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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독재자 -4- <e-book 출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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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오히려 내가 부럽다고 말했다. 도대체가 무슨 걱정이냐고 했다.
“내가 너라면 좋겠다. 아니, 느이 신랑이 내 신랑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서로 신랑을 바꾸지 않을래? 경제권이라구? 말이 좋아 경제권이지 주부로서의 경제권은 실속이라고는 손톱 만큼도 없는 거라구. 한번 생각해 봐라. 월급이라고는 쥐꼬리 만큼 가져다 주고사 나 몰라라 하면 그것처럼 골치 아픈 것도 없어. 각종 공과금에다, 먹고 살아야지, 입어야지, 사람 구실을 하자면 찾아뵈어야 할 곳도 많지, 주택 마련도 궁리해야지, 아이의 육아비며 교육비, 이리 찢고 저리 찢고, 거기다가 남편이란 작자는 억만금이라도 가져다 준 양 툭하면 손을 내밀고 무조건 내놓으라지…… 정말이지 사람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라구. 매일이 허덕허덕이고, 이리 둘러대고 저리 틀어막아도 그걸 알아주기나 하는 줄 아냐? 그런데도 돈이 없다고 하면 벌써 다 썼냐고 도리어 나무라는 거야. 그럴 때면 내가 어디다 빼돌렸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니까. 아무튼 실속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고 죽어라 일하고는 좋은 소리 못듣는 게 바로 그거라니까. 그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타 쓰는게 백 배 낫고 속 편하지. 나 같으면 얼씨구나 좋겠다 뭐.”
내 하는 얘기가 꼭 경제권만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닌데도 친구들은 그렇게 말했다. 내 얘기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가 싶었다. 아니, 알아듣긴 알아들으면서도 그런 소리였다.
“막말로 네 남편이 바람을 피우니, 어디 가서 허튼 짓을 하니. 그런 건 아니잖아. 그렇다고 너한테 못해 주는 것도 아니고. 옷 사달라면 쪼르르 가서 옷 사 주고, 미장원에 가겠다고 하면 척하니 돈을 주고, 적금 부을 거 알아서 주고, 친정 가겠다고 하면 알아서 다 마련해 주고, 얼마나 속 편하고 좋아. 솔직히 우리는 옷을 사 입고 싶어도 제대로 한번 못 사 입고, 미장원에 가고 싶어도 몇번씩 망설여야 된다구. 모처럼 마음먹고 옷가게엘 들어가도 이 구멍 저 구멍 메꿀 생각에 정작 마음에 있는 것은 손도 못대고 허접쓰레기 같은 것만 들고 나오게 마련이야. 그에 비하면 이런 저런 것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좀 좋니? 나야말로 한번 그래봤으면 원이 없겠다.”
도대체가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이야기가 되지 않는데도 친구들은 한술 더 뜨고 자기들 나름대로 제단하려 들었다.
“그게 다 배불러서 하는 소리야. 실컷 먹고 배부르니까 쓸데 없는 것만 생각하는 거라구. 걱정할 일 없으니까 사서 걱정인 거지.”
정말 내가 배불러서 그러는 것일까. 걱정 없으니까 사서 걱정인 것일까?
그런가 하면 내 신경과민을 진단하며 생각을 바꿔보는 게 어떠냐고 권하는 친구도 있었다.
“혹시 신경과민 아니니? 괜히 예민해져서 날카롭게 구는 것 아니야? 한번 달리 생각해 봐.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어.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도 세상은 백팔십 도로 바뀌어 보인다구. 네가 말하는 소위 경제권이라는 것도 그래. 가정에서 부부가 경제권을 행사하는 것도 여러 종류야. 어느 가정에서는 여자가 전권을 틀켜쥐고 있기도 하고, 또 부부가 절반씩 나눠갖고 있는가 하면, 너네 가정처럼 남자가 모든 실권을 행사하기도 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는 가정도 있어. 너네 가정도 그런 유형 중의 하나일 뿐이야. 문제로 따지자면 그 나름대로 다 문제가 있게 마련이고. 남자가 가지고 있는 집은 남자가 가지고 있는대로, 여자가 가지고 있는 집은 여자가 가지고 있는대로…… 물론 네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냐. 정작 하고자 하는 이야기, 그것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니? 다들 알고 보면 고만고만한 불만은 가지고 있게 마련이야. 그러면서 모르는 척 넘기고, 참고, 억누르며 살아가는 거지. 그러다가 정이나 못참겠으면 그때 가서 한 바탕 까무러치도록 해부치고, 그러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 싶게 잊어 버리고…… 그게 사람 사는 모양새야.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툭툭거리기나 하니까 늘 그 모양이고, 상대 쪽에서는 생트집이라 하는 거지. 아무리 죽기살기로 대항한다 해도 그게 매일이다시피 되풀이 되면 그저 습관에 지나지 않을 뿐이야. 그러니까 정이나 폭발시키려거든 날 잡아 왕창 폭발시켜 버리든가, 아니면 생각을 바꿔. 괜히 모 나게 굴어 얻어맞을 필요가 뭐 있어. 다시 말하지만 너는 신경과민 쪽일 가능성이 짙어. 우선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란 말야. 길에 돌이 박혀 있는데도 없다고 우긴대서 그 돌이 없는 거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훨씬 나아. 그가 알아서 다 해 주니 좋구나, 남들처럼 자질구래한 일에 신경 쓸 필요 없으니 홀가분하구나 하고 생각을 바꿔보란 말이야. 그러고도 아니구나, 라는 판단이 서면 그때 가서 정말로 칼을 뽑아 휘두르면 되는 거구.”
정말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모가 나서 얻어맞는 것이고, 그저 이런 저런 유형 중의 하나일 뿐인데 쓸데없이 예민해져서 날카롭게 구는 것일까? 누구도 내가 원하는 답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내 쪽의 잘못을 진단하고 멋대로 가위질하려 들었다. 나는 그때 마다 몹시 불쾌했다. 어째서 한결같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반응이다 보니 그들의 말이 맞는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왜 그렇게 깐죽깐죽 긁어대기만 했던 것일까? 왜 피하지도 않은 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서 고스란히 맞기만 했던 것일까? 하고보면 나도 결국은 그 짝이 아닌가?
만약에 어머니가 한 발짝이라도 피하거나 하다못해 방을 나가기라도 했다면 거기서 그만두었을 아버지였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고집불통으로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서 버티기만 했다. 아프다고도 하지 않았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도 않았다. 그것이 아버지의 화를 더욱 부채질했다. 가벼운 손찌검이 따귀로 변하고, 주먹질로 변하고, 머리채를 휘두르는 것으로 변해갔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고, 우리들이 달려들어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매달려서야 아버지는 못이기는 척 그만두었다.
어머니는 왜 그랬던 것일까. 왜 매질을 자초했던 것일까. 그것이 유일한 대처이고 저항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그것이 어머니가 선택한 최선의 대안이었을까?
그런데도 어머니는 머저리 같다고 쏘아대는 우리에게 말했다. 남자들은 이따금씩 객기를 부려야만 살아갈 수가 있다고, 그래도 놀음에 미쳐 가산을 다 탕진해 버린 이웃집 순자 아버지에 비하면 느이 아버지는 양반이라고, 남자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그런 말들은 나를 혼란시켰다. 내 기억 속에 요지부동 자리잡고 있는 어머니의 행동이나 말들도 나를 혼란시켰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오는 그런 혼란은 내부에서의 혼란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사람들의 말마따나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며 쓸데없이 예민해져서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강하게 부정하곤 했다. 하지만 부정하는 만큼 사실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깊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내가 피해 가지 않으려다 보니 태권과는 더욱 심하게 부딪치곤 했다. 어머니가 꿈쩍도 하지 않음으로써 가벼운 손찌검에서 따귀를, 주먹질을, 머리채 잡힘을 자초하는 식이었다. 내가 팽팽히 맞서다 보니 태권도 점점 강하게 나왔고 폭력도 점점 심해질 뿐이었다.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는데, 그게 또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서로가 갈데 까지 가다가 끝에 가서는 쓰러지기가 일쑤고, 그러면 태권은 쓰러진 나에게 집요할 정도로 사과를 하고, 나는 당장의 괴로움을 모면하기 위해 그 사과를 받아들이다 보면 내가 정말로 사과를 받아들였나 하는 착각이 드는 것이다. 폭행 뒤이면 요구해 오는 섹스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다 보면 내 스스로 받아들였다는 착각이 들고, 섹스 행위 중이면 끊임 없이 되풀이하게 마련인 만족하느냐는 물음에 대답을 하다보면 어느새 그 속에 함몰 되어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이다. 강요에 못이겨 내 잘못을 인정하다 보면 정말로 내가 잘못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어머니도 그랬던 것일까? 그래서 어머니는 누구에 비하면 느이 아버지는 양반이고, 남자들은 가끔씩 객기를 부려야만 제 명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일까. 아버지를 저주하는 듯 하면서도 결국에는 두둔하고 나서곤 했던 어머니.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어머니에게 그 무엇인가를 확인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이미 겨울이 시작된 대문앞의 밭자리에서 시커매진 목장갑을 끼고서 마른 고추대를 뽑아 다발을 만들어 묶고 있었다. 그 무렵 어머니는 혼자서 시골에 남아 오백여 평 정도 되는 집 앞의 밭자리를 가꾸며 살아가고 있었더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빠와 남동생이 모시겠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기동할 수 있을 때 까지는 남아 있겠다고 고집이었던 것이다. 벌써 반백이신 어머니에게 오백여 평 정도의 밭자리 하나 뿐일지라도 그것을 가꾼다는 것은 여간 벅찬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시골에서 막일을 하며 사셨던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병을 얻게 되면서 요양을 목적으로 찾아들어간 아버지의 옛적 고향이 아닌가.
“너 또 싸우고 오는 것이구나.”
어머니는 마악 뽑아낸 마른 고추대를 몇줌씩 포개 얹어 다발로 묶다 말고 말했다.
“또 그 소리우? 엄마 눈엔 내가 매일 싸우고 오는 것으로만 보여. 다른 때는 몰라도 이번 만큼은 아니니까 염려 놓으슈. 그냥 온 거야. 엄마가 보고 싶어서.”
싸웠다는 말은 물론 그런 내색조차 않는데도 어머니는 언제나 정확히 짚어 내곤 했다. 아무리 속이고 감추려 애를 써도 소용 없었다.
“에미 눈은 속이지 못해, 이것아. 그래 또 무슨 일이냐?”
“이번은 정말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냥 다니러 왔을 뿐이라구.”
“아니라니까 아니긴 한 것 같다만……”
어머니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못내 뒷맛이 개운치 않은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다니던 학교까지 그만두고 결혼을 서둘더니만……” 하고 중얼거렸다. 내 얼굴이 틀렸다 싶을 때면 언제나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이미 시작된 겨울의 바람 끝은 제법 맵싸했지만 한낮의 햇빛은 눈이 부셨다. 어머니가 묶어 놓는 고추대 다발 옆으로 바구니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바구니에는 울긋불긋한 마른 고추들이 반쯤 차 있었다. 여름 한 철 무성했던 고추잎이 된서리에 시들고 말라붙어 있었는데 미처 따내지 못했던 풋고추들이 시들고 마르면서 붉어져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고추대를 뽑아 묶으면서 눈에 띄는대로 그 붉어진 고추를 따 바구니에 담곤 했다.
“그래도 빻으면 고춧가루가 수월찮이 나온단다. 쌈장을 담그거나 할 때면 요긴하게 쓸 수 있지. 저번에 너희 집에 보낸 쌈장도 이 고춧가루로 담근 거란다. 우거지 버무릴 때 섞어 써도 좋구.”
나는 마른 고추대에 매달려 있는 고추들을 따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그런데 뭣하러 힘들게 고추대는 뽑아 묶고 그러우. 그냥 갈아 엎던지 한군데 모아 놓고 태워버리든지 할 것이지.”
“이 아까운 것을 왜 그냥 태워 없애냐?”
“힘들게 하니까 그렇지.”
“모르는 소리 마라. 이게 땔감으로 얼마나 좋은데. 요즈음은 이런 시골에서도 기름 보일러다 뭐다 하지만 아궁이에 불 지펴 구들장 덥히는 것만 하더냐? 아궁이에 불 지피는 맛도 그만이고.”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얼굴엔 햇살이 가득, 눈이 시려웠다.
하던 일을 중도에서 그만두고 집으로 들어간 어머니는 머리에 두르고 있던 수건으로 당신의 몸을 떨어내며 마루에 걸터 앉았다.
“정말 그냥 다니러 온 것이여?”
어머니는 확인하듯 다시 묻고, 정말로 그냥 다니러 왔을 뿐이라는 대답을 듣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보송보송한 흙으로 뒤덮힌 마당은 비질을 한 자국이 똑고르고도 선명했다. 그 위로 평행선을 긋듯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비질을 해나가면서 찍힌 것과 몇번인가 마당을 가로지르면서 찍힌 것이 서로 교차점을 만들어내고 있는 그것은 흡사 아침에 일어나 새하얀 눈 위에 찍어놓은 발자국 같았다. 마루도 먼지 하나 없이 걸레질 되어 있었다. 모든 게 잘 정돈되어 있었고 어느 한 구석 흐트러진 곳이 없었다. 헛간에는 염소 한 마리가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 주위 역시 비질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없는 집에 유일한 벗이랄 수 있는 염소 한 마리. 그것에 조차도 어머니의 손 간 흔적이 역력했던 것이다. 아침에 깔아 주었을 보드라운 볏짚하며 깨끗하게 손질이 되어 있고 알맞게 넣어 준 먹이통과 먹이들……
말끔히 걸레질한 마루에 걸터앉아서 비질 자국이며 걸어나가고 걸어들어온 발자국이 선명한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는 어머니는 한결 여유 있고 안정감 있어 보였다. 어머니는 어떻게 지난 세월들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뎌내고도 여유와 안정감을 견지해낼 수 있는 것일까. 몹쓸 병을 얻어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 없는 아버지를 이끌고 요양을 위해 내려왔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를 먼저 보내놓고도 그 집에 남아 남은 세월을 살아내고 있는 어머니.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애썼던 것은 자못 눈물 겹기 까지 했다. 아침 저녁이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버지를 부축하고 동네를 한 바퀴씩 돌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하고 굳어가는 무릎 관절을 한번이라도 더 움직이며 힘을 넣어 주기 위해 애쓰는 것은 물론 좋다는 것이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약하기 짝이 없는 비위에도 불구하고 고양이 몇 마리쯤 잡아 삶는 것은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었다. 습기 많고 지저분한 곳의 돌을 들추고서 지렁이를 잡아 물에 헹구고 또 헹궈서 고아 먹이기도 했고, 똥통 속에다 대나무를 수십개씩 박아넣고 석달 열흘을 기다렸다가 꺼내어 대의 마디 속에 고인 맑은 똥물을 사기대접에 받아 먹이기도 했다.
때 늦은 점심상을 물리고 나자 어머니가 말했다.
“이왕 내려온 길이니 아버지 산소나 둘러보고 가지 않으련?”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내게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말했다.
“열 이틀 뒷면 아버지 기일이 아니냐. 네가 그 때 다시 내려올 것도 아닐 텐데……”
“열 이틀 뒤? 아버지 기일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
“넌 그래 아버지 기일도 모르고 지내냐? 망할 것……”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아버지 기일이 언제인지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나를 나무랐다.
사실 아버지 기일에 맞춰 내려온 적이 몇번이나 되는가. 알고도 내려오지 못하고, 어찌 어찌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달력을 보면 훨씬 지나 있기가 일쑤이곤 했던 것들. 그리하여 죄스러움을 표한다는 것이 전화통 붙잡고 왜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고 하면 어머니는, 느이 오빠하고 동생한테 일부러 연락하지 말랬노라고, 오빠하고 동생이 내려오면 됐지 너까지 내려올 게 뭐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이왕 내려온 길이니 아버지 산소를 찾아 뵙고 가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산소는 뒷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염소가 있는 헛간 쪽에서 바라다보면 본체와 헛간채 사이로 아버지의 산소가 빤히 올려다보였다.
그렇다면, 혹여라도 어머니가 이 집을 떠나지 않으려 고집이었던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염소에게 먹이를 주다가, 마당을 쓸거나 그저 오가다가 어머니는 문득문득 허리를 펴고 아버지 산소를 올려다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산을 오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그리고 지난 시절에 대한 기억들이 어머니를 이제도록 버티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집 앞의 오백여 평 밭자리에 씨앗을 던지고, 호미끝으로 김을 매고, 거둬들이고, 이미 겨울이 시작된 밭자리에 나와 마른 고추대를 뽑아 묶고, 붉어진 고추를 따 바구니에 담으며.
그리 큰 산이 아니었음에도 오르는 길은 꽤나 가파랐다. 어머니는 길게 자란 채 말라서 서걱대는 풀들을 헤치고 늘어진 나뭇가지를 휘어잡으며 힘들게 산을 올랐다.
“그전엔 혼자서도 자주 올라오곤 했는데 요즈음은 이것도 힘들구나. 봄철이면 아버지 산소 주변에 고사리가 많다는 거 너도 알지? 가을이면 도토리랑 밤도 많고. 꼭 도토리쌀을 내어 먹자는 게 아닐지라도 그저 한줌씩 따다가 마루에 펼쳐놓으면 보기 좋은데.”
어머니는 혼자서도 자주 올라오곤 했다는 당신의 말이 겸연쩍었던지 말머리를 고사리와 도토리 쪽으로 돌려서 길게 이어나갔다.
아버지 산소는 벌써 봉분의 그림자가 길었다. 거기서는 저 아래의 집이 손바닥처럼 빤히 내려다보였다. 어머니는 가지고 간 술을 따라 놓더니 몇번이고 산소를 살피고 돌아다녔다. 허옇게 죽은 잡초를 뽑아내고 돌을 골라내었다. 패인 곳은 손으로 꾹꾹 눌러 다지고 혹시라도 구멍이 나지 않았나 세세히 살피고 돌아다녔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 망연히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어머니는 문득 지나가는 말처럼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말이다. 내가 죽거든 봉분 따로 쓸 생각 말고 아버지 봉분에 합치거라.”
너무 뜻밖의 말에 나는 그저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겨우 찾아낸 말이,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우?”
어머니의 머리칼이 반백이긴 했지만 아직 그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일렀다.
그러나 나의 어이 없어 하는 말과는 달리 어머니는 거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사람이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말해두는 것이여. 앞으로 십 년 뒤가 될지 이십 년 뒤가 될지, 아니면 급작스레 오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느이 아버지와 나란히 누울란다. 너희들 괜히 봉분 따로 쓰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내려올 때만 하더라도 무엇인가를 확인하자고 했지만 아무것도 묻거나 확인할 수 없었다. 아니, 어머니의 그 말이 이미 무엇인가를 내게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죽어서도 한 봉분 속에 아버지와 나란히 눕고자 하는 어머니.♧
<계속>
When A Child Is Born / Paul Mauriat
첫댓글
음악 좋구여
연꽃의 한 컷도
진정 아름다움의 굿입니다
네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있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가까운 공원이라서
다녀오려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