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은 생명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서울둘레길을 걸을 때 생명체의 길 등허리를 밟고 지나는 듯하다. 길은 곧게 뻗은 선이 아니었다. 산허리를 곡선으로 휘감고, 오르막에선 숨통을 죄고, 내리막에선 무릎을 굽히게 했다. 하천 곁에서는 몸을 낮추게 하고, 산길에선 폐 깊숙이 공기를 들이켜게 했다. 섬세한 잎맥 같은 길이 있었음에도 나는 오래 직선으로 살아왔다. 빨리 닿기를 다급해하며 에돌아가는 길의 표정들을 놓치고 왔다. 그런 나를 서울둘레길은 붙들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사이사이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길은 목적지로 가는 수단이 아니라 몸이 지나가며 생각을 얻는 경전이다.
9회차는 구파발역에서 출발해 북한산생태공원까지 이어지는 17코스 5.9km를 걷고, 18코스 접어들어 탕춘대성암문과 평창동 길을 지나 형제봉 입구까지 가는 7.4km 일정. 숫자로만 보면 새삼스러워할 거리도 아니었다. 문제는 더위! 불볕더위는 한판 겨뤄보자는 듯 손톱을 세웠다.
9조가 선두에 섰다. 구파발천 들머리에 내려서자 갈대와 물억새가 먼저 초록빛으로 몸을 일렁였다. 입구에서 첫 번째 조 인증 사진을 찍는데, 미처 이름표를 목에 걸지 않은 대원들이 있었다. 선두 조라 사소한 허둥거림도 겪어야 했다. 사진작가님은 "어럴~" 하고 위트의 추임새를 넣으며 대원들이 배낭에서 명찰을 꺼내 목에 걸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셨다. 출발 전의 짧은 소란마저 걷기의 일부가 되었다.
내 스틱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롱다리 김병철 강사님이 이끄는 날, 우리 조도 기다려왔다. 전날 암벽 등반을 해서 힘드실 텐데도 걸으면서 설명의 목소리가 멎지 않았다. 산행하며 알아야 할 것들, 나무 이름 등 움직이는 백과사전이었다. 하천의 목숨붙이들은 더위 속에서도 제 빛깔을 띠고 있었다. 초록 수풀 사이에 군데군데 핀 노랑꽃창포는 작은 알전구를 켜놓은 듯 청초했다. 그 사이에 서양 붉은토끼풀도 홍자색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계란프라이를 닮은 개망초꽃, 자줏빛 엉겅퀴꽃, 길섶에 낮게 엎드려 무더기로 핀 하양 토끼풀꽃, 은근한 향을 흩뜨리는 찔레꽃, 바람이 스칠 때마다 줄기를 낭창거리는 버드나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서 흔들리고 있었다.
100인 원정대는 챙모자, 햇볕 가리개로 무장했는데 식물들은 그 자리에서 땡볕을 견디며 우리를 배웅했다. 구파발천에는 재밌는 이름의 다리도 많아 퀴즈를 내고 싶은 충동도 일었다. 진관교, 만남의다리, 반딧불다리, 메뚜기다리가 줄줄이 나타나 웃음을 깨물게 했다. 은평구에 살면서 식물에 애정을 달고 사는 한 시인님이 떠올랐다. 노랑선씀바귀와 고들빼기, 맥문동과 무릇은 꽃 색깔이나 모양이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결이 다르다며 사진을 찍어 비교해주는 분이다.
조선시대의 구파발은 서울과 의주를 잇는 파발 말의 경유지였다. 말을 갈아타고 소식을 실어 나르던 곳이 이제는 은평뉴타운을 품은 생활의 자리로 바뀌었다. 길도 시대에 따라 제 옷을 갈아입는다. 말발굽이 지나던 자리에 운동화와 등산화가 지나가고, 군사와 행정의 숨가쁜 통로였던 길이 시민들의 쉼과 산책의 길이 되었다.
선림사에서 잠깐 쉬며 물을 마시고 스틱을 꺼내 높이를 맞추었다. 산속으로 들어서자 바닥에 떨어져 말라버린 아까시꽃이 먼저 맞이했다. ‘둘레’는 ‘사물의 테두리나 바깥 언저리’ 의미인데 이만큼 올라가도 되나 싶을 만큼 오르막이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얼려온 물병을 자꾸 꺼내게 되었다. 나무 데크길이 길게 이어졌다. 얼마를 올랐을까. 산속에 육교처럼 놓인 데크길이 나왔다. 하늘 위를 걷는 느낌이어서 '구름정원길'로도 불린다는 곳도 숨 고르기 할 겨를 없이 휙 지나갔다.
‘북한산하늘전망대’는 절벽 앞으로 탁 트인 공간에 있었다. 그곳에서 두 번째 조 인증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는 자리에서 뒤돌아서서 앞을 보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다. 전망대에서는 인왕산, 안산, 백련산이 보인다고 들었지만 풍광은 상상으로 대체했다. 뒤에 대기하는 조를 위해 신속하게 전망대 자리를 내주고 그늘진 숲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 구간은 가을쯤에 다시 걷기로 마음에 동그라미를 통통하게 그려두었다.
가파른 계단이 이어졌다. 산에서 데크 계단은 올라갈 때도 버겁고 내려올 때도 만만하지 않다. 한눈을 팔다가는 발끝이 먼저 경고한다.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손이라도 잡아보자는 듯 스치는 나무들이었다. 그중에 손빨래한 듯 희고 맑은 표피에 마름모꼴 무늬가 총총 박힌 나무가 있었다. 은사시나무였다. 무늬는 공기가 드나드는 통로라고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사는 집에 창문이 있듯 나무도 제 몸에 숨구멍을 내어두고 산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숨을 쉬고 버틴다. 사람도 나무도 서 있을 줄 안다. 다만 인간에게는 보행이라는 특혜가 보태졌다. 나무는 춥다고 덥다고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땅속에 내린 뿌리를 뽑아내 어디론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자리에서 침묵으로 견딘다. 오래 서 있는 외다리 성자처럼. 숲길을 걷는 일은 뿌리를 박은 채 견디는 생명들을 보며 나를 살피는 일이다.
불광사를 지나 북한산생태공원으로 들어섰다. 모바일 인증을 마치고 곧바로 18코스로 이어졌다.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총괄은 날씨와 구간에 따라 어디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지 치밀하게 안배했을 것이다. 탕춘대성암문에 이르러 점심을 먹는 게 낫다는 김병철 강사님의 말씀을 오르막 오르며 알았다. 옛 성곽길 구간에 이르는 계단 경사는 하늘을 향해 곧추선 듯했다. ‘힘들다’, ‘덥다’, ‘종아리가 당긴다’는 생각만 붙들면 발걸음은 더 무거워졌다. 생각을 딴 데로 옮겨 심어야 했다. “참나무라는 나무는 세상에 없다”라는 말을 머릿속에 들였다. 서울둘레길을 걸으며 어디서든 참나무류를 만나왔다. 도토리 열매가 열리고 쓰임이 좋아 ‘진짜 나무’라는 뜻으로 참나무라 불릴 뿐, 참나무는 하나의 나무 이름이 아니라고 한다. 참나무류에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가 있다. 그중에서도 상수리나무는 쓰임새가 많아 사람들에게 유독 사랑받아온 나무라는 것을 복습하듯 되새겼다.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오르면 능선이 나와요.”
사진작가님이 조롱박 물 같은 말씀을 부어주셨다. ‘조금만 오르면’이라는 말은 산에서 대체로 믿어서는 안 되지만 무조건 붙잡고 싶은 날이었다. 힘을 끌어모아 오르며 참나무 종류별 잎 모양을 떠올렸다. 좋지 않은 머리를 얼러 잎을 그리는 사이, 계단 끝으로 하늘이 환하게 열렸다. 사진작가님의 ‘조금만 더’는 ‘뻥’이 아니었다. 하늘 아래 평평한 능선 길이 발바닥을 가만히 받아주듯 이어졌다.
내리막길을 얼마쯤 갔을 때 드디어 탕춘대성암문에 닿았다. 탕춘대성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기 위해 쌓은 성이다. 지금의 세검정 자리에 연산군이 탕춘대라는 누각을 짓고 연회를 즐겼다 하여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성곽의 이름 안에는 역사의 빛과 그늘이 함께 들어 있었다. 한쪽에는 방어의 뜻이, 다른 한쪽에는 권력의 유흥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탕춘대성암문 안쪽 오른편에는 '9조를 위해 준비했어!' 싶은 자리가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그네를 타듯 오갔다. SK하이닉스 주식 한 주와 맞바꾸자고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주고 싶지 않을 자리였다. 물론 나는 어마어마하게 오른 그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지만 쉬어갈 자리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했다. 바람 곁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점심을 먹었다. 땀에 젖은 등과 달아오른 종아리가 그제야 온전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조별 인증샷을 또 한 컷 찍고 암문을 지나 비봉 방향으로 가는데 알갱이 돌 마사토가 있어 발 끝에 힘을 모아주며 걸었다. 중간중간에 보랏빛으로 작은 나비처럼 핀 싸리꽃 보는 기쁨이 컸다. 조금 걷다가 구기동 쪽으로 내려가니 숲길이 끝났다. 주황색 리본 끝에 연두색 띠가 그려진 인도를 걷다가 평창 마을로 들어섰다.
조선시대 대동미를 관리하던 선혜청과 수도 방어를 맡았던 총융청의 거대한 창고가 있었던 곳이 평창이다. 지금의 평창동은 고급 주택, 액셀러레이터를 새끼발가락으로 터치하듯 해도 씨융~ 날아갈 컬러풀한 자동차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유난히 높은 담장, 도둑도 오르다 체념하고 제 신세를 돌아볼 정도였다. 더위는 위에서 내리꽂고, 아스팔트에서는 다시 튕겨 올라와 얼굴에 달라붙었다. 더위가 그악스러울 때는 소리가 나는 것도 같다. “때그락때그락”, “쨍알쨍알” 머리채라도 잡아당길 듯 달려들었다. 강사님들 얼굴이 막 구워낸 감자가 되어갔다. 자동차가 많이 지나가지는 않았지만 조심해야 했다. 100인 원정대는 길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 걸었다. 부자 동네에서 주눅이 든 나는 넓지도 않은 어깨를 오므리고 발가락 열 개도 알뜰히 오므리고 걸었다.
“원정대가 노란 선 밖으로 나오지 않게 강사님들 주의시켜 주세요.”
솥뚜껑에 부침개를 지져내는 듯한 더위 속에서 방재형 대장님의 목소리는 파찰음에 가까웠다. 걷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살피는 목소리였다. 물 세 병이 동날 무렵, 선두 김병철 강사님과 사진작가님이 원정대 행렬 방향을 내리막으로 틀었다. 그늘진 놀이터가 나왔다. 물이 콸콸 쏟아지는 수도꼭지도 있었다. 서울특별시 수돗물 아리수는 오아시스의 샘물이었다. 빈 병에 물을 채우고 팔에도 시원하게 적셨다. 뒤늦게 도착한 후미 조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놀이터 바닥에 널브러지듯 엉덩이를 내려놓고 앉았다. 쉬어야 할 곳에 정확히 쉬도록 사전 답사로 장소를 정해둔 섬세함이 느껴졌다. 치밀함 앞에서는 경외감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연화정사’ 사찰에서도 잠시 숨을 골랐다. 조별 인증 사진도 찍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시간이 한 모금 주어졌다. 그곳에서 건너다본 풍광은 “와!”였다. 북한산을 병풍처럼 두른 고풍스러운 집들이 그림이었다. 가까이 걸을 때는 높은 담의 위용과 아스팔트의 열기만 느껴졌는데, 멀리 떨어져 보니 마을은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0미터 미인이 있듯 풍경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형제봉 입구 언저리에서 9회차 구간 걷기를 마무리했다. 더위를 어부바하고 무사히 걸어낸 길의 뒤에는 강더위를 몸으로 묵묵히 받아낸 얼굴들이 있었다. 첫째도 둘째도 안전을 강조한 방재형 원정대장님, 중간중간 나타나시어 응원해주신 홍종길 팀장님, 반바지가 근사하게 잘 어울리는 사진작가님, 바지런하게 움직이느라 얼굴 벌겋게 달아오른 노성춘 샘, 그리고 강사님들 덕분에 17코스~ 18코스도 끝까지 길로 남았다.
