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45】 1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45
<서문>
광명에서 나타난 부처님 말할 수 없고
부처님이 설한 법문 말할 수 없고
법문 속에 묘한 게송 말할 수 없고
게송 듣고 생긴 지혜 말할 수 없도다.
말할 수 없는 지혜로 생각생각 가운데서
참된 이치[眞諦] 드러냄이 말할 수 없고
오는 세상에 나타나실 여러 부처님
법문을 연설하심이 끝이 없도다.
낱낱 부처님 법 말할 수 없고
가지가지 청정함도 말할 수 없고
미묘하게 내는 음성 말할 수 없고
바른 법륜 굴리는 것도 말할 수 없네.
저러한 하나하나 법륜 가운데
수다라 연설함도 말할 수 없고
저러한 하나하나 수다라에서
분별하는 법문도 말할 수 없도다.
저러한 하나하나 법문 가운데
모든 법문 또 설함도 말할 수 없고
저러한 하나하나 모든 법 중에
중생을 조복시킴도 말할 수 없네.
- 2016년 5월 5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三十, 아승지품(阿僧祗品)
▶강설 ; 제30 아승지품(阿僧祗品)과 제35 여래수호광명공덕품(如來隨好光明功德品) 이 두 품은 화엄경 39품 중에서 세존이 직접 설하신 경전이다. 그 외의 품들은 모두 여래가 증명하시고 보살들이 설하였다. 아승지품과 아래의 두 품은 등각(等覺)의 깊고 깊은 경지를 밝힌 내용이다.
등각의 덕은 보살로서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심왕(心王)보살이 질문하고 세존이 직접 설하였다고 한다.
한량없는 숫자들을 다 열거하는데 10만에 해당하는 洛叉(락차)에서 시작하여 구지, 아유다, 나유타, 그리고 마지막 124번째 숫자의 이름이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不可說不可說轉]’에까지 이르렀다.
이와 같이 참으로 어마어마한 숫자들은 모두 부처님의 수승한 덕의 한량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즉 자성여래의 무한히 높고 무한히 깊고 무한히 넓은 이치를 헤아려 보기 위하여 먼저 그 숫자의 단위들을 열거하고 다음 게송에서는 헤아릴 바의 무한한 덕을 밝혔다. 그래서 장문을 ‘능히 헤아리는 숫자의 넓고 많음’이라 하고 게송을 ‘헤아릴 바의 덕이 다함이 없음’이라 하였다.
아승지(阿僧祗)의 아(阿)는 없다는 무(無)의 뜻이고, 승지(僧祗)는 숫자[數]라는 뜻이다. 진역(晉譯) 60권 본 화엄경에서는 이 품의 이름을 심왕보살문아승지품(心王菩薩問阿僧祇品)이라 하였다.
三十, 아승지품(阿僧祗品)
1, 심왕(心王)보살이 부처님께 아승지를 묻다
爾時에 心王菩薩이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諸佛如來가 演說阿僧祇와 無量과 無邊과 無等과 不可數와 不可稱과 不可思와 不可量과 不可說과 不可說不可說하시나니 世尊하 云何阿僧祇며 乃至不可說不可說耶잇가
그 때에 심왕(心王)보살이 부처님께 말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아승지와 한량없음과 그지없음과 같을 이 없음과 셀 수 없음과 일컬을 수 없음과 생각할 수 없음과 헤아릴 수 없음과 말할 수 없음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음을 연설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아승지라 하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강설 ; 심왕(心王)보살이 숫자에 대해서 부처님께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아승지와 한량없음과 그지없음과 같을 이 없음과 셀 수 없음 등등을 설하시는데 그것은 왜 설하시는 것이며 어떤 숫자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즉 부처님의 덕은 얼마나 되며 그것을 헤아리는 수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밝힌 내용이다.
아승지라는 숫자를 질문하는 심왕(心王)보살의 심왕(心王)이란 무엇인가. 이 내용을 질문하는 보살의 이름에서 그 속뜻을 짐작해야 할 것이다. 화엄경은 보현행원(普賢行願)사상과 일심(一心)사상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진여자성 부처의 궁극적 공덕과 능력을 드러내는 데 어찌 숫자로서 표현할 수 있으랴마는 이와 같은 숫자로써 설명할 수 있는 데까지 설명하는 것이다.
2, 부처님께서 찬탄하고 설할 것을 허락하다
佛이 告心王菩薩言하사대 善哉善哉라 善男子야 汝今爲欲令諸世間으로 入佛所知數量之義하야 而問如來應正等覺하니 善男子야 諦聽諦聽하야 善思念之하라 當爲汝說호리라 時에 心王菩薩이 唯然受敎러시니라
부처님께서 심왕보살에게 말씀하시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여, 그대가 지금 모든 세간 사람들로 하여금 부처님이 아는 수량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하여 여래 응공 정등각에게 묻는구나. 선남자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하라. 마땅히 그대들을 위해서 설하리라.”
심왕보살이 가르침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설 ; 심왕보살이 아승지에 대한 숫자를 질문하자 부처님께서는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여, 그대가 지금 모든 세간 사람들로 하여금 부처님이 아는 수량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하여 여래에게 묻는구나. 선남자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하라. 마땅히 그대들을 위해서 설하리라.”라고 하시면서 크게 찬탄하였다.
보살이 법을 질문하는 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이 알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현전에 있는 수많은 대중들의 이익을 위해서 묻는 것이며, 또한 미래의 무수한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서 묻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내용들을 잘 기록하여 이와 같이 전승하여야 한다.
3, 능히 헤아리는 숫자의 넓고 많음을 밝히다.
佛言하사대 善男子야 一百洛叉가 爲一俱胝요 俱胝俱胝가 爲一阿庾多요 阿庾多阿庾多가 爲一那由他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남자여, 일백 낙차가 한 구지요, 구지씩 구지가 한 아유다요, 아유다씩 아유다가 한 나유타니라.”
▶강설 ; 진여자성여래의 공덕과 현전의 부처님의 공덕을 헤아려 알려면 먼저 숫자가 있어야 한다. 얼마나 되는 숫자가 있어야 자성여래의 공덕과 현전의 부처님의 공덕을 헤아릴 수 있을까. 먼저 낙차(洛叉)부터 시작하였다. 낙차(洛叉)란 일, 십, 백, 천, 만, 십만, 그 십만에 해당하는 숫자다.
구지(俱胝)나 나유타(那由他) 등은 자주 등장하는 말이라서 해석한 내용이 있으나 그 외에는 해석이 없다. 구지(拘胝ㆍ俱胝)는 구치(俱致ㆍ拘致)ㆍ구리(拘梨)라고도 쓰는데 번역하여 억(億)으로서 인도에서 쓰던 수량(數量)의 단위이다. 혹은 1천만이라고도 한다. 또 나유타는 인도에서 아주 많은 수를 표시하는 수량의 이름이다. 아유다( 阿由多, 阿諛多)의 백배이며, 수천만 혹은 천억ㆍ만억이라고도 하여 한결같지 않다. 이와 같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숫자와 대비해서 얼마라는 것을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다.
또 번역에서 “씩”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 씩이란 ‘수량이나 크기로 나누거나 되풀이됨’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다. 이 “씩”으로서 뜻이 잘 드러날 것 같아서 매번 사용하였다.
那由他那由他가 爲一頻婆羅요 頻婆羅頻婆羅가 爲一矜羯羅요 矜羯羅矜羯羅가 爲一阿伽羅요 阿伽羅阿伽羅가 爲一最勝이요 最勝最勝이 爲一摩婆羅요
“또 나유타씩 나유타가 한 빈바라요, 빈바라씩 빈바라가 한 긍갈라요, 긍갈라씩 긍갈라가 한 아가라요, 아가라씩 아가라가 한 최승(最勝)이요, 최승씩 최승이 한 마바라니라.”
摩婆羅摩婆羅가 爲一阿婆羅요 阿婆羅阿婆羅가 爲一多婆羅요 多婆羅多婆羅가 爲一界分이요 界分界分이 爲一普摩요 普摩普摩가 爲一禰摩요
“또 마바라씩 마바라가 한 아바라요, 아바라씩 아바라가 한 다바라요, 다바라씩 다바라가 한 계분(界分)이요, 계분씩 계분이 한 보마요, 보마씩 보마가 한 녜마니라.”
檷摩禰摩가 爲一阿婆鈐이요 阿婆鈐阿婆鈐이 爲一彌伽婆요 彌伽婆彌伽婆가 爲一毘欏伽요 毘欏伽毘欏伽가 爲一毘伽婆요 毘伽婆毘伽婆가 爲一僧羯邏摩요
“또 녜마씩 녜마가 한 아바검이요, 아바검씩 아바검이 한 미가바요, 미가바씩 미가바가 한 비라가요, 바라가씩 비라가가 한 비가바요, 비가바씩 비가바가 한 승갈라마니라.”
僧羯邏摩僧羯邏摩가 爲一毘薩羅요 毘薩羅毘薩羅가 爲一毘贍婆요 毘贍婆毘贍婆가 爲一毘盛伽요 毘盛伽毘盛伽가 爲一毘素陀요 毘素陀毘素陀가 爲一毘婆訶요
“또 승갈라마씩 승갈라마가 한 비살라요, 비살라씩 비살라가 한 비섬바요, 비섬바씩 비섬바가 한 비성가요, 비성가씩 비성가가 한 비소타요, 비소타씩 비소타가 한 비바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