단의 수괴로 포졸까지 표지심을 두려워했다.
영월에서 온 생선장수가 어떻게 될지는 앞이 뻔히 보이는 일이라 사람들 모두 언제일지만 궁금해했다.
그날은 의외로 빨리 왔다.
생선 궤짝을 실은 돛배가 선착장에 닿자마자 사나운 저잣거리 왈패들이 달려들어 그 많은 생선을 강물에 처넣었다.
영월 생선장수 배 서방은 가게 문도 열지 못하고 흠씬 두들겨 맞아 만신창이가 됐다.
겨우 기어서 단양 관아에 가서 고발을 했지만 허사였다.
표지심에 맞선다는 건 곧바로 망하는 길이라는 걸 재확인할 뿐이었다.
그러나 표지심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또다시 나타났다.
단양은 자고로 쏘가리의 명산지다.
남한강이 굽이쳐 흐르며 절벽과 바위를 돌아 천혜의 쏘가리 서식지가 된다.
호사가들이 수백리 밖에서 말을 타고 쏘가리회·매운탕을 맛보러 왔다.
민 서방은 ‘쏘가리 귀신’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허리에 망태기 하나만 묶고 남한강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 망태기에 쏘가리가 가득 찼다.
표지심이 민 서방을 불러 쏘가리잡이에서 손을 떼라고 경고했다.
민 서방은 한평생 배운 게 그것뿐이라 먹고살 일이 막막하다며 통사정을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잡은 쏘가리를 저잣거리 장터에서 파는 것도 아니요,
기껏 강가 초가집에서 민 서방네 젊은 마누라가 주문을 받아 회를 쳐주거나 매운탕을 끓여다 팔아 두 식구 입에 풀칠을 했다.
어느 날, 십여리나 떨어진 남한강에 익사체가 떠올랐다.
‘쏘가리 귀신’ 민 서방의 시체였다.
민 서방 마누라 하촌댁은 일가친척도 없어 넋이 빠져 있는데,
표지심의 부하인 왈패 장백이 찾아와 민 서방의 시체를 수습해 양지바른 뒷산에 매장했다.
표지심의 어물전에선 남한강 쏘가리도 팔고 있었다.
부하 두 녀석이 쪽배를 타고 낚시로 쏘가리를 잡아 올려 표지심의 어물전에 내놓았다.
부하 낚시꾼 중의 하나가 장백으로, 생전 민 서방과 친구처럼 지냈다.
민 서방은 표지심이 죽였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가을날 새벽에 표지심이 칼잡이를 데려와 민 서방을 포박해 머리를 강물에 처박아 익사시켰다.
그러곤 강물에 빠뜨렸다.
민 서방의 죽음이 잊혀갈 무렵,
장백이와 민 서방 마누라 하촌댁의 조촐한 혼례식이 치러졌다.
표지심이 주례를 섰다.
주례를 보는 내내 표지심은 침을 삼켰다.
하촌댁이 너무 예뻤다.
어느 날 순댓국집 여주인이 돈을 싸들고 표지심을 찾아왔다.
길 건너 새로 문을 연 돼지국밥집을 엎어달라는 청탁이었다.
장백이 행동대장으로 징발돼 돼지국밥집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놨다.
포졸들이 몰려와 장백을 오랏줄로 묶고 옥에 처넣어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촌댁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단잠을 자야 할 처지에 싸늘한 옥에 갇혀 도둑놈들과 새우잠을 자다니!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옥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촌댁이 면회도 오지 않았다.
장백이 옥졸들에게 매달려 표지심을 불러달라 통사정을 했더니 옥졸들이 피식 웃었다.
한해 옥살이를 마치고 나와 집으로 갔더니 새 신부 하촌댁은 표지심의 첩이 돼 있었다.
장백의 단검이 표지심의 가슴을 관통하고서 장백과 하촌댁은 술 한병을 들고 산에 올라가 민 서방의 묘소에 술잔을 올렸다.
그러곤 첫 배로 물안개 자욱한 남한강을 미끄러져 한 많은 단양 땅을 떠났다.
첫댓글 그시절에 그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