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 할 사이에 그 일이 일어났다. 내 오른쪽발이 자동차 타이어에 낀 것이다. 그 순간에도
난 현재 삶의 경험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늘 내 의식은 몸의 감각에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저항하지 않았다. 통증이 가볍지 않았지만 (아니 사실은 무척 아팠지만) 견뎌냈다. 세상에 견뎌내지 못할 통증이란 사실 없다.
대학 동문회 회장님으로부터 꼭 동문회 이사회에 나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차가 꽉 막혀 있는 윌셔 가를 운전해 약속 장소에 도착한 것이 7시 조금 전이었다. 저녁 시간 내내 그곳에 있을 수 있다면 아무 상관 없었겠지만 나는 얼굴 도장을 찍고, 동문회의 중요 사안에 대해 힘을 실어준 후, 저녁 8시부터 시작되는 라디오 생방송을 위해 7시 30분 정도에는 그 장소를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동차 안에 앉아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량들을 보니, 까딱하다간 생방송에 늦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바로 옆의 성당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차에 벗어두었던 자켓을 챙겨입으며 걷고 있었다.
그 순간에는,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들의 인식 능력으로 인지할 수 있는 현재 순간의 경험치 가운데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건 과연 몇 퍼센트 정도일까. 왜 이런 질문을 던지냐 하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서이다. 어쩌면 그만큼 정신줄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오직 이사회에 빨리 올라가서 빨리 마치고 빨리 방송에 늦지 않게 가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 같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마음이 미래에 가 있었다.
또 하나 내가 갖고 있는 믿음? 가치관? 잣대? 상? 가운데 하
나는 내 몸이 아니다.
나는 내 마음이 아니다.
나는 내 감정이 아니다.
나는 내 생각이 아니다.
- 삿구루
나는 보행자가 우선고 자동차는 나중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부분 운전자들이 보행자가 먼저 지나가도록 배려를 해준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중국 또는 베트남에 갔다가는 사지가 멀쩡하게 돌아올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걸을 때엔 자동차가 다가와도 손을 들고 자신있게 건널목을 걷곤 했었다.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 사람 아니지? 천사이지? 그렇게 차를 피하지 않고 걸으면서 어떻게 아직까지 차사고 한 번 안 났어? 너는 인간의 몸을 가진 게 아니라 천사인 게 분명해. 그래서 차에 부닥쳐도 이제껏 멀쩡했던 걸 거야.”
이번에 사고가 났던 순간, 그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친구야. 나, 천사 아니라는 것이 증명됐어. 사고가 드디어 났단다.”라고 전화를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에어백이 터진 교통사고도 몇 번 났었지만 이번처럼 몸이 다치기는 처음이다. 그날 나는 앰뷸런스에 실려 시저스 사이나이 병원의 응급실로 옮겨졌다. 하지만 응급실에는 내사정보다 더 급한 환자들이 득실득실했다.
일단 나의 경우, 멍은 들었어도 피가 흐르는 것은 아니었는데 응급실 안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환자들을 위해 의사와 간호사들이 가운을 펄럭이며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나는 한쪽 구석에 커튼을 쳐서 마련한 공간의 간이침대에 누워 약 한시간 넘도록 마냥 기다려야 했다.
사고가 나자마자 가장 먼저 나는 내 라디오 프로그램 프로듀서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오늘 생방송을 하지 못한다고 알렸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그 놈의’ 책임감이 뭔지 인터넷으로 방송이 제대로 나가고 있는가를 확인했다. 동료 진행자가 “스텔라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오늘은 제가 대신 방송한
다.”는 멘트가 나가고 있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책임감.. 한국인들은 이런 것을 ‘박정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아무 문제 없다. 요즘 영화로 다시금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룹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처럼 “아무 문제 없어. 누구라도 아무 문제 없
음을 볼 수 있어. 내게도 아무 문제 없어. 어쨌든 바람은 부니까…(Nothing really matters. Anyone can see nothing really matter. Nothing really matters to me. Anyway the wind blows.)”이다.
방송이 잘 나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서는 눈을 감고 늘 그렇듯이 몸의 감각에 집중했다. 통증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한다.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한다. 이제껏 수백 번, 눈을 감고 수행할 때 알아차렸던 것처럼 몸의 감각은 늘 변한다. 정해진 것이 없다.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고통이다. 무상한 것을 붙잡거나 저항하는 데에 우리들의 고통이 시작된다.
하지만 수행자들에게는 붙잡거나 저항하는 대신, 제 3의 선택이 있다. 그저 고요히 알아차리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일어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삶의 매 순간 그런 연습을 했었다. 가까운 사람이 날세운 칼날처럼 그만의 잣대로 나를 비판할 때에도, 그 순간의 경험을 붙잡거나 저항하는 대신, 그저 그 순간 내 몸의 감각에 집중했었다. 어차피 감정이란 잠깐 지나가는 에너지이다. 오랫동안 들여다봤더니 정말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님을 증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비판을 붙잡고 괴로워하고 섭섭해하는 대신, 그 순간 내 가슴의 저릿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렸다. ‘수행한다’ 셈 치고, 또는 ‘수행이라’고 생각하고… 가 아니라 실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목발을 짚고 다니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날 이후로 집안은 개판 오분 전이 됐다. 평소에도 깔끔 떠는 성격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무질서를 즐기던 나는 깔아놓은 삼단요, 오강, 컴퓨터, 물컵 등 내 몸을 둘러싼 1미터 반경의 공간을 보며 “지붕만 있었다 뿐이지 꼭 노숙자 같네.”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는 가운데 내가 현재의 경험에 대해 미묘하게 저항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순간마저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경험임을 다시 한 번 받아들인다.
사고가 난지 3주가 조금 더 지난 지금, 나는 양 다리를 비교해보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짐작은 했었지만 너무 빠르게 사용하지 않는 다리의 근육이 빠지고 있었다. “연습하는 바는 강화된다.(What you practice gets stronger.)”는 법칙은 다리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그렇구나. 다리 근육도 이런데… 마음의 근육은 어떨까. 하루라도 수행을 건너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리 근육이 팍팍 줄어드는 것이 눈으로 확인되는 것처럼, 수행의 게으름이 마음의 근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혜의 법안으로 본다면 훤히 보일 터이다.
목발을 짚고 걷다 보면 양손이 모두 목발에 의지해 있어 무얼 들을 수도 없고 하다 못해 화장실 문을 열고 닫는 것도 수월치가 않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기 하는 일에 너무 바빠서, 자기의 세계에 너무 함몰돼 있어서 눈을 뜨고도 목발 짚고 다니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투명인간보듯, 그냥 자기 갈 길을 간다.
그런데 가끔씩 멀리에서도 달려와 문을 열어주는 친절을 베푸는 이들이 있다. 그 친절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다 보면 어떻게 사고를 당했냐, 사고 몇 주차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알게 됐다. 달려와서 문을 열어준 이들중에는 자신 또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사고를 당했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상처가 아물고 치유가 되면, 이는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사고를 통해 절감했다. 공감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자신이 직접 사고가 나본 것만큼 다른 사고를 당한 사람을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은 상처랄 것도 없지만(결국 내가 만든 상처를 내가 부여잡고 있는 것이기에)… 상처가 아물고 치유되면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그 아픔을 겪고 있는 다른 이들을 그 누구보다 잘 도와줄 수 있게 된다. 상처는 (치유된다면) 결국 내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고귀한 선물이 되는 것이다.
양 다리, 양 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자유인지 모른다. 앞으로 목발 짚고 다니는 이들, 또는 지하철에서 앉은 채로 엉덩이 근육을 움직이는 이들을 볼 때,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될 것 같다. 지갑을 열어 보시도 인색치 않게 할 것 같다. 그들 모두 평안하기를… 행복하기를…
이만하기를 정말 감사해 한다. 뼈가 조금 부러지고 금이 갔을 뿐, 신경도 살아 있다. 손이 다쳤다면 얼마나 더 불편했을까. 이만하기를 다시 한 번 감사해 한다.
나는 내 몸이 아니다. 나는 내 마음도, 감정도, 생각도 아니다. 하지만 수행도 결국 몸이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내 몸의 구석구석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와 근육, 뼈에 대해 감사한다.
지구별을 떠나는 날까지, 내 몸에 대해 더 감사하고 잘 챙겨주고 해야겠다. 머무는 바 없이…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