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금세 얼굴을 태울 기세로 작열한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다
손수건을 꺼내 차양을 만든다. 잠시 빛만 가려낼 뿐 이도 소용없다.
몇 번 손수건을 펼치다 간간이 불어오는 강바람을 위안삼아 미련하게 걸었다.
풀숲 아래에 몸뚱어리를 감춘 채 졸졸 흐르던 냇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벽정이 가까워지자 물길은 호수처럼 넓어졌고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열을 지어
푸른 강에 머리를 감는 양 저마다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나무의 나이는 200년을 훌쩍 넘겼다.
영벽정을 언제 지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양팽손과 김종직이 쓴 시 등으로 보아 16세기 후반에 관아에서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영벽정이 다시 세상에 알려진 건 기차가 지나면서다.
경전선 철길이 지석강을 가로질러 영벽정 바로 옆을 지나면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낭만적인 강변 풍경이 빚어졌다
영벽정 바로 곁을 지나는 기차는 지석천을 건너 화순으로 간다.
능주의 너른 들판을 달리다 지석천에서 잠시 머뭇거린 기차는
90도에 가까운 곡선 구간으로 강을 건너게 된다.
요즈음이라면 직선으로 곧장 뻗은 철길을 만들겠지만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강 양쪽의 언덕으로 최대한 붙여 가장 짧은 거리의 철길을 내다보니
크게 휘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곡선 철로로 인해 오히려 이곳은 멋진 풍경을 연출해낸 것이다.
하루에 여덟 번 지나는 여객열차와 간혹 쇳소리를 내며 달리는 화물열차가
이 곡선구간의 풍경의 주연배우다. 아니 배테랑 연기자인 영벽정과 철로는
무덤덤한 편이여서 새로이 주연으로 발탁된 기차만 분주해진다.
그럼에도 기차와 어우러진 영벽정의 멋들어진 풍경을 함께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아침 7시 26분경 능주에서 두 기차가 만나는 일이 더러 있으니
운이라도 좋은 날이면 이곳에서 두 기차가 마주보며 곡선을 돌아
강을 건너는 진풍경이 펼쳐지니 언제 한번 다시 들러야 할 풍경임에는 틀림없겠다.
경전선 최고의 풍경이라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겠다.
영벽정은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됐다.
능주팔경의 하나로 연주산 밑 지석강의 상류 영벽강변에 있다.
영벽정 이야기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貫永里)의 지석강(砥石江) 상류
영벽강(映碧江)에는 영벽정(映碧亭)이라는 정자(亭子)가 있다.
능주 고을 목사들의 영송연회(迎送宴會)가 모두 이 정자에서 베풀어졌는데,
정자가 세워진 내력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능주 고을에는 진 처사(陳處士)가 살았는데
영벽강에 정자를 짓기 위하여 높은 산의 거목을 베어 끌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을 지어 상량을 올려놓으면 집이 쓰러지기를 반복하였다.
이에 진 처사는 실의에 젖어 병석에 눕게 되었는데,
어느 날 꿈에 용암산의 산신이 나타나 “계책을 가르쳐 주겠다.”라고 하였다.
칠일 째 되던 날 사미승(沙彌僧)이 찾아와 터의 지세가 복토혈(伏兎穴)이라고 하면서
정자의 기둥 하나를 칡뿌리로 세우고 토끼 지장신을 그려
정자 터 중앙 주추에 묻어야 한다고 하고서는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진 처사는 날마다 칡뿌리 기둥을 생각하다 다시 병석에 누웠는데,
용암산 산신이 다시 나타나 뜻을 풀어 줄 사람이 찾아올 터이니 기다리라 하였다.
다음 날 책장수 노인이 나타나 하룻밤 쉬어가기를 청하자
진 처사는 그를 묵게 하고는 은근히 칡뿌리 기둥 이야기를 하였더니,
장흥 천관사(天官寺)에 500년 묵은 칡이 있는데 천관사 스님이 보호하고 있다고 말을 하였다.
이에 진 처사가 천관사를 찾아가 늙은 주지 스님을 뵙고
천관사에서 보호하고 있는 칡뿌리로 기둥을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스님은 전생의 형님을 뵈었다고 하면서 한 달 후에 기둥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하였다.
그 뒤 한 달이 채 못 되어 영벽강에 물이 넘쳤는데,
천관사 스님이 작은 배를 타고 칡뿌리를 물에 띄워 끌고 왔다.
이렇게 하여 칡뿌리로 기둥을 세우고,
즉시 지장상(支將像)을 그려 영벽정 주춧돌 밑에 묻었는데,
그 뒤로 정자는 쓰러지지 않고 무사하였다.
이후 1931년에 원인 모를 불이 났는데
칡뿌리 기둥만은 신기하게도 조금도 타지 않았고
지금도 영벽정 기둥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고 한다.
제영 영벽정(김종직1431-1492)
(국문번역이 있어 옮겨본다)
연주산에 뜬 쟁반같은 달이여
바람 잠든 풀숲에는 이슬만 차갑구나.
하늘 가득한 뭉게구름 모두 지나가고
태평연월에 병영은 찾아 무엇할까.
일년에 중추가 가장 좋은 시절임을 이제야 알랴만
나그네의 밤이 이리 즐거울 줄 누가 알았을까.
우리는 이제 서쪽 바다로 갈 것인데
손끝으로 게꼬막 까먹을 일만 남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