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 주변!!(2박3일)
둘째날 공주시.
아침에 택시를 타고 공주시청에 시티투어 버스를 탈려고 이동했다.
시청에 들러니 시간이 남아 당직실에 가서 궁금한 이것 저것을
물어봤다.
공주 시민은 11여만명이고 왜 공주역이 개발이 부진하냐고
이야기 해보니 공주.부여.논산 세도시 중간지점에 역세권을
개발할려고 계획한게 지금의 상황이라고 했다.
오전 9시30분경 시티투어를 이용했는데
목포처럼 인원이 많은줄 알고 어렵게 예약을 했는데
우리일행을 제외하면 10명도 되지않아 약간 실망스러웠다.
공주 관광은 굳이 시티투어를 탈 필요가 없을것 같다.
송산리 고분군에 있는 백제 25대 무령왕릉을 참배하고
박물관 구경후 우리는 마곡사에 갈려고 신관공원에서 일행과
헤어졌다.
같이간 협회 직원이 마곡사 승차장을 상세히 알려 주었다.
해설사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1).공주에는 유명한 박씨 성을 가진 사람 셋(3)이 있는데
박찬호.박세리.박동진(국악인)이 있다고 소개했다.
2).백제 문화제를 하면서 금강에 띄워진 배가475척인데 한성에서
공주(웅진)로 수도를 옮긴 년도와 일치하다고 설명했다.
3).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은 공산성.성산리 고분군의 무령왕릉
태화산 마곡사가 있다고 했다.
4).백제의 왕릉은 도굴꾼과 일제 강점기에 무령왕릉 한기가 남겨놓고
모두 파 헤쳤져다고 이야기 했다.
5).국보는 경주보다 많고 국보만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라고 했다.
마곡사 승차장은 시외버스 터미널 앞에 있는데 신관공원 가까운
거리에 있고 그곳에서 배가고파 붕어빵을 몇개식 먹고
친구(남호)가 우리 생각해 바로 옆 마트에 음료수를 사러간 사이 버스가 왔다.
조금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해도 기다려 주지않고 신호 대기중인
버스 창문을 두드려도 빤히 쳐다보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가
신호가 바뀌니 휑하니 가버렸다.
아마 나이가 좀있는 사람들이라 급하게 하다보면 혹시 다칠까봐
그냥 간것 같다.
하는수없이 공주시에 갈때 그 택시를 이용하고 마곡사까지
요금은 23,500원이었다.
태화산 마곡사는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자장 율사가 통도사.월정사와 마곡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아마 이 시기에는 이곳이 신라의 영토인것 같다.
마곡사에 대한 두가지 전설이 있는데
1).절을 완공한후 자장율사의 설법을 했을때 사람들이 삼대같이
빽빽이 모여서 마곡사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2).신라 무산대사의 스승인 당나라 마곡보철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해탈문을 지나 천왕문을 통과후 법당입구에 기와 불사를 하였다.
앞에 대광보전이 있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니 대웅보전이 있었다.
대웅보전 좌측에 백범당(김구)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나올때는 버스를 이용했고 공산성을 둘러보고 저녁은 칼국수로
해결하고 숙소로 이동했다.
저녁 9시경 폐회와 동시에 폭죽소리와 불꽃이 요란스러웠다.
※올해에는 공주시에서 공식적인 개막식을 하고, 부여에서 공식적인
폐막식을 하며 내년에는 이와 반대로 개막식,폐막식을 한다고 한다.
東方 徐希京
인구 11만의 공주시청.
무령왕릉 경내에 있는 진묘수.
진묘수: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무덤안에 넣어두면 망자의 혼의 안녕을 위해.....
송산리 고분군을 배경
무령왕릉 실내
송산리 고분군에서 내러오다 우측에 있는 박물관.
마곡사 일주문.
조계종 제6교구 70여 사찰을 관리.
기와불사. 언제나 順理大路.
대광보전 앞 5층석탑
대광보전 뒷편에 있는 대웅전.
김구 선생은 명성왕후 시해사건후 분노하고 일본군 장교를
살해후 이곳에서 원명(법명)으로 은둔생활을 했다고 함.
공산성 입구의 금서루.
한성에서 고구려에 밀려 백제 왕족들이 거주했던곳.
금강 건너편서 보면 높은곳에 보이는 공산정.
공산정에서 성벽을 타고 내러오면 만나는 공북루.
공산루에서 행사장을 배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