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편지』(작사 월견초, 작곡 임종수)는 「나훈아」 후반기에
속하는 곡으로 1981년 11월 발표한 히트 곡입니다.
이 곡이 발표된 것은 1981년도 종점을 향해 가고 있을 때였는 데,
10년 전인 1971년 8월 당시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제안한
"남북적십자회담"이 8월 예비회담을 거쳐 1972년 8월 역사적인
1차 본 회담을 개최하게 되었는데 이 회담의 목적은 오로지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이었습니다.
실향민을 포함해 전 국민의 지대한 관심과 희망 속에 1973년 까지
7차 회담을 이어가던 남북 적십자 회담은 북한의 일방적 대화 중단
선언으로 찬물을 끼얹고 물거품이 되어 버립니다.
"북한은 남북적십자회담으로 남북이 왕래를 하게 되자 폐쇄적 이며
경제적으로 뒤쳐진 자신들의 처지가 불리해진 것을 알고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왕래 대화를 회피하였습니다."
대한 적십자사는 포기하지 않고 1977년까지 25차에 걸친 판문점
실무 회담을 이어가면서 본 회담을 촉구하는 한편, 전체 이산가족
상봉이 어려우면 60세 이상부터 상봉하자고 제안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1978년 26차 실무 회의 마저 돌연 중단 하면서 국민의
기대는 사라지게 됩니다.
대한 적십자사는 굴하지 않고 총재의 대북 성명과 1980년 9월 대화
재개 제의, 1981년 8월 남북 적십자 총재 회담을 제의하게 되는데,
바로 이 시점에서 실향민과 국민의 기대와 희망을 가득 안고
이 노래가 만들어져 발표된 것이니 『대동강 편지』는 당연히 히트곡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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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아 내가 왔다 을밀대야 내가 왔다
우표 없는 편지 속에 한 세월을 묻어 놓고
지금은 낯설은 나그네 되어
칠백리 고향 길을 찾아왔다고
못 본 체 마라 못 본 체 마라 반겨 주렴 아
대동강아 내가 왔다 부벽루야 내가 왔다
주소 없는 겉 봉투에 너의 얼굴 그리다가
눈보라 치던 밤 달도 없던 밤
울면서 떠난 길을 돌아왔다고
못 본 체하네 못 본 체하네 반겨 주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