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7,7-11; 히브 4,12-13; 마르 10,17-30
+ 오소서, 성령님
어제 은구비 공원에서 열린 노은 한마음 문화제에 많은 교우분들이 봉사해 주시고 방문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우리 성당은 페이스 페인팅과 팔찌 만들기, 그리고 캐리커쳐 그려주기 부스를 운영했는데요,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 성당 부스를 방문해 주셨고, 우리 본당의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노력과 주일학교 학생들의 활동을 담은 자료와 사진을 유심히 보고 가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라’는 교황님의 말씀을 실천한 것 같아 뿌듯했고 감사했습니다. 다시 한번, 봉사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난주 우리나라에 너무 기쁜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한강 작가께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셨다는 소식입니다. 해마다 노벨상이 발표되면, 언론이 앞다투어 ‘우리는 언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나’라는 기사를 내놓았던 기억이 새로운데요,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모르게 “뭐?”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목소리가 하도 커서 제 목소리에 제가 놀랐습니다. 우리가 노벨평화상에 이어 노벨문학상 보유 국가라니, 생각만 해도 감격적인 일입니다.
10월이 되니 라디오에서 유난히 자주 나오는 노래가 있습니다. 뭘까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인데요, 다음과 같은 가사로 시작합니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10월의 이 멋진 날에 우리는 어디서 무얼 해야 할까요? 묵주기도를 해야겠지요? 어디서 하시든 상관이 없습니다.
10월은 묵주기도 성월입니다. 1883년 레오 13세 교황님은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묵주기도를 자주 바치자고 권고하시며 10월을 묵주기도 성월로 선포하셨습니다. 오늘은 묵주기도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묵주’(默珠)가 무슨 뜻일까요? ‘묵’은 한자로 ‘잠잠할 묵’자를 씁니다. ‘침묵’할 때 쓰는 ‘묵’자입니다. 이 단어가 묵주에 왜 들어가는 것일까요?
바로 ‘묵상’을 의미하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며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성모님께서 “이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기고 곰곰이 생각했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요, 묵상은 성모님과 함께 이 신비를 마음에 새기고 곰곰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주’는 구슬 ‘주’자를 쓰는데요, 한마디로 ‘묵주’는 ‘묵상하는 구슬’ 즉 ‘우리가 묵상하도록 도와주는 구슬’을 의미합니다.
라틴어로는 ‘묵주’를 ‘로사리오’라고 하는데요, ‘로사리오’는 ‘장미 꽃다발’ 혹은 ‘장미 화관’을 의미합니다.
이교인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신’(神)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머리에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쓰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초대 교회 신자들은 하느님께 장미꽃을 바치기도 하였는데요, 특히 순교자들은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머리에 쓰고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하느님을 뵙기에 합당한 예모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교우들은 밤에 몰래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면서, 순교자들이 썼던 장미 화관을 모아 놓고, 꽃송이마다 기도를 바쳤다고 합니다.
한편,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들은 매일 시편을 외웠는데, 이때 작은 돌멩이나 곡식 낱알을 둥글게 엮어 굴리면서 기도의 횟수를 세었다고 합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은 시편 대신 ‘주님의 기도’를 바쳤고, 이러한 기도 방법이 확산되어 오다가 12세기부터는 성모송을 외우는 기도의 형태로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13세기에 이단들이 교회를 위협하자 도미니코 성인이 묵주기도를 적극 권장하셨습니다.
15세기에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는 형태의 묵주기도가 자리를 잡았고, 2002년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빛의 신비’를 추가하심으로써 오늘날의 묵주기도가 완성되었습니다.
1883년, 레오 13세 교황님은 묵주기도가 ‘사회악을 물리치는 효과적인 영적 무기’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님은 1974년 반포하신 권고 ‘마리아 공경’에서 ‘묵주기도의 복음적 특성과 그리스도 중심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2002년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를 반포하시며, “모든 이가 성모님과 일치하여 성모님의 학교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도록 권고” 하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은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은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시며, 묵주기도는 성모 신심의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기도라고 강조하십니다.
성모송의 한가운데에 있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성모송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연결하는 중심 단어는 바로 ‘예수’입니다. 우리말로는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하고 전반부가 끝나는데요, 라틴어로는 “베네딕뚜스 프룩뚜스 벤뜨리스 뚜이 예수” 이렇게 ‘예수’라는 단어로 전반부가 끝납니다. 서양 언어로 된 성모송 거의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은 이 점을 언급하시며, 성모송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단어는 ‘예수’이고, 성모송을 반복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찬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기까지는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입니다.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이 부분은 엘리사벳의 인사입니다.
둘 다 성모님께 드리는 인사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 드리는 인사입니다.
그렇기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의미 있고 결실 있는 묵주기도를 바치는 표시는, 예수님의 이름과 그분의 신비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모송의 후반부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입니다. 이 기도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과 죽음의 순간을 성모님의 전구에 맡겨 드리는데요, 성모님께서 그리스도의 어머니 곧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묵주 알들은 십자고상에 모아집니다. 십자고상에서 기도가 시작되고 끝납니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며, 그리스도를 지향합니다. 묵주기도는 그러한 신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묵주기도를 드리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소리 기도로 드리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의 뜻을 한 단어 한 단어 생각하며 천천히 바치는 것입니다. “은총이 / 가득하신 / 마리아님 / 기뻐하소서” 이렇게 말입니다.
두 번째는 묵상기도로 드리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환희의 신비 제1단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이렇게 말하고 묵주기도 1단을 드리는 동안 그 신비를 머릿속으로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관상기도로 드리는 방법입니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면서 생각과 감정을 비우는 것을 ‘관상기도’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관상기도를 바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특정한 기도문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묵주기도는 우리가 관상기도를 바치는데 적합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드리면서 다른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어느새 묵주기도가 끝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는 나도 모르게 관상기도를 바친 것입니다.
이처럼 소리 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는 우리가 묵주기도를 바치는 세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는데요, 여럿이 함께 바칠 때는 소리 기도나 묵상기도로 바칠 수 있겠고, 혼자 바칠 때에는 소리 기도나 묵상기도로 드릴 수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관상기도로 바치게 되는 때가 있기도 합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다가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어느새 기도가 끝나 있기도 하지요.
40여 년간 저와 깊은 친교를 나누었던 진산 성지 전임 사무장이셨던 강연포 베드로 형제님이 지난 10월 9일 선종하셨는데요, 돌아가시기 전에 찾아뵈면서 묵주를 드렸더니, 너무나 좋아하시면서, 하느님 나라에 가면 제 아버지께 안부 전해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에도, 묵주를 손에 쥐어드렸고, 아버지와 같은 병실을 쓰던 분께서 돌아가실 때에도 묵주를 쥐어드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빈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묵주 하나를 손에 들고 하느님 앞으로 가게 됩니다. 이 묵주가,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주는 나의 이력입니다.
비록 순교자들처럼 머리에 장미 화관을 쓰지는 않지만, 장미 화관을 우리 손에 들고 하느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를 위해 빌어주시는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예수’라는 이름을 내 말의 중심에, 내 행동의 중심에, 내 삶의 중심에 모셔야겠습니다. 그것이 묵주 기도의 신비입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묵주기도를 바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출처: Pope: Pray Rosary for Our Lady's intercession in wars lashing our world - Vatican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