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염만 받던 경선은 애비 잡아먹은 년이라는 할머니의 모진구박에 암말도 못하고 늘 쪼그리고 앉아 땅을 파며 말없는 아이로 변해 가던 날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다른 아이들은 갈래머리 곱게 땋아 나풀거리며 예쁜 원피스를 입고 엄마 손 잡고 기쁘게 학교로 왔지만 경선은 할머니가 귀찮다고 긴 머리 리본을 풀고 싹둑 단발머리를 하고 할아버지와 함께 학교에 왔다. 조금은 무서워 보이던 할아버지지만 그래도 할머니보다는 따뜻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즐겁지 만은 않는 학교생활 엄마 없는 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때면 서울에서의 어린시절이 떠올라 눈물이 나왔다 철이는 2학년에 순이는 일 학년에 입학해서 잘 다니고 있겠지? 반 아이들 시선 땜에 그렇게 밉던 순이도 그리웠지만 꿈속에서나마 만날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모진 학대로 삐쩍 마른 막대기같이 여위어 갔지만 시간은 흘러서 어느덧 5학년. 새로 오신 담임선생님을 바라보는 순간 정말 잘 생기고 인자하셨다 슬픈 생활이지만 선생님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콩닥거리는 가슴을 안고 이른 아침 집안을 대충 치우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 책상을 닦고 또 닦았다. '아! 아빠가 보고 싶다. 우리 아빠가.... 작고 까맣고 못생기셨지만 언제나 퇴근길에 눈깔사탕을 들고 와 까꿍 놀리시곤 하셨지 아빠도 학교에서 경선이 같이 사랑하는 제자가 있었을까?' 지나가는 연기처럼 독백을 내뱉곤 했다 연임한 담임선생님 덕분으로 그럭저럭 2년을 보내고 내일이면 졸업이다. 뒤돌아보면 즐거운 날보다 슬픈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중풍으로 쓰러진 할머니 시중에 할아버지 조석 챙기느라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손은 거칠어져 갔다 '친구들은 고운 손으로 피아노를 치며 동요를 부르겠지.' 망막에 이슬이 맺히다 얼른 생각을 돌리며 현실로 돌아온다.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중학교에 진학 하던 날 열심히 배워서 아빠처럼 장구한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야지 경선은 다짐해 본다. 국어시간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라는 소설을 지목받고 쭉 읽어가다 더 읽질 못하고 목이 메여 눈만 껌뻑인다. 그 생각이 뇌리에 와 꽂힌다. 야속하게 떠난 엄마 때문인지.... 친구를 배반하고 떠난 아저씨 때문인지... 슬픈데도 울지 못하고 마음으로 울다 저 세상으로 가버린 아빠의 서글픈 미소 때문인지... 언제나처럼 굳세게 울지 않으려고 꼭 다문 입술에 피가 비쳤지만 뒤따라와 쳐다보는 아빠의 환영 때문에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다. 오래 앓으시던 할머니 경선이 에게 한마디 말씀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시자 한 달 뒤 아들이 떠난 곳으로 홀연히 날아가신 할아버지 마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를 기다렸다는 듯.
이젠...이젠 천애의 고아 여러 선생님의 배려로 다른 곳으로의 이사도 생각해 보았지만 졸업만은 같은 곳에서 하고 싶어서 밤이면 무서움을 공부에 매달리며 떨쳐보곤 했다 소녀 가장 말 그대로 소녀가장이다 동사무소란 데가 사무만 보는 곳인 알았는데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반찬도 배달해주는 곳인 줄 처음 알았다 이제 중학교 3 학년 학교 거리가 조금 먼 탓에 급우들은 경선의 처지를 모르고 담임선생님이 건성으로 안부를 물어왔다 어느 날 맑은 조회시간 마음이 너무 아파 빙빙 어지럼 땜에 경선은 넘어지고 말았다 담임선생님과 함께 찾은 병원에서 업친데 덮친 격이랄까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청천 같은 말을 들었다 골수가 같은 사람에게 이식하는 방법밖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 그 말뜻을 몰라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 병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하얀 가운을 입은 부드러운 의사선생님의 구체적인 설명을 들은 후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소리내어 울어 보았지만 마음만 갈기갈기 찢어질 뿐 차라리 구차한 삶을 닫아버릴까?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이었다. 학교선생님들과 급우들의 사방팔방 호소한 결과 구청에서 발 벗고 나선 결과 어느 병원에서 치료와 골수를 찾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마른침을 삼키고 학교 뒤 소담한 예배당 그 첨탑이 자꾸만 눈에 밟혀 경선은 살금살금 괭이처럼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만히 앉으니 눈물이 쏟아진다. "주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제가 가진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 데려 가셨나요? 그렇게 먼 곳으로... 저만 홀로 두고.... 그것도 부족하여 제 생명을 거두시려는지요?"
지난 날 봄꽃이 환히 웃던 날 아빠 엄마 손잡고 예배당에 갔었다. 까만 제복을 입은 목사님은 “네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렇게 말씀 하셨고 어린 나이지만 경선의 가슴은 뜨거움으로 가득 차 올라 기쁨만을 드리리라고 다짐했었다. 긴 한숨이 폐부에서 흘러나와 자포자기의 마음을 감싸 안고 이제는 조용히 모은 합장에서 미움도 슬픔도 조용히 삭힐 뿐이다. 골수기증 누가 하겠는가? 엄마를 떠올렸지만 이내 도리질이다 어디서 엄마를 찾겠는가? 떠난 간 엄마가 보고파서 울면서 저 너른 들판에서 운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찾고 싶진 않다 경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군청에서 엄마를 찾아 여러 곳을 알아보았지만 허사였다. 다행히 가까이 있는 군 장병 아저씨들과 저 서해안의 작은 섬 자매결연 단체의 협력으로 마음씨 고운 아버지 나이같은 아저씨의 골수를 받을 수 있었다 경선은 제2의 탄생의 선물을 받았다 '정말 하나님은 한쪽 문을 닫으실 때는 또 다른 작은 문을 열어두시는가 보다' 뜨거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한해의 휴학으로 친한 친구들 모두들 떠난 교정에서 경선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하염없이 울었다 아버지의 뒤를 따르려고 경선은 열심히 공부한 탓에 장학생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조금 먼 거리였지만 새벽길엔 반겨주는 친구들이 많았다 들풀들 고운 꽃들 그 중에서도 경선의 눈을 끈 석류꽃 단아한 모습에 늘 오가며 인사를 건넸다.
삭막한 등교 길 낡은 벽돌집 작은 마당에 비뚜러미 자란 너의 자태 어제도 쳐다보고 오늘도 쳐다보네
매일매일 채워가는 한웅큼의 붉은 보석 그 누가 알리요 너의 겸손한 마음 이 가을 텅 빈 가슴 메꾸어 볼까 내일도 너를 보러 바쁜 길 멈춰 서련다
이렇게 석류꽃과의 대화 속에 한 해도 지나고, 경선은 매일 쌓여가는 즐거움에 3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다 드디어 내일 졸업식 졸업생을 대표해서 답사를 한다. 꿋꿋한 소녀가장으로 바르게 걸어온 자아에게 스스로 대견해 하며 박수를 보내는 경선 문득문득 떠오르는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이 힘든 날을 지켜온 버팀목인지도 모른다. 졸업식장 떠나가는 제자를 위해 선생님들이 마련해주신 꽃들이 서있고 모두들 또 다시 대학에서 공부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슬픈 표정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답사를 하는 순서에 조금은 긴장한 모습으로 단상에선 경선은 초롱초롱한 후배들 얼굴 사이에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에 다리가 후들 떨려온다 '엄마... 원망의 등 뒤로 그렇게 보고 싶었던 엄마 살아계셨으면서 어찌 그리....' 설움에 북 받혀서 어떻게 답사를 하고 단상을 내려 왔는지 기억이 없다 삼삼오오 떼 지어 기념촬영을 끝내고 모두가 떠난 교정 까만 모자를 쓴 낯선 엄마와 대면을 했다 눈길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그 동안 조금은 늙었지만 슬픈 미소가 묻은 얼굴은 고와보였다 그 옛날, 집을 떠나가기 전 표독스럽게 광에 가두고 으름장을 놓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순간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미워했던 마음은 사라졌지만 닫힌 마음은 쉽사리 열리지 못한 채 엄마는 떠나가셨다. 겨우 나온 모기소리로 하룻밤 주무시고 가라는 말에 어느 고을 조용한 절에 공양주로 살아가신 다는 말만 남기고...
대학 진학 좋은 학교에 가기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어려운 환경 때문에 장학금을 준다는 낮은 대학 야간학부에 지원을 했다. 학교에서 추천해줘서 동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헐레벌떡 학교 문을 들어서면 그래도 뒤처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여느 날도 공부를 마친 바쁜 걸음 앞에, 다정히 어깨에 손을 두른 연인 한쌍 눈길을 내리고 지나치는데... "어어 경선이...저어 .혹시 경선이 아닌가요." 놀라 뒤돌아 본 곳엔 내 눈썰미는 못속여 하며 쳐다보는 순이와 계면쩍게 웃는 철이의 동그란 눈이 있었다. 그 옛날에 똑같은 모습으로... 그땐 둘 사이에 언제나 방해를 했었지. 철이가 너무 너무 좋았으니까... 반가움에 웃음이 나왔지만 그 웃음 뒤엔 허전한 속눈물을 삼켜야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다정히 자라온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그래 철아 넌 나의 첫사랑이란다. 그땐 네가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단다. 널다란 공터에서 공을 찰 때도 소꿉놀이 때도 늘 너와 있으면 즐거웠단다. 우리 집에 잘생기고 멋진 아빠친구가 오던 날도 너와 놀고 있을 때였지 그리곤 어느 날인가 셋이서 같이 놀다 순이가 외할머니 댁에 간다고 엄마의 고운 손을 잡고 이쁜 모습으로 여기를 지나가자 너는 시무룩해져서 집으로 돌아갔지 그때 나도 집으로 돌아가다 거실에서 엄마의 부정을 목격하고 말았지’ 집에 돌아온 경선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먼 잔해 속에 뭔가가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엄마를 찾아 그 절을 찾아 가야겠다
이른 아침 버스는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가 한 참을 더 걸은 후에 나타난 조그마한 절 공양주 아줌마를 찾으니 보살차림의 한 낯선 아줌마는 말없이 물끄러미 쳐다보다 다락 밑에서 무언가 꺼내준다 받아든 순간.... 경선은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엄마 엄마...' “경선이 보아라! 못난 애미의 마지막 말이란다 언젠가 네가 여기를 찾아오면 전해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집을 팔고 너와 너희 아빠를 떠나 행복을 찾아 떠났지만 그 곳엔 행복은 없었단다. 겉모습은 그리 중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알게 되었지 어린 네가 기억 할지 모르지만 너와 너희 아빠가 함께 살던 그 변두리가 그 채소밭이 그 둑 가에 서서 바라보던 큰 차가 다니던 도로 모두가 정겨운 그 옛날의 추억이고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이것저것 힘들게 시작해 보았지만 모두가 쌓은 업이라 했던가? 결국 감기가 있어 찾은 병원에서 이미 손댈 수 없는 상태란 것을 알았지... 그래서 네 졸업식에도 염치불구하고 간 거란다 한번은 네 모습을, 갈래머리 곱게 땋아 하얀 원피스자락 펄럭이며 웃던 네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지. 그 뒤로 이곳에 와 나의 잘못을 빌며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가신 네 아빠의 원혼을 달래며 시간이 나는 대로 삼천 배를 하였단다. 경선아! 잘 살아 가길 그리고 행복하길 바란다. 배우자를 고를 땐 제일 먼저 인격을 보아야 한단다. 마지막으로 자격은 없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 한다 나의 딸 경선아!”
글을 읽은 경선은 북받쳐 올라 울음을 쏟았다 오랜 시간 속으로만 삼켰던 눈물들이 폭포수처럼 내 속을 넘쳐서 하염없이 적시고 있었다. 공양주 아주머니의 따뜻한 손에 이끌려 엄마가 묵었던 방에서 채취를 맡으며 하루를 신세지고 뒤돌아보고, 또 보고.... 그곳을 빠져나온 지 벌써 4년 슬픔도 기쁨도 달관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 현 시점에 서 있다 욕심내지 않고 부지런히 어느 자리이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보는 눈 앞 푸른 하늘엔 흰 구름 두 조각이 나란히 흘러간다. 마치 경선의 앞날에 행운만이 찾아 올 것이라는 예견이라도 하는 듯이.
첫댓글3분간 들려준 상황설정 이름은 경선이 나이는 일곱살 이쁜엄마 외모적으로 못났지만 좋은 교사인 아빠. 아빠가 친구가 집에 머물면서 일어난 사건 그로 인한 아빠의 충격적인 죽음.그 뒤의 이야기를 앞의 이야기가 다 들어가게 눈물이 나게 쓰라는 명. 많이 생뚱하지만 구질거리는 날씨 경선이 살아가는 굳센 모습을 배우기 위해 다시 읽어봅니다.^^
첫댓글 3분간 들려준 상황설정 이름은 경선이 나이는 일곱살 이쁜엄마 외모적으로 못났지만 좋은 교사인 아빠. 아빠가 친구가 집에 머물면서 일어난 사건 그로 인한 아빠의 충격적인 죽음.그 뒤의 이야기를 앞의 이야기가 다 들어가게 눈물이 나게 쓰라는 명. 많이 생뚱하지만 구질거리는 날씨 경선이 살아가는 굳센 모습을 배우기 위해 다시 읽어봅니다.^^
경선 의 삶의 의지가
대단합니다
우리는 이보다
작은일에도
견디기 힘들어
좌절할때가 많은데
경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네요
인간승리 라고나 할까요
아름다운 경선에게
축복이 있기를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