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에게 자기를 과시하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품성을 풍자한 풍자 수필입니다. 속이 허 하면 허 할수록 겉포장을 요란스럽게 하는 게 인간입니다.
===============
간판공화국 만세
대한민국에서 돈을 가장 잘 버는 직업은 간판장사일성 싶다. 내가 현재의 직업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간판장사가 되었을 것이다. 길거리로 한 발짝만 나가면 온통 간판의 숲이다. 간판으로 건물 벽을 몽땅 가리고도 모자라 밤새도록 번쩍거리는 불빛으로 장식한다. 간판만으로 볼 때는 자기 집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물건을 파는 집이다.
자치단체장 후보들도 간판을 좋아한다. 목 좋다는 네거리 건물 전체를 선전용 플래카드로 감싸고 간판 자랑에 열을 올린다. 후보마다 머슴의 아들이고, 반티장사 아들이고, 소장수 아들이다. 고난을 극복하지 못한 인물은 아예 얼굴도 내밀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이놈의 간판이 사흘이 멀다 하고 바뀐다는 것이다. 어제는 옷가게, 오늘은 분식점, 내일은 또 중국집, 오늘은 이당, 내일은 박당……, 그것도 모자라 아예 최가박당으로 고쳐버린 당도 있다.
간판을 새로 달면 하나같이 고객을 왕으로 모시겠다며 코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히지만 일어서면 곧바로 간판부터 바꿔 버린다. 간판이 자주 바뀌는 이유가 가계주인 탓인지 간판장사 탓인지는 구분하기조차 어렵지만 아무튼 간판 장사들의 시장 침투는 집요하다. 대학원 졸업 논문도 백만 원이면 대신 써주고, 박사학위 논문도 삼백만원이면 써준단다. 대학은 수강료 수입을 올리니 좋고, 교수는 강의수당 받아서 좋고, 논문 대행업체는 돈 벌이가 되어서 좋고, 학생은 학위 따서 좋다. 명함마다 박사님이고 교수님이니 손해 보는 사람 하나 없는 게 간판 장사다.
이제 간판 장사는 문학계까지 들어왔다. 아무나 발행인이고 잡지마다 신인등단이다. 작가는 우쭐댈 수 있어서 좋고, 문예대학은 등단을 많이 시켜서 좋고, 잡지사는 책 많이 팔아서 좋고, 협회는 회원들이 늘어서 좋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게 등단장사다. 책 팔아주고 광고 실어주는 능력만 있으면 편지만 쓸 줄 알아도 작가가 될 수 있다. 상만 준다면 상금을 되돌려주는 문학상까지 있다하니 글 실어주고 거꾸로 돈 받는 잡지까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치고 석, 박사, 시인, 수필가가 아닌 자는 바보등신이다. 돈과 권세 위에다 학위로 분칠하고 문학으로 연지곤지를 그리니 모두가 순결한 새색시다. 어떤 문학 단체장은 전 국민이 문학가가 되는 “생활문학”이라는 기발한 장르를 개척하자고 역설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세계적인 문화대국이 눈앞에 전개될 모양이다.
모두가 사장님인 우리나라, 모두가 회장님인 우리나라, 모두가 박사님인 우리나라, 모두가 시인. 수필가인 우리나라, 모두가 선생님인 우리나라, 모두가 사장인 우리나라, 간판만 따면 누구나 위대한 국민이 되는 나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어이 남과 똑 같아지고나서야만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평등공화국,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부패지수 10점 만점에 겨우 5.5점을 얻은 겉과 속이 이렇게 다른 간판 공화국에서 간판 장사를 하면 떼돈을 벌지 싶은 것이다.
정신을 팔아서 간판을 사는 “위대한 간판 공화국 만세!”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한 40년쯤 지나서 내 손자가 할아비 제사를 지내며 하는 말 “할아버지 말씀 듣고 간판 장사를 했는데 아무도 간판을 바꾸지 않으니 쫄딱 망해버렸습니다. 할아버지 이제 저도 간판을 바꾸면 안 되겠습니까?” 저승에 있는 이 할아비 왈 “아무도 간판장사 하지 않을 때 그때가 진짜로 간판이 필요할 때니 계속해서 간판 장사를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